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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고구려 문자왕 묘지

monocrop 2007. 3. 6. 03:56
 

고구려 문자왕 비문

 

 


古鄒大加 助多時 在丙申年          고추대가 조다가 병신년(456)에...

[][][][][][] 造立碑 玄              (문자왕 출생 기록) 비를 세운다.

[][][][][][] 者文曰                 비문왈/

 

天動 王恩排僞 使持節                 하늘을 움직였다. 왕은 사지절

都督 遼海諸軍事 征                     도독 요해제군사 정

東大將軍 領護東夷                      동대장군 영호동이


中郞將 遼東郡 開國公                 중랑장 요동군개국공에 배하였다.

與羅人 戰於浿水 陷保犬             신라인과 패수에서 싸워 견아성을 함락하여

牙城 [興][邦]宜豊役 (卭)恩        보전하고, 의풍의 ??? 감사하였다.


國民永恩 奴客不忘                     국민과 노객은 감사하고 잊지 못한다.

生世授國 安生善战                     태어나 나라를 받아서 안생하고 선전하였다.

碑銘於墓前                               비에 새겨 묘앞에 세운다.

 

<해설>

문자왕 494년 7월에 신라와 싸웠다.

....가을 7월에 우리 군사는 신라 사람들과 살수(薩水) 들판에서 싸웠다. 신라 사람들이 패하고 견아성(犬牙城)을 지키자 우리 군사가 이를 포위하였으나, 백제가 군사 3천 명을 보내 신라를 구원했으므로 우리 군사가 후퇴하였다.

495년 8월에 군사를 보내 백제 치양성(雉壤城)을 포위하였다. 백제가 신라에 구원을 청하니, 신라 왕이 장군 덕지(德智)에게 명하여 군사를 거느리고 와서 구원하였으므로, 우리 군사가 물러나 돌아왔다.

여기서 국경은 신라는 덕지강과 살수다. 덕지강은 함경남도 함흥 서남쪽에 있다. 

평양과 함흥의 사이에 있는 요덕군 단응천端鷹川邊의 향봉리(香峰里) 고성이 백제 치양성이고 과거에 평주진이라고 했는데 여기서 흐르는 강이 고대의 또다른 패수다. 문자왕비의 패수는 바로 이 함경남도 동해안의 패수다. 

이 패수는 지금 금야강이라고 한다. 금야강은 상류에 있던 고대 비류수로 비롯된다.

백제 수곡성은 수시리고성이 있던 정평군이 된다. 초고대왕의 소고성이 수곡성의 유래다. 정평군에 고구려 장곡현長谷縣, 혹은 단곡현端谷縣이 있었는데 백제 수곡성水谷城의 후신이다.

즉 함흥에서 원산 사이 동해안이 고구려, 백제, 신라가 상쟁하는 요충이었다.

문자왕 5년(496년)에 7월에 군사를 보내 신라 우산성(牛山城)을 공격하였다. 신라군이 이하(泥河) 가에 나와 반격하자 우리 군사가 패배하였다. 遣兵攻新羅 牛山城 新羅兵出擊泥河上 我軍敗北  6년(497) 가을 8월에 군사를 보내 신라 우산성을 공격하여 빼앗았다.

이 니하가 바로 문자명왕비문의 패수다. 따라서 금야강이 된다.

우산성은 쇠산성이니, 속고봉 부근이다. 그곳에 매홀 석성이 있었다. 

훗날 발해와 신라의 경계라던 니하도 금야강이다. 즉 패수-니하는 용흥강-금야강이고 신라의 살수는 전탄강, 지금의 덕지강이다.

 

 

출처 : 일본사 X-file /일본천황은 백제왕자였다
글쓴이 : 천사짱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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