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nguage & ... Writing/아리나 커넥션

아리나 커넥션 2부 -1 | 아리나 커넥션 (한백)

monocrop 2011. 5. 27. 00:49

글 : 아라니(tiger2020)

 

2011. 05.25 / 출처 및 원문보기 - 자음과 모음 네이버 카페

 

2-1

서울에서 에이미를 다루는 것은 쉽지않았다.
10테라바이트의 메모리를 가진 산타페 연구소 슈퍼컴에 접속하기 위해 에이미를 인스톨한 후 내 데스크 탑 PC는 자주 다운되었고 재부팅하는 데도 전보다 갑절이나 시간이 걸렸다. 에이미와 나 모두 힘든 시간을 겪고 있었다.
결국 마리나에게 도움을 요청한 그해 여름, 나는 꽤 고급사양의 워크스테이션급 PC를 마련해야만 했다.
마리나와 동료들이 후원금을 보내 주지 않았더라면 내 1년치 수입의 절반은 날아가고도 남았다.
새로 장만한 컴퓨터는 에이미를 신속하고도 부드럽게 다뤘다. 8개의 멀티프로세서와 3개의 듀얼모니터는 에이미의 복잡한 계산을 원만한 속도로 유지시켜 주었고 나로 하여금 각각의 출력결과를 대조해서 볼 수 있도록 해주었다.
시스템이 정상화되자 에이미는 모니터 스크린에 노스트라틱어로 내게 첫 인사를 띄웠다 .
우리 조상님을 포함했다는 1만년전 사람들의 말로 말이다 !


jar nar! (Good Day!)
EIMI xenne.
(EIMI is happy.)

 

"잘..날.에이미..센.네?"

 

나는 더듬거리며 그 단어들을 소리내어 읽어보았다 . 두렵고 생소하면서도 어딘가 익숙했다 .
이론대로라면 1만년전 한반도 어딘가에서 마주친 한 소녀, 즉 할머니의 할머니를 약 300번 가량 거슬러 올라간 선조로부터 받는 인사였다.
나는 에이미에게 읽어달라고 했다 . 그녀의 목소리가 궁금했다.

 

"자르 날, 에이미 쎈네"

 

에이미는 귀엽고 발랄한 아가씨의 음성으로 말했다. 그것은 마치 '좋은 날,에이미 신나.'처럼들렸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노스트라틱어 nar은 유라시아어에서 하루 ,즉 날과 함께 하늘,태양 등을 의미했다.

그것은 우리가 日을 날로 새김하는 것과 같았다 .

태양은 인류에게 어쩌면 최초의 공통어휘였던 건 아닐까.

기분이 좋다는 xenne(쎈네)는 드라비다어에서 xing(씽)이었다.

나는 국어사전에서 신나다의 '신'의 어원이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았다 .분명한 것은 그것이 神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

에이미와의 첫인사부터가 궁금투성이었지만 나는 해야할 일을 떠올리고 발락이 제시한 부분에 대해 검토해 보기로 했다.

고대 중국의 상형문자들의 음가가 한국어와 어떻게 관련이 되는 지 궁금했던 것이다.

에이미에게는 인간과 기계의 경계를 검사하는 튜링테스트를 거쳐 자연어로 질문하고 대화할 수 있는 A.I소프트웨어가 작동하고 있었다.

한국어를 모르는 에이미와는 영어로 만 소통이 가능했다 .

 

“에이미, 海자의 상형문을 찾아줘”


키보드 명령이 끝나자 에이미의 초록색 램프가 바쁘게 깜박대기 시작했다.
하지만 에이미는 대답대신 내게 질문을 했다.

 

“ 고대인들은 왜 海자의 갑골문을 남기지 않았나요?”

 

가슴 한 켠이 철렁했다. 에이미는 사람처럼 내게 따져 물었다.


“海자의 상형문이 없다는 뜻인가?”


“한자의 상형문 가운데 가장 오래된 형태는 갑골문이에요. 그런데 海자의 갑골문은 아직 보고되지 않았어요.

금문(金文)으로 대체합니다”

 

에이미는 스크린에 은(殷)대의 갑골문이 아닌 주(周)이후 청동 제기(祭器)등에 기록된 금문의 海자를 출력했다.

