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TV의《특별기획 2부 이순신》이 재방송에 재방송을 거듭함에 식상하지 않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물론 재미있게 보고 또 보고 하는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임진왜란”은 소설이 아니다. 전쟁의 력사이다. 전쟁은 공상소설이 아니라, 국가의 존망을 걸고 온 백성이 함께 싸우는 생존의 경쟁이다.
생존의 경쟁에서 패배하면 죽으며, 멸망에 이른다.
그런데 그런 처절한 존망의 전쟁 력사가 세월이 지나면 많은 사람들의 머릿 속에는 상상의 펼쳐 소설로 각색하여 사람들의 흥미를 자극한다. 그런 허구의 서술이 소설이다. 그런 허구가 거짓[허위]이 아니어야 함에도 많은 사람들은 허구와 허위를 착각하고 있어 소설 자체가 허위로 가득 차게 되어버렸다. 특히 임진왜란이 그렇다.
전쟁의 해설이나, 그 서술은 무엇보다도 지리적 위치가 명확하지 않으면 모든 것이 거짓이며 허구의 소설로 보아줄 수도 없는 삼류 이하의 걸레일 뿐이다.
여기서 충무공 리순신은 임진왜란의 영웅이고, 그 임진왜란에서 승리로 이끈 지도자였으며, 일본 군사들이 리순신 말만 들어도, 리순신이 탄 배의 깃발만 보아도 오금이 저려 꼼짝을 하지 못했다는 그런 력사적 사실이 일본에서돈 군신(軍神)으로까지 숭앙하고 있다.
그런 충무공이 본 왜적의 지도자 풍신수길에 대하여 얼마나 알고 있었을까? 그리고 그 풍신수길이 지휘하고 있었던 곳이 어디라고 알고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의 머리에는 남아있지 않는 것 같다. 그것은 아무도 그런 설명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과연 충무공은 풍신수길이 어디에 있었다고 알고 있었는가?
그것은 그가 임금에게 써 올린 <장계>에 적힌 내용에서 알 수 있다.
“왜군의 한 장수가 ... 3월 5일에 평수길이 머물고 있는 낭고야(郎古也 : 나고야)에 이르러”[倭將...三月初五日 同秀吉留駐爲白在郎古也到泊]
“대개 평수길(豊臣秀吉)은 보통 대합(大閤)이라 칭하고 그의 맏아들은 관백(關白)이라 하며, 평수길이 머물고 있는 낭고야(郎古也)는 일본과 서로 붙어 있는 땅으로써 일본의 서쪽에 있으며, 륙로로는 떨어져 있는 사이가 21일 길이며, 수로로는 12일 길이고, 대마도까지는 3일 길입니다.”[大槩平秀吉乙 常稱曰大閤 其長子段 稱以關白 秀吉所駐郎古也段 以日本連接之地 在日本之西 相距陸路二十一日程 水路十二日程 距對島三日程是如爲旀]
위의 글은〈임진장초〉장37[《忠武公 李舜臣 全集》3(우석출판사, 1999), p. 177]에 실려 있는 것이다.
그 글에서 풍신수길은 낭고야(郎古也 : 나고야), 즉 명호옥(名護屋/名古屋)에 머물렀다고 했다. 그곳이 지리적으로 조선과 어떤 위치에 있는지는 특히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1) “낭고야는 일본과 서로 붙어있는 곳이다”고 했다.
(2) “일본의 서쪽에 있다”고 했다.
(3) “륙로로 21일 길이다”고 했다.
(4) “수로로 12일 길이다”고 했다.
(5) “대마도까지는 3일 길이다”고 했다.
일단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위의 (2), (3), (4)에서 매우 의심스러운 내용을 볼 수 있다. 비록 (1)에서 일본과 붙어있는 낭고야(=나고야)라는 의미가 분명치는 않지만, 조선과 일본과의 어름에 있는 것이라고 여겨진다.
그렇게 생각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2)에서는 도대체 일본의 서쪽에 위치해있다고 했으니, 현재의 일본렬도의 지리적 위치와는 매우 상반된다.
