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석학 김원모(金源模)가 번역한, <舊韓末 激動期의 秘史 알렌의 日記>(단국대학교출판부, 1991)이 있다.
알렌(Horace N. Allen 安連: 1858-1932)은 1884년 9월에 조선 서울에 들어와서 주한미국공사관의 서기관, 대리공사, 전권공사 등을 엮임하면서 조선에 1905년 5월까지 무려 21년간을 근무하였다.
위에 소개한 책에 "머리말"에 보면, 그는 1884년 9월에 한국에 왔다고(p.5) 했지만, "알렌은 처음에 중국으로 파견되었다. 그러나 중국선교사업에 적응하지 못하고 환멸을 느끼다가, 마침내 장로교 본부에 조선행을 자청, 내한하게 되었다."고(p.7) 말하면서 조선에 들어온 리류를 밝혔다.
이러한 내용이 본문 속에 있는 영어 원문으로 되어 있는 것과 번역문과의 차이가 있음을 볼 수 있다.
"This diary contains an account of my going to China as a medical missionary, whence I was able to proceed to Korea where missionaries were not allowed."
[기존번역] "본 일기에는 본인이 의료선교사로 중국에 부임했던 당시의 일기가 포함되어있다. 나는 중국선교사를 그만두고, 선교가 허용되지 아니한 조선으로 건너갔다."
이 번역문 속에는 "중국선교사를 그만두고"라는 말이 없다.
그리고 나머지 글에서 그 번역문 속에는 "淸"이란 말이 많이 나오지만, 영어 원문에는 한결같이 "China"일 뿐이다.
그리고 알렌이 조선에 오게된 그 일정을 보자. 그리고 나서 그가 과연 어디로 오고갔는지를 판단해보자.
1883년 8월 20일 오하이오주 델라웨어를 출발, 중국(China)으로 떠나다.
9월 4일 샌프란시스코를 떠나 일본 요코하마(橫濱)으로 떠나다.
10월 11일 상해(上海)에 도착하다.
10월 15일 남경(南京: Nanking)으로 떠나 낮에 대었다.
10월 17일 의료업을 개시했다.
1884년 1월 7일 상해로 떠났다.
7월 10일 아내가 산통(産痛)을 했다. 아기는 1884년 7월 12일에 태어났다.
9월 14일 상해를 떠나 조선을 행해 떠났다. 나가사키(Nagasaki 長崎)와 부산(Fusan 釜山) 중간 해상에서 태풍을 만났다. 부산에 대었다.
9월 20일 제물포(Chemulpo 濟物浦)에 대었다.
9월 22일 서울로 떠났다.
9월 23일 묄렌도르프(Moellendorff, 穆麟德)을 방문했다.
9월 24일 나는 새로지은 조선호텔에 투숙하였다.
9월 27일 조랑말을 타고 그곳(제물포)로 갔다.
9월 29일 서울로 돌아왔다.
10월 11일 나는 오늘 가족을 데리러 상해로 가기로 하니 무척 기쁘다. 우리는 난징(Nanzing)호를 탔다.
10월 14일 나가사키(長崎)에 대었다.
10월 17일 상해(上海)에 대었다.
10월 20일 조선으로 떠났다. 중도에 나가사키에서 일본인 요리사를 고용했다.
10월 26일 제물포에 대었다.
10월 27일 서울로 길을 떠났다.
우선 여기까지만 보자.
알렌은 맨먼저 요코하마에 대었다가 상해(上海)에 대었으며, 남경에 갔다가 상해를 왕복하였다. 그 상해에서 부산, 제물포로 갔다. 처음부터 서울로 갈 양이면, 제물로포 바로갈 것이지, 한반도 동남쪽 끝의 부산을 둘렀다가 갈 까닭이 무언인가?
비록 가는 방향이 기록되어있지 않았지만, 동북쪽이 아니라, 바로 그 서쪽 양자강을 따라 갔음을 알 수 있다. 나가사키도 일본렬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양자강 하류에 있음을 그 일정으로써 알 수 있다.
그리고 서울에서 상해로 갔다가 돌아오기까지의 과정을 보면, 서울 - 나가사키 - 상해 - 나가사키 - 제물포 - 서울로 되어있다. 이런 지명들이 상해 - 남경과 더불어 하나의 강을 따라 있어야 할 것들이다.
여기서 서울에서 상해로 가는 길목에 일본렬도 나가사키가 있어야 하고, 그곳을 반드시 경유하게 될 까닭이 없다. 곧장 갈 수 있는 지리적 위치에 있어야 한다. 그것이 곧 양자강 하류이다.
이 내용으로 보면 알렌은 처음부터 조선에 왔으며, 그 조선이 중국대륙이었음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알렌을 소개하는 글에서 알엔이 1884년 9월 20일에 조선에 처음 온 것이 아니라, 상해에 도착한 1883년 10월 11일로 해야 한다. 1883년 9월 4일에 요코하마로 떠났다고는 해놓고 어느날에 대었다는 말이 없기 때문에 그 날짜를 적용하지 않았다.
알렌은 조선에 21년이 아니라, 22년간을 머물었던 것이며, 그 곳이 지리적으로 중국대륙이었다.
알렌(Horace N. Allen 安連: 1858-1932)은 1884년 9월에 조선 서울에 들어와서 주한미국공사관의 서기관, 대리공사, 전권공사 등을 엮임하면서 조선에 1905년 5월까지 무려 21년간을 근무하였다.
