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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나 커넥션 2-7 | 아리나 커넥션 (한백)

monocrop 2011. 6. 20. 02:57

글 : 아라니 (tiger2020)

 

/ 2011. 06. 07  22:35 

/ 출처 및 원문보기 - 네이버 카페 : 자음과 모음 - 나는 작가다 코너

 

2-7


 

팽교수가 우리에게 예약된 만찬장을 알려줬다.
승용차안으로 스며 들어오는 북경의 공기는 여전히 매웠다. 오늘 밤에 인공강우가 있을 거라는 운전수의 설명을 들으며 나는 이 희뿌연 스모그들과 뒤엉켜 끝없이 등장하는 유리 빌딩들의 정체가 궁금해졌다.
높이도 그렇지만 거대한 볼륨들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익숙할 것 같은 존재들이 예상을 깨고 낯선 모양으로 등장할 때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그 존재에 환유적으로 등장하는 어떤 기억을 떠올리는 경향이 있다. 북경 빌딩들에 대한 내 낯설음은 바로 대학 신입생 환영회에서 마주했던 한 중국집의 짬뽕 곱배기 그릇이었다.

그 경악스러운 사이즈라니!. 나는 피식 웃었다. 내 무의식 속에 자리하고 있는 중국은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다르다는 걸 깨달았다. 그것은 중화주의가 그들의 열등감의 표현이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중국에 대한 나의 열등감이라고 생각해야 옳았다. 나는 뙈놈이라는 말의 어원이 궁금해졌다.

저녁식사중에 팽교수에게 한번 물어나 볼까. 나는 또 한번 피식 웃었다. 나라는 인간이란 도대체...


발락은 북경에서 내게 예전처럼 친절하고 온화한 표정을 보여줬다.

그는 비록 나와 의견이 달랐지만 그렇다고 나를 배척할 정도로 속이 좁지는 않았다.

오히려 발락은 팽교수로부터 자신의 天(천)과 旦(단)자에 대한 갑골문 해석을 인정받고 있어 여유를 갖고 있었다. 내가 길을 잘 못들었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이고 그것이 발락으로 하여금 나에 대한 호의를 다시 갖게 했다.

나는 그가 주장하는 텡그리즘의 약점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당분간 그 논의를 꺼내지 않기로 했다. 내게는 아직 에이미가 필요했고 여러 의문
이 있었다.


 

“한선생에게 소개할 만한 분이 있어 모셨습니다. 사회과학원의 장쉬안박사에요. 동아시아 고대사 전문이고 특히 한국의 고대사를 많이 연구하신 분이죠. 그리고 제가 가보(家寶)를 하나 갖고 왔습니다. 하하하..”

 

팽교수는 저녁식사자리에서 돌아가신 조부(祖父)가 빚었다는 술을 한 병 들고 나왔다.

그것은 상당히 파격적인 대접인 동시에 대단히 우리를 기죽게 만들었다. 팽교수는 분명히 그릇이 큰 사람이었다.

그릇이 크면 속이 깊고 속이 깊은 자는 음흉하다는 어디서 읽었던 구절이 떠올랐다.

오랜 저널리스트 경험은 내게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고 경고했지만 팽교수로부터 가식을 찾아 보긴란 쉽지 않았다.
에라. 될대로 되라지. 어떤 경우에는 자신을 풀어 놓는 것이 유리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경계심을 감추어 봐야 간파하지 못할 위인들도 아니었다.

난 좀 마시기로 했다. 이름을 기억할 수 없는 술은 대단히 짜릿했고 향기가 좋았다. 서너 순배가 돌자 금방 취기가 올라왔다. 취한 김에 한번 슬쩍 찔러보기로 했다.

 

“중국의 동북공정 연구가 상당한 수준이더군요.많은 걸 알게 됐습니다.”

일부러 머리를 조아리는 내 태도에 한 동안 말이 없던 장쉬안박사가 작은 뻬이주(白酒)잔을 입에 털어넣고는 말했다.


“중국인의 피에는 고구려인의 피도 흐르죠. 중국문화를 만든 그 배경에 고구려의 역할은 상당합니다. 마치 위구르와 소그드인들이 중국에 서역문화를 만들었듯이 말이죠”


술이 깨는 느낌이 들었다. 중국인에게 고구려인의 피가 흐른다니, 그럼 중국인과 한국인은 형제라는 이야긴가.


“중화는 거대한 화원(花園)이고 중국은 대가정입니다. 오랜 종족들이 자신들의 고유문화로 중원에 꽃을 피우며 피를 섞고 후손을 이어서 오늘의 중국을 만든 것이죠.이러한 중화(中華)는 한족만의 것이 아닙니다. 10억 중국인들의 것이죠.”

나는 별로 대꾸할 말이 없었다. 고구려로 인해 자신들에게 고구려피도 흐른다는 걸 뭐라고 반박할 수 있을까.

이들이 너는 내 아들이다라고 한다면야 당장 피검사라도 해보자고 덤벼 보겠지만 당신 아버지들이 한 때 우리 어머니들을 건드려서 우리도 낳았다라고 주장하는데야 어쩌란 말인가.

듣고 있던 발락이 코멘트를 했다.


“인종차별이 아니라 인종동화적인 해석이군요. 미국에는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공존하지만 어느 누구도 미국에 있는 베트남과 이집트문화를 아메리카것이라고 하지 않죠. 심지어 과거의 러시아조차도 우즈벡과 카자흐 문화를 러시아 것이라고 말하지 않았어요."

듣고보니 발락의 말도 옳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뻬이주잔을 들이키는 것 밖에 없었다.


“우리는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단 한번도 중국을 국가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답니다.”


팽교수가 지긋한 목소리로 끼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