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불멸의 리순신>에 흥미를 더 돋구는 시기가 된 듯하다. 통신사들이 일본에 갔다와서 임금 앞에서 하는 작태를 보면 도저히 국가의 정치력은 보이지 않는다. 말장난이나 하고 있고, ... 게다가 거짓말을 해놓고도 그것을 민심에 빗대고 있다.
진짜 민심은 안전, 안정, 행복, 배부름에 있다. 조선의 정치, 특히 임진왜란을 눈앞에둔 상황에서 적을 보는 눈이 완전 색맹이다.
여기서 한번 다시 집고 가야할 것은 풍신수길이 전쟁을 왜 일으키려고 했으며, 왜 임진왜란을 일으켰는가? 하는 것이다. 그 진짜 이유가 무엇인가?
그가 일본 전국 66주를 통일했으니, 그 공신자들의 위로 하사품을 위하여 조선을 분할하여 그들 공신자들에게 넘겨주려고 했는가? 그래서 풍신수길이 망상적이라고 하는가?
아니다.
<재조번방지>권1의 앞부분에 이런 글이 있다.
"黃允吉等至館, 玄蘇果密語 曰, 中國久絶日本, 不通朝貢, 平秀吉以此懷憤 而且恥之. 欲起兵端. 貴國爲日本奏請, 使貢路得通, 則貴國必無事"
이를 번역하면, "황윤길 등이 여관에 이르렀다. 그러나 현소 등이 과연 귀속말로 (황윤길에게) 말하였다. '중국이 오랫동안 일본을 끊고 조공을 받아주지 않으므로, 평수길이 이 때문에 분한 마음을 품고 부끄럽게 여겨 반란을 일으키려고 한다. 그러니 귀국(조선)은 일본을 위하여 (중국에 ) 주청하여 조공을 바치는 길을 트여준다면, 귀국은 반드시 무사할 것입니다.'"이다.
일본인 현소가 선조임금의 사신 황윤길에게 한 말이 <재조번방지>에 있으니, 이를 거짓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진실로 받아들일 것인가?
이 내용은 고스란히 <선조수정실록>권25 선조24년 윤3월 병인(1일)에도 나와있다.
"使平調信玄蘇等至京師 ... 玄蘇等密言誠一, 中朝久絶日本不通朝貢, 平秀吉以此心懷憤恥. 欲起兵端. 朝鮮若先爲奏聞, 使貢路得通, 則貴國必無事"
여기서 "京師"는 "연경"이니, "북경"이 아니라, 조선의 수도 "한성"이다. 윗글에서는 현소가 황윤길에게 말했다고 했지만, 여기서는 "김성일(金誠一)"에게 말하였다. 내용은 같은 것인데, 다만 같은 의미의 "貴國"과 "朝鮮"이 명확하게 박혀있다.
이렇게 <조선왕조실록>에도 적힌 임진왜란의 이유를 밝혀놓았다. 그 이유가 "조공"에 있었다.
조선의 중앙조정 중국이 패거리 집단 일본의 조공을 받아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조공"은 중앙조정에서 그들을 "정치집단으로 인정"해주는 행위이다. 풍신수길이 패거리를 모아 세력을 도모했고, 힘깨나 쓸 수 있는 여건이 되었기 때문에 조선의 지방제후로 인정해달라는 요구였다. 그러나 조선의 중앙정부에서는 패거리집단인 일본(풍신수길)에게는 그런 허락을 해줄 수 없다는 조치였다고 보아야 한다.
지방 제후들은 봉토를 받아 해당 지방을 다스렸는데, 그들끼리 세력다툼을 하여 서로 뺏기도 하여 빼앗기기도 하였다. 이것을 중국, 즉 조선의 중앙정부에서는 뒷날에 인정해주기도 하고, 그것이 못마땅할 때는 그 인근의 지방 제후에게 세력을 주어 그들을 제거시키기도 하였던 것이다.
이것이 조선의 중앙정치라는 중국의 역할이었다.
풍신수길은 조선의 제후로서 인정받고싶어 안달을 했고, 그것이 인정되지 않자 반란을 일으켰던 것이다. 그것이 임진왜란의 본질인 것이다.
물론 그 배후엔 포르투갈이란 검은배[黑船]들의 지원이 있었다. 그 포르투갈 사람들이 조총을 종자도(種子島)를 통해 들어갔고, 조선조정에도 입수된다. 풍신수길은 그 힘을 100% 활용하였던 것이다.
바로 이 시기에 정성공이 대만의 포르투갈 성채를 공격하기도 했다. 서구열강 세력은 조선에 무역(?)을 하기 위하여 무장선을 수없이 보냈다. <하멜 표류기>이 이런 선상에서 이루어진다. 하멜이 탔던 배 스페르베르는 상선이 아니라, 대포를 장착한 군함이었다.
