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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충무공 리순신의 해전과 "제주"의 관계

monocrop 2006. 12. 18. 17:23
충무공 리순신은 조선의 명장이었다. 임진왜란을 맞아 그가 지휘한 26번의 해전에서 전승을 거두었다.
그가 남긴 전쟁지휘의 리더십 일지《난중일기》에 이런 내용이 담겨져 잇다.
리순신은 1594년 7월 17일(양력 9월 1일)에 전라도 자신의 진영에 온 천장(天將) 파총(把摠) 장홍유(張鴻儒)와의 대화이다.
“천장 파총 장홍유가 병사들과 호선(唬船) 5척을 거느리고 돛을 달고 들어와서 곧장 영문에 이르러서는 뭍에 내려 이야기하자고 했다. … 작년(1593) 7월에 절강(浙江)에서 배를 타고 료동(遼東)에 이르니, 료동사람들이 말하기를, ‘바닷길에는 돌섬과 암초가 많고, 또 앞으로 강화(講和)가 이루어질 것이니, 갈 필요가 없다고 억지로 말리는 데도 그대로 요동에 머물면서 시랑(侍郞) 손광(孫鑛)과 총병(總兵) 양문(楊文)에게 보고하고, 올 3월초에 출항하여 들어왔으니, 무에 그리 수고라고 할 것이 있는가?'[『草書 亂中日記』“十七日癸巳, 天將把摠張鴻儒, 率兵唬船五隻, 張帆入來, 直至海營, 請下陸同話.…則答以前年七月, 自浙江開船, 到遼東, 則遼東之人曰, 海路經過之地, 多礖石隱角, 又將講話, 不可往矣. 强止至懇, 故仍留遼東, 馳報孫侍郞鑛及楊總兵文等處, 而今三月初生發船入來, 皆有勞艱之色乎.”]라고 했다.
그리고 이튿날 7월 18일(양력 9월 2일)에는 “대체로 내년 봄에 배를 거느리고 곧장 제주에 이르러, 공히 우리 수군과 합세하여 으시대면서 추악한 적들을 무찌르자고 성의 있게 이야기했다.”[上揭書,“十八日甲午, 多有明春, 領船直渡濟州, 共我舟師合勢大張, 盡滅醜類事, 以誠懇懇.”]는 것이다. 조선의 제주에 왜적들이 있고, 그곳을 공격하겠다는 말이다.
이런 내용의 사실여부는《초서체 난중일기》의 갑오년 마지막 일기(11월 28일)의 뒷장에 추가로 적혀 있는 내용 가운데서, “파총 장홍유(張鴻儒)가 이 달(1594년 7월) 17일 진에 도착하여 우리 수군의 위세를 보고 탄복하여 마지않았습니다. 내년(1595) 봄, 산동․천진 등에서 비호선(飛唬船) 120여 척을 거느리고 곧바로 제주(濟州)를 경유해서 한산(閑山)의 진으로 와서 합세하여 함께 적들을 토벌할 것이라고 합니다. 이 말은 비록 깊이 믿을 건 못되지만, 그 정황은 익히 보아온즉 빈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上揭書,“張把總今月十七日到陣, 見舟師兵威, 不勝嘆服, 明春領山東天津等飛唬船一百卄餘隻, 直抵濟州, 因閑山陣, 合勢攻討此賊云, 此言雖不可深信, 熟觀其情, 則似不虛矣.”]rh 했다.
이 기록에서 장홍유의 말대로라면 료동 수군들의 이동은 산동․천진 등지에서 제주를 거쳐 한산진으로 온다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한반도의 설명으로 보일 것 같지만, 그 이동에서 한반도 남쪽 끝에 있는 제주도(濟州島)까지는 갔다가 한산도로 갈 필요가 없다.
《난중일기》에서도 “제주”라고 했지, 섬 “제주도”라고는 하지 않았다. 이것은 산동성과 안휘성․강소성 사이의 상황으로 보면, 제주는 제녕(濟寧)로서 그 수로를 거쳐 한산진에 이르렀다는 말이다. 이 한산은 閑山․寒山이므로, 이곳은 미산호(微山湖) 남쪽 강소성 동산현(銅山縣: 徐州) 동남쪽 18리에 있고, 또 하나는 훨씬 남쪽 양자강 하류의 오현(吳縣) 서쪽에 있는 산이기도 하다.
이런 한산이 그 어디든 한반도로써는 설득력이 없고, 강소성에서 찾아야 할 지명이다.

