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중앙일보>(2005. 4. 25. 34면)에 박현모 교수가 "진정한 동북아 균형자가 되려면"이라는 "중앙시평"을 써던 내용을 보았다.
나는 그 내용에서 어떤 것의 잘잘못이나, 그 글을 비평하고자 이 글을 쓰는 것이 아니다.
그 글 속에 "1832년 영국의 암허스트경이 찾아와 통상조약을 체결하고자 ... 충청도 해안에 정박해 있는 그에게 충주목사 이민회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우리는 중국의 번방(藩邦)으로서 다른 나라와 사사로이 교린할 수 없소. 그러니 상국(上國)의 근거할만한 문빙(文憑)을 얻어 오시오.'"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것의 사실여부를 알아보기 위하여 <조선왕조실록>, 즉 <순조실록>(권32) 순조32년(1832) 7월 21일(을축)의 기사를 확인하여 보았다.
"번방(藩邦)의 사체(事體)로는 다른 나라와 사사로이 교린(交隣)할 수 없고, 더구나 우리나라는 자래로 전복(甸服)과 가까이 있어, 크고 작은 일을 모두 아뢰고 알려야 하므로, 임의로 할 수 없는데, 너희들이 상국(上國)의 근거할만한 문빙(文憑)도 없이 지금까지 없었던 교역을 강청하는 것은 매우 부당하니, 요구에 응할 수 없다. 지방관이 어떻게 경사(京司)에 고할 것이며, 경사에서는 또 어떻게 감히 위에 전달(轉達)할 것인가?"라고 번역되어 있었다.
<순조실록>의 이 글 바로 앞에는 물론 "영국[英吉利國 또는 大英國]의 이양선[異樣船: 돛대 3개인 범선(三帆竹船) 길이 30발, 너비 6발, 승조원 67명, 대포 8문, 총 35자루, 창 35자루, 환도 30자루] 1척이 1832년(道光12) 2월 20일에 배에 올라 6월 26이레유시(酉時)에 홍주(洪主) 고대도(古代島)의 안항(安港)에 정박하였다."는 말도 곁들여있다.
여기서의 경사(京司)는 서울에 있던 각 관청을 총칭하는 말이다.
그리고 "전복(甸服)"은 전에도 말한바 있지만, 오복(五服)이니, 구복(九服)의 하나로서, 천자가 직접 다스리는 지역이며, 이것은 "천자[황제]가 있는 곳에서 500리[=189km] 이내의 지역[사방 1000리)이며, 그곳에서 바깥으로 500리 되는[=378km] 지역이 후복(侯服)이며, 그 밖으로 500리 되는[567km] 지역이 수복(綏服)이다. 여기서 "전복"지역에 가깝다는 말은 천자[황제]가 있는 곳에서 후복인 500리[=378km] 이내에 있는 지역임을 알 수 있다.
일단 이 말은 한반도로써는 풀이가 전혀 된지 않는다. 그래서 이 지역의 중국대륙에서 보면, 사천성, 운남성, 귀주성에 해당된다. 물론 전부터 이 지역이 곧 충청도 지역이라고 밝힌 바가 있다.
여기서 충청도 홍주 목사 리민회(李敏會)가 보고한 내용을 보면, 결코 한반도로써는 설명되지 않는 내용이다.
이 내용은 물론 빠짐없이 그 직속 상관인 충청도지사[公忠監司] 홍희근(洪羲瑾)이 포함하여 장계했는데, 그 속에 이런 글이 있다.
"영국[英吉利國 또는 大英國]은, 그 변계(變界)는 곤련(昆連)에 가까운데, 곧 운남성(雲南省)에서 발원하는 한 줄기 하류(河流)가 영국의 한 지방을 거쳐 대해(大海)로 들어간다고 하였습니다. 북경까지의 거리는 수로로 7만리(=2만6460km)이고, 육로로는 4만리(=1만5120km)이며, 조선까지는 수로로 7만리인데,..."
