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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조선의 `대마도`로는 `륙로(陸路)`로 갈 수 있는 곳이다

monocrop 2006. 12. 18. 17:35
대마도(對馬島)!
듣기만 하여도 심장이 터지는 듯한 지명이다.
반도사관에서 본 대마도는 잃어버린 땅으로 간주된다.
대륙조선사 연구회에서 보는 대마도는 그저 조선의 내륙의 한 지방일 다름이다.
대마도에 관한 설명은 <세종실록 지리지>나, <신증 동국여지승람>에 나온 글을 빌리지 않더라도 고긋이 모래와 돌이 많아 흙은 척박하기 이를데 없다고 했지만, 우리는 신라의 땅인줄을 익히 알고 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왜놈들이 차지하여버렸다는 것이다.

그런 대마도가 수로(水路)로 갈 수만 있는 것이 아니라, 륙로(陸路)로도 갈 수 있는 곳이라는 것이다. 우선 책 이름을 밝히기 전에 그 내용부터 보자.

"對馬島本新羅之地也 未知何時入于倭努 地皆沙石土無一尺之厚. 秋浦黃文敏公 請討疏略曰 此島地方不過數百里 中間多有泊船地處 陸路雖險而四面皆可踰入...."

이를 번역하면, [대마도는 본디 신라의 땅이었다. (그 대마도가) 언제부터 왜놈의 땅이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 땅은 모두 모래와 돌이며, 흙은 1자만큼도 두텁지 않다. 추포공 황문민이 이를 토벌할 상소문을 청하였는데, 대략 다음과 같이 '이 섬(대마도)은 넓이가 수백리에 지나지 않으며, 그 가운데에는 배들이 정박할 곳이 많고, 륙로로는 비록 험난할지라도 사방으로 모두 들어갈 수 있다...]

이 글의 원문은 <단구첩록(壇究捷錄)>卷9 嶺南道, (國防軍史硏究所, 1999), pp. 864-865에 있는 것이다.
이 책은 본디 만력(萬曆: 1573-1610)에 왕명학(王鳴鶴)이 지은 <등단필구(登壇必九)>(40권)를 1655년(을미)에 리온(李蘊)과 최국량(崔國亮)이 대륙의 것을 조선의 실정에 맞게 고쳐서 요약한 것이라고 한다.[위의 책, p.1 <단구첩록>에 대하여]
그 <등단필구>의 저술 목적은 "왕명학이 당시 명군(明軍) 가운데 세습군관(世襲軍官)들이 병법 등에 무지하다는 사실을 매우 심각하게 인식하면서 그 저술을 계획하게 되었다."는 것이다.[위의 책, p. 3]
이 "세습군관"이란 말은 수군의 경우 세습된다. 그런데 군관도 세습된다는 말은 "세습제후", 즉 제후국의 군사를 뜻한다. 그렇다면 명나라는 곧 제후국이라는 말로 대치될 수 있다.

그런데 이 <단구첩록>(19권)을 지은 시기에 대해서 잠깐 살펴보면, "崇禎紀元後乙未仲秋上翰"이라고 서문에는 "前郡守臣李蘊謹撰"이라고, 권9 발문에는 "前縣監臣崔國亮謹撰"이라고 적어놓았다. 즉 1655년(효종6)에 이 글을 지었다는 말이다.
그런데 내용으로 보면, 금위영(禁衛營)과 친기위(親騎衛)가 언급되고, 신익념(申益恬)을 "고병사(故兵使)"로 표현 한 것으로 보아 숙종 41년(1715) 무렵에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책의 특징이 조선의 지리적 환경에 맞추어 서술했다는 것과 그 내용에서 특히 지리분야가 완전히 고쳐져 한반도의 것과 거의 일치되도록 한 것으로 보면 이 또한 1920년대에 재창조된 왜곡문헌이라고 본다. 그러나 그 지리적 일치하는 결국 한반도의 것도 중국대륙의 것도 아닌 이상한 표현으로 일관되어있다.

어쨌든, 대마도로 갈 수있는 방편이 배만이 아니라, 땅으로 걸어서 갈 수 있다는 것이 매우 특이하며,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난날 동경(東京)으로도 륙로로 갈 수 있다는 말도 되새겨보아야 할 것이다.
출처 : 대륙 조선사 연구회
글쓴이 : 최두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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