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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옥녀玉女의 진주와 선도仙桃의 복숭아를 든 선덕여왕善德女王

monocrop 2009. 6. 27. 01:49

- 오두의 문화비평 - 

 http://blog.chosun.com/blog.log.view.screen?blogId=3199&logId=4033129

 

 

옥녀(玉女)의 진주와 선도(仙桃)의 복숭아를 든 선덕여왕(善德女王)

 

 

- 문무왕보다 앞서 해중능으로 간 선덕여왕(善德女王) -

- 신룡(神龍)과 인어(人魚), 머리빗는 '옥녀(玉女)' 신화-  

- 파도에 세례되는 암초에 붙은 조개, 불두에 붙은 조개 -

 

 
해중능은 왜 신화가 되었으며, 문무대왕은 왜 그곳에 묻혀서 신라를 지키는 신룡(神龍)이 되겠다고 했을까?
그런데 그보다 먼저 선덕여왕(善德女王)이 해중능에 가 있었다.
 
선덕여왕의 살아 있을 때 왕호는 '성조황고(聖祖皇姑)'였다. 여신에게나 붙일 칭호이다.
과연 그녀는 살아 생전 신라에 여신적인 업적을 남기고 신화적인 존숭을 받았던 것일까. 
 
근년에 발표된 연구 결과에서도 보여주듯이 옥녀봉(玉女峰) - 첨성대 - 반월성 - 선덕여왕릉 - 대왕암(해중능)을 잇는 향동지일출(向冬至日出) 라인인 서라벌의 천단의 길은 선덕여왕 때에 완성된 것이고 그녀 스스로 그 라인 선상에 묻혔다. 그녀의 고분 앞에는 여신에게나 가능한 사천왕사를 지었던 사람은 문무대왕이었다. 
 
 

1sun.jpg

*서라벌 유적들과 동짓날 일출 방향 향동지일출(向冬至日出) 라인

옥녀봉 - 첨성대 - 반월성 - 선덕여왕릉 - 대왕암(해중능)

 
선덕여왕의 서라벌은 옥녀봉(玉女峰)을 깃점으로 이루어진 여신의 도읍이었다. 서라벌은 옥녀(玉女)의 나라 도읍 옥경(玉京)이다. '옥경(玉京)'의 사전적인 뜻은 '선계(仙界)의 도읍'을 말한다.
 
옥녀봉에서 해중능 바다를 향해 내려다보는 서라벌(徐羅伐)은 옥녀(玉女) 여신의 '하늘나라'였기에 서라벌에 반달이 뜬 것처럼 '반월성(半月城)'이 있고, 그 옥녀의 반달 앞에 옥녀의 하늘우물 '첨성대(瞻星臺)'가 있다.
 
옥녀(玉女)의 '하늘나라'는 공중의 하늘이 아니라 신선이 노니는 옥녀봉 (玉女峰) 산봉우리 산상의 세계이다. 신선도가에서는 산상에서 쟁생불멸한다고 믿어졌다. 다만 뭍에 올라 사는 옥녀(玉女여신은 바다를 오가는 용녀龍女)이기도 했다는 것은 고려시조신화에서도 볼 수 있다. 서라벌의 옥녀봉은 그래서 신화적으로 옥녀여신의 '천궁'이며 '용궁'이었다.
 
신화시대의 신의 나라(神國)는 지상에 있었다. 불국사의 불국(佛國)을 강조하기 이전에 신라는 신국(神國)으로 불렸다. 신선도가의 영생불노 장생불사 사상은 살아 있는 신들의 이야기에서 대지의 영원불멸의 신앙을 바탕하고 있었다.
 
옥녀봉을 조봉으로 펼쳐진 나라의 도읍 옥경(玉京)이라는 말은 옥황상제(玉皇上帝) 나라의 수도라는 의미이다. 옥황상제(玉皇上帝)는 남성이 아니라 본래 여신 옥녀(玉女)이다. 옥(玉)자가 오늘날까지 여자 이름에 사용되는 것은 이러한 신화적 연유이며, 여성의 신체와 관련한 칭호에 옥(玉)자가 들어가는 칭호가 많은 것은 그 때문이다.
 
옥녀봉(玉女峰)은 그 머리가 되는 동시에 대자연 자체가 대지지모의 몸이며 옥황상제(玉皇上帝)가 된다. 천제(天帝)가 아닌 '상제(上帝)'의 상(上)은 산상(山上)의 상(上)이기에 옥황상제((玉皇上帝)라고 했던 것이다. 옥황(玉皇)이란 옥동자 왕(.)을 낳는 옥(玉)이며 왕(王) 위에 산상에서 태양빛을 비추어주는 빛의 여신(白+王=皇)으로 있는 옥황(玉皇)이다.
 
선덕여왕의 치세 동안의 왕호가 '성조황고(聖祖皇姑)'였던 것은 그녀가 마고할머니 선도성모 여신 시조의 현현으로서 대대손손이 왕들이 태양처럼 태어나서, 여왕이 만고 번성의 거룩한 시조가 되고 그 여신이 된다는 옥황상제((玉皇上帝))의 의미가 들어 있다.
 
선덕여왕에게 옥녀여신(玉女女神)은 신선(神仙)이면서 신룡(神龍)이다. 그렇기에 해신(海神)이며 산신(山神)이며 지신(地神)인 선도성모(仙桃聖母)이며 동신성모(東神聖母)이며 태양의 여신 '불거내' 신라명신(新羅明神)이다.
 
산신으로 표현될 때는 신선(神仙), 해신으로 표현될 때는 신룡(神龍)이었던 것을 고려왕조에서 남성지배자를 강조하기 위하여 신선은 옥녀(玉女), 신룡은 용녀(龍女)로 표현하고 민간에서 그렇게 불리게 된 것으로 보인다. 고려시조 왕건신화에서 그 3대조 작제건의 '부인'으로 표현된 '용녀(龍女)'는 그러한 변이된 역사적 과정을 밟은 것이다.  
 
서라벌에서 동짓날 해거 넘어 들어가 쉬는 옥녀봉(玉女峰)의 옥녀는 서술신모(西述神母)이며 선도성모(仙桃聖母)이며 서왕모(西王母)로 표현되었다. 옥녀봉을 머리로 그 아래에 동짓날 해돋는 여신의 몸을 타고 내려가는 길은 동짓날 해를 잉태하는 여신의 대지 서라벌의 천단 길이었다. 
 
그 여신의 가슴엔 반월성(半月城)의 반월을 목걸이로 걸고 아래쪽 감은사 골짜기 그 아래로 이어진 앞바다 해중능(海中陵)은 거룩한 여신의 생산의 심볼이 파도를 머금고 벌어져 있다.
 
이렇게 산신이며 지신이며 해신인 선도여신은 옥녀여신이며 신라의 어머니 성모로서 대대로 새해 동짓날 태양을 새로 잉태한다고 믿어졌다. '新羅'란 그렇게 신화적으로 동지 새해마다 여신이 '새로 벌리며 펼친다(新羅)'는 여신의 나라이다. 
 
풍수(風水)의 '風'은 옥녀봉 동굴에서 여신이 거하는 모습의 '風'이며, '水'는 해중능 바위 사이로 파도가 지나가는 모양의 '水'이다. 풍수(風水)의 '風'은 산신이며 '水'는 해신이다. 
 
이러한 산신과 해신의 합치의 의미로 받아들였던 대지지모 천지신모의 대자연의 뭍과 물의 풍수도가의 명당(明堂)은 본래 옥녀봉을 조산으로 그 혈(穴)은 바닷가의 해중능과 같은 바위섬이었다.  
 
산신의 신선(神仙)과 해신의 신룡(神龍)은 모두 여신을 의미하며, 각각 '神' 뒤에 선(仙)이 나오고 용(龍)이 나온 것으로 '龍'은 '仙'의 상대적인 용어로 바다의 여신을 의미했다.
 
우리나라의 신화에서 말하는 신룡 또는 계룡이란 조선왕조시대에서 보는 날개없는 용과는 확연히 다른 신룡(神龍)으로 날개를 표시하는 계룡이며 어룡이다. 우리나라 고대 용의 형상에 대하여서는 아래의 필자의 신화이야기 시리즈글들을 참고할 수 있다.
 