(海)

 

 

갑골문과 금문사이에 많게는 700년이상의 시차가 존재했다. 무엇보다 바다를 뜻하는 海자가 갑골문에서 발견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의아했다. 갑골문의 주인공들에게 바다라는 존재가 아예 없었던 것일까?
나는 에이미에게 물어야 했다.

 

“갑골문에 특정 글자가 등장하지 않는 이유는 ? ”

내 심각한 질문에 에이미는 한 번 깜빡하더니 비웃듯 답을 내놓았다 .

 

"가장 유력한 원인 : 미발견"

이런!. 바보같은 질문을....

 

" 그러면 미발견을 제외할 때 특정 갑골문이 발견되지 않는 이유는 ?"


내 질문에 에이미는 한 동안 “생각중”이라는 메시지를 띄웠다.
에이미는 로고스라는 산타페연구소 언어지식 사이버네틱스에 접속해 추론엔진을 가동했다.


“ 미발견을 제외할 경우 특정 갑골문이 등장하지 않는 이유 :

문자의 처음 의미가 다른 의미로 변형되었을 확률 60%이상,지시대상이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을 경우 30%이하,

점복과정에서 터부로 인해 사용되지 않았을 경우 10%이하.”


바다 海자와 같은 갑골문이 아직 발견되지 않았을 가능성은 없어보였다 .그렇다면 에이미의 설명대로 바다를 뜻했던 원래 갑골문은 지금 다른 의미로 우리에게 알려져 있거나 아니면 아예 갑골문의 주인공들이 바다라는 대상을 몰랐거나 점복을 치는 과정에서 바다를 언급한다는 것 자체가 터부였다는 이야기였다. 가능한 설명일까.

 

“ 海자의 경우, 미발견의 가능성을 포함해 어느 경우에 속할까?”

에이미는 더 오랜 시간을 생각에 잠겼다.그리고는 믿기 어려운 추론을 이끌어 냈다.

 

“ 갑골문의 모든 데이터베이스로부터 바다를 뜻하는 고유한 글자를 발견할 수 없어요.그러므로 바다는
갑골문의 주인공들에게 알려지지 않았거나 터부시된 문자였을 가능성이 높아요.”

나는 에이미가 틀렸다고 생각했다.바다를 뜻하는 洋(양)자도 있고 푸른 바다를 뜻하는 창(滄)자도 있지 않은가.

 

“ 바다를 뜻하는 滄자의 갑골문 경우는?”

“갑골문이 없습니다”

 

“ 바다를 뜻하는 洋의 경우는?”

“바다를 지시하는 갑골문이 아닙니다. 洋의 갑골문은 곤륜산에서 발원하는 강의 지류를 지칭하는 고유어에요.”

 

“.....”


나는 더 이상 생각이 나지 않았다.에이미에게 현재 바다를 의미하는 모든 한자를 열거하고 그 갑골문의 형태와 뜻을 열거해 줄 것을 요구했다.결과는 나의 참패였다. 그 어디에도 처음부터 바다를 뜻하는 갑골문은 없었다. 그렇다고 설마 갑골문의 주인공들이 바다를 몰랐다는 건 수긍하기 어려웠다. 하늘 天자 의 갑골문이 존재한다면 바다의 갑골문도 반드시 있었다고 추론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나는 마지막 승부수를 띄웠다 . 에이미에게 하늘 天자의 갑골문이 존재할 때 바다 海자의 갑골문이 없을 가능성을 물었던 것이다. 그것은 갑골문의 주인공이 하늘은 알고 바다는 몰랐을 수 있다는 에이미의 추론을 부정하기 위한 절묘의 논리였다 . 다른 어군에서도 그런 경우가 있다면 몰라도 말이다.


내 질문에 에이미는 심각해 보였다. 그런 에이미를 보며 나는 느긋해졌다.

아무리 인공지능이 뛰어나다 해도 어떻게 사람의 창의력을 당하겠어?.

짐짓 여유를 부리며 커피를 한 모금 들이켰던 나는 이내 에이미의 얼굴에 커피를 뿜고 말았다.


“ 天자의 갑골문은 하늘의 의미가 아닙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