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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네덜란드 사람들이 본 "보물섬" 꼬레(Coree)에 대하여

monocrop 2006. 12. 16. 16:50
네덜란드 교류 350년 기념행사로서 "하멜의 해"로 지정하여 갖가지 행사가 양국간의 유대를 강화하는 계기는 참으로 좋은 일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350년 전에 하멜 일행 36명이 13년28일 동안의 조선체험은 현재의 한반도로 각색된 것이지, 그들이 한반도에는 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내가 <새롭게 고쳐 쓴 하멜 표류기>(우석출판사)와 같은 시기에, 네덜란드 사람 왈라벤(B.C.A. Walraven)과 네덜란드어를 전공한 사람 지명숙 교수가 공동으로 집필한 <보물섬은 어디에 - 네덜란드 공문서를 통해 본 한국과의 교류사>(연세대학교 출판부)가 이 세상에 나왔었다.
그 책의 머리말에 소개된 것을 잠깐 보면, 그 저자는 " 지난 20여년간 꾸준히 수집해 온 네덜란드 외무성 및 동인도회사의 공문서와 네덜란드에 출판된 한국 관련 자료를 바탕으로 삼아, 관련 대목을 인용하면서 배경 해설을 곁들인 실증적인 방법을 적용시키도록 했다."는 말에서 보듯이 풍부한 자료가 이용된 책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조선(Coree)가 한반도로 엮어졌다는 것이다. 그 차례를 보면 다음과 같다.

제1장 꼬레 섬과의 통상
제2장 보물섬을 찾아서
제3장 꼬레섬에서 한반도로
제4장 속 하멜표류기
제5장 하멜의 보고서

이에 대해 몇 가지를 비판하고자 한다.
우선 맨 마지막 "제5장 하멜의 보고서"는 그 저자가 "1920년의 후팅크 판을 원본으로 하되, 인명, 지명 등에 관련된 철자와 판독이 의심스러운 부분들은 헤이그의 필사본을 재확인 또는 그것을 참조하여 수정했다."고 했다.
이 "필사본"이란 것은 대한민국 제주도에서 전시한 것이라 생각된다. 이렇게 실증적인 자료를 통해서 번역한 글임에도 그 자료의 해석을 저자 겸 번역자의 한반도로 엮어봏았다는 것을 내가 지적하는 것이다.
첫째, 원문에 없는 내용을 독자들이 알아보기 쉽게 한다는 의도로써 원문에는 없는 글을 [ ]안에 넣어놓았다는 것이다. 이 설명이 바로 한반도로 역사를 재구성하는 수단이 되었다. 이 때문에 독자들의 판단을 오히려 흐리게 할 뿐이다.
둘째, 그 문제의 글은 표착 직전의 내용인데, 1653년 8월 "4일부터 10일까지 [무풍으로] 해상이 일반적으로 잠잠했는데, 간간이 부는 바람의 풍향이 계속 바뀌는 통에 중국 대륙과 포모사[타이완] 해안 사이[타이완해협]에 갇혀 오르락내리락 떠다녔음."이라 했다.
여기서 "[무풍으로]"라는 말은 참으로 잘못된 번역의 해설이다. 바람의 영향이 없는데, 하릴없이 하멜일행이 탄 배가 "중국대륙과 포모사(타이완: 대만) 사이를 오르락내리락"했다는 말인가? 전혀 상식에 어긋나는 말이다.
그 원문은 "Den 4en tot den 11en d°hadden veel stilte ende variable winden, sworven soo tusschen de cust van China ende Formosa door."이며, 나는 그 번역을 "4일부터 11일까지는 매우 잔잔했다가 종잡을 수 없는 바람이 불었기 때문에, 중국 연안과 대만 사이를 계속 떠돌아다녔다."고 밝혔다.
나의 번역만 옳고 남의 글은 다 틀렸다는 식으로는 말하지 않겠다. 오직 그 원문을 보고서 어느 번역이 제대로 되었는지를 독자들이 확인해보면 알 것이고, 그 해설이 제대로 되었는지는 해설부분을 다시 확인해보면 알 것이다.
셋째, 지명숙 교수 등이 지은 책의 번역문으로 보더라도 일단 8월 10일까지는 중국대륙과 대만 사이에 하멜일행이 있었다는 말이다. 그 이튿날부터 15일까지 5일만에 991km가 되는 한반도 남쪽 제주도에 표착이 가능한가? 하는 것에 문제가 있다. 그것도 11일부터 표착된 15일까지 줄곧 거센풍랑, 폭풍우를 만났다고 했는데도 말이다.
여기서 폭풍우라는 배의 불가능한 이동항로를 가지고 가능한 것처럼 꾸며서 번역하고 해설한 것이 처음부터 그럴 의도가 없다면 불가능하다.
네째, 그러다 보니, 이제는 남은 것은 한반도와 자연환경, 지리적 환경을 맞춰나가게 된 것이다. "arrack"을 현대어 "Arak"로 바꾼 것은 탓할 것은 없지만, 그 아락술 설명이 "일종의 소주"라고 해버린 것이다. 그것은 소주의 일종이긴 하지만, 그 재료는 본질적으로 "야자(sweat palm sap, liquor)"이다.
다섯째, 지명의 비정 문제인데, "Dadjang"이다. 그 발음을 "다쟝"이라면서 그곳을 "[대정]"이라고 했다. 그 각주에서는 "대정현의 도읍지였던 대정으로 받아들이기 힘들다. ...일행이 표착했던 지점이 대정현이었으므로 당시 대정 혹은 대정현이라는 지명을 많이 들었을 것이 분명하다."고 한 것은 중요한 문제의 제기는 되었음에도 제대로 밝히지 못했을 뿐 아니라, 문장의 앞뒤가 논리에 맞지도 않다.
그러니 그 뒤로 나오는 모든 내용은 원문을 번역했다는 사람의 글마저 이렇게 한결같이 한반도로 엮어져 있으니,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다른 글이야 읽어본들 무엇하야!

