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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광개토왕 비문의 여러 성 규명

monocrop 2007. 3. 6. 04:01

 

 

 

<광개토왕 비문>에서 396년에 광개토왕이 공취한 백제 58성은 아래와 같이 비정된다.

1번) 일팔성壹八城은 단동시 봉성현 봉황산성鳳凰山城이다. 현재는 일면성一面城이라고도 한다. 성 둘레는 30여리에 이르는 대성이다. 백제 진사왕辰斯王이 쌓은 관방의 최북단인 팔곤성八坤城과 관련하여 그 서쪽의 봉황산성을 역시 관방성의 하나로서 일팔성으로 추정한다. 팔곤성은 팔하천八河川이라고도 부른 요동반도 단동시 애양현(~陽縣) 관수진灌水鎭의 고대보산성高臺堡山城으로 추정된다.
곤은 관과 고대모음 "아래아"로서 같은 것이 될 수 있다. 백제 팔곤성을 고구려에서는 곤팔성이라고 고쳐불렀는데 역시 백제 관방인 팔일성도 일팔성으로 고쳐 부른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백제 관방이나 국경에 팔八자가 들어가는 일이 많다. 팔령, 팔령천 등이 그렇다.
따라서 일팔성은 봉성을 가리키는 것으로 추정한다. 봉황성은 고구려 연개소문의 고향이라고도 전하는데 연개소문에 이르러 현재 규모로 커졌을 것이다.

2번) 구모로성臼模盧城은 수암현岫巖縣 동북쪽 황화전黃花甸의 노성구산성老城溝山城이다. 성 둘레는 약 3리이다. 대양수大洋水의 동쪽 가지에 있는데, 동쪽 가지 계곡을 구곡九谷이라 하며 이는 구곡舊谷의 변형이다. 부근의 송수구산성松樹溝山城은 성 둘레가 5리인데 고구려 때 쌓은 것으로 고려된다.

 

3번) 약모로성若模盧城은 애하 변의 구련성九連城으로 추정한다.

여기까지 3성은 압록강 북쪽에 있고 이후 성들은 압록강 남쪽에 있다.


4번) 간궁리성幹弓利城은 의주시 동남쪽 20리에 있었던 전문령箭門嶺 고성古城으로 추정한다.

간궁리성의 간궁幹弓을 뒤집으면 궁간弓幹이 되는데 평안북도 의주 동쪽 삼림森林에서는 활의 재료가 되는 궁간목弓幹木을 생산하였다. 궁간은 활대를 말하며 전문령의 전箭은 화살을 말하여 서로 유사점이 있다.

이 전문령고성은 의주 동남 20십리에 있던 토성으로서 백제 초기 토성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성 둘레는 11600척(4000m)이고, 62개의 우물이 있었다고 전한다. 전문령고성의 현재 위치는 의주시 송산동松山洞, 대문리大門里 부근이 된다.

송산동은 금강산과 횡금산 사이에 위치하여 있는데 금강산(金剛山,524m)은 조선시대 송산松山이었다. 간궁산, 궁간산弓幹山으로부터 금강산金剛山이 비롯된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궁간목은 청천강 이북에서 주로 생산된다. 간궁리성은 의주를 통할하던 백제 대성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5번) ○○○ 무명성은 모수성牟水城으로 추정하며 의주 서남쪽 백마산성白馬山城이다. 현재는 고구려성으로 분류되는데 백제가 먼저 쌓은 것이다. 백마산성은 토성土城으로서 내성 둘레가 2590m이고, 외성 둘레는 2430m인데 외성은 조선시대에 세웠다. 


다음은 두비압령한豆比鴨嶺韓으로서 피현군枇縣郡 용골산성의 위치인데 고구려군은 모수牟水(=三橋川)를 건너지 않고 동쪽으로 갔다.

6번) 각미성閣彌城은 천마군天馬郡 각구봉角拘峰 남쪽 고영삭진古寧朔鎭으로 추정한다. 토성이 있었다.

 

7번) 모로성牟盧城은 천마군 식송진植松鎭 고성古城으로 추정한다. 문곡산門谷山 아래인데 모로를 문곡으로 바꾼 것이 된다.

