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제가 신라김씨의 진짜 조상일까?
글 : 솔본 / 2009-01-26
얼마전 이리저리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신라김씨의 조상이 일제(金日磾, 기원전 134년-기원전 86년)라는 뭔가 대단한 발견이라도 잘 살은 사람입니다. 따라서 김일제의 日은 아마도 目자를 잘못 쓴 것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다면 주몽은 고씨가 아니라 김주몽???? 이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 | ||
![]() | ||
| ||
솔본선생님의 글 잘 읽었습니다. 중국 귀퉁이의 한 제후에 불과한 투후를 언급했을까요? 직접 신라로 온 것처럼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왕망의 난에 연루되어...) 김일제는 따까리에서 경호실장으로 최후에는 제후가 됩니다. 이주해온 것은 제후의 후손들이란 말이지요! 그만큼 작은 부족이라는 이야기가 됩니다. 신라지역 등에서 발견되었다. 전형적인 기마민족인 동이인의 후손이죠! 이 코드를 신라에 와서도 지니고 있었다는 말이 됩니다. 또한 이를 이용한 집단이 화랑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한 역사의 아이러니일까요? 보통 이주민들은 자기의 고향을 칭한 이름을 많이 사용합니다. 또한 박씨 석씨로 시작된 신라가 어느 정도 경과하자 김씨로 성갈이를 한다는 것입니다. 17대 내물왕에야 비로소 김씨 왕조를 시작합니다. 특히 가야지역의 병합이 신라의 큰 힘이 됩니다. (여기서 저의 조상 창녕 曺씨 이야기를 하고 싶지만 다음에 기회에...) 또한 성한왕은 ‘김알지의 아들 세한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 ||
![]() | ||
![]() | ||
![]() | ||
| ||
문제는 문무왕비에 기록된 명문의 전모를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단편적으로 등장하는 어휘들을 신라김씨조상과 직접적으로 연결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왕망전의 신라시대 출토는 교역의 정황이 될 수 있는 것이고 동복의 출토 역시 그것이 증거는 되기 어렵죠. 예를들면 신라 호우총에서 고구려 유물이 나오지 않습니까? 신라의 금성은 金을 수바르(suvar)라고 불렀던 흉노와 관계가 있다는 것은 제가 이미 Suvar=> 소벌>서벌과 같은 맥락에서 말씀드릴 수 있고요.. 이는 소벌공파가 주도했던 상황에서 이뤄진 것이라 봅니다. 그것이 김일제와 어떤 관계냐는 것은 지금 미국의 주류를 이루는 앵글로잭슨족 가운데 누가 이민의 주인공이었느냐는 질문과 다를 바 없는거죠. 신라초기에 김씨가 세력을 잡지 못했을 것이라는 님의 추정은 저와 같습니다. 알지=알치=알티=알타이의 동원관계는 충분히 의미있습니다. 다만 김일제는 당시에 미티(MiTi)라고 불렸는데 이와는 관계가 없죠. 결론적으로 저는 대륙의 흉노계가 김씨의 조상일 것이라는 심증에는 찬성합니다. 사실 박혁거세조차도 기미민족의 이주와 관계가 깊다고 봅니다. 실제로 예니세이어중에 케트어족의 단어에는 우리 고대사의 문제들을 해결해 줄 가능성이 많은 어휘들이 많습니다. 실제로 흉노어의 근간으로 이 예니세이 케트어를 지목하는 학자들도 있죠. 케트어로 버커커지 (berkekeji)는 통치자(Ruler)를 의미하고 Senang은 샤먼적 존재 즉 우리말로 서낭/성황을 뜻합니다. -솔본- | ||
![]() | ||
![]() | ||
![]() | ||
| ||
이어서.. 사실 제 심증은 대륙의 흉노나 신라김씨,박씨 모두 한 공동체로부터 분기되었다고 봅니다. 다만 신라의 역사가 흉노보다 후대이기 때문에 흉노가 신라의 조상이거니 할 뿐이죠. 삼국사기에는 신라를 고조선의 유민이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저는 고조선과 그 이전의 정치공동체로부터 흉노-선비-고구려-신라등이 분기되었다고 생각하는 거죠. | ||
![]() | ||
![]() | ||
![]() | ||
| ||
아.. 백제는 고구려로부터 출자되었으니 당연히 상대에 포함되겠죠.^^; | ||
![]() | ||
![]() | ||
![]() | ||
| ||
KBS 역사추적에도 거론되었던 부분이군요. 그렇다면 신라의 김씨 왕족이 고구려, 백제 사람들과 언어가 달랐다는 문헌 기록은 어떻게 해석되어야 옳을까요? | ||
![]() | ||
![]() | ||
![]() | ||
| ||
大東民族史 / 음.. 신라김씨 왕족이 고구려,백제와 언어가 달랐다... 그런 문헌기록이 있던가요? 전 금시초문인데... 혹시 '신라의 언어는 백제를 기다린 후 중국과 통했다'라는 기록을 말씀하시는가 보군요... 이 부분의 해석에 대해서는 오히려 신라와 백제의 언어가 같았기 때문에 신라는 중국에 통역해 줄 백제사신이 필요했다는 이야기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다시말해, 대구사람이 중국에 가서 상담을 하려하는데 중국어를 모르는 관계로 광주사람이 통역을 해 준 거나 마찬가지인 거죠. 그럼 광주 사람과 대구사람은 당연히 말이 통했겠죠? |
'Language & ... Writing > 솔본분석모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환단고기를 아직도 위서로 음해하는 자들에게 고함 (0) | 2009.02.08 |
---|---|
[스크랩]임나(任那)는 담로(擔魯)의 이형표기였을 것 (0) | 2009.02.08 |
우리 민족의 이동은 서->동이 아닐 것입니다 (0) | 2008.02.09 |
'다물'(多勿)이 '따무르자"인가? (0) | 2008.02.07 |
[스크랩] 멧돌로 보는 고대한문명의 세계 이동 (0) | 2007.05.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