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nguage & ... Writing/아리나 커넥션

아리나 커넥션 2-6 | 아리나 커넥션 (한백)

monocrop 2011. 6. 20. 02:34

글 : 아라니 (tiger2020)

 

/ 2011. 06. 05  07:51

/ 출처 및 원문보기 - 네이버 카페 : 자음과 모음 - 나는 작가다 코너

 

 

2 -6


발락과의 파일럿 협력 기간이 1주일 밖에 남지 않았다.
나는 산타페 연구소의 정식 계약을 거절하든 지 아니면 받아들여야 했다. 문제는 발락과의 관계였다.
내가 그들의 돈을 받고 일을 한다면 어떤 형태로든 발락의 영향아래 있어야 했다.
그들이 위구르족 분리 독립을 위해 한 때 카스피 해로부터 만주에 이르던, 그들의 거대한 제국의 역사 복원같은 것은 솔직히 내 관심 밖이었다. 하지만 에이미에게 만큼은 미련이 남았다. 에이미를 통해 무언가를 더 알 수 있을 것 같았고 1만 년 전으로부터 거슬러 오르는 어떤 진실이 궁금했다.
그것은 어쩌면 수천 킬로미터를 회귀해서라도 자신이 태어났던 곳으로 돌아가려는 연어의 본능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내가 발락의 지휘를 받는 한, '안녕하세요. 투르크의 세계로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따위의 인사말을 듣게 될 것은 뻔했다.그것은 진실과 마주한 결과가 아닐 수 있었다. 나는 에이미를 통해 알게 된 몇 가지 사실과 의문들을 정리했다. 이 문제에 대한 내 독립적인 연구를 보장할 수 없다면 발락과 그의 동료들의 제안을 거절하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했다. 북경에서 만나자는 발락의 제안이 답으로 왔다.
 

“뿌따 뿌썅시! 싸움 끝에 정든다는 말이지요. 하하하 ”


북경에서 만난 팽두안교수는 겸손하고 쾌활한 사람이었다.뚱뚱한 체구에 둥근 얼굴을 하고 있었고 나이는 예순을 넘겼다지만 혈색이 좋은 얼굴에는 주름살이 하나도 없었다. 낡은 양복상의에 간신히 꿰어진 단추들이 당장이라도 장전된 총알처럼 튀어 나갈 듯 했다. 하지만 그는 갑골문 연구에 몇 안되는 권위자였고 중국 공산당의 엘리트들을 키워내는 당교(堂校) 수석 교수였다. 중국 공산당에 대한 그의 영향력은 막강했다. 팽교수는 발락과 그의 동료들의 연구에 많은 관심을 가졌고 그들을 보호하고 있었다.
불타 부상치(不打不相识).때려보지 않고서는 서로를 알 수 없다는 뜻이라고 발락은 내게 팽교수의 말을 해석해 줬다. 그것은 나와 발락보다는 오히려 위구르족과 한족간의 오랜 감정을 표현한 것이었다. 동시에 미래에 대한 두 민족간에 희망을 암시한 구절이기도 했다.

 

“요즘 어려움은 없으십니까.”


팽교수의 질문에 발락은 얼마 전 훙디(紅帝)의 추격이 있었다고 이야기 했다.
팽교수의 얼굴이 잠시 어두워졌다.


“최근 후주석의 명령으로 총기군이라는 사이버 사령부가 구성됐습니다만..그 쪽은 내 힘이 닿지 않아요. 100만이 넘는 젊은 훙커(紅客)들이 뒤에 있을 겁니다. 중국내에서도 가장 애국심 높고 머리 좋은 친구들이죠.”

 

나는 잠자코 팽교수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중국의 한족과 위구르족의 싸움은 2천 년 전, 활과 창으로부터 사이버세계로 이어지고 있었다. 역사란 그렇게 쉽게 포기되지 않는 질긴 기억을 갖고 있다는 증거였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또 얼마나 다행인가. 때로는 이들에게 허리를 굽히고 때로는 이들의 목덜미를 물어뜯으며 그렇게 살아남아 온 것이다. 민족이라는 것에 그렇게 고래힘줄 같은 생존욕구를 부여할 만한 그 무언가가 있는 걸까.


“자..이것이 제가 오늘 검토할 주젠가요?”


