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를 눈에 보이는 대로만 리해하려다가는 진실을 놓칠 수가 있다. 정보의 류통이 권력에 의해 통제되는 시대에서는 특히 더 그렇다.
그리고 아무리 사실을 리해하기 위한 론리적 연결고리의 일부가 사라졌다고 해도, 책임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까지 자기 생각대로 상상의 게임을 펼쳐 놓는 것은 신중하지 못하기보다는 검은손의 영향에서 움직여졌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 말을 리해하려면 조선의 력사를 좀더 공부해야만 깨닫게 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나의 주장을 나더러 신중치 못한 사람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검은손에 움직여지는 것이 아니라, 그런 진실을 파헤치고 있다.
러시아 장교들이 조선에서 12년간을 지내면서 남긴 기행문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그 원문을 구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고 있지만, 번역자는 외국에 가버렸고, 출판사에서는 원문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했다. 더 이상 방법은 없다.
일단 그 번역된 글만으로도 조선을 리해하는 데는 그 본질을 찾을 수가 있다.
오늘은 그 러시아 장교들이 지은 <내가 본 조선, 조선인>의 pp.13-19에 적힌1885년 말에 러시아에서 조선으로 이동해오는 초기 행동을 분석하려 한다.
(1) 하바로프스크(Khabarovsk)에서 11월 8일 출발 명령을 받았다.
그런데 이들이 언제 떠났고, 며칠이 걸린지는 언급되지 않았다. 그러나 바로 그 뒷날부터 이동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2) 블라디보스토크(Vladivostok)에 도착했고, 11월 26일 떠나려 했다. 사흘간이나 눈이 내려 11월 29일 이곳을 더났다. 다시 사흘간의 눈보라와 안개의 격랑을 헤치고 일본 나가사키(長崎)에 도착했다.
(3) 12월 6일에는 청국 및 일본 주재 러시아 군무관 대령 보가크(Colonel Vogack)가 '메사게리에 마리타임(Messagerie Maritime)'호를 타고 일본 고베로 향하다가 '이세마루'호(12노트, 700명 탑승, 영국제)로 부산을 경유하여 제물포로 가기로 결정된 소식을 듣고는 나가사키로 회향했다.
(4) 12월 7일 저녁에 나가키를 떠나 몇 시간이 지나 12월 8일 새벽에 거문도(巨文島) 옆을 지나 08:00에 그 오른 쪽으로 난 절벽 세 군데를 지나서 헐벗은 산들 사이에 위치한 부산항에 진입했다.
여기서 눈치 빠른 사람은 벌써 문제점을 간파했을 것이다.
우선 거론된 지명과 그 사이의 거리를 알아보자.
(1) 하바로프스크 - 블라디보스토크 : 600km(북에서 남쪽으로 이동)
(2) 블라디보스토크 - 나가사키 : 1200km(북에서 남쪽으로 이동)
(3) 나가사키 - 고베 : 900km(서에서 동쪽으로 이동)
(4) 나가사키 - 부산 : 380km(남에서 북쪽으로 이동)
여기서 우리는 몇 가지의 의문을 찾을 수 있다.
(1)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조선으로 간다면 그곳에서 조선은 가깝기 때문에 육로를 리용하여 경흥/청진/나진을 가도 충분하며, 배를 타고 간다면 그보다는 조금 먼 함흥/원산이면 충분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일본 땅 나가사키로 갔던 까닭은 무엇인가? 꼭 그래야만 했는가?
(2) 그들이 조선에 맨처음 도착한 곳이 부산이기에 여기는 직선항로로 850km이므로 이곳으로 직항하는 것이 마땅한데도 구태여 350km나 더 먼 일본 나가사키로 갔다가 되돌아온 까닭은 무엇인가? 그럴만한 리유가 있는가?
(3) 일본에서의 행동에서 보면, 청국 및 일본 주재 러시아 군무관이란 직책을 보면, 청국 및 일본이 한 지역, 한 울타리에 있다는 말인데, 대륙과 일본 열도로 나뉘어진 곳을 러시아 군무관 한 사람이 담당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물론 억지로 갖다 붙이면 안 될 것도 없다. 그러나 청국 및 일본 주재라면 그 소재지가 청국인가? 일본인가? 하는 것이다. "고베"로 이동해갔다면 일본에 있어야 마땅하다. 그런데 그들은 이내 부산을 경유하여 제물포로 간다는 소식을 듣고서 나가사키로 되돌아와서 부산으로 떠났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현재 국가배치의 지도로 보면, 그들의 이동항로가 서쪽에서 동쪽으로, 동쪽에서 서쪽으로, 남쪽에서 북쪽으로 이어지는데, 이는 갈팡질팡했던 것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제대로 된 항로였는가?
