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上命給之 풍해도 도관찰사가 상언(上言)하였다." “도내의 인민들이 풍수재(風水災)와 황충(蝗蟲)의 재해로 말미암아 농사를 실패하고 기아와 곤고에 시달리고 있사온데, 이제 도성의 역사에 각자 식량을 가지고 가게 되면, 그 곤란이 더욱 심하게 될 것이니, 원컨대 도내의 전미(田米)와 진태(陳太)를 지급하게 하옵소서">임금이 명하여 이를 주게 하였다.) -太祖 11卷 6年 正月 15日 (戊辰)-
○慶尙道蝗, 其狀如蟬, 又如蚊。 群飛蔽野, 吸禾穗, 盡枯黑, 沿海尤甚。
(경상도(慶尙道)에 황충(蝗蟲)이 일었는데, 그 모양이 매미와 같기도 하고, 또는 모기와 같기도 하였다. 떼를 지어 날아와 들을 덮고 벼이삭을 빨아 먹어 모두 말라 죽어 까맣게 되었는데 연해(沿海)가 더욱 심하였다.)
-世祖 47卷 14年 9月 1日 (丁巳)-
○庚戌/御經筵。 講訖, 檢討官成俔啓曰: “臣日者, 以祈禱受命, 行畿縣, 見禾穀不茂。 且爲蟲損, 民生可慮, 救荒事, 不可不預備。” 上曰: “果如所言, 當盡措置。” 同知事洪應啓曰: “臣聞蟲食禾穀, 平地尤甚, 有人自陽川來言: ‘蟲食苗甚速, 食小田, 俄頃而盡’, 人言: ‘田四隅堀坑而埋之, 則可?’。
(경연(經筵)에 나아가서 강(講)하기를 마치니, 검토관(檢討官) 성현(成俔)이 아뢰기를, ("臣)이 일전에 기도(祈禱)하는 일로써 명령을 받들고 경기(京畿)의 고을에 갔다가, 화곡(禾穀)이 무성하지 아니한 것을 보았습니다. 또 황충(黃蟲)으로 곡식이 손상하여 백성들의 살림살이가 염려스러우니, 구황(救荒)하는 일을 미리 준비하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과연 말한 바와 같다면 마땅히 다 조치하여야 한다.” 하였다.
동지사(同知事) 홍응(洪應)이 아뢰기를, “신이 듣건대, 황충이 화곡(禾穀)을 먹어 치우는 것이 평지가 더욱 심하다고 하는데, 어떤 사람이 양천(陽川)으로부터 와서 말하기를, ‘황충이 모[苗]를 먹는 것이 매우 빠른데, 작은 전지를 먹어 치우는 것이 눈깜짝할 사이에 다 없어졌다.’고 하니 사람들이 말하기를, ‘전지의 네 모퉁이에다가 구덩이를 파서 이것들을 묻어 버린다면 없앨 수가 있다.’고 하였습니다.”하였다)
-成宗 32卷 4年 7月 21日 (庚戌)-
○癸巳/咸鏡道^洪原以南, 鏡城以北, 旱災太甚, 又有蝗蟲之災, 各穀不爲結實。
(함경도(咸鏡道) 홍원(洪原) 이남과 경성(鏡城) 이북에 가뭄의 재앙이 극심한데 또 황충(蟲蟲)의 재해까지 있어서 〈 기장·조·콩·메밀 등〉 각종 곡식이 여물지 않았다.)
-光海 142卷 11年 7月 12日 (癸巳)-
○北兵使尹?馳啓曰: “今年蝗蟲之災, 前古所無, 六鎭及鏡城、明川、吉州等列邑, 已爲赤地” 云。
( 북병사 윤숙(尹?)이 치계하였다. “금년 황충(蝗?)의 재해는 전고에 없던 바입니다. 육진(六鎭) 및 경성(鏡城)·명천(明川)·길주(吉州) 등 열읍이 이미 적지(赤地)가 되었습니다.”)
-仁祖 13卷 4年 閏6月 10日 (庚戌)-
○嶺南蝗, 設酺祭
(영남(嶺南)에 황충(蝗酺)이 발생하였으므로, 포제(酺祭)를 설행하였다 .)
-正祖 12卷 5年 7月 25日 (乙丑)-
○湖南蝗, 設酺祭。
( 호남(湖南)에 황충이 발생하여 포제(酺祭)를 설행하였다.)
-正祖 12卷 5年 7月 27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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