팽교수는 발락이 건네는 자료들을 받아들며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읽어 내려갔다. 나는 그가 무슨 자료를 읽고 있는 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발락은 내게 아무런 사전 정보도 주지 않았다. 물론 내게 그런 건 중요하지도 않았지만 발락은 팽교수에게도 사전에 정보를 주지 않을 만큼 용의주도했다.
회의실은 더웠다. 에어컨은 냉매가 다 됐는지 미적지근한 바람만 내보냈고 벽에 붙은 낡은 선풍기는 꺼떡거리며 내 쪽으로 오는 듯하다 멈추고 다시 돌아갔다. 슬슬 졸음이 몰려왔다. 눈꺼풀을 더 이상 지탱하기 어려웠다.


“티엔나!”


자료를 읽던 팽교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상의를 벗어 탁자에 던졌다. 그리고는 상기된 얼굴에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중얼거리며 자리를 왔다 갔다 했다. 그러면서 거친 호흡을 몰아 쉬었다. 팽교수의 갑작스런 기척에 내 졸음은 완전히 달아났다. 도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


“워더 티엔나!”


나의 짧은 중국어 실력으로 그가 하느님(天)을 찾고 있다는 걸 알았다. 발락이 아마도 天의 갑골문에 대한 자신의 보고서를 보여 준 것 같았다. 그 텡그리 칸(Tengri khan)과 탄쿤(Tan Kun)말이다. 하지만 팽교수가 옆에 있던 화이트보드에 갈겨 쓴 것은 海,晦也.라는 문장이었다.
바다(海)란 바로 회(晦)라는 것이고, 晦는 달조차 뜨지 않는 캄캄한 그믐 밤을 뜻했다.


“믿을 수 없군요. 海자가 터부로 인해 갑골문에 쓰이지 않았다니!. 정말이지 놀라운 발견입니다. 이제야 2천년이 넘은 비밀하나가 풀렸군요. 이 문장은 후한(後 漢)대에 석명(釋名)이라는 사전에서 海를 풀이한 문장입니다. 우리는 왜 바다를 그믐밤에 비유했는지 도대체 이유를 알 수 없었지요.”

팽교수는 말을 마치고 또 다른 문장을 갈겨썼다.

 

黑如晦也.


“석명에서 海와 관련해 이어지는 풀입니다. 어둠(黑)이 바로 이 그믐 밤(晦)의 속성이라고 풀이되고 있어요. 黑은 어둠뿐만 아니라 惡을 동시에 의미하죠. 바다를 설명함에 이 문장이 왜 필요했던 지 이제 알 것 같군요.우리는 海자의 갑골문이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고 생각해왔지만 분명히 고대에 바다는 터부였다고 봐야 설명이 됩니다.”


발락은 잠자코 앉아 자신의 코를 계속 만지고 있었다. 무언가 해답을 찾았다는 그의 표시였다.

 

“海의 고대음 메(me)가 지금의 하이(hai)로 바뀌게 된 배경도 여기에 있는 것 같군요”


나는 좀 얼떨떨한 기분이었다. 팽교수가 하느님을 연발할 때만 해도 그것이 天자의 문제와 관련이 있는 줄로 알았다. 팽교수는 지금 내 연구를 언급하는 중이었다.


“컴퓨터로 분석한 자료에는 海자에 대해 터부보다는 바다의 존재를 갑골문의 주인공들이 몰랐을 가능성으로 제시되는데 한선생은 어떻게 이런 결론을 얻은 겁니까?”

 

팽교수의 물음에 나는 천천히 화이트 보드로 걸어가 그림을 그렸다.
사람들의 모든 시선이 내 유치한 실력의 그림에 꽂혔다.그것은 다름 아닌 발락이 내게 제시한 아침 旦(단)자의 갑골문과 금문, 그리고 후대의 전서체였다.

 

 


나는 아무 말없이 맨 왼쪽의 갑골문, 그리고 그 옆의 금문속에 태양과 그 밑에 그려진 아침 놀을 가리켰다. 그리고 두어 번 그 놀의 주변을 손가락으로 왔다갔다 가리켰다.

 

“이런! 바다를 아예 생략해 버렸군."

 

팽교수가 낮은 소리로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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