그래서 "제4장 속 하멜표류기"의 글에서는 지금까지 하멜일행의 행선지가 한반도로 엮어졌으므로, 거기에 맞지 않는 네덜란드어의 기록은 "시각의 효과를 자극하기 위한 착상에서 악어의 삽화에다 '한국에서 보지 못했다'고 지적된 코끼리 삽화까지 곁들여 실렸다"는 말로 변명을 늘어놓게 되는 것이다.
그 내용은 암스테르담의 사흐만(G.J. Saagman)(1669년판)의 원문으로 번역했다는 그 책(p.173)에는 이렇다. 이 부분은 제주도에서 전시한 당연히 필사본이라는 글에는 없다.

"한국에서 코끼리는 보지 못했으나, 악어는 수두룩했다. 악어는 사람 고기를 주식으로 하는 무시무시한 괴물이다. 몇몇 한국인들이 그들[하멜일행]에게 들려준 이야기로는 악어 한 마리의 배에서 절반쯤 멍어 해치운 어린애들 시체가 셋이나 나온 것을 본 적이 한두 번이 아니라고 했다 한다."

이 부분은 내가 영어 번역무느이 것을 소개한 <새롭게 고쳐 쓴 하멜 표류기>의 것과도 다르지 않다. 그리고 이 "많은 악어(veel Crocodillen)"란 말은 러시아 장교들 - 대령 카르네프, 중령 알프탄, 중령 베벨리, 중위 미하일로프와 행정 관리인 다데슈칼리안 공후 - 이 함께 지은 책이 <내가 본 조선, 조선인>(가야넷, 2003)의 "동물군에는 더욱 다양하다. ... 조선에 표범과 몸집이 큰 벵골산 호랑이들이 많다는 것은 특히 주목할 만하다."(p.161)는 것이라든가, "파충류로는 반도 남쪽에 도룡뇽과 악어 종류가 서식하였다. 이것들이 강에 나타나곤 하기 때문에 수영을 좋아하는 아이를 둔 어머니들은 늘 공포에 떨고 있었다."(p.162)고 하 것과 일치한다.
그렇다면 굳이 "사흐만 판본"을 격하/비하시킬 필요도 없는 조선의 지리적 환경을 보았던 애용을 사실대로 기록한 것이라고 본다. 물론 간간이 과장한 것도 없지도 않겠지만, 그들이 말하는 내용의 과장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리고 네덜란드 사람들이 배를 타고 왔을 때에 그저 순수한 무역/교역을 위하여 했겠는가? 하는 데는 많은 생각/연구가 필요하다.
하멜이 탄 배가 상선이라기 보다는 해군배라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그들은 대포를 무장했었다. 그리고 그보다 30년전에는 "1622년 4월 해군 중령 레이어르센(C. Reijersen) 지휘 아래 여덟 척의 전함대와 천 명이 넘는 탐험대원이 동원되어 바타비아(Batavia: 현 자바섬 자카르타) 항을 떠나 중국 원정에 나섰다. 피치 못할 경우엔 어떤 물리적인 힘을 행사해서라도 중국 해안 지역을 점령하여 통상을 강요하기 위함이었다.. 동시에 점령 지역의 주민들을 강제 이주시켜 바타비아의 인구난과 노동력 부족을 해결해 보려는 부차적 목적이 따르기도 했다."(pp.52-53)는 말에서도 알 수 있다.
이것은 당시 바타비아 식민정부 최고 책임자 겸 아시아 지역 총감독관이었던 쿤(J.P. Coen) 총독이 원정대에 이런 훈령을 내렸다.

