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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임나(任那)는 담로(擔魯)의 이형표기였을 것

monocrop 2009. 2. 8. 04:39


  솔본

 

 

(2009-02-07 17:14:37, Hit : 126, Vote : 5

 임나(任那)는 담로(擔魯)의 이형표기였을 것

양서(梁書) 백제전(百濟傳)에 따르면 백제는
"읍(邑)을 담로(擔魯)라고 하는데, 중국의 군현(郡縣)과 같다."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그런데 양서보다 이른 시기에 씌여진 남사(南史) 백제전(百濟傳)에는 이 담로를 '簷魯'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이죠
==> 百濟國號王所都城曰固麻,邑曰簷魯,

여기서 담로의 담은 각각 擔 또는 簷 이렇게 표현되는 데
남사가 양서보다 일찍 편찬되었으므로 양서의 擔魯는 남서의 簷魯를 잘 못 베꼈다고
볼 수 있는 것이죠.

강희자전에 보면 이 남서의 簷에 대해
《廣韻》屋簷。與檐同。《釋名》簷,檐也,接檐屋前後也。亦作櫩。이렇게 표현합니다.

즉 광운에서는 이 簷은 지붕과 지붕이 연접해 있는 처마들을 말하며 그것은 檐과 같다고 하고
석명에서는 簷,檐也라고 다시 확인이 됩니다.

따라서 양서의 저자는 남사의 簷을 그 뜻과 음이 같은 檐자로 적는 다는 것이 그만 擔자로
잘못 적은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남서의 簷魯는 그 발음이 '담로'였을까요?
결론 부터 말씀드리면 '아니다'입니다. 그 보다는 '얌로' 또는 "임로"에 가까왔다는 겁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사실 여기에는 중요한 수수께끼를 풀 실마리가 있습니다.

簷의 발음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이를 처마 첨, 이라고 발음합니다.
하지만 簷의 중국발음은 '얀'(yan)입니다.

집운과 정운의 발음을 따르면 '염'/임에 가깝죠 ==> 《集韻》余廉切《正韻》移廉切

● 簷 / yánㄧㄢˊ (chinese etymology)

백제와 일본은 한자음에 대해 북경음이 아닌 오(吳)음을 따랐을 것이기에
이 음을 광동어에서 추적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Cantonese
Hanzi
簷 (yim4)


즉 남서에 쓰여진 簷魯를 당시 백제가 차용한 오음으로 읽으면 '임로/임노'가 되는 것이죠.
그렇다면 이때 백제의 簷魯(임노)와 임나(任那)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우선 한국민족문화대백과가 설명하고 있는 임나일본부의 설명을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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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관우(千寬宇)는 ≪일본서기≫의 임나관계 기록들을 재해석,
기록의 주어를 왜왕이 아닌 백제왕으로 봄으로써 ‘왜의 임나 지배’가
아닌 ‘백제의 가야 지배’라는 시각으로 가야사를 복원하고자 하였다.

그는 근초고왕이 369년에 가야지역을 정벌해 백제권에 편입시킨 후,
가야 지배를 위해 설치한 파견군사령부가 이른바 임나일본부라는 것이다.

그리고 5세기부터 6세기 초에는 군사령부가 김천·달성 등의
낙동강 중·상류방면에 있었고, 530년대 이후에는 진주·함안
등의 낙동강 하류방면에 있었다는 것이다.

김현구(金鉉球)는 보다 신중하게 긴메이기의 기록만을 이용해,
임나일본부는 백제가 가야 통치를 위해 설치한 기관이었다는
천관우와 같은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한걸음 더 나아가 6, 7세기
백제와 야마토 사이의 외교관계의 특징을 용병관계(傭兵關係)로 파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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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구의 연구를 보면  백제가 가야통치를 위해 설치한 기관이 '임나일본부'라는 점에서
바로 이 임나와 백제의 簷魯(임노)간의 연결고리를 발견 할 수 있는 것이죠.

다시말해 일본은 백제의 고마나리를 중심으로 백제가 설치한 22개의 簷魯(임노)와 연합했을 가능성
입니다.

그러한 簷魯(임노)가 또 다른 이형표기를 통해 임나(任那)로 사용된 것이 아니냐는 것이 저 솔본의
추측입니다.

任那라는 뜻은 '맡겨진 땅' 즉 봉분 받은 땅이라는 의미로부터 그것이 우리가 담로제라고 알고 있는
백제의 簷魯(임노)를 뜻과 발음이 일치하게 적은 일본측의 기록이 아닐까 하는 것입니다.

또 다른 측면에서는 광개토왕비문의 백잔,신라 구시속민의 백잔(百殘)은 이 簷魯(임노)를 뜻하고
이 簷魯(임노)가 왜와 세력을 결합한 것을 고구려는 임나(任那)로 본 것이 아니었을까요?




-솔본-








Mimesis (2009-02-08 04:37:36)

담로의 발음에 대한 추적은 간략하고 짧게 언급하셨습니다만, 충격적이네요.

저 개인적으로는 백잔과 임나에 대한 솔본님의 추측이 옳지 않은가 생각합니다.
시기에 따른 위치 비정은 아직 정리되어 받아들이진 못하고 있지만, '임나신론'(김문배.김인배 저)에서
지적한 백잔과 임나에 대한 해석이 솔본님의 추측 내용과 일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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