<익룡화석 Archaeopteryx을 그린 고구려 벽화 봉황(鳳凰)>
 
<사신도의 현무(玄武)를 올라탄 이순신 장군>
 
신라의 계룡(鷄龍)이란 금닭 이미지의 날개달린 봉황까지 포함되는 익룡 스타일의 용이며 신룡(神龍)은 고려시대 어룡청자에서도 볼 수 있다. 조선시대 중화주의 용들의 모양과는 전혀 다른 날개달린 익룡계열이라는 것은 태양 숭배와 관련이 있다.
특히 진평대왕이 감은사 앞바다에서 떠다니는 섬(해중능)에 대한 기록에서 나타나는 신룡은 그 날개 모양이 대합조개나 가리비조개 모양일 수도 있다는 것을 고려시대 어룡청자에서 볼 수 있다.  
 

 

 *서수형토기(瑞獸形土器), 보물 제636호, 국립경주박물관

신귀형수주(神龜形水注)라고도 한다.
코카트리스를 닮은 신라시대 미추왕릉에서 발굴된 것으로

닭머리 용꼬리의 '계룡토기'라고 불러야야 옳다.

박혁거세 신화의 '계룡'은 미추왕릉의 '계룡토기'에서 이어져 있다.

 

 

 

* 서양의 계룡 '코카트리스'

http://www.roeljovellanos.com/cblog/

 

* 경북 영주 출토 금동 용두. 국립중앙박물관

'용두'라고 하지만 아래 그림에 보이는 '계룡' 계통의 코카트리스의 닭머리를 닮아 있다.

 

 

*國寶 60호 청자사자유개향로(靑磁獅子유蓋香爐). 국립중앙박물관

신라 때의 신룡이란 이런 형상에 가까웠을 것이다.

신룡(어룡)의 날개 모양은 가리비조개를 닮아 있기도 하다.

 

신선은 날개옷을 입는다는 것은 이러한 신룡의 날개에서도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신선의 선(仙)이란 <도화원기>에서 말하고 있듯이 풍(風)의 동굴을 통과한 그 안 쪽의 이상향의 선계(仙界)를 말하며, 지장(地藏)의 선계이며 선(仙)은 그 지신(地神)이다.
 
신라(新羅)의 풍류신선도(風流神仙道)란 이렇게 '風'과 '流'와 '仙'의 산신(山神)과 해신(海神)과 지신(地神)의 화랑도의 대자연 숭배 사상이 들어 있었다. 천신의 개념이 나온 것은 훨씬 후대의 지상의 남성지배자 중심의 종교들에서 강조된 것이다.
 
'玉'은 '구슬 옥자'이듯이 바다의 자개에 둘러싸인 참구슬 진주에서 나온 옥(玉) 구슬이다. 여기에서 왜 서라벌에서 옥녀봉(玉女峰)이 중요한 향동지일출선(向冬至日出線)의 깃점이 되는 해돋는 동지 신화의 개념은 고대 이집트의 카르낙 사원(Karnak temple)을 비롯하여 전 세계적으로 퍼져 있다.
 
예를 들어 아일랜드 뉴그랜지(Newgrange)는 5천년된 석기시대의 석굴처럼 조성된 고분은 동짓날 첫 새해의 일광선이 굴의 중앙으로 들어와서 '태극문양'의 암각하들을 비춘다. 스톤헤인지보다 1천년 앞서 세워진 이 고분 동굴은 그 입구로 동짓날 햇빛이 17분간 비쳐 들어온다.
 
* 아일랜드 뉴스랜지 석굴고분의 동짓날 햇빛. c.3300-2900 BC 
 
*동짓날 일출과 일몰을 기준으로 세워진 고섹 서클. 독일. 기원전 5천년경.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고대 일출관측유적으로 알려져 있다.
Site of the Goseck circle. ca. 4900 BCE
the Burgenlandkreis district in Saxony-Anhalt, Germany
The yellow lines represent the direction the Sun rises and sets at the winter solstice, while the vertical line shows the astronomical meridian.
 
 
옥(玉)자의 기초인 왕(王)자는 본래 임금이나 지배자 의미가 아니었다. 본래는 '王(triad)'이란 '바다'와 '땅(지하 포함)' 그리고 '산상'의 삼계(三界)를 의미했다.
 
삼계(三界)의 개념에는 시간적으로 전생과 현생 그리고 후생(저승)으로 나누거나 바다와 육지 하늘로 나눈 개념은 훨씬 후대의 개념이다. 대지지모(大地之母)를 숭배하던 신화시대의 우주(界) 개념은 바다(海)와 지장(地藏 grotto)과 산(山)의 우주 개념을 가지고 있었다.
 
지동설이 나오기 전 바다와 대지가 영원히 평평하게 존재해 왔다고 믿었던 신화시대의 우주관은 높은 산상과 하늘(일월성신)은 신이 거하는 하나의 성소인 '산상'으로 받아들였다. 서라벌의 옥녀봉이나 고구려 탄생 설화의 배경이 되었다는 오녀산성의 신화나 미국 와이오밍주의 데빌스타워의 절벽 산산이나 고대 신화적인 산상(山上)은 일월성신이 바로 거기에서 닿는 자리의 '하늘'이었다.
 
데빌스타워의 일곱처녀들이 그 절벽 산산에서 뛰어올라 북두칠성이 되었다는 것도 그러한 표현이며, 신화적으로 그 구조는 직녀가 두레박으로 폭포에 물을 푸는 곳은 하늘이 아니라 금강산 상팔담을 내려다 보는 구룡대 절벽 위였다.  
 
땅과 바다는 우물(굴)을 통하여 서로 연결되어 있었다고 믿었다. 샘물(감로수)이 나오는 동굴은 그래서 여신이 거하는 우물이며 바다로 가는 통로였다.
 
그 굴을 때로 지장(地藏)으로 또는 암호(巖戶)로 표현했고 서양 신화에서는 그로토(grotto)로 표현하여 기독교가 그것을 이어 성모상을 모시는 작은 굴의 지형으로 아직까지 그 전통이 남아져 있다.   
 
석굴암처럼 우물이 나오는 동굴이나 재매정처럼 땅 밑을 파서 만든 우물은 신이 오가는 통로였다. 고려시조신화에 나오는 작제건의 부인 용녀가 우물로 들어가 바다로 갔다는 것은 그러한 바다로 가는 통로를 의미하는 우물의 전형적인 표현이다.
 
첨성대(瞻星臺)는 옥녀봉과 반월성과 해중능(바다)을 잇는 우물이자 굴로 만들어진 거이다. 삼신이 하나로 오고가는 곳 그것이 선덕여왕(聖祖皇姑)이 세운 첨성대 우물이다. 첨성대(瞻星臺)는 산신과 해신 그리고 지신이 오고가는 '삼신우물'이라 할 수 있다. 
 
김유신이 전장에 나가기 전 그의 집 우물인 재매정에서 물을 떠오게 하여 마신 것은 바다의 여신에게 그 결의를 보고하며 그 지장수(地藏水)의 힘을 받아 마시고 간다는 제의적인 의미가 있었을 것이다.
 
대자연 즉 바다(海)와 지장(地藏 grotto)과 산(山), 이 삼계를 다스리는 신이 해신(海神), 지신(地神), 산신(山神)으로서 삼신(三神)으로 필자는 구분한다.
 
삼신(三神) 신앙의 기원은 이렇게 산신, 지신, 해신을 의미한 것이며 그 모양은 '三'으로 표현되었다. 이들 세 신은 셋이자 하나인 '삼신일체'로서 광의적으로 대지지모(大地之母)였다. '삼신할머니'란 그래서 복수 표현이 아닌 '삼신할머니'이다. 무속에서는 음양태극보다 삼태극을 주로 사용하며, 풍물놀이에 사용하는 북이나 벅구에 그려지는 태극도 삼태극으로 그리는 것이 기본이다.
 
삼태극의 기원은 이러한 해지산(海ㆍ地ㆍ山) 또는 산해지(山ㆍ海ㆍ地)의 '삼신일체'에서 기원한다고 필자는 주장하는 바이다.(언젠가 필자의 블로그에서 삼태극 기원을 물어온 분의 질문에 대한 필자의 답이다). 흔히 말하는 한글의 모음 천지인(ㆍㅡ ㅣ)은 이러한 산해지(山ㆍ海ㆍ地) 삼재(三才)에서 기원하는 것이다.
 
