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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환단고기를 아직도 위서로 음해하는 자들에게 고함

monocrop 2009. 2. 8. 0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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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본) 인문학을 모르는 OO한 OO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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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본 (2005-06-26 00:38:32, Hit : 421, Vote : 20)  


(#-1) 성경은 역사서인가? 신화인가?

성경을 사서로 취급하는 역사학자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성경은 고대의 중근동역사 탐구에 훌륭한 텍스트이다.

사서와 텍스트는 다른 것이지만 또 그렇다해서 어느 것이 더 가치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호머의 일리어드가 없었다면 트로이의 역사는 드러나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환단고기는 사서이전에 텍스트이다.

이러한 텍스트에는 역사,신화, 종교, 전설, 민담 그리고 작자의 상상력이
모두 동원되기 마련이다.

텍스트는 보다 넓은 인문학의 범주에서 사서를 포함한다.
그렇기에 환단고기는 역사서로 규정되는 것을 스스로 뛰어넘고 있다.

텍스트에 등장하는 인물, 사건등은 그 원형에 있어서 사실일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함의하고 있는 상징과 의미이며 동시에 해석이다.

박혁거세가 알에서 나왔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겠지만 왜 그가 '알'이라는 곳에서
태어나야 했는 지 그 의미와 상징과 해석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설령 환단고기가 후대에 어느 작가에 의한 총체적 상상력의 동원이라 하더라도
그 내면에 흐르는 주장과 함의는 동북아 고대사의 해석에 충분한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다.

환단고기에서 환국12연방을 주장하는 내용이 사실인가? 상상인가?

최근 러시아와 중국이 발굴해 내는 고고학 증거들은 분명히 시베리아와 동북아시아의
선사문명이 타 지역과 구별되는 문화공동체의 성격이 뚜렷하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점을 위해 최몽룡,이헌종, 강인욱등이 러시아 고고학자들과 공동연구로 펴낸
"시베리아 선사고고학" (도서출판 주류성)의 일독을 권한다.

빗살무늬 토기와 세형돌날 석기 (Microlic Flint)의 발상지로 대표되는 이 지역의 선사문명은
인류 최초의 세계화를 촉진한  문명이다.

아이러니한것은 세계 역사학계와 고고학계가 고민하는 시베리아-동북아 문화공동체 문제에
대해 '환단고기'는 그것이 사실이든 상상이든 대답을 이미 해왔다는 점이다.
그래서 일단 우리는 환단고기를 '텍스트'로 부르는데 주저함이 없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환단고기가 누군가에 의해 쓰여질 무렵에 지금과 같은 시베리아 -동북아 선사문명의
수수께끼가 제시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다시말해  환단고기와 고고학을 놓고 볼 때 환단고기의 '선 대답', 고고학의 '후 질문'이라는
기이한 상황이 빚어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또한 환단고기는 비교언어학적으로도 의미심장한 면모를 나타내고 있다.

환국의 주신 '안파견'이 만주-퉁구스의 최고신 '아브카이 한'과 중앙아시아의 통치자  '아바칸'
으로 연결되고 수메르어로 안파-게니( Anpa geni: 하늘 꼭대기의 삼위신)로 해석되는 것은
모두 우연일 것인가?

또한 삼국유사의 '아사달'과 더불어 환단고기에만 등장하는 신성한 도시  '아이사타'가
수메르어 '아쉬테'(ashite: 거룩한 곳, 통치권, 왕위)로 연결되는 것도 우연일 것인가?

아니면 환단고기의 저자는 최근 펜실베니아 대학의 연구팀이 해석한 '아쉬테'를 몇십년전에
이미 알고 있었단 말인가?

체첸과 잉구세티아 를 포함한 코카서스지역의 첼렌추크 비문이 전하는 위대한 군주 '박타르'(Baktar)
의 전설은 우리의 박달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단호히 이야기할 수 있는가?

독일과 스칸디나비아지역에서 켈트신화에 등장하는 전쟁신 찌우(Ziu)는 환단고기의 '치우'와
정말 진짜로 아무런 관련이 없는가?

구약 성경에 등장하는 강력한 군주라는 뜻의 'gebar Kan'은 환단고기의 '거발한'과 진짜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일까?

이러한 질문들에 대답하지 못하면서 환단고기를 순수 창작물로만 단정하는 것은 속단이다.

환단고기가 정밀한 역사서는 아닐 지 모르나 적어도 그 이상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텍스트임은 분명하다. 그것을 밝히고 해석하는 것은 역사학자의 몫이 아니다. 그것은
종합적인 인문학의 영역이다. 감히 역사학자가 떠들 문제가 아니라는 말이다.

중국 사서가 전하는 대로 고조선에 '8조법금'이 있었고 황제가 동이의 나라에서 '홍범구주'를
얻었다면 그것이 문자로 성립되지 않고 어떻게 가능했단 말인가?

이에 대해 오로지 환단고기만이 고조선에 글자가 있었음을 이야기 하고 있다.

현재 중국에서 한자의 기원으로 보는 갑골문과 도기문, 금문, 복사문자가운데 중국식 해석으로
가능한 것은 불과 30%에 지나지 않는다.

갑골문과  복사문,금문이 한자의 기원이라면서 어떻게 30%밖에 해석되지 않는가?
이는 프랑스어속에 가능한 영어적 해석의 양만큼도 안되는 것이다.

프랑스어에서 일부가 영어적으로 해석된다고해서 프랑스어가 영어의 기원인가?
개가 웃을 일이다.

70%이상 중국 한자로 해석되지 않는 동이의 복사문, 갑골문, 금문등의 존재는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이러한 질문들에 답할 수 없으면서 쉽사리 환단고기를 '위서'
운운해서는 안된다.

적어도 환단고기는 역사학자들이 대답하지 못하는 부분에, 아니, 질문조차 상상할 수 없었던
문제에 이미 맞든 틀리든 대답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그러한 대답이 질문도 있기 전에 가능했는가하는 물음이다.

-솔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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