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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나 커넥션 2-2 | 아리나 커넥션 (한백)

monocrop 2011. 5. 28. 17:26

글 : 아라니(tiger2020)

 

/2011. 05. 28 . / 출처 및 원문보기

 

2-2


 

 

시간은 어떻게 존재하는 것일까.
우리의 기억을 배반하고 조롱하며 아무상관 없다는 듯이 그것을 넘어서,물리적 공간으로만 흐르는 시간이 존재할 수 있을까.

시간이 우리의 기억을 배반하지 못한다면 시간의 풍상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망각이다.

기억되지 않는 것은 과거와 단절되기 때문이다.그래서 아무리 오랜 시간이 흘렀어도 기억의 풍상을 피해간 존재들은 언제나 우리 앞에 처음 보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우리는 시간이 멈추지 않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할 수 있을 지 모른다. 바로 우리의 기억이 멈추지 않기 때문이라고.

 

(天)


나는 에이미가 모니터에 띄운 갑골문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이 상형문을 하늘이라고 해석할 아무런 근거도 없었다.적어도 모양을 본 떠 만들었다는 상형문대로라면 3천년전, 아니 어쩌면 그 보다 더 오래전에 이 갑골문은 천공(天空)이 아니라 인간을 닮은 어떤 존재여만 했다. 그 분은 분명히 거룩한 이었겠으나 우리는 그 분이 남성인 지, 여성인 지,알 수도 없고 그 이름마저 기억하지 못한다.

에이미가 알려준 이 문자의 3천년전 음은 Tan이었다.

문제는 이‘탄’이라는 음가가 노스트라틱어군에 서 하늘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데 있었다. 만일 수메르어의 쐐기문자처럼 갑골문도 하나의 그림문자에 복수의 발음이 존재했다면 아득한 고대에 이 존재는 다른 이름으로 불리지 않았을까. 그 이름을 1만년전 노스트라틱어에서 발견하려면 생각이 필요했다. 다시말해 시간의 풍상으로 무너진 지금의 기억이 아니라 1만년전 고대인들의 생각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의미였다. 누구였을까. 이 거대한 머리를 가진 존재는.

 


 

 

(天)의 존재는 에이미와 내가 부딪친 최초의 문제였다.
우리는 고대인들의 머릿속을 샅샅이 뒤졌지만 노스트라틱어로 이 존재의 이름을 규명하는 데는 실패했다. 에이미가 제시한 여러 자료들을 근거로 적어도 마흔 가지 이상의 이름을 내가 조합했지만 그럴 때마다 번번히 에이미는 그 이름들을 기각했다. 나는 완전히 지쳤다.


“에이미와 잘 지내고 계신거죠?”
에이미앞에 자비라도 구하듯 가련한 모습으로 엎어져 잠든 나를 마리나의 화상전화가 깨웠다.


“못된 아이에요. 영 융통성이 없네요”
까치집을 머리에 이고 하품이 섞인 내 대답에 마리나는 소리내어 웃었다.
“나를 닮아서 그런 지도 모르죠. 우긴다고 에이미를 이길 수는 없어요. 발락이 당신에 대해 궁금해 합니다.”

마리나는 내 초췌한 모습이 안쓰러웠는 지 모니터로 키스를 보내왔다.그런 마리나의 따듯한 마음이 고마웠다.나는 저간의 고충을 털어 놓았다. 발락이 제의한 작업을 수행하기에는 내 지식이 너무 부족했다. 1만년전의 세계는 너무나 생소하고 아득하다는 내 푸념이 끝나자 모니터에 발락과 처음보는 누군가의 얼굴들이 등장했다.

“미스터 한은 잘하고 있어요.우리가 기대했던 것 이상입니다. 문제를 발견한다는 건 아주 중요한 일이죠”

 

발락은 늘 그렇듯 부드러운 미소로 나를 위로했다. 그들은 나와 에이미의 작업을 모니터링하고 있었다.
갑골문에 海자의 존재가 없었다는 사실은 그들도 처음 알게됐다고 발락은 설명했다.


“ 이 분은 고대 암각화의 전문가 페른박사입니다. 미스터 한이 부딪힌 문제들에 도움을 주실 것 같군요. 한 번 토론을 해 볼까요?”


나는 발락의 제의에 天자의 갑골문이 하늘이 아닌 어떤 존재이며 그것이 고대의 신이나 사제인 것 같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아울러 노스트라틱어로 그 존재의 이름을 찾고 있다고 설명했다.그러자 페른 박사가 대답했다.


“미스터 한이 찾은 그 상형문의 존재는 고대 암각화에 등장하는 전형적인 태양신의 모습입니다.이 사진들을 보시죠”

페른은 고대 메소포타미아와 중앙아시아,호주,북아메리카의 바위그림에 등장하는 그림들을 내게 보여 주었다. 마치 어린 아이의 낙서같은 그림의 주인공들은 한결같이 커다란 머리를 갖고 있었고 어떤 존재는 그 머리에 여러 개의 뿔이 돋아 있었다.


“ 이 존재들의 머리는 다름 아닌 태양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뿔처럼 보이는 것들은 바로 햇살을 나타내는 것이죠.

天의 갑골문이 이러한 유형에 속한다면 그것은 바로 태양신을 뜻하는 것이고 그 이름도 다름아닌 태양과 관련이 있을 겁니다”


순간 '좋은 날'이라던 에이미의 노스트라틱 첫 인사가 생각났다. jar nar이라는 그 1만년전의 인사. 거기에 담긴 nar이라는 단어 말이다.

나는 박사의 설명을 들으며 에이미에게 키보드로 명령했다.
“노스트라틱어로 태양을 뜻하는 말을 찾아줘”

에이미가 찾은 단어는 분명히 nar이었다.그것은 몽골어 같은 알타이어와 인도의 드라비다어에서 조어(祖語)형태로 정확히 일치했다.

페른박사는 여전히 무어라 말하고 있었으나 그의 설명이 내 귀에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Ha Nar이라는 음가로 태양을 뜻할 수 있는 노스트라틱어는?”
에이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hal nar: 빛나는, 거룩한, 타오르는 태양”


감이 잡혀왔다.
“현재 그러한 뜻으로 하늘을 의미하는 어군은?”


 

“ 고대 투르크어 anar : 맑은 하늘”

 

“그렇다면 한국어로 하늘을 의미하는 Ha nar이 天자의 갑골문에 적용될 수 있는 가능성은?”


에이미는 내 질문에 “생각중”이라는 메시지를 띄우며 바쁘게 움직였다. 나는 초조해졌다.
페른박사는 고대 태양신의 의미로부터 크리스마스와 예수 그리스도를 열심히 이야기 하고 있었다. 그의설명보다 에이미의 대답이 궁금했다.


“95% 가능성으로 인정합니다”


거대한 파도가 머릿속을 뒤집어 놓았다. 에이미는 天자의 갑골문이 태양신을 뜻한다면 1만년전 노스라틱어 hal nar과 한국어‘하날’로 이 갑골문을 읽을 수 있는 가능성을 유력하게 인정하고 있었다.
내가 고개를 들어 무어라 말하려는 순간 마리나가 비명을 지르듯 다급하게 외쳤다.


“훙디에요! 비상 시스템으로 전환합니다! 톰! 톰! 어디있어?. 훙디가 침입했어!”

 

훙디(紅帝)! 붉은 제왕.그것은 에이미를 추적하고 파괴하기 위해 누군가가 보내 온 킬러 A.I (인공지능)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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