8번) 미사성彌沙城은 천마군 서고성西古城터로 추정한다. 서고성은 승암산 아래인데 미사彌沙가 사미로 뒤바뀌었다. 사미沙彌는 20세 이하의 어린 남자 승僧을 의미하므로, 다시 현재의 승암산僧巖山으로 바뀌었다.


9번) 고사조성古舍조城은 선천군 동림성東林城으로 추정된다. 석축과 토축이 함께 있으며 그 둘레는 17560척이다. 고선주성古宣州城이었다. 사조가 축약되어 선주宣州로 되었다. 수묘인을 바친 사조성舍?城은 철산군鐵山郡으로 추정한다.

10번) 아단성阿旦城은 선천군宣川郡 대륙산大陸山으로 고려한다.

《삼국사기/백제본기》에는 아단성은 없고 아차성阿且城만 두 번 나온다. 책계대왕이 고구려를 막기 위해 위례성(평안남도 평성시)을 수리하고, 사성(평양성) 등과 함께 쌓았고, 개로왕이 고구려군에게 끌려가서 죽은 곳이다. 고구려의 기록이 아단성이지만 본래가 백제 아차성의 오기誤記로 추정한다.

아단성과 함께 수묘인을 공출한 잡진성雜珍城은 선천군 검산성劒山城으로 추정된다.


11번) 고리성古利城은 곽산군郭山郡 읍성이다. 곽산성, 또는 능한산성凌漢山城이라고도 하였다. 석성으로서 성 둘레는 6913척이다. 곽산군郭山郡은 고려시대 장리현長利縣이었던 기록이 있다.

 

12번) 무명성利城은 어리성於利城으로 추정한다. 능한산성이 당어령堂於嶺에 있으므로 그 아래는 어리성으로 추정하였다. 정주군定州郡 서주리西州里에 위치한 성동산성城洞山城으로서 성 둘레는 3만척에 달하는 토석성土石城이다.

 

13번) 잡미성雜彌城은 정주군 남쪽 제석산帝釋山에 위치한 성 둘레 7000척의 육지고성育地古城이다. 정주군 오산리五山里에 있으며 현재는 익주성益州城이라고 한다.

육지성이 익주성으로 변한 것이다. 이 산성은 고구려 때 산성으로 추정하고 있는데 백제 고성도 되는 것이다. 그 다음 동쪽은 운전군雲田郡 봉두산성鳳頭山城, 즉 구모객두성句牟客頭성인데 고구려군은 이를 지나지 않고 북쪽으로 올라갔다.

 

14번) 오리성奧利城은 구성군 오봉면 조양리 고성지古城池로 추정한다.

태천군을 흐르는 오지천천烏知遷川과 관련하여 해석한다. 구성군 남쪽 30리에 고성지古城池가 있었다고 하는데, 이곳이 오리성일 것으로 추정하는데 그 위치는 오봉면 조양리이다. 구성군 기룡리氣龍里에 니성泥城이 있다. 그 부근 지명에 “어미 역驛”과 “엄교嚴橋” 등이 있는데 어머니성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이는 수묘인을 바친 오리성의 후신으로 추정한다. 즉 구성군 오봉면의 오리성이 기룡리에 옮겨져 새로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어머니의 방언이 오마니이다.

 

15번) 구모성勾牟城은 운전군 목우산(牧牛山,416m)은 구모산을 뒤집은 이름이다. 또한 수묘인을 공출한 구모객두성句牟客頭城은 운전군 가산리 봉두산성鳳頭山城으로 추정한다. 봉두산성은 석성이며 성 둘레는 9067척이다. 구모객두는 환12국의 하나인 구모액국句牟額國의 후신으로 추정된다. 혹은 구모객두의 기록이 옳고 《단군세기》가 환12국의 이름을 옮겨적으면서 구모액국으로 기록하였을 수도 있다.

 

16번) 고수야라성古須耶羅城은 대관군大館郡의 읍성 위치에 있던 대삭주성大朔州城으로 추정된다. 성 둘레는 4615척의 석성이었다.

 

17번) 무명성頁은 수추성須鄒城으로 추정하며 대관군 수동면水洞面 용성리龍城里 위치로 추정된다. 첫 글자에 분명 혈頁자가 보이는데 이는 고어체에서 수首를 대신한다. 

 

18번) 무명성○○은 알 수 없다. 귀성군(龜城郡) 북쪽 굴룡산 산성으로 추정한다. 석축으로 성둘레는 1만 50척이었다.