Tomoe  
*흔히 보는 고대 와당의 삼태극 문양
 
 
신은 이 세 가지의 경지를 넘나드는 전체적 의미로서 三에 동굴(ㅣ)이 뚫려져 '王'이 된 것이다, '王'자는 본래 임금이라는 인간통치자 개념 이전에는 신(神)의 개념이었며 무속적 무당의 개념이었다.
 
오늘날까지 무속에서 '王'자를 많이 쓰는 것은 '서왕모(西王母)' 등에서 보듯이 여신의 신(神)의 개념으로 '王'을 쓴 것에서 유래한다. 왕모(王母)란 해신, 지신, 산신의 '삼신할머니'를 통칭하게 되지만, 단지 신모(神母)라고 하면 나중에 삼신이 분리되어 나타나는 삼신 중에 한 여신을 의미하는 협의적인 뜻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성모상이 그로토(grotto) 암호(巖戶)에 거하는 것으로 표현되는 것은 '王'의 수직적(ㅣ) 동굴(窟)을 오가는 분이라는 의미가 들어 있다. 거기에 옥동자(구슬)가 생긴 것이 '王'에 점이 찍힌 옥(玉)이다. '玉'자의 점이 자개 안의 진주(眞珠 pearl)이다. 맨 아래인 바다 쪽에 점이 찍힌 것이다.  
 
옥(玉)은 그러니까 바다에서 시작한 것이며 나중에 산신신앙이 강조되어 옥돌을 갈아 구슬처럼 만들어 옥구슬(진주)을 대신하였다. 더불어 자개모양으로 옥돌을 평평하게 갈아 만든 유물들이 초기의 옥돌 문화였던 것은 바다의 옥(진주)와 자개가 그 원류이기 때문이다. 
 
옥벽(玉璧)이란 흘러가는 벽계수 물에 깎여서 만들어진 옥돌로 만든 자개 이미테이션이라 할 수 있다. 조개 상하 두 쪽이 만들어내는 것과 같이 산 계곡 양쪽 벽이 옥벽을 만들어낸다고 믿었을 것이다.   
 
*옥벽(玉璧)

 

 
서라벌의 옥녀봉(玉女峰)은 바다를 향해 있는 것은 그 이름 옥(玉 구슬)이 전복 조개의 진주를 의미하고 있는만큼 옥(玉)은 자개(紫蓋)에서 비롯한다.
 
필자가 생각컨대 옥녀봉(玉女峰)은 자개봉(紫蓋峰)과 같은 신화적인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부석사 서쪽산 자개봉(紫蓋峰)을 비롯하여 전국적으로 옥녀봉(玉女峰)도 많이 산재해 있지만, 자개봉(紫蓋峰)도 여러곳에 산재해 있다. '자개봉(紫蓋峰)'의 유래에 대하여서는 지금까지 아무로 그 유래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자개(紫蓋 mother of pearl)는 바다의 조개 껍질 안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런데도 옥녀봉(玉女峰)처럼 자개봉(紫蓋峰)이 산에 있다는 것은 위에서 논한대로 해지산(海ㆍ地ㆍ山)) 삼신일체의 개념에서만이 설명이 가능하다.
 
신화시대의 천지 개념은 산과 바다가 가리비조개껍질의 두쪽처럼 서로 마주하고 있는 우주로 받아들였다. 바다의 조개와 하늘의 별은 서로 같은 개념으로 신화적으로 받아들였다. 산신과 바다의 신이 하나이기 때문에 옥녀봉(玉女峰)이자 자개봉(紫蓋峰)인 것이다. 그래서 이 두 봉우리는 같은 지역에 함께 존재하지는 않는다.
 
 

조개문양으로 보이는 아일랜드 크노스 거브스톤

Kerbstone 15 at Knowth.

http://homepage.eircom.net/~seanjmurphy/irhismys/newgrknow.htm

 

 
자개봉(紫蓋峰)은 바다의 여신이 바위 섬의 동굴 안에 좌정하고 있는 이미지를 산신에 적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수당(隋唐) 교체기 때의 고승이었던 법장(法藏) 546-629) 스님은 종남산(終南山) 자개봉(紫蓋峰)에 들어가 홀로 살면서 선(禪)을 닦았다고 했다.
 
옥녀봉이나 자개봉에는 흔히 동굴이 있다. 여신 즉 옥(玉)이 그 안에서 진주(眞珠)가 나오기 때문이다. <도화원기>에서도 물길 따라 올라가 산속의 돌문(동굴)을 지나서 영생불노의 이상향이 나오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 물길 끝의 동굴은 해신이 거하는 바다의 섬에 있는 동굴(주로 관음의 거처로 알려진)을 대변하는 짝이다. 그래서 옥녀봉(玉女峰)과 자개봉(紫蓋峰)의 동굴 전설들은 같은 산과 바다의 여신의 거처로 표현되어 있는 것이다.
 
중국 절강성의 보타산(普陀山)의 조양동(潮陽洞 Cave of Tidal Sound) 동굴 이야기는 12세기의 기록이다. 바다의 섬에 동굴이 있고 거기에서 관음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경북 영주에 있는 자개봉(紫蓋峰) 전설에도 동굴이 나온다. 옛날 그곳 촌장들이 모여 밤늦도록 한 날이 있었다. 그때 백발 노인이 나타나더니 한밤중이 되면 그곳 산봉우리에 돌문이 열리는데 그 안으로 들어가면 이상세계가 있다고 말하고 사라졌다. 그자리에 모인 촌장들이 한밤중에 그 봉우리로 올라가 돌문 안으로 들어가서 영생불노했다는 것이다. 그 봉우리가 그곳의 자개봉(紫蓋峰)이라는 것이다.
 

일본신화의 경우에도, 바다의 여신인 길상신모(吉祥神母)가 거하는 곳은 바다의 섬에서 파도에 깎여 들어간 동굴로 표현된다. 사가미현의 에노 섬의 동굴 사당에 있는 길상천녀 벤자이텐(弁財天) 여신을 순례 참배하는 안도 히로시게의 그림(1850년경)은 여신이 거한다는 동굴을 찾아가는 여인들의 순례를 그리고 있다.  

 

 

*사가미현의 에노 섬의 동굴 사당에 있는 길상천녀 벤자이텐(弁財天) 여신을 순례 참배하는

여인들. 안도 히로시게의 그림. 1850년경.

 

이러한 섬은 그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조개를 의미하고 그 동굴 안에 진주처럼 여신이 거하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그런 면에서 옥녀(玉女) 여신은 산신이면서도 해신이면서 지신이다. 옥(玉)은 벽옥이면서도 전복이나 소라 자개(紫蓋) 조개 안에서 나오는 진주이다. 서라벌의 옥녀봉은 그래서 해중능의 바다이 여신을 바라보는 것이다.  
 
'서라벌'은 필자에게 소라 조개의 벌 즉 '소라벌'로도 읽힌다. 다시 말해 고대 신화시대는 천지가 가리비 조개 두 짝으로 되어 있다는 우주관으로 가리비 조개 안에서 대자연의 여신 비너스가 나오는 것으로 표현된다.
 
조개 안의 자개(紫蓋)는 그래서 푸른 하늘이며 푸른 바다의 색으로 자(紫) 색을 표현하고 있다. 자(紫)는 전통 색에서 푸른색과 동의어로 쓰였으며 자운(紫雲)신화적인 빛깔에서는 자(紫)로 표현하고 인위적인 칠에서는 청(靑)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았다. '
 
이러한 자개(紫蓋) 공예문화에서 우리는 바다를 비롯한 해지신 삼신의 잔재를 볼 수 있다. 자개 공예를 특히 나전칠기(螺鈿漆器)라고 하는데 그 나전(螺鈿)이란 소라조개(螺)와 비녀(鈿)를 의미했다.
 
