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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나 커넥션-2.3 | 아리나 커넥션 (한백)

monocrop 2011. 5. 29. 23:34

글: 아라니 (tiger2020)

2011. 05. 29  / 출처 및 원문보기

 

 

2-3


“절대 키보드를 만지지 마세요!”

 

마리나의 경고에 나는 팔짱을 꼈다. 우리는 채터블랑카(chatablanca)라는 미국의 인기있는 채팅커뮤니티안에 있었다. 산타페 연구소의 네트워크는 철저히 감시당하고 있었다. 때문에 비밀대화를 위해서는 수 많은 네티즌 틈에 끼어 있는 편이 오히려 안전했다.그럼에도 훙디가 우리를 찾아낸 것은 의외였다.


“훙디가 페른 박사를 뒤쫒고 있어요.우리 연구원 하나가 얼마전에 중국 사회과학원 D/B를 건드린 후 페른과 접촉했죠.”


마리나가 화상으로 설명했다. 하지만 이상했다. 이렇게 가만히 있으면 더 의심받지 않을까. 훙디에게 는 치유가 불가능한 바이러스 무기가 있었다.


“지금 로그아웃하면 훙디는 우리를 계속 추적해 올거에요 . 일단 훙디를 속여야 해요 모니터를 보세요”


모니터의 한 쪽에서 우리는 어떤 기업의 주가에 대해 열심히 텍스트로 이야기하는 중이었다.
ID는 모두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거기에는 아무말도 없이 듣기만 하는 사람이 하나 더 있었다.


“ID 수잔은 누구죠?”


마리나는 대답대신 빙긋 웃었다. 에이미? 소리없는 내 립싱크 질문에 마리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채터블랑카 운영자가 해킹사실을 모르게 하기 위해서는 에이미도 정상적인 접속을 해야했다.


“훙디가 우리를 의심하고 있어요. 에이미가 동일 IP로 동시에 서로 다른 ID를 썼기 때문이죠. 그래서 훙디는 우리 미팅이 자신과 같은 해킹 프로그램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하는 거죠. 우리 중에 A.I가 있는 지 알아보기 위해 훙디가 곧 튜링테스트를 해 올 거에요.”


튜링테스트라.. 나는 좀 불안했다. 저 무지막지한 훙디가 나를 사람이 아닌 기계로 판단하지 말라는 보장도 없지 않은가..
인간과 기계의 경계를 시험하는 튜링테스트는 지난 세기말, 영국의 천재적인 암호학자 튜링(Turing)이 개발했다. 에이미는 3년전 튜링테스트에서 7명의 심리학자들로부터 모두 과보호욕구를 가진 인간으로 판정받았다. 에이미를 포함해 2명의 사람이 심리학자들과 PC로 상담한 결과였다. 심리학자들은 자신이 누구와 대화하는 지 모르는 상태에서 에이미가 아닌 멀쩡한 사람을 기계로 판정했다. 에이미는 그만큼 정교했다.


“안녕,친구. 헤이워드의 주식을 갖고 있어. 지금 팔아야 할까? 도와줘”


훙디가 내게 귓속말로 간교스런 메시지를 보내왔다. 어떤 사악한 존재의 숨결이 목덜미에 닿는 느낌이었다. 만일 내가 메시지를 무시하면 훙디는 나를 지목해서 추적해 올 것이 분명했다.그 추적을 따돌리려면 훙디에게 응답해야 했다. 급속한 아드레날린 분비로 호흡이 가빠지고 심장이 뛰었다.


“ 팔아버리는 게 나을거야” 나는 되는대로 주어담았다.
“ 왜 그렇게 생각해? 친구.”

 

훙디는 내 판단의 근거를 물어왔다. 내가 기계가 아닌 바에야 뭐라 한 들 문제가 될까. 하지만 등줄기에 식은 땀이 흘렀다. 내가 인공지능이 아닌, 사람이란 걸 증명해야 하는 처지가 이상하리만큼 공포스러웠다.


“글세.. 난 이미 다 팔았으니 너에게도 팔라고 해야 맞겠지. 내가 맘에 안들면 사든가”
“......”


훙디는 잠시 침묵했다. 아차 싶었다. 훙디는 주식을 팔아도 좋은 지 물었다. 팔기 싫으면 갖고 있으라고 대답해야 했다.그런데 사라니!. 다시 정정할까..입안이 타는 듯 말라왔다. 10여년전 위구르 반군들이 내 머리에 겨누던 AK소총들이 떠 올랐다. 지금은 훙디가 바로 내 옆에서 총구를 겨누는 느낌이 었다. 그런 트라우마가 나를 공포로 몰아넣고 있었다. 아무래도 무어라 한 마디 더 해야할 것 같다. 심호흡을 한 후 키보드에 떨리는 손을 얹었다.


“고마워! 또 봐.”


훙디는 순순히 나를 놓아 주었다 . 또 보기는..이 놈아!

이마에 흐르는 식은 땀을 닦으며 내가 안도의 숨을 내쉬자 발락이 엄지손가락을 치켜 세웠다. 그런 한편에서 마리나는 급하게 에이미를 보라는 신호를 했다. 훙디는 에이미에게도 귓속말을 건넸다. 기계와 기계간에 대화였다 .그 내용이 우리에게 보여졌다.


“안녕! 수잔.. 거기 날씨 좋아?”
“......”

 

에이미는 대꾸하지 않았다. 지켜보던 우리 모두의 눈이 둥그래졌다. 발락의 표정이 일그러졌고 마리나는 당황해서 손으로 입을 막았다. 페른박사가 허공을 바라보며 성호를 긋자 훙디는 에이미에게 다시 물어왔다.


“헤이워드 주식을 팔아야 할까? 자기 친구는 팔라고 하는데..”
“.......”

 

에이미의 침묵은 계속됐다. 마리나가 시스템을 아웃시키겠다는 사인을 보내왔다. 바로 그 때 에이미가 화라도 난 듯 대답했다.


“are you kidding?,Not now. he is just kiding me ”
(장난해? 지금은 아냐.그가 날 놀리는 거라구)

 

훙디는 에이미의 대답에 아무런 대꾸도 없이 바로 로그아웃해 버렸다. 우리는 또 한번 당황했다. 내게는 그렇게 집요하게 묻던 훙디였다.


“ 어떻게 된 거죠? 훙디가 바로 포기하다니..”

 

내 질문에 마리나는 모니터를 유심히 보더니 한 손을 허리에 대고 큰 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한 손으로 눈물을 찍어내며 에이미의 모니터를 가리켰다.
나는 에이미가 훙디에게 쓴 문장을 멍하니 바라봤다.긴장감이 덜 풀렸는 지 뭐가 뭔지 눈에 띠질 않았다.그러나 이내 그것을 발견하고는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는 속으로 부르짖었다 .


"기계가 기계를 속여 넘길 수 있다니!."

 

에이미는 kdding의 스펠링을 한 번은 맞게 또 한번은 틀리게 썼던 것이다.
마치 사람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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