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좀더 력사학에 랭정을 찾고, 리성적으로, 합리적으로 접근해야 할 필요가 있다.
<대동여지도에서 낙타전쟁 : 그 숨은 비밀을 찾아서>(집문당, 2003), pp.115-118에서 "관북(關北)과 서북면(西北面)" 지역을 녕하성(寧夏省)과 감숙성(甘肅省) 이서가 되는, 황하의 상류가 있는 동경 106도 이서 지역으로 비정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조선의 행정구역, 또는 그 강역을 한반도가 아니고, 중국대륙의 전체로 보는 것에 대해 수긍을 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동의하지도 않는 것 같다.
참으로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력사학은 감정의 분화구가 아니다.
우리는 력사학을 하면서 미시적인 유물 조각 하나에 너무 시간과 정열을 많이 쏟아붓는 것 같다. 유물 조각 하나가 결정적인 단서가 되어 력사의 패러다임을 바꾸기도 한다. 그만큼 중요하다.
이런 중요성 못지 않게 거시적 력사관에서 보면, 기후, 생물군, 식물군의 생존환경, 지명의 지리적 관계, 토질과 인간의 활동 환경, 전쟁에서의 전략적 상호 관계 등을 보면 강역의 결정적 단서가 상당히 발견되어 강역을 비정하는 좋은 자료가 된다.
바로 이런 차원에서 조선의 북쪽 경계가 되는 강역의 한계를 보면, 우리는 언제나 거의 조선이란 한반도를 중심으로 하며, 평안도와 함경도는 백두산을 중심으로 서쪽의 압록강, 동쪽의 두만강을 경계로 한다. 물론 그 윗대의 고조선으로 올라가면, 그 북쪽 지방[만주벌판이라는 지역: 신만주]을 차지했다고들 한다.
그런데 그 지역에는 사막(沙漠) 지대가 있지 않다.
평안도와 함경도는 한반도 조선으로서는 조선강역의 최북단 한계이다. 특히 근세조선에서는 압록강, 두만강 이북의 땅은 조선의 관할이 아닌 것으로 되어있다.
그렇다면 "세계문화유산"에까지 등록된 세계적으로 공인된 사료 <조선왕조실록>을 눈이 있으면 다시 보아야 할 것이다.
<중종실록>권59 중종22년(1527) 6월 3일(무신)에 이런 글이 있다.
"생원 리종익(李宗翼)이 상소하였는데, ...신이 또 보면, 평안도와 영안도[=함경도]는 사막지대와 가까이 있어 인물들이 쇠잔합니다. ...[生員李宗翼上疎曰 ... 臣又觀平安永安地濱沙漠 人物凋殘.]"
여기서 "濱"(빈)은 <옥편>에 "가깝다[地近)/끝으로 하다[限也]/경계로 하다[界也]"는 뜻이 있다.
그래서 여기서는 "가까이 있다"는 것으로 했지만, 결국 "경계가 되는 곳", "붙어있는 곳"임을 알 수 있다.
평안도와 함경도 북쪽에 존재하지도 않는 "사막"을 들먹이면서 조선의 북쪽 한계가 된다고 조선사람들이 쓸데없는 말만 했을까.
이런 "사막"이 있는 지역을 <대동여지도에서 낙타전쟁>에서 비정한 곳으로 눈을 돌려 보기만 하면, 그곳에는 넓디 넓은 사막이 있음을 볼 것이다. "고비사막"을 비롯한 사막을!!! 물론 "고비"라는 말 자체가 "사막"이란 말이다.
거시적 력사학으로 접근해보지 못하는 한반도 조선의 력사는 우리가 볼 수 있는 사료에서 너무도 많은 내용들을 수용하지 못하고 버려야 하는 비정상적 학문이 아닐 수 없다.
한반도 조선은 조선사를 이루는 하나의 충분조건(sufficient condition)이다. 한반도가 아닌 다른 사실(史實: historical facts)도 조선사를 이루는 충분조건이 있다. 이런 나머지 충분조건의 조선사를 다 수용해 줄수 있는 조선의 강역이 되는 필요조건(necessary condition)이 바로 중국대륙이다. 그 중국대륙 모두가 조선인 것이다.
앞으로도 하나씩 필요충분조건을 따지는 마음가짐으로 력사를 풀어보자. 매우 과학적으로 접근해보자는 말이다.