나전(螺鈿) 즉 '소라조개와 비녀'란 바다의 여신과 산신할머니를 의미한다. 비녀는 주로 옥(玉)으로 만드는 것처럼 나전에서 자개와 옥을 함께 사용하기도 한다. 비녀란 산신 할머니의 상징이며 소라조개는 바다의 여신을 의미한다. 그렇기에 자개공예인 나전(螺鈿)은 그 이름 자체가 바다의 여신과 관련된 배경을 지닌다.
 
비녀란 젊은 여자의 것이 아닌 정장한 여성의 권위로서 표현되는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비녀를 어디에 꽂는가? 쪽진 머리이다. 쪽진 머리는 소라이다. 쪽진 머리는 소라모양으로 튼다. 그래서 불두의 나선형으로 튼 상투를 소라머리 즉 나발(螺髮)이라고 하는 것이다.
 
*나전(螺鈿)이란 '쪽진머리와 비녀'를 의미한다.
불두의 나발(螺髮)처럼 쪽진머리는 소라모양으로 틀어 비녀를 꽂는다.
 
따라서 소라와 비녀 즉 나전(螺鈿)이란 '쪽진 머리에 꽂은 비녀'를 의미하며 그것은 바로 여신의 머리 치장을 뜻하고 있는 것이다. 자개 예술은 이렇게 나전(螺鈿)이라는 말 속에서 여신적인 배경을 모두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해석은 필자에게서 처음으로 나온 비교 이미지학문에서 가능한 것이다.
 
이러한 소라와 비녀의 나전의 역사는 오래되었다. 가야시대에 자개공예 즉 나전칠기 유물이 발굴되기도 하였다.
 
*우리나라 최고 오래된 나전칠기 국보140호. 가야시대.
 
옥녀(玉女)로 표현되는 해지산(海ㆍ地ㆍ山) 삼신할머니는 선덕여왕의 생전 치세동안의 왕호였던 성조황고((聖祖皇姑)에서 볼 수 있다. 필자는 선덕여왕의 왕호 '聖祖皇姑'에 대한 처음으로 해석을 내려놓고자 한다.
 
'聖祖皇姑'에서 '聖'은 '성모(聖母)'의 의미로 접두사이고 나머지 '祖皇姑'는 삼계를 다스리는 삼신의 개념이 각각 세 글자로 표현되어 있다고 해석한다. '祖皇姑'에서 '祖'는 해신을 의미하고 '皇'은 지신을 의미하고 '姑'는 산신을 의미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祖'는 바다의 여신 시조를 의미한다. 그 글자 모양이 조개(貝)를 닮아 있다. '조개'라는 말은 필자에게 조(祖)와 자개의 개(蓋)로 읽히기도 한다. 황(皇)은 땅이다. 황제(皇帝)는 먼저 황제(黃帝)로 쓰였다. 그래서 황(皇) 오방사상에서 중앙인 토(土)를 의미한다고 풀이된다. 가야의 허황옥의 '황옥(黃玉)'이란 이러한 신화적인 여신의 이름임을 이미 필자는 앞선 글들에서 논했다.
 
마지막으로 '姑'가 산신인 이유를 보자. 마고(麻姑)할머니 노고단의 노고(老姑)할머니의 '姑'는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는 산신 칭호이다.  
 
따라서 '聖祖皇姑'는 '祖皇姑'에 '성모(聖母)' 접두어를 넣어 거룩한 삼신할머니 '聖祖皇姑'로 표현된 것이 선덕여왕의 왕호라는 필자의 해석은 다신적 여신숭배의 선덕여왕시대의 삼계사상과 삼신사상을 담고 있는 역사적 배경에서 풀이한 것이다. 선덕(善德)은 그녀가 죽고나서 붙여주는 묘호였을 뿐이다. 
 
그렇기에 여신으로 숭배되었던 선덕여왕 '聖祖皇姑'으로 볼때 옥녀봉의 옥녀(玉女)의 '女'는 후대적인 여신 비하의 윤색이었을 것이며, '옥(玉)'만이 본래 원시형태의 여신적인 표현으로 남는다.
 
고구려의 탄생지로 알려진 오녀산성(五女山城) 신화의 오녀(五女)는 옥녀(玉女)의 변형일 수 있다. 고구려의 '옥녀봉(玉女峰)은 오녀산성이었으며, 오녀산상의 오녀(五女)는 옥녀(玉女)의 음운적 전이였 수도 있다고 생각된다. 또는 그들 오녀(五女)는 옥녀(玉女) 성모가 낳은 딸들일 수도 있다.
 

옥(玉)은 해신의 진주 즉 옥(玉) 구슬을 의미하고 산신에게서의 진주는 복숭아(桃)이다. 관음상의 손에 흔히 복숭아를 들고 있기도 하고 진주를 들고 있기도 하는 것은 이러한 산과 바다 양면의 여신을 표현하는 것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서는 필자의 앞선 글 <여의주(如意珠)의 유래는 선도성모(仙桃聖母)의 복숭아였을까?>에서 볼 수 있다.

http://cafe.chosun.com/club.menu.bbs.read.screen?page_num=1&p_club_id=dreamview&p_menu_id=2&message_id=549091

 

*'구슬'을 들고 있는 '여신' 관음상.
금동관음보살입상. 국보183호, 삼국시대말, 국립대구박물관
 

*복숭아를 들고 있는 길상천녀(吉祥天女).

 浄瑠璃寺. 鎌倉時代 일본 国宝

 
따라서 불국사의 불국이 되기 이전 '신국의 나라' 신라의 신은 옥녀(玉女)와 선도(仙桃) 해신과 산신으로 표현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선덕여왕 '聖祖皇姑'은 옥녀(玉女)의 진주와 선도(仙桃)의 복숭아 둘 다를 들고 있는 '여신'으로 위치하고 있었다. 
 
나는 여기에서 해신과 산신에 대한 지신으로서 석굴암 그로토에 불교가 들어오기 전에 모셔졌던 신을 지신(地神)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 지신의 이름은 가장 오래 남아져 온 풍물놀이의 '지신밟기'의 그 지신으로 생각하며 그 지신의 이름은 '쾌지나 칭칭 나네' 또는 '캐지나 칭칭 나네'의 '쾌신'으로 여기고 있다.
 
이에 대하여서는 필자가 오랫동안 추적하고 준비해 온 글이 있다. 우리가 풍물을 치며 '캐지나'라고 하는 것처럼 북미 인디안들에게서도 '캐지나'를 하는 것을 필자가 처음으로 밝힌 것이다.
 
옥녀봉에서 동짓날 해돋는 방향으로 첨성대가 있고 그 첨성대에서 정 동향으로 안압지가 있다. 안압지(雁鴨池)는 이름 그대로 거위와 오리가 날아드는 연못이다. 반월성이 옥녀의 '하늘도읍' 옥경(玉京) 서라벌의 반달이 반월성이라면 바다의 소식을 가지고 물새들이 날아오는 옥지(玉池)가 안압지이다. 연못을 만들고는 그 이름을 물새의 이름으로 짓는 것은 바다와 연결하는 메신저로 그렇게 백조와 오리의 안압(雁鴨)으로 지은 것이다.
 
첨성대에서 정동방향에 안압지가 있고 첨성대에서 정서쪽에는 선도산(仙桃山)이 있다. 앞서 언급한대로 옥녀봉(玉女峰)의 옥녀(玉女)는 선도산(仙桃山)의 선도(仙桃)와 함께 해신과 산신의 두 표현이다. 서쪽의 선도산(仙桃山)은 산신으로서 바다로 통하는 안압지(雁鴨池) 사이에 첨성대가 있는 것은 그 첨성대가 선도산과 안압지를 오고가는 우물이라 할 수 있다. 우물은 이미 앞서 논한대로 바다와 산을 오고가는 굴이며 통로이다.
 
옥녀봉을 중심으로 동짓날 해돋는 방향으로 반월성을 지었다. 그 사이에 선덕여왕은 첨성대를 짓고 죽어 해중능 쪽의 낭산에 묻혔다. 그리하여 해돋는 길을 따라 해중능 바다로 간 그녀는 '성조황고(聖祖皇姑)' 여신으로 선도성모 여신과 하나가 되어 바다를 지키고 있었다. 거기에 문무왕이 삼국을 통일하고 해중능(용궁) 바다의 여신의 품으로 돌아간 것이다. 해중능은 바다의 여신의 심볼처럼 생겼다.
 
