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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나 커넥션 2-5 | 아리나 커넥션 (한백)

monocrop 2011. 6. 20. 02:14

글 : 아라니 (tiger2020)

 

/ 2011. 06. 04  15:56 

/ 출처 및 원문보기 - 네이버 카페 : 자음과 모음 - 나는 작가다 코너.

 

2-5

한 달 내내 침묵 시위가 있었다.
나는 산타페연구소와 모든 연락을 끊었다. 에이미는 메시지보드에 스무 통이 넘는 메일들을 체크하라고 내게 들이밀었지만 나는 번번이 그 메일들을 무시했다.생각이 필요했다.내게는 민족주의라든지 위대한 고조선의 역사따위는 조금도 중요하지 않았을 뿐더러 중화주의 조차도 동네 중국집에서 풍겨 나오는 짜장볶는 냄새를 넘어서지 않았다. 그런 것들은 모두 열등감의 발로였다. 별 볼일 없는 민족일수록 과거의 역사를 과장하고 그럼으로써 현재의 초라한 자신들로부터 도피하려 한다. 그런 내 눈에 발락과 그들의 투르키즘이란 너절한 양탄자를 밟고 선 그들의 빵꾸난 양말과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궁금함이 있었다. 같은 논리로 중국인들이 가진 열등감의 배경이었다. 그들의 중화주의 뿌리가 3천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면 분명히 그 당시 중국인들에게는 견디기 어려운 타자(他者)가 있었고 도피처를 찾을 만한 이유가 있었던 게 아닐까. 발락은 그것을 텡그리즘(tengrism)이라는 유라시아 전역의 투르크 문화로 상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말하는 투르크라는 것은 기껏해야 6세기 경에나 등장하는 정치적 수사였다.  중화주의,그 이면에 숨은 중국인들의 열등감과는 적어도 1천년이상 의 간극이 있었다. 문득 어떤 생각이 떠올랐고 나는 10여년전의 취재수첩을 뒤지기 시작했다.

 

“ 투르크인의 열등감? 거 참 고약한 걸 따져 묻는구만 자네는.”

쁵또르 김, 항상 자신을 빅토르가 아닌 쁵또르라고 불렀던, 늙은 까레이스키 교수는 나의 데면데면한 전화 안부인사와 뜬금없는 질문에 찌푸린 목소리로 대답했다.

 

“내가 아무리 고려인 역사를 가르친다고 해도 여기 카자흐스탄에서 그런 이야기 꺼냈다가는 뼈도 못추린다네.”

“제가 만든 이야기가 아니고 오마르가 했던 이야기에요. 고구려와 위구르간의 명칭이 그렇다는 겁니다.그리고 고구려와 투르크 관계에 대해서는 이미 박사님께서 제게 말씀하신 것도 있지 않습니까.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라고.”

끄응..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골치가 아프다는 신호였다.

 

“내가 투르판에서 본 건 분명히 고구려 사냥도에 등장한 활쏘는 궁수였어. 그 있잖아.. 말 위에 앉아서 몸을 뒤로 돌려 시위를 당기던...머리에 깃을 꽂고. 그런데 그가 신장 투르판의 벽화에서는 거대한 불상 앞에 두 손을 합장하고 섰더라구.. 유심히 그 벽화를 살폈지.선비족이 세운 북위의 벽화였어. 이해가 안갔지.왜 거기에 고구려 사냥꾼이 등장하는 지..”

 

“그래서요?”

 

“돌궐, 그러니까 지금 투르크의 조상은 터어키계 백인이 아닌 몽골리언이었다네. 그들의 뿌리는 바로 선비(鮮卑)로 까지 올라가지. 문제는 돌궐이 여러 부족들의 연합체였는데 그 가운데 아시나(Ashina)씨 가 곡투르크(Gok Turk)라는 지배세력을 형성했고 그 아시나(Ashina)라는 성이 바로 만주의 아이신(Aisin),즉 금(金)에서 비롯되어졌다는 거야.다시말해...”

쁵또르는 잠시 머뭇거렸다. 그의 마지막 설명은 말하지 않아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투르크인들의 지배세력이 만주족과 같은 동아시아계였다는 걸 거기서는 모두가 인정하고 싶지 않은거군요.”

내 대답에 박사는 잠시 침묵했다.

 

“이제 됐나?”

박사는 짧은 한 숨을 내쉬었다. 그로서는 가슴에 품고만 있어야 할 이야기였다.적어도 그가 투르크 민족주의의 세계에서 살아가고자 한다면 말이다.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전화를 끊으려 하자 그는 잠시 나를 못가게 했다.

 

“그런데 말이지..언제 이 곳에 다시 올 일이 없겠나.보여 줄 것이 좀 있네.”

박사가 내게 직접 와달라고 하면 그건 분명히 중요한 것이었다. 하지만 내겐 발락과 해결해야 할 문제가 남아 있었다. 윤곽이라도 잡아야 할 것 같아 물었다.

 

“ 전화로는 말 할 수 없네. 나중에 내가 다시 연락하지.”


수화기를 내려놓는 소리가 제법 컸다. 박사는 분명히 긴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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