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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조선의 명절풍속에 새해가 되면 “요구르트”를 먹었다?

monocrop 2006. 12. 18. 17:10
글월을 쓰려면, 적어도 론리적으로 전개하여 리론을 내세우려면 그에 합당한 체계적 서술이 필요하다.
나의 글의 전체를 보면 그런대로 알아들을 수 있는 리론이 전개되어 있다. 그런데 지금 표현하는 것들은 앞뒤가 많이 생략된 것으로서 하나의 사실의 진위(眞僞)만을 설명하고, 관련 자료를 제시하고 있음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대륙조선사 연구에서 좀더 론리적 서술을 기대해본다. 하나의 사건을 발견했을 때에 감정적인 표현을 삼가야겠는데, 나 또한 그런 감정을 추스르지 못할 때도 많음을 느낀다.
오늘도 그런 감정의 표현이 될까봐 매우 조심하고 있는 편이다.
신소설(新小說) 추월색(秋月色: 1912년 발표)의 작가 해동동초(海東東樵) 최찬식(崔瓚植: 1881-1951)은 1907년 중국 상해(上海)에서 발행한 소설《설부총서(說部叢書)》를 번역한 바가 있다. 그의 부친이 바로 매하산인(梅下山人) 최영년(崔永年)이며, 그는《제국신문(帝國新聞): 1898.8-1910》을 주재하기도 했는데, 그가 1921년에 지은《해동죽지(海東竹枝)》(1925년 출판)에 “곶감 제호[白柿醍醐]”라는 글이 있다.
이것은 조선의 “명절풍속(名節風俗)”가운데 들어있는 것인데, 그 설명을 보면,다음과 같다.

“(조선의) 옛 풍속에 정월 초하룻날 고려(高麗)의 궁녀가 시설이 난 건시(乾柹: 곶감)를 생강탕에 담그고, 꿀을 타서 백시제호(白柿醍醐: 곶감 제호)라고 일컬었다. 지금도 집집에 전하는데 그것을 수전과라고 한다.

달콤하기는 꿀 같고 진하기는 타락죽 같으니 甘似蜜房濃似酥
봄 소반에 새로 나온 백제호를 春盤初進白醍醐
새해마다 한번씩 마신 걸 따지니 歷數新年年一飮
예순다섯 잔을 없앴더라. 飮來六十五杯無.“
[黃淳九,《海東韻記》(서울: 靑鹿出版社, 1970), pp. 304-305.]

이 글을 읽어보면 참으로 궁금한 것이 많아진다.
그 글의 제목이 “白柿醍醐”(백시제호)이다. 여기서부터 하나씩 풀어보자.
(1) “白柿”(백시)는 “곶감”이다. 곶감은 떫은 감을 다다가 껍질을 벗겨 그늘에 말려 만든 것이다. 범도 무서워한다는 그 곶감이다. 이것은 음료수에 조각을 넣어 먹으면 감칠 맛이 더난다. 이런 곶감을 “제호”에 넣는다고 했다.
(2) “醍醐”(제호)는 “우락(牛酪)” 즉 버터(butter)이다. 본문에서 ‘白醍醐“(백제호)라는 말은 본디 ”白柿醍醐“라야 맞지만, 그 싯귀의 운률을 맞춘다고 ”柿“가 빠진 것이다. 그 글의 핵심은 물론 ”醍醐“(제호)이다.
그렇다면 이 ‘제호“란 무엇인가? 본문의 첫 구절에 ”酥“(소)자가 나온다. 이것은 ”연유(煉乳)“이며, 소나, 양이나, 말이나, 낙타 등의 젖을 정련(精煉)하여 만든 음료이다.
그래서 번역에는 “타락죽”이라고 했다. “타락”은 “駝酪, 즉 우유(牛乳)이다.
여기서 “酪”(락) 또한 소/말/양 따위의 젖을 정련하여 만든 음료이며, 치즈(cheese: 乾酪)를 말한다.
이 지은이 최영년의 설명문이 너무도 구차스럽다. “수전과”라는 말은 아마도 “수정과(水正果)”, 즉 생앙을 달인 물에 설탕이나 꿀을 타고, 곶감, 잣, 계피가루 등을 넣어서 만든 음료를 말한 것임에 분명하다. 역시 “곶감”이 들어간다.
그런데 그런 수정과는 아무리 곶감을 넣었다고 하더라도, “제호(醍醐)”니 “소락(酥酪: 타락)”과는 전혀, 아예 다르다. 물에 넣어서 만든 곶감[수정과]와 동물[소, 양, 말 등)의 젖[제호, 소락]과는 하늘과 땅 차이만큼이나 다르다. 치즈니, 버터를 만들어 먹는 조선에서는 그런 동물들이 많았을 것이며,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한반도에는 전혀 상황이 다르다.
한반도에서는 소젖을 짜서 우유를 만들어 먹은 기억이 거슬러 올라가면 몇 년 전이 될까? 1950년대에 미국사람들이 거드름을 피우며 강냉이가루나, 분유가루를 주어서 얻어먹은 기억이 생생도 하다. 그런 분유가루가 공기에 노출이 되어 돌보다도 더 딴딴한 덩어리가 된 것을 이빨로 깨어서 먹거나, 빨아서 먹은 기억도 생생하다.
그리고 제주(濟州)에 말떼, 소떼가 넘쳐난다는 1653년 제주에 표착했다는 네덜란드의 하멜 일행의 기록《하멜 표류기》의 기록이 새삼스레 느껴진다.
타락죽을 먹던 사람이 오직 새해 설날에만 마신 제호가 65잔이나 되었으니, 그 시를 쓴 사람의 나이가 65살이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과연 새해 설날에만 그 곶감 넣은 제호를 마셨을까?
1집에 1마리를 키우기도 어려웠던 한반도의 농가(農家)의 형편을 보면 치즈니, 버터는 허울좋은, 말하기 좋은 말장남일 뿐이며, 그것으로 젖을 짜서 마시지도 않았다. 그 소, 양, 말 등은 그들의 새끼[송아지, 망아지...]를 끼니 데우기도 남아돌지도 않았음을 명심해야 한다. 어느 마을 한반도 농가에서 1950년 이전에 치즈니, 버터니 만든 공장(개인 집안)인들 있었는가?
《새국어사전》(김민수, 홍웅선, 서울: 어문각, 1974. 5판)에서는 그것을 제대로 먹어보았거나, 직접 눈으로도 보지 못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 사전을 편찬한 글에 “제호: 우유에 칡뿌리 가루를 섞어 쑨 미음”이라고 했던 것이다. 이래서야 사전의 체면이 아니다.
그리고 원문에 “密房”은 그것을 그대로 번역하면 “비밀스런 방” 또는 “은밀한 방”이라고 되는데, 그런 의미보다, 번역해놓은 것처럼 “꿀”로 보면, “蜜房”(밀방)이라고 해야 마땅하다. 그것은 “벌집[蜂房, 蜜窩]이며, 꿀통이다. ”密房“이란 글자는 어떤 사전에도 나오지 않으며, ”蜜房“은 ”중국어사전“에서는 나온다.
이러한 “제호(醍醐)”니 “소락(酥酪)”은 과연 어떤 것인가? 허준이 지었다는《동의보감(東醫寶鑑)》에서 찾아보면, 《본초강목(本草綱目)》의 내용을 옮겨다 적어놓았다.