해중능은 암초이지만, 그 자체가 조개들이 움을 트는 여신의 머리이기도 하다 소라조개 헤어스타일을 한 불두를 한 붓다의 머리 전체의 모습 또한 암초(暗礁. submerged rock, or sunken rock)에 붙은 따개비 조개모양을 닮아 있다. 암초는 무엇인가? 암초와 유사한 파도에 씻기는 해중능과 이어도는 왜 신화와 전설이 전해오고 있을까?
 
바다의 여신이 거하는 암호의 원형이 경주 앞바다의 해중능 바위와 같은 바다의 작은 바위섬이다. 붓다의 나발(螺髮) 머리는 암초에 붙은 따개비 조개들의 모양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마두라 붓다의 나발(螺髮)
머리에는 소라고둥 나발 곱슬머리이며
가리비 조개 문양이 광배에 새겨져 있다.
Mathuran Snail Shell Curls
The naturalistic hairstyle persisted on Gandharan images,
 whereas Mathura began representing the Buddha with 'snail shell' curls turning to the right.
 
서양에서 암초에 앉아 있는 인어(人魚)란 신어(神魚)에서 유래한 것이며 사실상 바다의 여신을 의미한다. 고둥(conch)이 다닥다닥 붙어 있거나 따개비 조개(barnacle)가 무리지어 붙어 있는 둥근 암초의 형상은 불두의 소라머리 모양을 그대로 닮아 있다.
 
*암초에 붙은 따개비의 모양. 붓다의  '소라머리'의 바다 기원의 방증이 될 수 있다.
 
*가리비에 붙어 있는 따개비. 
 기와지붕 처마에 제비가 집을 짓고 박씨를 물어오는 이미지가 있다.

*해중능(대왕암)
신룡이 나타난 신화는 서양의 인어신화와 그 뿌리가 같은
바다의 여신신화에서 유래한다.
 
 
가리비 조개 안에서 비너스 여신이 나오듯 <흥부전>의 박 안에서 사람이 나오는 것은 같은 신화적인 구조이다. 비너스 신화에서 제비가 함께 등장하는 것도 그러한 배경을 암시해주고 있다고 생각된다. 신라 시조신화에 등장하는 호공(瓠公)은 조롱박만이 아니라 바다에서 온 그들의 배경에서 소라고둥 문화도 연결되어 있었을 것이다.
 
고둥은 한자로는 나(螺·反) 또는 나사(螺旅)라 한다. 소라와 같은 말로 쓰이고 있다. 바위 암초에 다개다개 붙는 '따개비(barnacle)' 조개는 불두의 머리모양처럼 되는 것에서 여신이 앉아 있는 암호 이미지가 된다. 
 
'따개비'의 '개비'는 '가비'로서 조개이다. '조가비'가 조수 물에 휩쓸리면서 움직이는 '조(潮)가비'라면 땅에 붙어 있는 조개라는 특징에서 '따개비'가 된 것이 아닐까.
 
그 땅(따)이란 암초(暗礁, sunken rock)이며 여신이 거하는 암호(巖戶) 그로토이며 따개비 한 개 모양 자체가 원뿔형으로 된 하나의 티피(tipee) 모양의 움막을 친 모양의 암호를 이루고 있다. 그러한 대지여신을 대신한 불상을 만들 때에 그와같은 따개비가 붙은 불두 모양으로 만들어 온 것이라고 필자는 해석한다.
 
따개비가 붙은 바위 암초에 바닷물이 한번씩 철썩! 세례를 준다. 따개비가 붙은 암초의 세례는 이러한 원시적인 여신 암호 신화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한다. 기독교의 세례문화는 바다의 암초신화에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대로 비너스 여신이 나왔다고 믿는 가리비 조개는 서양 전통 건축이나 교회의 세례 용기의 디자인에서 필히 나오게 되는 것은 물 세례의 근원이 바다의 여신에게서 비롯되어 왔기 때문이다.
 

*스페인의 산티아고 성당의 박물관에 있는 가리비 조개 세례 그릇

Museum and cloisters of the Santiago Cathedral.

Top of baptismal font with scallop shell motif.

http://picasaweb.google.com/lh/photo/d-zM1fJE6poLpCLe79kmLQ

 

 

특히 서양 기독교 역사에서 세례와 성모 마리아 전통에서 가리비 조개는 중요한 의미를 지녔다.

그것은 물세례 에서 성모사상이 바다의 여신의 영향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리비 조개 그로토를 배경으로 세례를 하고 있다. 15세기

Piero della Francesca Montefeltro Altarpiece 1465

Pierodella Francesca incorporated the scallop shell Pecten jacobaeus L. into his art.

 

 

*미켈란제로. 광배와 같은 역할을 한 가리비 조개

Michelangelo Di Lodovico Buonarroti Simoni
(b. March 6, 1475, Caprese, Republic of Florence [Italy]--d. Feb. 18, 1564, Rome),

 

 

고전적 신화시대의 세례 형태는 어떠한 모습이었을까? 바다의 암초 또는 작은 바위섬을 파도가 씻는 모습일 수 있다. 동아시아의 바다의 여신 특히 수월관음 여신 등의 신화에서는 바다의 여신이 바위 섬의 작은 동굴 안에 거한다고 믿었는데 파도가 그 동굴 안을 씻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 작은 바위섬에는 여신의 이름이 후대에 '신룡(神龍)이 나타났다 사라진다'는 식으로 표현되었다. 흔히 불교에서 '보살이 나타났다 홀연히 사라졌다'는 표현의 프로토타입은 이러한 신룡(神龍)의 순간적 현현의 신화적 배경을 가진다.

 

<삼국유사>에서 감은사 앞바다의 '섬'에 대한 기록에서 나타났다는 신룡(神龍)은 그 자체가 신과 용의 합체로서 (神龍) 현실화하면 서양식으로 표현하면 인어(人魚)가 된다.

 

서양의 인어(人魚) 신화는 동양의 신룡(神龍) 신화와 그 패턴이 똑같다는 것은 암초와 관련이 있다는 것과 반인반어의 형상에서도 같은 의미를 가진다. 따라서 감은사 앞바다의 해중능 바위섬에 사는 '신룡'은 여신이며 '인어공주'라고 할 수 있겠다.

 

신라 시조는 박혁거세로 되어 있다. 그러나 그 오랜 신화적인 배경은 선도성모와 알영부인의 여성적 성모신화가 막강한 고대 신라인들의 여신숭배의 신룡신화(神龍神話)에 바탕한다. 선도성모 또한 신룡(神龍)으로 숭상되었을 것이다.  

 

박혁거세 부인인 알영이 태어났다는 계룡(鷄龍)은 신룡(神龍)으로도 기록하고 있다. 그것은 고대 기록에서 신룡(神龍)이 여신이라는 면에서 알영부인은 같은 여성적인 여신에게서 태어난 것으로 보아야 신화시대의 모계 계승의 의미에서 마땅한 것이다. 신화적으로는 선도성모(鷄龍)가  알영부인을 잉태시켰다는 필자의 주장은 모계혈통의 여-여 신화를 바탕하고 있는 것이다. 박혁거세 신화는 그러한 모계신화에 등장하는 지상의 지배자 신화로 나타나는 것이다.

 

이러한 구조는 앗시리아의 고대 여신인 세미라미스(Semiramis) 여신이 아타르가티스(Atargatis) 여신에게서 태어난 것과 같은 여 - 여 계승의 모계 구조인 것이다. 이들 앗시리아의 여신들은 서양의 인어신화의 원류 신화로 알려져 왔다.