위에 소개한 책에 "머리말"에 보면, 그는 1884년 9월에 한국에 왔다고(p.5) 했지만, "알렌은 처음에 중국으로 파견되었다. 그러나 중국선교사업에 적응하지 못하고 환멸을 느끼다가, 마침내 장로교 본부에 조선행을 자청, 내한하게 되었다."고(p.7) 말하면서 조선에 들어온 리류를 밝혔다.
이러한 내용이 본문 속에 있는 영어 원문으로 되어 있는 것과 번역문과의 차이가 있음을 볼 수 있다.
"This diary contains an account of my going to China as a medical missionary, whence I was able to proceed to Korea where missionaries were not allowed."
[기존번역] "본 일기에는 본인이 의료선교사로 중국에 부임했던 당시의 일기가 포함되어있다. 나는 중국선교사를 그만두고, 선교가 허용되지 아니한 조선으로 건너갔다."
이 번역문 속에는 "중국선교사를 그만두고"라는 말이 없다.
그리고 나머지 글에서 그 번역문 속에는 "淸"이란 말이 많이 나오지만, 영어 원문에는 한결같이 "China"일 뿐이다.
그리고 알렌이 조선에 오게된 그 일정을 보자. 그리고 나서 그가 과연 어디로 오고갔는지를 판단해보자.
1883년 8월 20일 오하이오주 델라웨어를 출발, 중국(China)으로 떠나다.
9월 4일 샌프란시스코를 떠나 일본 요코하마(橫濱)으로 떠나다.
10월 11일 상해(上海)에 도착하다.
10월 15일 남경(南京: Nanking)으로 떠나 낮에 대었다.
10월 17일 의료업을 개시했다.
1884년 1월 7일 상해로 떠났다.
7월 10일 아내가 산통(産痛)을 했다. 아기는 1884년 7월 12일에 태어났다.
9월 14일 상해를 떠나 조선을 행해 떠났다. 나가사키(Nagasaki 長崎)와 부산(Fusan 釜山) 중간 해상에서 태풍을 만났다. 부산에 대었다.
9월 20일 제물포(Chemulpo 濟物浦)에 대었다.
9월 22일 서울로 떠났다.
9월 23일 묄렌도르프(Moellendorff, 穆麟德)을 방문했다.
9월 24일 나는 새로지은 조선호텔에 투숙하였다.
9월 27일 조랑말을 타고 그곳(제물포)로 갔다.
9월 29일 서울로 돌아왔다.
10월 11일 나는 오늘 가족을 데리러 상해로 가기로 하니 무척 기쁘다. 우리는 난징(Nanzing)호를 탔다.
10월 14일 나가사키(長崎)에 대었다.
10월 17일 상해(上海)에 대었다.
10월 20일 조선으로 떠났다. 중도에 나가사키에서 일본인 요리사를 고용했다.
10월 26일 제물포에 대었다.
10월 27일 서울로 길을 떠났다.
우선 여기까지만 보자.
알렌은 맨먼저 요코하마에 대었다가 상해(上海)에 대었으며, 남경에 갔다가 상해를 왕복하였다. 그 상해에서 부산, 제물포로 갔다. 처음부터 서울로 갈 양이면, 제물로포 바로갈 것이지, 한반도 동남쪽 끝의 부산을 둘렀다가 갈 까닭이 무언인가?
비록 가는 방향이 기록되어있지 않았지만, 동북쪽이 아니라, 바로 그 서쪽 양자강을 따라 갔음을 알 수 있다. 나가사키도 일본렬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양자강 하류에 있음을 그 일정으로써 알 수 있다.
그리고 서울에서 상해로 갔다가 돌아오기까지의 과정을 보면, 서울 - 나가사키 - 상해 - 나가사키 - 제물포 - 서울로 되어있다. 이런 지명들이 상해 - 남경과 더불어 하나의 강을 따라 있어야 할 것들이다.
여기서 서울에서 상해로 가는 길목에 일본렬도 나가사키가 있어야 하고, 그곳을 반드시 경유하게 될 까닭이 없다. 곧장 갈 수 있는 지리적 위치에 있어야 한다. 그것이 곧 양자강 하류이다.
이 내용으로 보면 알렌은 처음부터 조선에 왔으며, 그 조선이 중국대륙이었음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알렌을 소개하는 글에서 알엔이 1884년 9월 20일에 조선에 처음 온 것이 아니라, 상해에 도착한 1883년 10월 11일로 해야 한다. 1883년 9월 4일에 요코하마로 떠났다고는 해놓고 어느날에 대었다는 말이 없기 때문에 그 날짜를 적용하지 않았다.
알렌은 조선에 21년이 아니라, 22년간을 머물었던 것이며, 그 곳이 지리적으로 중국대륙이었다.
출처 : 대륙 조선사 연구회
글쓴이 : 최두환 원글보기
메모 :
'History-NEWS > History-column'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스크랩] 영의정 류영경과 선조 임금과의 대화에서 "동관(潼關)은 6진(六鎭)의 하나"라고? (0) | 2006.12.18 |
|---|---|
| [스크랩] 충청도[公忠道] 목사 홍희근(洪羲瑾)과 비변사에서 오고간 말로 본 조선 (0) | 2006.12.18 |
| [스크랩] 왜국인들은 왜 "중국"을 "China"라고 하는가 (0) | 2006.12.18 |
| [스크랩] 평안도와 함경도는 "사막" 지대와 붙어있다 (0) | 2006.12.18 |
| [스크랩] 조선의 `대마도`로는 `륙로(陸路)`로 갈 수 있는 곳이다 (0) | 2006.12.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