1596년(병신) 2월 18일(양력 3월 16일) 저녁나절에 체찰사의 비밀 공문이 3통 왔다. 그 하나는 제주목사에게 계속하여 후원하라는 것이다.[上揭書,“十八日乙卯, 晩體察使秘密關三道來. 一則濟州救繼援事.”]

1596년 2월 28일(양력 3월 26일) 전라도 수군 안에서 우도의 수군이 전라좌도․우도를 왔다 갔다 하면서 제주와 진도를 성원한다고 했다. 우습다. 조정에서 꾀하는 정책이 이럴 수가 있나! 체찰사가 꾀를 내는 것이 이렇게도 알맹이가 없단 말인가! 나라의 일이 이러하니 어찌할꼬! 어찌할꼬![上揭書,“二十八日乙丑, 且有全羅舟師內右道舟師往來, 左右道聲援濟․珍事云. 可笑朝廷劃策如是乎, 體察出策如是其無濟乎, 奈何奈何.”]


이런 내용은 분명 제주에 있는 왜적을 치는 작전을 협의했던 것임을 알 수 있다.
리순신이 있는 곳에서 제주와 진도를 아울러 성원할 수 있는 것은 한반도로써는 그럴듯하게는 보이지만, 현실적으로는 파도 높은 제주도까지의 돛단배로서 왕래하기에는 너무도 힘든 구역이다. 그런데《난중일기》에서는 제주와 전라도를 안방 드나들 듯이 다니는 곳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제주에 관련된 것으로써 리순신은 가끔씩 언급하였다.

1595년(을미) 10월 26일(양력 11월 27일)에 임달영(任達英)이 왔다고 한다. 불러서 제주도 가는 일을 물었다.[『李忠武公全書』卷7 日記 “乙未二十六日乙丑晴, 聞任達英來. 招問濟州之行.”]

1596년(병신) 2월 13일(양력 3월 11일)에 임달영도 돌아갔다. 제주목사(리경록)에게 청어(靑魚)․대구(大口)․화살대(箭竹)․곶감(乾柿)․삼색부채를 봉하여 보냈다.[『草書 亂中日記』“丙申二月十三日… 任達英亦歸, 所送則碧魚大口箭竹乾柿三色扇子封送.”]

1596년(병신) 임달영에게는 제주의 농사짓는 소를 포상으로 주었다.[上揭書,“任達英濟州農牛…幷褒賞事.”]

1597년(정유) 9월 9일(양력 10월 19일)에 중양절이라, 군사에게 실컷 먹이려고 했는데 마침 부찰사의 군량 중에서 제주의 소 5마리를 얻어 왔다. 모두 녹도만호와 안골포만호에게 잡게 하여 장병들에게 음식을 먹였다.[上揭書, “是日乃九日, 欲饋軍, 而適得副察使軍粮, 所繼濟州牛五隻而來幷令鹿島安骨屠餉將士之際.”]


제주에서 소를 운반해오고, 그런 소를 포상으로 주기도 하며, 그런 소를 잡아서 군사들에게 실컷 먹이기도 하였다. 물론 선물들도 쉽게 오가는 곳이었다.
료동의 군사들이 지나가고, 조선의 장령들이 제주를 안방 드나들 듯이 오가면서 임진왜란의 작전을 벌였던 지역은 산동성․강소성․절강성 지역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위에서의 “山東”은 “산동성”이 아니라, “태항산(太行山)의 동쪽 지역”을 말한 것이며, 지금의 하북성을 포함하며, 제주는 그 산동에 있는 지명인 것이다.
출처 : 대륙 조선사 연구회
글쓴이 : 최두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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