"중국과 일단 전쟁에 들어가면 가능한 어떤 무력을 가해서라도 중국 해안에 연계된 모든 경계지역을 전부 점령하도록 선처바랍니다. 모든 경계 지역이라 함은 아이남(Aynam: 현 하이남 섬 海南島)에서 시작하여 난징[Nanguin: 현 남경 南京] 지방의 최북단 및 꼬레아를 포함시킨 그 사이의 모든 해안 영역을 의미합니다. ... 우리 선박이 무사히 가 닿을 수 있을 뿐더러 정복하는 데도 별다른 문제가 따르지 않으리라 봅니다. 1622년 4월 9일, 바타비아에서 쿤 총독이 레이러르센 원정대장과 함대위원회에게 보낸 훈령 지시문 중에서"

이 글은 W.P. Groeneveldt, De Nederlanders in China, Den Haag, 1898, p.324에 실린 것이다. 그 제목을 풀이하면 "중국에 체류한 네덜란드인들"이다. 이 제목에서도 말해주듯이 "China"라는 것은 그 당시에 "중국"이란 나라가 존재하지 않았음에도 사용했다는 말이라든지, 그 내용에 "Coree"(조선)이란 말이 들어 있는 것을 볼 때에, 그 자체가 "Coree"(조선)이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만약 "중국"을 하나의 국가로 본다면, 그들은 배 8척, 군사 1000여 명으로 "중국"과 "조선"이라는 두 개의 나라와 전쟁을 벌린다는 말이 된다. 이 또한 불가능한 상황이다. 전쟁은 "국가의 대사"이므로 함부로 거는 것이 아니다. 전쟁은 공격목표가 분명해야 한다. 2개의 나라에 전쟁을 할 정도라면 그런 정도로는 리치에 맞지도 않다.
그렇다면 이들은 조선과의 전쟁을 불사하고 나섰던 환경/상황이었음을 알아야 한다. 그 연장선상에서 하멜일행이 대포를 장착하여 왔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제2장 보물섬을 찾아서"라는 글에서는 "금과 은의 섬나라(Goud en Zilvereilanden)", 즉 "보물섬"은 사실 금과 은이 풍부하게 있는 나라란 뜻이지 "섬"만은 아닌 것이다. 1636년 5월에 난무했던 정보들은 스페인 말로 "Rica de Oro"는 "금이 풍부한"이고, "Rica de Plata"는 "은이 풍부한"이란 뜻인데, 바로 그런 말들의 유행이었다. 바로 그런 곳을 찾는다는 말이다.

이렇게 <하멜 표류기>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전문가라는 입장에서 글들을 남겼지만, 그 글들의 종착지는 결국 "중국"이고, 그것이 "조선"이었다는 말로 귀착된다. 다만 그런 전문가들이 원천적인 역사의 진실에 다가서 있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글의 진실, 역사의 진실에서 벗어나 자꾸만 한반도가 조선이라는 것으로 억지로 꾸며서 엮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출처 : 대륙 조선사 연구회
글쓴이 : 최두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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