현재의 일본렬도에 있는 나고야(名古屋: 郞古也/名護屋)는 북위 35도10분, 동경 136도 50분이며, 그 동쪽에 있는 동경(東京: 도오쿄)과는 276km 떨어져 있으며, 그 반대가 되는 북쪽의 토야마I富山]만과 192km 남쪽 이세만(伊勢灣)에 있는데, 그 바닷가에 있다. 그래서 륙로로 갈 필요가 없는 지리적 위치이다. 게다가 그 나고야는 북쪽의 아오모리[靑森]현 북단 하북[下北: 시모키타]반도에서 남쪽 큐수의 녹아도(鹿兒島: 가고시마)현의 살마[薩摩: 사쓰마] 반도까지의 일본렬도 전체에서 중앙쯤이 되는 곳이기도 하다. 그것도 일본렬도의 그 중앙적 위치에서 남쪽에 있다.
그러니 그 나고야는 조선과는 가까운 것이 아니라, 멀며, 그것이 서쪽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남쪽에 있다.
그리고 그 거리를 보면, 륙로로 21일, 수로로 12일이라고 했으니, 그것이 과연 CGS 단위로 얼마나 될까?
우선 현재의 지도에서 일본렬도의 지도상에서 직선거리로만 보면, 대마도에서 시모노세키[下關]까지 148.0km이고, 시모노세키에서 나고야까지는 568.0km이다. 부산/거제도에서 대마도까지는 40km에 지나지 않는다.
문제는 조선에서 일본 나고야로 가는 길에는 륙로가 필요치 않다. 오로지 수로뿐이다. 그런 곳에 륙로가 들어있으니, 그것이 일본렬도에 도착하여 땅 위로 걸어가야 하는 길이겠는가? 그것이 바로 568.0km이다.
문제는 이 위치를 일본군에게 붙잡혀갔다가 도망해온 훈련원 봉사 제만춘(諸萬春)의 이 말을 어찌 옳다고 하지 않겠는가? 그것도 그것을 이미 알고 있는 충무공이었기에 그를 취조하여 그의 말을 받아 적어서 임금에게 보고했던 것이기도 하다.
우선 대마도까지가 3일 거리이니, 수로로 12일 거리는 이에 4배이므로, 일본렬도가 일본이 맞다면 40km의 4배가 되는 140km가 되어야 마땅하다. 그런데 그게 아니다. 그리고 륙로로 21일 거리이니, 이는 대마도까지의 1일 거리보다 7배이므로 280km가 되어야 마땅하다. 그런데 전혀 그게 아니다. 그렇다면 일본렬도는 결코 일본이 될 수 없다는 말이 된다.
그리고 현재 1일거리의 계산은 “식(息)”으로 계산한다. 1식은 30리, 즉 11.34km이다. 하루에 몇 식의 거리를 갈 수 있는지는 어림짐작으로 알 수 있다.
어쨌거나 임진왜란 때에 나고야(名古屋: 郞古也/名護屋)는 일본렬도에 있지 않았던 것은 분명한 것이다. 그렇다면 그 나고야는 임진왜란 때에 과연 어디쯤에 있었을까?
일본의 서쪽은 조선과 붙어있어야 한다.
그 일본, 즉 나고야는 륙로로도, 수로로도 갈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그 일본과 조선 사이에 대마도가 있어야 한다.
바로 이런 것을 충족시킬 수 있는 곳은 중국대륙의 동부가 아니면 불가능하며, 황하하류이거나, 양자강 하류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임진왜란 초기에 부산(釜山/富山)에 먼저 쳐들어왔고, 이어서 동래성을 침략했으니, 산동성 서부, 안휘성 북부, 하남성 동북부 지역을 떠날 수 없다.
나고야가 시모노세키와 도쿄의 사이에 있다. 시모노세키가 남경(南京)의 남쪽이고, 도쿄가 남경이라면, 나고야는 남경 근처를 떠날 수 없는 지명이기도 하다. 가장 큰 문제는 일본 지명을 몽땅 흩어버렸기 때문에 올바로 찾기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이다. 그래도 대충 짐작을 할 수 있기에 언젠가는 분명하게 찾아질 것이라 생각한다.
출처 : 대륙 조선사 연구회
글쓴이 : 최두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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