 

*덴마크 코펜하겐에 있는 암초 위의 인어상

 

서양인들은 서양의 인어의 기원은 서양신화에서 찾지 않는다. 기원전 1000년경의 앗시리아 신화인 세미라미스(Semiramis) 여신에서 인어가 유래했다고 보고 있다. 세미라미스 여신의 어머니 아타르가티스(Atargatis) 여신이 세속의 목동을 사랑하다 못해 그를 죽였고 그 번민으로 호수에 뛰어들어 물고기가 되었다. 물결이 그 여신의 아름다움을 감추게 되어 그 여신은 결국 허리 위에는 사람이 되고 물이 찬 그 아래는 물고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The first known mermaid stories appeared in Assyria, ca. 1000 BC. Atargatis, the mother of Assyrian queen Semiramis, was a goddess who loved a mortal shepherd and in the process killed him. Ashamed, she jumped into a lake to take the form of a fish, but the waters would not conceal her divine beauty. Thereafter, she took the form of a mermaid — human above the waist, fish below. (인용: 위키피디아)

 

이러한 인어가 된 동방의 아타르가티스(Atargatis) 여신은 그리이스 신화에서는 데르케토(Derketo)가 되어 있으며, 바이블에서는 다곤(Dagon, the Fish God) 신상으로 표현되었다.  

 

*아타르가티스(Atargatis) '인어'. 앗시리아 제국

 

*인어상의 고대적 표현 다곤(Dagon) 신상

http://www.bible-history.com/sketches/ancient/dagon.html

 

기원전 546년 밀레시안 철학가 아낙씨맨더(Anaximander)는 인류가 바다 동물에서 태어났다고 주장했다. 그는 아주 오랜 옛날 육지에서는 인간의 태아가 살아날 수 없었다고 믿었다. 이러한 고대 그리이스인들의 신화적인 의식은 20세기 과학에서 다시 해양원인류 가설(the Aquatic ape hypothesis)로 재조명받고 있다. 

 

그리이스 전설에 따르면 알랙산더 대제의 누이 데살로니케(Thessalonike)가 죽어 인어가 되었다고도 한다. 항해자들이 바다에서 그녀를 만나면 데살노니케 인어는 한 가지 질문만 해온다고 했다. "알랙산더 왕이 살아 있습니까?"라는 것이다. 그때 대답은 "그는 아직 살아서 통치를 한다"라고 해야 그녀의 노기를 면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만약에 다른 대답을 하면 그녀는 고르곤 괴물로 변하여 그 배를 풍랑에 던져버렸다는 것이다.  

 

페니키아에도 허리 위는 여자이고 그 아래는 물고기인 동상이 존재해 있었다. 페니키아인들은 물고기를 신성하게 여겼으며 다른 육식은 해도 물고기를 전혀 먹지도 않았다고 한다. 그들의 신인 세미라미스 여신과 데르케토(Derketo) 여신이 물고기 모양을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세미라미스 여신이 비둘기(dove)가 되었다고 믿었다. 기독교의 세례 의식과 비둘기는 이러한 세미라미스 인어여신에서 배경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집트인들 중에도 상당수 사람들은 데르케토 여신에 대한 전통 때문에 물고기를 먹지 않는다. 오늘날 몽골인들의 전통에서도 물고기 기피 현상은 페니키아인들처럼 오랜 옛날 바다의 인어 여신 전통에 연결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가야신화에서 쌍어신화는 앗시리아의 세미라미스 여신 신화에 연결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중국의 복희씨 신농씨의 상체는 사람이고 하체는 거대한 용(어룡)인 것도 앗시리아의 세미라미스 인어여신에서 유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용과 물고기는 신화에서 호호환적인 아이컨이었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오랜 인어여신에 대한 신화 전통은 나중에 서양 기독교 사회에서 오히려 더 많은 영향을 남기고 있다. 인어공주는 비너스 여신의 탄생과 가리비 조개에서 더욱 강력한 신화적인 배경을 가지고 있다. 가리비 조개에서 바다의 여신 비너스가 태어났다는 것은 고대 신화시대에서 세계적인 현상으로 나타난다.

 

<삼국유사>에 기록되어 있는 감은사 앞바다에 떠다녔다는 바위섬(해중능)에 신룡(神龍)이 나타났다는 그 신룡(神龍)은 여신이라는 것은 앞선 글에서 논했다. 더불어 신화에서 용(龍)은 물고기(魚)와 호환적이다. 쌍룡은 쌍어에서 나왔다는 것은 이미 필자가 오래전에 논했는데 아래의 글에서 참고할 수 있다.

 

 

<동양학 강의> 음양(陰陽)과 쌍어(雙魚)와 쌍용(雙龍)

 

인어란 사실상 복희씨와 신농씨 그림에 나오는대로 반인반사 즉 반인반어의 '인어'와 같은 형상으로 상체는 인간이면서 하체는 바다 동물의 몸을 하고 있는 신룡(神龍)의 신화이다. 서양의 인어신화는 그러한 면에서 동양의 신룡신화에 대하여 보다 현실적인 표현으로 사람과 물고기에 대비시킨 것이다. 

 

인어라고 하면 단순히 덴마크 코펜하겐에 있는 암초 위의 인어상을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서양의 '인어신화'에는 오랜 바다의 여신 문화가 이어져 오고 있다. 

 

 

File:Zennor Mermaid Chair.JPG

*16세기 켈틱 젠노르 인어상 의자.

16th century Zennor mermaid chair

 

 

켈틱인들의 16세기 젠너 교회(Zennor Church)에 남아 있는 인어상 의자는 6세기의 노르만인들의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기독교 교회 안에 그대로 남아 있는 바다의 여신 문화이다. 폴란드 바르샤바 시티 상징이 되어 있는 것도 인어상이다. 그만큼 서양인들에게 바다의 여신 문화는 현대에까지도 깊숙히 남아 있는 오랜 신화시대의 전통이 이어져 오고 있다.

 

 

*사이렌카(Syrenka) 인어동상

A shield and sword-wielding merm

14세기이래 폴란드 바르샤바(Warsaw) 시티 상징인 인어동상.

 

 

*밴쿠버의 인어상. 카나다

The statue of "Girl in Wetsuit" in Stanley Park - not the Mermaid of Copenhagen.

 

밴쿠버 뿐만이 아니라 미국의 버지니아주 노르포크(,Norfolk) 시티와 버뮤다 지역의 해밀톤 시티의 심볼도 인어상이다. 서양의 인어는 단순히 동화가 아니라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그 바다의 신화에서 유래한 것이다. 인어상은 머리를 빗는 여신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머리를 빗는 것은 화장의 의미 이상 여신 신화의 '세례'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된다.

 

필자가 지난 80년대에 가본 적이 있지만, 독일의 라인강의 전설인 로렐라이(Loreley 또는 Lorelei) 언덕은 돌아가는 강물에 둘러싸인 바위섬처럼 생긴 가파른 절벽이다. 그 위에서 로렐라이 여신이 머리를 빗으면서 지나가는 뱃사공들의 배가 바위 벽에 부딪치게 했다고 전해온다. 로렐라이 전설은 그리이스의 사이렌(Sirens) 여신과 같은 유혹의 인어신화에 연결되어 있다.

 

로렐라이의 전설에는 여러가지 버젼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어떤 처녀가 사랑을 이루지 못하여 그 높은 절벽에서 뛰어내려 자살하여 로렐라이가 되었다는 것이다. 지나가는 뱃사공들이 그곳 바위에 배가 자주 부딪치자 그 처녀 귀신이 그렇게 빠트렸다는 식으로 전이된 전설일 수도 있다. 우리의 전통 시골 연못에 빠져 죽은 귀신은 언제나 다른 사람을 그곳으로 유혹하여 빠트린다는 전설과 같은 맥락이다.

 

로렐라이 여신이 비록 바다가 아닌 라인강의 전설이지만, 그 지형은 남천 물도리동 절벽에 위치한 서라벌 반월성처럼 바다의 암초와 같은 물도리동에서 일어나는 것으로 되어 있다.

 

*라인강의 로렐라이(Lorelei) 전설

머리를 빗고 있다.

 

File:Loreley mit tal von linker rheinseite.jpg

*바다의 암초처럼 생긴 물도리 구비의 로렐라이 언덕

 

로렐라이라는 뜻은 '중얼거리는 바위(murmuring rock)"라는 뜻이다. 강물 물결이 120미터 높이의 바위 절벽 아래를 치고 돌아갈 때 소리가 누군가 중얼거리는 소리처럼 들린다는 것이다. 바위 자체에 여신이 산다는 의미는 <삼국유사>에서 바위섬 자체가 움직이고 떠다니는 신격화된 바위에도 나타난다. 그러한 바위에서 가끔 여신(바다에는 인어) 또는 신룡이 나타나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는 것이다.