 

19번) 무명성○○은 알 수 없다. 귀성(龜城)으로 추정한다. 석축으로 성둘레는 1만 1만2335척이다.

 

20번) 분이야라성分而耶羅城은 두 강역을 나누는 성으로 추정한다. 태천泰川의 동쪽, 퇴라산고성退羅山古城으로 추정한다. 성 둘레는 6674척이다. 퇴라산은 지령산(地靈山,300m)로 바뀌었다. 

 

21번) 무명성성은 알 수 없다.

22번) 무명성○○은 박천군博川郡 박릉성博陵城 위치로 추정된다.

23번) 무명성○○은 알 수 없다. 안주읍 고성은 석성으로서 6050척이었다.

 

24번) 무명성○○은 알 수 없다. 사성(蛇城)으로 추정된다. 개천의 고사산산성과 관련될 것이며 고사산산성은 성둘레가  3만6761척으로 대성이다.

 

25번) 두노성豆奴城은 문덕군 대니면 마두산(馬豆山,536m)의 서쪽 일대로 고려한다.
당나라가 고구려를 칠 때에 주둔한 마읍산馬邑山도 이곳이다. 고려 때에 안술진安戌鎭, 혹은 安仁鎭이라고 쌓은 해변토성海邊土城의 위치로 보며, 당시에 성 둘레가 2490척이다.

 

26번) 비성沸城은 숙천군肅川郡 고읍성으로 추정한다. 성 둘레는 4050척의 토성이다.

 

27번) 무명성()利城은 비리성比利城으로 추정한다. 숙천군肅川郡의 접무봉(蝶舞峰,340m) 남쪽, 호전성虎田城이다. 숙천읍 동쪽 20리라고 하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 호전성은 토성으로서 성 둘레는 9710척이다.

비리는 피리로 읽어서 한자어로 호적胡笛으로 바뀌어 다시 호전성虎田城으로 바뀌었다. 호전성의 산봉우리는 역시 피리봉을 바꾼 호적봉에서 호접봉胡蝶峰이라고 바뀌어서 다시 오늘날의 접무봉蝶舞峰으로 변한 것으로 추정된다. 즉 현재의 접무봉과 접무봉 기슭 아래 호전성은 둘 다 한자어 호적胡笛, 즉 우리말 피리에서 유래한 것이다.


28번) 미추성彌鄒城은 평원군 영유현 위치의 태조산 남쪽 미두산성米豆山城으로 추정하였다. 미두산성은 토성으로서 둘레는 4380척이다.

둘레가 1820척이 되는 고소토성古小土城이 영유현 자리에 있었는데 온조溫祚 도래 당시의 미추홀이고, 미추산성은 비류의 후예들이 도래하여 지어진 산성일 것으로 추정된다.

 

29번) 야리성也利城은 자모산성慈母山城으로 추정한다. 평성시 어중리御重里에 있다. 성 둘레는 5Km이며 99개의 우물이 있었다고 하는 대성이다.

내성이 북쪽으로 치우쳐 있는데 내성이 백제 성으로 추정된다. 아리, 또는 야리는 다 알을 어원으로 하며 어머니를 의미한다.

미추성이 바라보이는 자모산성은 《삼국사기백제본기》의 부아악負兒岳으로 추정하는데, 부아악의 뜻은 아이를 업은 자애로운 어머니 산이다.


30번) 대산한성大山韓城은 백제 국성이었던 대동강의 북한산성 안학궁이다.

 

31번 이하는 대산한성 안학궁이 함락되면서 대동강 이북에 위치해서 항복해서 얻은 성들일 것이다.

 

31번) 소가성掃加城은 평성시 소사산(蘇射山,354m)과 관련된 성으로 추정하는데 그 북쪽에 니성泥城이라는 성 둘레 1250척의 작은 토성이 있었다.

32번) 돈발성敦拔城은 한자를 풀어서 발이 족足으로 바뀌었다고 보면, 대성산성 북쪽의 대동군 자족면紫足面이 된다. 돈敦이 돈豚, 시豕, 시柴, 자紫로 바뀌는 과정을 추정할 수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 대성산성 동북쪽 산사면에 대성산성과는 다른 토성이 남아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토성 둘레는 5160척이라고 하였다.

