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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나 커넥션 2-9 | 아리나 커넥션 (한백)

monocrop 2011. 6. 20. 03:27

글 : 아라니 (tiger2020)

 

/ 2011. 06. 09  22:37

/ 출처 및 원문보기 - 네이버 카페 : 자음과 모음 - 나는 작가다 코너

 

 

2-9


장박사의 목덜미에 젓가락을 꽃은 사람은 나였다.
하지만 내겐 그런 기억이 없었다. 발락은 그들이 난투극을 벌이는 중에도 나는 무슨 상관이냐는 듯, 술만 들이키고 있었다고 했다. 그러다가 장박사가 팽교수의 뺨을 때리자 갑자기 내가 젓가락을 들고 미친듯이 그를 공격했다는 이야기였다. 희미하게 기억이 돌아왔다.

말이 난투극이었지 그 일들은 삽시간에 벌어졌고 일방적이었다.

그런데 어쩌자고 내가 장박사에게 젓가락을 꽂았을까. 취기에 섞인,어떤 알 수 없는 분노가 있었던가.

후회가 막심했다. 나는 발락을 졸라 장박사가 입원해 치료를 받고 있다는 병원으로 함께 갔다.

물론 처음부터 발락이 순순히 응해준 것은 아니었다. 내가 그 앞에서 젓가락을 집어들기 전까지는.

 

“일 없습니다”


후줄근한 병실 침대에, 목 기부스를 하고 누운 장박사는 내 사과에 한국말,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조선족말로 그렇게 대답했다.

그는 애써 나와 시선을 마주치지 않으려 했다. 그런 장박사의 눈에 물기가 차올랐다. 그 날의 분이 아직 풀리지 않은 것일까.

의사말로는 상처가 조금만 더 깊었으면 아주 위험할 뻔했다.


“위구르 사람들도 장박사에게 미안해 합니다. 자신들이 지나쳤다고.. 사과를 전해 달랍니다...”

 

시선을 피하고 있던 장박사의 눈동자가 불안하게 좌우로 움직였다. 그의 호흡이 가빠지자 나는 자리를 뜨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두 손을 모으고 허리를 최대한 굽혀 다시 한번 죄송하다는 사과의 말을 하고 돌아섰을 때 장박사가 나를 불러 세웠다.

 

“잠시만.. 이걸 좀..”

장박사는 곁에 두었던 수첩을 집어 들고 무언 가를 급하게 적더니 그 부분을 찢어 나에게 건넸다.

메모에는

高句麗本孤竹國也(고구려본고죽국야)라는 여덟 글자가 적혀 있었다.


“수서(隋書)에 기록된 내용입니다. 한선생의 연구로 고죽국(孤竹國)을 찾아 보세요. 그리고 그 결과를 위구르인들에게 알려 주십시오.

나는 이걸 말하지 못합니다.”

 

장박사는 불안한 시선으로 주변을 살폈다. 그의 시선을 따라 함께 주변을 돌아 보았지만 보이는 것이라고는 등을 긁거나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는 너절한 차림의 환자들 뿐이었다. 도대체 장박사는 무얼 경계하고 있는 걸까.

“이제 돌아 가세요. 당신은 여기 오래 있으면 안됩니다.그리고..”

 

장박사는 무슨 말을 하려다 말고 입을 굳게 닫았다.그리고는 내 눈을 바라보며 미간을 모았다.

그것은 자신을 믿어달라는 표시였다. 나는 그가 팽교수에 관한 어떤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라 직감했다.

내가 다시 목례를 하고 황급히 그의 곁을 떠나 병원 밖으로 나왔을 때, 이번엔 기다리기로 한 발락과 그의 동료가 보이지 않았다.

순간 불안함이 엄습해 왔다. 주머니 속의 핸드폰을 꺼내 급히 발락의 번호를 찾았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핸드폰속에 저장해 논 발락의 이름이 보이질 않았다.

마리나의 번호도 찾을 수 없었다.

그 때 어깨 넘어로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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