이 글은 이미 영국이 중국남부 운남성 지역에 상당한 지역을 차지하고 있음을 말한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어찌 운남성에서 발원한 강이 바다로 가는 하류에 영국의 한 지방이 있다고 말했겠는가 말이다.
여기서 거리 개념은 영국본토에서와의 거리라고 본다.
이것을 보면, 한반도가 조선이었다면, 충청도 관찰사[감사]라는 사람이 광동성이 있는 지역에 있는 영국 배들에 무슨 관심을 그렇게 가졌겠는가.
그리고 그 다음은 비변사(備邊司)에서 하는 말은 더욱 가관이다. 한번 보자.
"비국(備局)에서 아뢰기를 , '이번의 영국은 비록 대국(大國)에 조공을 바치는 열에 있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그들이 바친 책자를 보면, 민월[절강성과 복건성 지역]과 광주(廣州: 광동성, 광서성 지역) 등지로 왕래하는 상선이 1년이면 60-70척에 밑돌지 않는다고 하였으니, 이번에 우리나라에 와서 정박한 사실이 혹 대국에 전해질 염려도 없지 않으니, 우리나라에서 먼저 발설하여 후환을 막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번역된 글에서 보더라도, "우리나라"는 "조선"이란 "국가"이기보다는 조선의 어느 지방에 해당 되는 "우리 지방"이라고 해야 마땅할 것이다. 그리고 영국 상선들이 다녔던 곳이 바로 "절강성, 복건성, 광동성, 광서성" 등지이다. 그 배들이 무려 70척에 이르는 것을 보면, 아편전쟁(1840년) 직전의 상황으로 몰고가는 영국 사람들이 조선을 얼마나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는지를 알만하다.
이 비변사에서 말한 것도 한반도로써는 결코 설명될 수없는 것이다.
한반도에 있는 하나의 작은 고을에서 중국대륙 중심에까지 낱낱이 보고했고, 앞으로도 그렇게 해야 한다는 사실이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력사지식이라면, 참으로 잘못된 것이 아닐 수 없다.
위에서 소개한 내용이 조선에서 일어난 상황임에 분명한데, 그 일어난 지역은 온통 중국대륙 남부지역이다.
나는 그 내용에서 어떤 것의 잘잘못이나, 그 글을 비평하고자 이 글을 쓰는 것이 아니다.
그 글 속에 "1832년 영국의 암허스트경이 찾아와 통상조약을 체결하고자 ... 충청도 해안에 정박해 있는 그에게 충주목사 이민회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우리는 중국의 번방(藩邦)으로서 다른 나라와 사사로이 교린할 수 없소. 그러니 상국(上國)의 근거할만한 문빙(文憑)을 얻어 오시오.'"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것의 사실여부를 알아보기 위하여 <조선왕조실록>, 즉 <순조실록>(권32) 순조32년(1832) 7월 21일(을축)의 기사를 확인하여 보았다.
"번방(藩邦)의 사체(事體)로는 다른 나라와 사사로이 교린(交隣)할 수 없고, 더구나 우리나라는 자래로 전복(甸服)과 가까이 있어, 크고 작은 일을 모두 아뢰고 알려야 하므로, 임의로 할 수 없는데, 너희들이 상국(上國)의 근거할만한 문빙(文憑)도 없이 지금까지 없었던 교역을 강청하는 것은 매우 부당하니, 요구에 응할 수 없다. 지방관이 어떻게 경사(京司)에 고할 것이며, 경사에서는 또 어떻게 감히 위에 전달(轉達)할 것인가?"라고 번역되어 있었다.
<순조실록>의 이 글 바로 앞에는 물론 "영국[英吉利國 또는 大英國]의 이양선[異樣船: 돛대 3개인 범선(三帆竹船) 길이 30발, 너비 6발, 승조원 67명, 대포 8문, 총 35자루, 창 35자루, 환도 30자루] 1척이 1832년(道光12) 2월 20일에 배에 올라 6월 26이레유시(酉時)에 홍주(洪主) 고대도(古代島)의 안항(安港)에 정박하였다."는 말도 곁들여있다.
여기서의 경사(京司)는 서울에 있던 각 관청을 총칭하는 말이다.
