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추대가 동부대인 해덕루
의의 1. 동천왕 대 장수로서 패전도 하고 승전도 했다.
2. 해탈과 불승이 언급되므로 3세기 고구려에 불교가 성했다.
3. 중국인을 지라인支羅人으로 불렀다.
4. 동천왕을 대왕으로 불렀다. 지방왕이 있다는 것이다.
5. 비문에서 해덕루는 지방왕의 하나인 번왕蕃王으로 고려된다.
6. 동천왕 대에는 간궁리성이 고구려 성이었다.
광개토왕 때에 백제로부터 다시 뺏으니 이는 현재 압록강 주변의 성이다.
惟古鄒加 東部大人 解德婁 爲祖先
고추가 동부대인 해덕루 조부가 별세하여
別世 銘其曰 太歲在 甲辰年 五月二十
비문에 새기니 갑진년(284년) 5월 26일에
六日恭造 [环=不]血刃 求解脫 又僧[焾]盒[權]
피묻지 않은 칼을 만들어 해탈을 구하고 승들은
用盈時興 詣先祖隨王 振邦 還住沸
다하면 흥하리라. 선조는 왕을 따라 진방하고
流水之上 衆生 念感 王恩 衣食 豊足
비류수지상에 살았는데 중생은 왕은에 감사하며 의식이 풍족하고
得亨 萬世 而 戊辰之初 親奉 王命[기][]
득형하여 만세를 기원하였다.
188년초에 친히 왕명을 받들어 산천에 기도하고
川原野 隸土之境 有不臣之心者 皆(往)
국경에 기도하며, 복종하지 않는 자는 모두
討收其土地 虜男女生口 以爲奴婢
토벌하여 그 땅을 빼앗고 남녀생구를 노비로 하고
又永爲王奴客 東川大王 三年 秋九月 (229)
영원히 왕을 위한 노객이 되었다. 229년 9월에
躬率師往 討逆賊人地 留楄小之邑 山川
해덕루는 원수가 되어 역적의 땅을 치고 작은 읍의 산천과 요충에 천편을 남겼다.
險要 先祖師 先前 行首 拔其城 於是請
선조는 선봉이 되어 성을 함락하여 항복받고
降王 利策贈 太大兄 統軍 車騎 同助 古鄒
태대형 통군 거기장군 동조 고추대가로 승진했다.
大家 來攻支羅人(246) 力不悓 斬煞蕩盡 [罪]
중국인의 침공을 받아 힘이 모자라 참살탕진 당하고
服王 赦宥 而追念王恩 於[旋] 還都 攻 我祖
왕에게 엎드려 죄를 청하니 왕이 용서하여 그 왕은을 추념한다. 다시 환도를 위해 공격하니 우리 조부는
上盡攻大菓 賜食邑 [蕃](厘) 於是 添言 後
최선을 다해 공격하여 대과를 얻고 식읍을 하사받고 번리를 하게 되었다. 이때 왕이 말씀하기를 후손들이
申錫蕃釐,錫我蕃釐
人永亨世爲奴客 誰守 幹弓利城 世世代代
영원히 향세하는 노객이 되라 하였다.
이후 간궁리성을 세세대대 지켰으니 연유를 기록하여 왕은을 잊지 않게 하리라.
故銘記不忘 王恩 祖[殷到] 我輩[感]念 杞(祀)
조상의 부가 우리에게 내려와 그 은덕을 기념하고
殷 不改永爲奴客 官接 大兄命 謂 孝感
오직 영원히 노객으로 충성하니 대형을 명받았다.
天地愛微 舊禮 是拜 苗城 高[杀]立 唯
효성이 천지미애에 감응하여 구례에 따라 묘를 성같이 하고 높은 살문을 세우고
而木説 禮知節 哀集蓼莪 痛深 龜北 銘之
나무판에 예지절을 새기니 슬픔이 커서 비통한 마음을 거북등(묘석)에 새기노라.
<참고>
주무왕/ 故兵不血刃而定天下
<楄>(山海經 堵山,神天愚居之,是多怪風雨. 其上有木焉 名曰天楄)
<幹弓利城; 광개토왕비문>
<蓼莪> 長大的樣子。詩經˙小雅˙蓼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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