 

귀신이나 신화적인 여신은 머리가 길다. '산발한 귀신' 또한 그러한 신화적인 긴 머리털의 신비함을 말해주고 있지만, 다만 머리를 빗지 않았다는 면에서 여신이 아니라 귀신으로 표현되는 것이다. 귀신은 위협하고 여신은 유혹하는 차이가 그 머리의 산발과 빗는 차이에서 다른 것이다. 

 

 

File:Waterhouse a mermaid.jpg

 *머리 빗는 인어 그림.

옆에 전복조개 껍질이 있다.

 Mermaid by John William Waterhouse

 

황진이와 같은 기생들이 가장 시간을 많이 들이는 일이 머리 빗는 일과 가채를 정돈하여 단장하는 것이다. 황진이 그림을 보면 가채 머리가 그래서 특징으로 그려져 있다. 

 

나는 유교문화의 조선시대 여인들의 머리 장식을 보면서 특히 그 땋은 가채 모양의 구비구비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고대 신라시대의 여신 신룡(神龍)의 용트림처럼 휘돌아가는 이미지가 남아 있다.

 

*황진이 초상화

땋은 머리를 가채로 올린 머리채의 꼬여진 모습은

신화시대의 여신이었던 신룡(神龍)의 용트림 이미지 잔흔이 있다.

 

황진이는 신라시대로 말하자면 여신이었으며 신룡(神龍)이었음을 그녀의 가채 머리의 용트림에 남아 있다. 땋은 머리를 가채로 올린 머리채의 꼬여진 모습은 신화시대의 여신이었던 신룡(神龍)의 용트림 이미지 잔흔이 있다.여신숭배는 그렇게 뛰어난 기생 문화 속으로 스며들어간 것이다.  조선시대 여걸 황진이는 신라시대로 말하면 옥녀(玉女) 여신과 같은 모습이라 할 수 있다.

 

그런 황진이에게서 인어신화와 같은 '머리빗는' 대신에 그녀의 '머리빗는 시'를 보는 것은 그 라인 속에 여신 신화적인 흐름으로 필자에게 느껴진다.  

 

물에 머리를 씻고 머리가마를 정리하고 가르마를 타는 것은 다분히 하늘과 교호하는 의미를 가진다. 그런 면에서 단오날 창포에 머리를 감고 빗는 것은 여신신화의 제의적인 의미가 있다고 필자는 생각하는 것이다.   

 

황진이(黃眞伊) 가 지은 시 가운데 하늘의 반달에 대한 그녀의 시는 '머리 빗는' 내용이며 신화적이다.

    誰斲崑山玉(수착곤산옥) 곤륜산 옥을 빚어
    裁成織女梳(재성직녀소) 직녀 빗을 빚었다가
    牽牛離別後(견우이별후) 견우 가신 뒤에  
    謾擲碧空虛(만척벽공허) 하늘에다 버렸네

 

이 시는 흔히 이렇게 간단히 해석하고 만다. 그러나 필자는 황진이의 이 시에 대한 특별한 해석을 했던 글을 오래 전에 쓴 적이 있다. 이 시의 운은 단순한 한시의 운에 그치지 않는다. 견우가 다녀간 뒤의 허무함을 노래한 이 시는 어떤 면에서 직녀로 표현되는 여신신화시대가 남신인 견우신화시대로 인하여 허무하게 되었다는 의미가 깔려 있다. 그뜻이 오언절구 마지막 글자의 운인 네 글자 '玉梳後虛'에 함축되어 있다.

 

직녀(織女)란 본래 옥녀 여신에 대하여 남성의 부인 의미를 가진 의미로 여신을 비하시켜 남성의 아내로서 베짜는 여인의 의미로 차용된 여신 칭호라 할 수 있다. 본래는 옥녀(玉女) 여신(또는 산신)이었을 것이다.

 

옥녀(玉女) 여신은 고대 신선도가적 신화시대에 서라벌에서나 중국의 주자가 지은 무이구곡에서도 나오는 옥녀봉(玉女峰)에서도 알 수 있다. 신라의 주성인 반월성은 그 멀리 뒷산 옥녀봉(玉女峰)을 깃점으로 동짓날 해돋는 방향에 놓여 있고 그 직선상에 감은사 앞바다의 해중능이 놓인다. 옥녀(玉女)는 신라 신화에서 여산신이며 바다의 여신에 연결된 칭호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 최대 여걸이었던 황진이는 그녀의 시에서 '옥소후허(玉梳後虛)'라고 미괄식 의미를 붙여 "옥녀가 머리를 빗은 후가 허무하다"는 의미로 미괄식 한시를 썼을 것이라 생각되는 것이다. 견우가 갔다는 것 또한 다시 스스로 독립해 있는 옥녀로 돌아가고싶다는 의미로 읽힐 수도 있는 것이다. 견우를 더 이상 기다릴 필요가 없는 본래의 권위있는 옥녀의 모습을 확인하는 의미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견우직녀 신화에서 직녀는 견우에게서 '옷을 뺏기고 당하는' 이미지로 등장한다. 달밤에 폭포에 내려와서 목욕을 했다는 것은 바위에 걸터앉아 보름달 달빛 아래 머리를 빗는 이미지로 형상화될 수 있다. 이런 경우 로렐라이 언덕에서는 '견우'(뱃사공들)가 도리어 당하는 모양새와 정반대의 구조를 보이고 있다.

 

하늘나라에서 내려온 직녀는 '옥녀'와 같은 모습이다. 이때 '하늘나라'는 폭포수 위쪽 높은 산봉우리를 말하는 것이지 현대 개념의 푸른 하늘 위가 아니다. 폭포수 위 절벽 언덕 위에 별이 있고 달이 있고 그 산봉우리가 그대로 옥녀봉이며 옥녀는 그 자신 '옥황여제'이다.

 

옥녀봉은 하늘나라이고 견우가 사는 곳은 나무하고 베짜는 곳으로 그곳에서 아들 둘을 낳고 '옥녀봉'으로 올라간 직녀는 바리데기공주 신화 프레임을 가지고 있다. 

 

바리데기 공주가 저승에 들어가서 저승 문지기와 혼인하여 그곳에서 아들 일곱을 낳고 함께 이 세상으로 나와 부모님 병을 고쳐주는 것으로 해피엔딩을 하고 있다. 바리데기 신화에서 저승 문지기 남편이 이 세상으로 따라 온 것처럼 견우도 두레박을 타고 직녀와 아이들이 간 곳으로 따라 올라간 것으로 나타난다.   

 

그런 면에서 신화적으로는 하늘(옥녀봉)에서 날아 내려온 직녀는 머리빗는 인어 즉 신룡의 여신 이미지를 가진다. '머리 빗는 여신' 이미지는 유명한 로렐라이 신화에도 등장한다. "머리 풀고 하늘로 올라가는 연기"에 대한 수수께끼가 의미하는 것도 여신과 머리빗는 것에 연결되어 있는 신화적인 배경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옥녀가 달밤에 내려왔다가 견우에게 옷을 뺏기고 베나 짜는 직녀가 되어버리고 아들 둘을 낳고 살아도 신통치 않아 견우를 버리고 다시 하늘나라 '옥녀봉'으로 올라가버렸다는 내용은 황진이의 시에서 나타나는 말운의 네 글자 '玉梳後虛'에 함축되어 있는 것이다.

 

전국적으로 옥녀봉(玉女峰)이라는 봉우리 이름이 많다, 그 오리지날 프로토타입은 서경주 서라벌의 옥녀봉(玉女峰)이다. 현재 남아 있는 전국적인 옥녀봉(玉女峰)은 신라시대 때부터 내려오는 신화적인 봉우리들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 옥여봉마다 전설이 전해져 오는만큼 옥녀(玉女)는 신화적으로 '전국구' 여신이다. 그러나 그 전설들의 내용들은 여신숭배의 영향력을 약화시키려 옥녀를 남성의 영향력 하에 두는 이른바 '직녀화'의 과정을 밟은 흔적들을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충북 제천시 강제동과 금성면 동막리의 옥녀봉은 바위 봉우리이며 그 봉우리에 서있는 소나무는 옥녀가 머리를 풀고 있는 형상으로 전해온다. 그곳 전설에 의하면 가뭄이 들면 옥녀봉에 올라 바위에 나 있는 직녀의 옥가락지 구멍이라는 작은 구멍에 새끼손가락을 집어넣으면 비가 왔다고 전하는 것은 옥녀 여신에 대한 신화적 원형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그곳에 전하는 또 다른 신화는 옥녀가 남자가 개입하여 오히려 남존여비화된 '직녀화' 현상의 전설을 보여주고 있다. 