이러한 항로의 갈팡질팡은 블라디보스토크가 현재의 위치라고 하더라도 '메사게리에 마리타임'호를 타고 열도의 나가사키로 갈 까닭이 없다. 곧장 부산으로 이동했어야 했다. 그것이 합리적이다.
이 나가사키/부산은 분명 대륙의 동해안, 양자강 하구에 있는 항구로 보인다. 나가사키를 지나 부산에 도착하였다는 말이다. 그리고 동래/양산/울산으로 이동한 것은 안휘성과 강소성 사이의 대운하를 통하여 북쪽으로 이동하여 남양호/소양호를 지났다는 말이다.
그런데 과연 현재의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나가사키로 갔겠는가? 하는 문제가 남아있다. 이 블라디보스토크는 언제 만들어졌는가? 이 도시는 1900년을 전후하여 만들어진 신항구로서 한자로는 "해삼위"(海參威: 威는 그 위에 뫼山이 있음)인데, 그 의미는 "뮤목민이 살던곳(游牧民所居)"요, 거기엔 장막을 쳐서 쉬었기 때문에 집을 "움집이 울타리"처럼 지었다 해서 "와책(窩柵)"이라 하여, "군영(軍營)/영자(營子)"라고 했다.<중국고금지명대사전>(1931, p.401)
이것은 "영구현(營口縣)"이라고 하는데, 선통(宣統)초기에 이를 나누어 해성현(海城縣)과 개평현(蓋平縣)을 두었다. 그렇다면 블라디보스토크의 본디 위치는 지금의 료녕성, 료동반도 서북쪽의 영구현(營口縣) 지역이라고 보아야 한다.
이 지역이 조선독립운동가들이 만주(호화호특 중심지역)에서 블라디보스토크로 자주 이동했던 곳이라 여겨진다. 이 부분은 좀더 고찰이 필요하다.
어쨌든 러시아 장교들이 권총을 차고 조선을 탐험한답시고 다녀갔던 곳은 한반도는 하니다. 그들은 영구현에서 지금의 발해만, 즉 산동반도 동쪽의 중국동해안을 타고 양자강입구로 와서 서쪽으로 갔다가 동쪽으로 되돌아와서 대운하를 타고 북쪽으로 이동해 갔던 것이다.
그리고 아무리 사실을 리해하기 위한 론리적 연결고리의 일부가 사라졌다고 해도, 책임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까지 자기 생각대로 상상의 게임을 펼쳐 놓는 것은 신중하지 못하기보다는 검은손의 영향에서 움직여졌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 말을 리해하려면 조선의 력사를 좀더 공부해야만 깨닫게 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나의 주장을 나더러 신중치 못한 사람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검은손에 움직여지는 것이 아니라, 그런 진실을 파헤치고 있다.
러시아 장교들이 조선에서 12년간을 지내면서 남긴 기행문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그 원문을 구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고 있지만, 번역자는 외국에 가버렸고, 출판사에서는 원문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했다. 더 이상 방법은 없다.
일단 그 번역된 글만으로도 조선을 리해하는 데는 그 본질을 찾을 수가 있다.
오늘은 그 러시아 장교들이 지은 <내가 본 조선, 조선인>의 pp.13-19에 적힌1885년 말에 러시아에서 조선으로 이동해오는 초기 행동을 분석하려 한다.
(1) 하바로프스크(Khabarovsk)에서 11월 8일 출발 명령을 받았다.
그런데 이들이 언제 떠났고, 며칠이 걸린지는 언급되지 않았다. 그러나 바로 그 뒷날부터 이동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2) 블라디보스토크(Vladivostok)에 도착했고, 11월 26일 떠나려 했다. 사흘간이나 눈이 내려 11월 29일 이곳을 더났다. 다시 사흘간의 눈보라와 안개의 격랑을 헤치고 일본 나가사키(長崎)에 도착했다.
(3) 12월 6일에는 청국 및 일본 주재 러시아 군무관 대령 보가크(Colonel Vogack)가 '메사게리에 마리타임(Messagerie Maritime)'호를 타고 일본 고베로 향하다가 '이세마루'호(12노트, 700명 탑승, 영국제)로 부산을 경유하여 제물포로 가기로 결정된 소식을 듣고는 나가사키로 회향했다.
(4) 12월 7일 저녁에 나가키를 떠나 몇 시간이 지나 12월 8일 새벽에 거문도(巨文島) 옆을 지나 08:00에 그 오른 쪽으로 난 절벽 세 군데를 지나서 헐벗은 산들 사이에 위치한 부산항에 진입했다.