“젖[乳]로부터 酪을 만들고, 酪으로부터 酥를 만들고, 酥[1石]로부터 醍醐[3-4升]를 만든다.”[乳成酪, 酪成酥, 酥成醍醐.][p. 693]

그 제호의 효능을 보면, “일체의 폐병, 기침, 농혈, 피부소양을 다스리고, 골수를 통윤하며, 눈을 밝히며, 虛를 補하고, 功이 酥(타락죽)보다나은 것이다.”[治一切肺病咳嗽膿血皮膚瘙痒 通潤骨髓 明目補虛 功優於酥.][위의 책]

이에 대하여《본초강목》(권50 獸部)에 보면, 다음과 같은 설명이 있다.
酪(音洛): 牛, 羊, 水牛, 犛牛, 駝, 馬乳, 幷可作酪
酥(北虜名 馬思哥油): 酥出外國, 亦從益州來, 牛, 羊, 犛牛, 㸺牛.
駝(橐駝, 駱駝): 生塞北, 河西. 今西北番界. 于闐吐番, 嶺南徐聞縣及海康皆出之.

이런 내용을 보면 낙타 젖으로도 만들어 먹으며, 그런 지역들을 보면, 천산산맥이 있는 지역을 포함하여 그 서쪽, 서북쪽이 많으며, 사천성 지역도 포함됨을 알 수 있다. 이런 지역에서 만들어 먹은 음료가 “제호(醍醐)”요, “소락(酥酪)”인 것이다. 바로 가장 중요한 것인 이런 음료가 조선의 명절풍속의 하나라는데 있다. 새해가 되면 때때옷으로 갈아입고, 세배를 하고, 세뱃돈을 받고 나서 한 자리에 앉아 이런 “제호/소락”을 먹는 것이 하나의 풍습이었다.
누구든지 쉽게 전해져 내려왔던 것이 음식문화이다. 문화는 일반적으로 더 발전되기도, 쇠퇴하기도 하지만, 음식문화도 또한 그럴진대, 한반도에서 사라진 음식문화의 하나라고 보기에는 그 조선의 음식문화가 중국대륙의 것이었다고 보는 것이 한층 납득하기에 쉽다.
그것이 일제시대인 1921년에 쓰여진 것이 1925년에 편찬되었다는 것에서 의미가 있다. 그것은 본디 대륙조선의 음식문화, 명절풍습을 한반도에 주입시키고, 접목(接木) 문화(文化)로 만든 것의 증거인 것이다. 결국 이 “제호/소락/타락죽”의 음식문화는 전수되지 못하였고, 1970년대 이후에야 한반도, 득 대한민국에서 낙농업(酪農業)을 권장하면서 치즈, 버터가 만들어졌고, 1990년이 들어서야 “요구르트(yoghurt)”가 수입되기도, 만들어지기도 했던 것이다. 이 요구르트는 터키의 말이며, 조선말로는 “뎨호>제호(醍醐)”이며, 중국어로는 “띠후(tihu)”이다.
음식문화인들 조선이란 정체성에서 한반도인 것으로 과연 얼마나 조작(造作)이 되었을까?
비록 동초 최찬식과 그 부친 매하산인 최영년이 한국 사람으로 歷史로 꾸며져 있지만, 그들은 이미 중국대륙의 상해(上海)에서 살며 활동했던 사람들이다. 한반도 조선을 만드는 역할을 한 사람인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완벽에 많은 구멍이 있음을 이런 자료로써 알 수 있다.
출처 : 대륙 조선사 연구회
글쓴이 : 최두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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