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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고려의 국경선을 지도로 대답하는 몇가지 사례

monocrop 2009. 6. 30. 02:42

고려의 국경선을 지도로 대답하는 몇가지 사례

 이렇게 훌륭한 지도를 소장하고 있으면서도 만주까지 확장된 고려의 국경을 외면하고 오늘날까지도 고려시대의 국경을 함경도로 축소시킨 이유가 무엇일까요.잘못된 지도로 명나라에게 뺏길뻔 하였던 영토를 진정전(陳情箋)까지 올려서 수정하였다면 계속해서 수정된 국경을 그린 지도를 사용해야 옳은 일이지 지도는 아직까지도 수정되지않은 불량품을 사용하면서 천 수백여리의 고려시대 영토를 유기하고 있으니 이게 어떻게 된 영문입니까? 영조때 우리손으로 그렸다고 하는 지도는 정밀도는 모르지만 아름답기가 겸재의 산수화를 보는것 같습니다.

 

<<고려사>><지리지>에서 함흥 이북을 동계(東界)라고 설명하면서 역적 탁청과 조휘의 사기행각을 단순하게 처리하여 왜 쌍성총관부를 영흥에 설치하게 되었는지등은 설명이 없고,원나라가 탁청등이 항복한곳에 쌍성총관부를 설치하여 고려의 무력으로 수복될때까지 99년간 통치하였다라는 설명밖에 없습니다.고려말에 이미 권근의 진정전으로 알게된 사실은 오래전에 함흥에 쌍성총관부를 설치한 사실은 부정으로 밝혀져 취소하고 고려의 통치권이 회복되었다고 하였는데 왜 그러한 사실이 지리지에 기록이 안되고 있는것일까요? 만약에 권근의 진정전마져 명나라가 수용하지 않았다면 명나라와 고려의 국경선도 강원도에 있는 철령이 되었을것입니다.

 

서북피아양계만리일람지도 일본 쓰쿠바대학 소장본 작자연대미상. 영조때 만들어진 군사용지도

제공:향고도  편집:구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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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여지도 경판천문도(淸與地圖 經版天文圖) 청, 마군량 1780~1790  번각1850 

지도제공:향고도

흥개호(興開湖)좌측에 여직까지의 지도 색은 노란색으로 조선령을 표시하고 있음. 이 지도는 청나라에서 만든 지도입니다.

 일본역사지도  북경의 바로 위에 표시된 조선의 위치는 요동으로 표시된 조선국입니다. 이때는 앞에 올려진 지도에서 요동반도의 서쪽이 청나라로 흡수되기 전입니다. 이 지도에는 요동반도를 평안도로 표시하고 있습니다.

 이 지도는 성춘령도입니다. 두만강 좌측으로 경흥(慶興)이 성으로 표시되고 그 북쪽으로 한참을 올라와 선춘령(先春嶺)과 고려경계비라는 표시가 있습니다.그 선춘령의 북쪽으로 흥개호(興開湖)가 보이네요.우리 조선은 계속하여 약자의 위치에 있었는데 사실이 아니라면 이런 지도를 작성하여 영토를 주장할수 있다고 보시는지 비트러진 시각을 바로집고 잃어버린 역사찾기에 동참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구하기 어렵다고 하던 사료도 아무리 올려주면 뭘합니까? 계속하여 부정하고 싶은 마음만이 가득한데...한반도의 거의 30프로가 주인도 모르는 사이에 사기꾼들의 작란으로 소유권이 타인으로 바꿔치기 된게 발견되어 바로 잡았다고 하는 사실을 대국적으로 검토하고 타당성이 인정되면 수긍하면 되는것이지 어떻게 하면 그러한 사실을 뒤집어 볼까 하는 생각을 가지고 반론에 임하는태도는 옳지못합니다. 당시 만들어진 지도라는 개념이 거의 지적도에 해당하는 권리를 표시하는 국가문서인 것입니다. 당연히 상대의 인정하에 만들어지는것이 원칙이겠으나 상대방이 약소국으로 권리를 저당잡힌 상태에서는 강대국 일방으로 만들어지는 예가 많이 있었습니다. 따라서 고려에서 이의를 제기한 철령의 위치와 쌍성총관부도는 당연히 철회되어야 마땅한 것이었습니다.지금도 독도의 영유권과 동해의 표시를 두고 한일간에 분쟁이 끝이지를 않고 있지만 여기에서 지도는 중요한 증거물이 되고 있습니다.

 

금나라의 발생이 고려에서 되돌려준 동북9성에서 출발하였다면 누구보다 금나라는 여진의 판도는 잘알고 있었을텐데 그들이 지도에 표시한 여진의 위치조차 이의를 제기한다면 반대를 위한 반대인것이지요. 자국의 주장에 유리한 국경(예:만주지역)을 부정하고 자국의 국경에 불리한 국경(예: 함경도-강원도)을 지지한다면 이들을 우리는 한국인이라 인정할수 없습니다. 만약 실재의 국경을 왜곡하여 함경도내에 있어야 할 동북9성의 위치를 영고탑 근처까지 올려 그렸다가 발각된다면 그 지도를 제작한 측이 청나라건 고려이건 죽엄을 면키 어려운 죄에 해당할것입니다. 하물며 그것이 약소국에서 만들어진 지도라면 그 책임을 어떻게 감당하겠습니까? 다음에 여진의 위치를 볼수있는 몇장의 지도를 다시 올립니다.

 

이러한 자료를 발견하기가 어렵다는 사실은 모두가 알고 게시는 사실입니다. 더구나 사료는 왜곡시키기가 비교적 용이하지만 지도는 어렵지요.예를 들어 고려사에 계속 등장하는 압록강의 경계가 그것입니다.어느때는 요하가 압록이 되고, 어느때는 개주하가 압록이 되고 어느때는 현 압록강으로 주장할수가 있기 때문입니다.그렇지만 지도는 그러한 작란이 용서되지 않습니다.

 

 

 이곳의 철령을 원나라와 고려의 국경이라고 그려놓은 지도입니다. 이 철령의 위치는 금강산과 거의 경계를 이루는 통주 근처에 있습니다. 이곳에서 개경은 서쪽으로 약 300여리라고 합니다. 쌍성은 원산의 북쪽에 있던 함흥(영흥)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고려의 수도는 말타고 달리면 하루꺼리도 안되는곳에 원나라가 들어와 있었다는 지도입니다. 이 지도의 상단에는 요동을 향하여 글씨를 거꾸로 써두었는데 요동에는 가오리를 닮은 조선이 있다고 하여 접역전도라는 이름이 달려있습니다. 안변도호부에 있던 등주(登州)라는 지명은 고려초기 이후에 만들어졌다는 설명이 고려사 지리지에 있습니다.

 

 지도:만철소관약도 1936  함주로(咸州路)에 있엇다는 쌍성의 위치입니다. 명나라는 쌍성보를 설치하였습니다. 본성의 위치를 옮겼는지의 여부는 알수가 없습니다. 함경도 함흥의 위치와 비교하여 보시기 바랍니다.

출처 : 品 石 齋
글쓴이 : 구산(九山)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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