그리고 "전복(甸服)"은 전에도 말한바 있지만, 오복(五服)이니, 구복(九服)의 하나로서, 천자가 직접 다스리는 지역이며, 이것은 "천자[황제]가 있는 곳에서 500리[=189km] 이내의 지역[사방 1000리)이며, 그곳에서 바깥으로 500리 되는[=378km] 지역이 후복(侯服)이며, 그 밖으로 500리 되는[567km] 지역이 수복(綏服)이다. 여기서 "전복"지역에 가깝다는 말은 천자[황제]가 있는 곳에서 후복인 500리[=378km] 이내에 있는 지역임을 알 수 있다.
일단 이 말은 한반도로써는 풀이가 전혀 된지 않는다. 그래서 이 지역의 중국대륙에서 보면, 사천성, 운남성, 귀주성에 해당된다. 물론 전부터 이 지역이 곧 충청도 지역이라고 밝힌 바가 있다.
여기서 충청도 홍주 목사 리민회(李敏會)가 보고한 내용을 보면, 결코 한반도로써는 설명되지 않는 내용이다.
이 내용은 물론 빠짐없이 그 직속 상관인 충청도지사[公忠監司] 홍희근(洪羲瑾)이 포함하여 장계했는데, 그 속에 이런 글이 있다.
"영국[英吉利國 또는 大英國]은, 그 변계(變界)는 곤련(昆連)에 가까운데, 곧 운남성(雲南省)에서 발원하는 한 줄기 하류(河流)가 영국의 한 지방을 거쳐 대해(大海)로 들어간다고 하였습니다. 북경까지의 거리는 수로로 7만리(=2만6460km)이고, 육로로는 4만리(=1만5120km)이며, 조선까지는 수로로 7만리인데,..."
이 글은 이미 영국이 중국남부 운남성 지역에 상당한 지역을 차지하고 있음을 말한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어찌 운남성에서 발원한 강이 바다로 가는 하류에 영국의 한 지방이 있다고 말했겠는가 말이다.
여기서 거리 개념은 영국본토에서와의 거리라고 본다.
이것을 보면, 한반도가 조선이었다면, 충청도 관찰사[감사]라는 사람이 광동성이 있는 지역에 있는 영국 배들에 무슨 관심을 그렇게 가졌겠는가.
그리고 그 다음은 비변사(備邊司)에서 하는 말은 더욱 가관이다. 한번 보자.
"비국(備局)에서 아뢰기를 , '이번의 영국은 비록 대국(大國)에 조공을 바치는 열에 있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그들이 바친 책자를 보면, 민월[절강성과 복건성 지역]과 광주(廣州: 광동성, 광서성 지역) 등지로 왕래하는 상선이 1년이면 60-70척에 밑돌지 않는다고 하였으니, 이번에 우리나라에 와서 정박한 사실이 혹 대국에 전해질 염려도 없지 않으니, 우리나라에서 먼저 발설하여 후환을 막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번역된 글에서 보더라도, "우리나라"는 "조선"이란 "국가"이기보다는 조선의 어느 지방에 해당 되는 "우리 지방"이라고 해야 마땅할 것이다. 그리고 영국 상선들이 다녔던 곳이 바로 "절강성, 복건성, 광동성, 광서성" 등지이다. 그 배들이 무려 70척에 이르는 것을 보면, 아편전쟁(1840년) 직전의 상황으로 몰고가는 영국 사람들이 조선을 얼마나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는지를 알만하다.
이 비변사에서 말한 것도 한반도로써는 결코 설명될 수없는 것이다.
한반도에 있는 하나의 작은 고을에서 중국대륙 중심에까지 낱낱이 보고했고, 앞으로도 그렇게 해야 한다는 사실이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력사지식이라면, 참으로 잘못된 것이 아닐 수 없다.
위에서 소개한 내용이 조선에서 일어난 상황임에 분명한데, 그 일어난 지역은 온통 중국대륙 남부지역이다.
출처 : 대륙 조선사 연구회
글쓴이 : 최두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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