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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고국원왕 비문

monocrop 2007. 3. 6. 03:52
 

고국원왕 비문

의의 1. 고구려 국동대혈은 동굴이 아니라 왕릉이며 집안이다.  

2. 삼국유사의 요동 육왕탑 설화에 나오는 성왕이 고국원왕이 된다.

4. 고국원왕부터 고구려는 다시 칭제건원한 것으로 고려된다. 그래서 고국원왕을 소열제라 추증하고 성종이라고 기록한 것이 된다.

 

 고국원왕 묘지, 서울에 있음

 

銘記勳績 以示後世   

훈적을 적어서 후세에 알린다. 

聖宗 敁(故)三邑 渡沸流     

성종은(고국원왕)은 삼읍을 위로하고 비류수를 건너

固築聖城圍(冊) 百統

성성(왕성)을 견고히 쌓고 책을 둘러쌓았다.

五地 (三十)六城 祀國段

백통 오지, 36성을 통솔하여 국단에 제사하여,

百殊千戶 永傳百世 

백수와 천호가 백세까지 전하게 하였다.

晋永和乙巳三年(347) 王    

진영화을사3년(347년)에

相加句牟战[]峴峪          

소수림왕은 상가구모와 혁현욕지에서 싸워서 항복 받고 노객으로 삼아 상가로 배하였다.

地 拜奴 三千國卒本          

삼천국졸본왕이 되었다.

十月祭祀祖 城尉那

졸본에서 10월에 제사하고, 위나암 동쪽에

巖東禁邑 築國內城 

금읍(황성)을 짓고, 또 국내성을 쌓는 것을

謁日月 祭天地  國殊

일월신에 알리고 천지에 제사하였다.      

啓 國東 竣大穴陵 銘 

고국원왕은 국동에 대혈릉을 세워(大穴陵=역대왕릉)

載 其偉 取追 先王圻         

그 위대함을 새기고 선왕의 기읍(고분자리)을

邑 永記 遷四九 詔方

영원히 밝히며, 36기의 왕릉을 옮겼다.

祭碑臺[]陽陰律壇           

전국에 알리어 음양율단에 비대를 세웠다.

制行不守 王師執封          

제행을왕이 직접 할 수 없어서 왕사가 대신 집행하였다.


(고국원왕은 성종 소열제昭列帝가 되는데 칭제건원한 것이 된다.)

국동대혈은 동굴이 아니라 대규모 왕릉이다.


출처 : 일본사 X-file /일본천황은 백제왕자였다
글쓴이 : 천사짱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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