진짜 민심은 안전, 안정, 행복, 배부름에 있다. 조선의 정치, 특히 임진왜란을 눈앞에둔 상황에서 적을 보는 눈이 완전 색맹이다.
여기서 한번 다시 집고 가야할 것은 풍신수길이 전쟁을 왜 일으키려고 했으며, 왜 임진왜란을 일으켰는가? 하는 것이다. 그 진짜 이유가 무엇인가?
그가 일본 전국 66주를 통일했으니, 그 공신자들의 위로 하사품을 위하여 조선을 분할하여 그들 공신자들에게 넘겨주려고 했는가? 그래서 풍신수길이 망상적이라고 하는가?
아니다.
<재조번방지>권1의 앞부분에 이런 글이 있다.
"黃允吉等至館, 玄蘇果密語 曰, 中國久絶日本, 不通朝貢, 平秀吉以此懷憤 而且恥之. 欲起兵端. 貴國爲日本奏請, 使貢路得通, 則貴國必無事"
이를 번역하면, "황윤길 등이 여관에 이르렀다. 그러나 현소 등이 과연 귀속말로 (황윤길에게) 말하였다. '중국이 오랫동안 일본을 끊고 조공을 받아주지 않으므로, 평수길이 이 때문에 분한 마음을 품고 부끄럽게 여겨 반란을 일으키려고 한다. 그러니 귀국(조선)은 일본을 위하여 (중국에 ) 주청하여 조공을 바치는 길을 트여준다면, 귀국은 반드시 무사할 것입니다.'"이다.
일본인 현소가 선조임금의 사신 황윤길에게 한 말이 <재조번방지>에 있으니, 이를 거짓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진실로 받아들일 것인가?
이 내용은 고스란히 <선조수정실록>권25 선조24년 윤3월 병인(1일)에도 나와있다.
"使平調信玄蘇等至京師 ... 玄蘇等密言誠一, 中朝久絶日本不通朝貢, 平秀吉以此心懷憤恥. 欲起兵端. 朝鮮若先爲奏聞, 使貢路得通, 則貴國必無事"
여기서 "京師"는 "연경"이니, "북경"이 아니라, 조선의 수도 "한성"이다. 윗글에서는 현소가 황윤길에게 말했다고 했지만, 여기서는 "김성일(金誠一)"에게 말하였다. 내용은 같은 것인데, 다만 같은 의미의 "貴國"과 "朝鮮"이 명확하게 박혀있다.
이렇게 <조선왕조실록>에도 적힌 임진왜란의 이유를 밝혀놓았다. 그 이유가 "조공"에 있었다.
조선의 중앙조정 중국이 패거리 집단 일본의 조공을 받아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조공"은 중앙조정에서 그들을 "정치집단으로 인정"해주는 행위이다. 풍신수길이 패거리를 모아 세력을 도모했고, 힘깨나 쓸 수 있는 여건이 되었기 때문에 조선의 지방제후로 인정해달라는 요구였다. 그러나 조선의 중앙정부에서는 패거리집단인 일본(풍신수길)에게는 그런 허락을 해줄 수 없다는 조치였다고 보아야 한다.
지방 제후들은 봉토를 받아 해당 지방을 다스렸는데, 그들끼리 세력다툼을 하여 서로 뺏기도 하여 빼앗기기도 하였다. 이것을 중국, 즉 조선의 중앙정부에서는 뒷날에 인정해주기도 하고, 그것이 못마땅할 때는 그 인근의 지방 제후에게 세력을 주어 그들을 제거시키기도 하였던 것이다.
이것이 조선의 중앙정치라는 중국의 역할이었다.
풍신수길은 조선의 제후로서 인정받고싶어 안달을 했고, 그것이 인정되지 않자 반란을 일으켰던 것이다. 그것이 임진왜란의 본질인 것이다.
물론 그 배후엔 포르투갈이란 검은배[黑船]들의 지원이 있었다. 그 포르투갈 사람들이 조총을 종자도(種子島)를 통해 들어갔고, 조선조정에도 입수된다. 풍신수길은 그 힘을 100% 활용하였던 것이다.
바로 이 시기에 정성공이 대만의 포르투갈 성채를 공격하기도 했다. 서구열강 세력은 조선에 무역(?)을 하기 위하여 무장선을 수없이 보냈다. <하멜 표류기>이 이런 선상에서 이루어진다. 하멜이 탔던 배 스페르베르는 상선이 아니라, 대포를 장착한 군함이었다.
출처 : 대륙 조선사 연구회
글쓴이 : 최두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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