 

황진이 시에서 '玉梳後虛'의 머리빗는 이미지는 결국 견우직녀 신화에서도 직녀가 견우를 위하여 머리빗던 빗을 하늘에다 던져버리고 올라가버린 것으로 잠재하고 있는 것이라 하겠다. 반세기 전에 우리의 전통 가요에서 '옥녀' 스토리가 들어간 <원일의 노래>(먼 옛날을 회상하는 노래라는 뜻)라는 노래가 전해오고 있는데 '옥녀가'라 할만한 가사의 함축성이 다분히 신화적이다. 

 

그 노래 가사는 어떤 면에서 옥녀에서 직녀화된 여신 숭배의 시대적 변천을 의미한 황진이 시의 '玉梳後虛'와의 계승판으로 느껴지는 것은 그 노래 속의 주인공 '옥녀(玉女)'가 돌아오기를 바라는 기원의 내용 때문이기도 하다. 제천 동막리 옥녀봉 전설에 나오는 '옥가락지의 맹세'가 이 노래 가사 속에서도 나온다.

 

 

     <원일(遠日)의 노래>  

 
 1. 내 고향 뒷동산 잔디밭에서
    손가락을 걸면서 약속한 순정
    옥녀(玉女)야 잊을소냐 헤어진 운명
    차가운 밤 하늘에 웃음을 팔더라도
    이제는 모두 잊고 내 품에 돌아오라

 2. 덧없이 흘러간 세월이지만
    앞으로 올 즐거운 내일을 믿고서
    옥녀야 잊어다오 지나간 운명
    내 몸이 변하였고 모두 다 비웃어도
    다시는 안떠나리 내 품에 잠들어라

 

뒷동산 옥녀, 손가락 걸던 옥녀, 떠나간 옥녀, 차가운 밤하늘의 옥녀, 돌아오기를 바라는 옥녀에 대한 이 노래는 어쩌면 견우직녀 신화에서 견우가 보름달밤에 불렀을 노래로 보이지 않는가? '차가운 밤하늘에 웃음을 팔더라도'라고 표현하여 마치 홍등가라도 간 것처럼 표현했지만, '밤하늘'로 올라간 직녀의 이미지가 남아 있다.

 

이러한 옥녀의 노래가 더욱 세속화 과정을 밟은 노래가 <홍도야 울지마라>이다. 그러나 세속화의 길을 가고 개명까지 한 '옥녀' 홍도의 직위는 이제 연인이나 아내로서도 아닌 '오빠'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꽃바람을 파는' 여자로 전락시켜져 있다. 

 

 

      <홍도야 울지마라>

 

  1. 사랑을 팔고사는 꽃바람 속에

     너 혼자 지키려는순정의 등불

     홍도야 울지마라 오빠가 있다

     아내의 나갈 길을 너는 지켜라

 

  2. 구름에 쌓인 달을 너는 보았지

     세상은 구름이요 홍도는 달빛

     하늘이 믿으시는 네 사랑에는

     구름을 거둬주는 바람이 분다

  

 

아내의 길을 버린 직녀처럼 묘사된 홍도는 다시 '아내의 길을 지키기'를 호소하는 견우의 호소의 내용을 '오빠'가 대신 하는 표현으로 나타나 있다. 그래도 그렇게 더욱 속화된 <홍도야 우지마라>에서의 홍도는 아직도 신화적인 '달'이 되어 남아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사랑을 팔고사는 꽃바람"을 휘날리는 홍도는 붉은 복숭아 홍도(紅桃)이다. 신화의 잔재로 보자면 신라의 여신 옥녀봉 아래에 동짓날 태양의 길에 묻힌 선덕여왕처럼 위대하고 거룩한 여신의 후광이었던 신선녀 선도성모(仙桃聖母)의 선도(仙桃)는 이렇게 오늘날 꽃을 파는 홍도(紅桃)가 되어 있다.

 

나는 '서거정'이 되어, '견우'가 되어, '오빠'가 되어 이렇게 기나 긴 시리즈 글로 홍도(紅桃)가 다시 선도(仙桃)로 돌아오기를 노래하고 있다.

 

불두에 남아 있는 소라조개머리 나발(螺髮)처럼 여신이 나타나는 암초에 달라붙는 따개비 조개들 위로 파도들이 세례를 하는 해중능 위에서 새해(동지)의 해가 뜨면 서라벌을 지나 그 해는 멀리 첨성대 하늘 우물 위를 지나 옥녀봉 너머로 지게 된다. 그 해의 길은 다시 한 해 후에서야 같은 길을 가게 된다. 옥녀는 그래서 해중능 위를 철썩이며 세례(洗禮)를 하는 감은사 앞바다의 파도소리를 귀 기울이며 '잉태'의 한 해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황진이의 직녀의 허무'를 지나 '옥녀봉의 옥녀(玉女)의 약속'을 저버린 '꽃파는 홍도(紅桃)'가 다시 서라벌의 옥녀봉으로 돌아오기를 바라면서 반월성 아래 쪽 동짓날 해뜨는 곳에 누워 있는 선덕여왕이 다시 옥녀가 되어 일어나기를 그래서 바라는 것이다.

 

그때는 홍도(紅桃)가 아닌 선도(仙桃)의 선도성모(仙桃聖母)로 신화시대는 진정한 선도화(仙桃花)가 꽃이 피고 서라벌의 '올림푸스' 옥녀봉(玉女峰) 산상에서 넥타르를 마시며 신라의 신화를 다시 노래하게 될 것이다. 경주의 첨성대는 그 모양이 우물이다.

 

 

서라벌의 옥녀는 첨성대 우물로 들어가 '성조황고(聖祖皇姑)' 여신으로 반월성에 '강림'했다. 고려시조신화에서 왕건의 3대조 작제건의 부인 용녀(龍女)가 우물 안으로 들어가 바다로 갔다는 그녀가 들어간 우물은 어느 우물을 모델로 한 신화일까? 첨성대 우물이다. 

 

신라의 용녀 옥녀 여신이 옥녀봉 '하늘'에서 첨성대 우물 안으로 들어가서 옆으로 빠져 나가 '성조황고(聖祖皇姑)' 여신 즉 선덕여왕이 되었다. 그래서 선덕여왕은 그녀의 살아생전 옥녀봉에서 동짓날 해돋는 방향으로 바라보이는 반월성 사이에 첨성대를 친히 지었고, 그녀는 반월성 아래쪽에 스스로 정한 향동지일출(向冬至日出) 선상에 선덕여왕릉으로 묻혔다. 바다로 통하는 첨성대의 옆문은 반월성을 끼고 물도리동으로 흐르는 남천 바로 옆에 있다.

 

<삼국유사>에서 해중능 바위섬에서 진평대왕에게 옥대를 바친 신룡(神龍)은 '성조황고(聖祖皇姑)' 선덕여왕이었다.

선덕여왕은 진평대왕의 맏딸이었다. 그녀가 진평대왕에게 '신룡'으로 나타나 잉태한 곳이 그 해중능 바위였다.

 

 

'성조황고(聖祖皇姑)' 선덕여왕 여신은 그래서 첨성대 우물 속으로 들어가 해중능 바다로 돌아갔다. 문무대왕이 해중능으로 가기 전의 일이다. 그녀는 그곳에서 다시 신룡(神龍)이 되었다. 가끔은 해중능 위에 앉아 머리를 감고 빗질을 하면서 신룡(神龍)으로 나타났을 것이다.

 

그 얼마 뒤 문무대왕이 삼국을 통일하고 해중능으로 가 그의 조상이자 바다의 여신 '성조황고(聖祖皇姑)' 선덕여왕의 품으로 돌아간 것이다. 

 

(06/19/09 오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