<대동여지도에서 낙타전쟁 : 그 숨은 비밀을 찾아서>(집문당, 2003), pp.115-118에서 "관북(關北)과 서북면(西北面)" 지역을 녕하성(寧夏省)과 감숙성(甘肅省) 이서가 되는, 황하의 상류가 있는 동경 106도 이서 지역으로 비정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조선의 행정구역, 또는 그 강역을 한반도가 아니고, 중국대륙의 전체로 보는 것에 대해 수긍을 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동의하지도 않는 것 같다.
참으로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력사학은 감정의 분화구가 아니다.
우리는 력사학을 하면서 미시적인 유물 조각 하나에 너무 시간과 정열을 많이 쏟아붓는 것 같다. 유물 조각 하나가 결정적인 단서가 되어 력사의 패러다임을 바꾸기도 한다. 그만큼 중요하다.
이런 중요성 못지 않게 거시적 력사관에서 보면, 기후, 생물군, 식물군의 생존환경, 지명의 지리적 관계, 토질과 인간의 활동 환경, 전쟁에서의 전략적 상호 관계 등을 보면 강역의 결정적 단서가 상당히 발견되어 강역을 비정하는 좋은 자료가 된다.
바로 이런 차원에서 조선의 북쪽 경계가 되는 강역의 한계를 보면, 우리는 언제나 거의 조선이란 한반도를 중심으로 하며, 평안도와 함경도는 백두산을 중심으로 서쪽의 압록강, 동쪽의 두만강을 경계로 한다. 물론 그 윗대의 고조선으로 올라가면, 그 북쪽 지방[만주벌판이라는 지역: 신만주]을 차지했다고들 한다.
그런데 그 지역에는 사막(沙漠) 지대가 있지 않다.
평안도와 함경도는 한반도 조선으로서는 조선강역의 최북단 한계이다. 특히 근세조선에서는 압록강, 두만강 이북의 땅은 조선의 관할이 아닌 것으로 되어있다.
그렇다면 "세계문화유산"에까지 등록된 세계적으로 공인된 사료 <조선왕조실록>을 눈이 있으면 다시 보아야 할 것이다.
<중종실록>권59 중종22년(1527) 6월 3일(무신)에 이런 글이 있다.
"생원 리종익(李宗翼)이 상소하였는데, ...신이 또 보면, 평안도와 영안도[=함경도]는 사막지대와 가까이 있어 인물들이 쇠잔합니다. ...[生員李宗翼上疎曰 ... 臣又觀平安永安地濱沙漠 人物凋殘.]"
여기서 "濱"(빈)은 <옥편>에 "가깝다[地近)/끝으로 하다[限也]/경계로 하다[界也]"는 뜻이 있다.
그래서 여기서는 "가까이 있다"는 것으로 했지만, 결국 "경계가 되는 곳", "붙어있는 곳"임을 알 수 있다.
평안도와 함경도 북쪽에 존재하지도 않는 "사막"을 들먹이면서 조선의 북쪽 한계가 된다고 조선사람들이 쓸데없는 말만 했을까.
이런 "사막"이 있는 지역을 <대동여지도에서 낙타전쟁>에서 비정한 곳으로 눈을 돌려 보기만 하면, 그곳에는 넓디 넓은 사막이 있음을 볼 것이다. "고비사막"을 비롯한 사막을!!! 물론 "고비"라는 말 자체가 "사막"이란 말이다.
거시적 력사학으로 접근해보지 못하는 한반도 조선의 력사는 우리가 볼 수 있는 사료에서 너무도 많은 내용들을 수용하지 못하고 버려야 하는 비정상적 학문이 아닐 수 없다.
한반도 조선은 조선사를 이루는 하나의 충분조건(sufficient condition)이다. 한반도가 아닌 다른 사실(史實: historical facts)도 조선사를 이루는 충분조건이 있다. 이런 나머지 충분조건의 조선사를 다 수용해 줄수 있는 조선의 강역이 되는 필요조건(necessary condition)이 바로 중국대륙이다. 그 중국대륙 모두가 조선인 것이다.
앞으로도 하나씩 필요충분조건을 따지는 마음가짐으로 력사를 풀어보자. 매우 과학적으로 접근해보자는 말이다.
출처 : 대륙 조선사 연구회
글쓴이 : 최두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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