여기서 눈치 빠른 사람은 벌써 문제점을 간파했을 것이다.
우선 거론된 지명과 그 사이의 거리를 알아보자.
(1) 하바로프스크 - 블라디보스토크 : 600km(북에서 남쪽으로 이동)
(2) 블라디보스토크 - 나가사키 : 1200km(북에서 남쪽으로 이동)
(3) 나가사키 - 고베 : 900km(서에서 동쪽으로 이동)
(4) 나가사키 - 부산 : 380km(남에서 북쪽으로 이동)
여기서 우리는 몇 가지의 의문을 찾을 수 있다.
(1)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조선으로 간다면 그곳에서 조선은 가깝기 때문에 육로를 리용하여 경흥/청진/나진을 가도 충분하며, 배를 타고 간다면 그보다는 조금 먼 함흥/원산이면 충분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일본 땅 나가사키로 갔던 까닭은 무엇인가? 꼭 그래야만 했는가?
(2) 그들이 조선에 맨처음 도착한 곳이 부산이기에 여기는 직선항로로 850km이므로 이곳으로 직항하는 것이 마땅한데도 구태여 350km나 더 먼 일본 나가사키로 갔다가 되돌아온 까닭은 무엇인가? 그럴만한 리유가 있는가?
(3) 일본에서의 행동에서 보면, 청국 및 일본 주재 러시아 군무관이란 직책을 보면, 청국 및 일본이 한 지역, 한 울타리에 있다는 말인데, 대륙과 일본 열도로 나뉘어진 곳을 러시아 군무관 한 사람이 담당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물론 억지로 갖다 붙이면 안 될 것도 없다. 그러나 청국 및 일본 주재라면 그 소재지가 청국인가? 일본인가? 하는 것이다. "고베"로 이동해갔다면 일본에 있어야 마땅하다. 그런데 그들은 이내 부산을 경유하여 제물포로 간다는 소식을 듣고서 나가사키로 되돌아와서 부산으로 떠났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현재 국가배치의 지도로 보면, 그들의 이동항로가 서쪽에서 동쪽으로, 동쪽에서 서쪽으로, 남쪽에서 북쪽으로 이어지는데, 이는 갈팡질팡했던 것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제대로 된 항로였는가?
이러한 항로의 갈팡질팡은 블라디보스토크가 현재의 위치라고 하더라도 '메사게리에 마리타임'호를 타고 열도의 나가사키로 갈 까닭이 없다. 곧장 부산으로 이동했어야 했다. 그것이 합리적이다.
이 나가사키/부산은 분명 대륙의 동해안, 양자강 하구에 있는 항구로 보인다. 나가사키를 지나 부산에 도착하였다는 말이다. 그리고 동래/양산/울산으로 이동한 것은 안휘성과 강소성 사이의 대운하를 통하여 북쪽으로 이동하여 남양호/소양호를 지났다는 말이다.
그런데 과연 현재의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나가사키로 갔겠는가? 하는 문제가 남아있다. 이 블라디보스토크는 언제 만들어졌는가? 이 도시는 1900년을 전후하여 만들어진 신항구로서 한자로는 "해삼위"(海參威: 威는 그 위에 뫼山이 있음)인데, 그 의미는 "뮤목민이 살던곳(游牧民所居)"요, 거기엔 장막을 쳐서 쉬었기 때문에 집을 "움집이 울타리"처럼 지었다 해서 "와책(窩柵)"이라 하여, "군영(軍營)/영자(營子)"라고 했다.<중국고금지명대사전>(1931, p.401)
이것은 "영구현(營口縣)"이라고 하는데, 선통(宣統)초기에 이를 나누어 해성현(海城縣)과 개평현(蓋平縣)을 두었다. 그렇다면 블라디보스토크의 본디 위치는 지금의 료녕성, 료동반도 서북쪽의 영구현(營口縣) 지역이라고 보아야 한다.
이 지역이 조선독립운동가들이 만주(호화호특 중심지역)에서 블라디보스토크로 자주 이동했던 곳이라 여겨진다. 이 부분은 좀더 고찰이 필요하다.
어쨌든 러시아 장교들이 권총을 차고 조선을 탐험한답시고 다녀갔던 곳은 한반도는 하니다. 그들은 영구현에서 지금의 발해만, 즉 산동반도 동쪽의 중국동해안을 타고 양자강입구로 와서 서쪽으로 갔다가 동쪽으로 되돌아와서 대운하를 타고 북쪽으로 이동해 갔던 것이다.
출처 : 대륙 조선사 연구회
글쓴이 : 최두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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