이 토성의 위치가 바로 자족면紫足面이며, 백제가 쌓은 토성으로서 돈발성으로 추정된다. 즉 대성산성의 전신이다.


33번) 무명성○○은 알 수 없다.

34번) 무명성○○은 알 수 없다.

 

35번) 루매성婁賣城은 청암동 토성이다. 노성魯城이라고도 하였다.

36번) 산나성散那城은 고방산 산성高坊山 山城으로 추정한다. 성 둘레는 4Km이다.

37번) 무명성○婁城은 청호동 산성淸湖洞山城으로 추정한다.


38번) 세성細城은 평양시 삼석구역 손자산(孫子山,356m) 남쪽 삼성리三成里로 추정한다. 고성은 알 수 없다.   

39번) 모루성牟婁城은 평성시平城市 한왕리漢王里 고성古城으로 추정한다.

40번) 우루성于婁城은 첫자가 희미하지만 대개 우루성으로 해석한다.

우륵지于勒池가 있던 평원군 노지면 대주리大州里로 추정한다. 우륵지는 거문고를 타는 가야인 우륵이 왔던 곳이 아니라 우루지于婁池의 와전으로 추정된다. 우루지에 고성이 있었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41번) 城은 증산군甑山郡 함종면咸從面 고읍성으로 추정한다. 석성이며 성 둘레는 4334척이다. 산성도 있는데 역시 석축이며 2246척이다. 함종咸從은 비류의 백성들이 비류가 죽고 온조 땅에 건너올 때 낙종樂從했다는 백제 건국기의 기록과 관련될 것으로 본다.


42번) 연루성燕婁城은 평안남도 용강군 어을동토성으로 추정한다. 황룡산성은 오석산(烏石山,566m)을 중심으로 쌓은 성 둘레 6620m의 대성이다. 그 서쪽의 어을동토성於乙洞土城은 성 둘레 1212척의 토성으로서 평산군 신사비가 발견된 곳이다.

43번) 석지리성析支利城은 용강군龍岡郡 삼화읍 고성三和邑 古城으로 추정한다. 토축이며 성 둘레는 4630척이다.

44번) 암문지성巖門至城은 평안남도 용강군 암성면巖城面이다. 암성리巖城里가 남아 있다. 고성은 알 수 없다.

 

45번) 임성林城은 평안북도 염주군鹽州郡 성림성城林城으로 추정한다.

46번) 무명성○○은 알 수 없다.


47번) 무명성○○은 알 수 없다. 무명성()()()은 잡진성雜珍城으로 추정되며 그 위치는 선천군宣川郡 검산성劒山城이다.

48번) 무명성○○은 알 수 없다.  

49번) 무명성○○은 알 수 없다.  


50번) 취추성就鄒城은 알 수 없다.

51번) 무명성○○○은 알 수 없다.

52번) 고모루성古牟婁城은 알 수 없다.

53번) 윤노성閏奴城은 알 수 없다.

 

54번) 관노성貫奴城은 압록강 북쪽 관전현(寬甸縣)으로 추정된다.

55번) 삼양성三穰城은 평양시 삼석구역 삼성동으로 추정된다.

 

56번) 무명성○○은 미성味城으로 추정한다. 영변군 약산성藥山城으로 추정한다. 영변읍 고성은 철옹성으로서 4성으로 나누어지는데 그 중 가장 오래된 성 둘레 1Km의 약산성藥山城 고성으로 추정한다. 영변은 밀운密雲성이라고도 하였었다. 그래서 미성이었을 수 있다.

 

57번) 무명성()()()羅城은 고모야라성古模耶羅城으로 추정한다. 영변군 고무주성(古撫州城)으로 추정된다. 토성으로 성둘레는 5947척이다. 영변군에는 단군시대 모한(慕韓)이 있었다.

 

58번) 구천성仇天城은 순천시 은산殷山이다. 북쪽 천성산天聖山이 구천성仇天城이 된 것이다. 구천성은 은산의 고읍성으로 추정되는데 토성이며 성 둘레는 5168척이고 우물 9개와 연못 3개가 있었다. 천성산 꼭대기에 고구려, 백제 시조 동명왕의 마적馬跡이 있다고 하는데 이는 온조대왕의 마적과 관련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출처 : 일본사 X-file /일본천황은 백제왕자였다
글쓴이 : 천사짱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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