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편에 이어서 이번 글에서는 왜어로 '2'을 의미하는 '후타츠'에 대해서 알아 보기로 한다. 왜어 '후타츠'에 대한 음운적 분석에 앞서서 지난 1편에서 언급한 '히토리(한사람)'의 예처럼 우선 왜어로 '2사람'을 의미하는 '후타리'라는 말에 대해서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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ふたり [二人=hutari]
[명사] 두 사람. 양인. 2인. お二人ふたり (짝이 된) 양인. 두 분
二人ふたりとも 두 사람 모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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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전에서 보듯이 '후타리'라는 말은 '두사람'을 의미한다. 이 말은 1편의 '홑톨이<호토토리<히토리'로 음운변화한 것과 같이 역시 한국어로 도토리나 밤등을 나타내는 수량사인 '톨+이(명사를 만드는 접사)'가 붙은 말이다.
즉 '톨'이라는 수량사가 '후' 뒤에 붙어서 '톨이<토리<타리'로 음운변화하여 '후타리'가 된 것이다. 그런데 인간의 구강구조상 발성이란 가장 에너지가 적게 드는 음운전략을 취하기 때문에 '호토리<히토리'의 형식으로 변하는 것 처럼 역시 '후토리'보다는 '후타리'가 훨씬 발음하기가 쉽고 에너지가 덜 소모되기 때문에 자연스레 '후'뒤에서 '토리'가 '타리'로 발음하는 전략을 취하는 것이다.
따라서 '오'모음은 가변적으로 '아'모음으로 변화한 것이다. 자 그렇다면 여기서 '타리'는 한국어 '톨'의 변형형식이라는 것을 알았는데 그렇다면 '후타리'에서 제 1음절 '후'는 자연스레 '2'를 의미하는 말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가 있다.
그런데 왜어가 한국어의 방언이라면 '한국어 수사 '둘'과 '후'가 별 관계없어 보이는 듯 한데 어떻게 한국어의 수사나 수량사(사물을 세는 기준이 되는 단어들= 數量詞)와 연관이 되는가 의아해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수사라는 것은 한나라를 기준으로 할 때 대체적으로 가장 많이 쓰이는 주된 체계가 있을 수 는 있어도 그 외에도 다양한 형식의 수량사 체계가 존재하게 마련이다.
이를테면 1편에서의 '히토'라는 것도 소위 니뽕인들이 주장하는 '부여-고구려-백제-가야(이러한 분류 자체가 정치적이고 근거가 없는 것이지만 일단 그들의 엉터리 기준으로 보면)'의 주된 수사계통으로 분류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왜인들은 여기에 대해서는 쌩까고 입 닫고 있다.
역시 우리나라도 가장 많이 쓰이는 '하나, 둘..'류의 수사 체계 외에 '으뜸 버금..' '홑(홀), 짝..'하는 체계들도 존재한다. 이는 '하나,둘..'체계가 가장 많이 쓰이게 되면서 그 전체계가 역사적으로 소멸됐지만 일상에서 가장 많이 쓰이고 우리 입에 익기 쉬운 '1,2'를 나타내는 '으뜸 버금' '홑 짝'하는 말은 지금까지 질기게 그 생명력을 이어 오고 있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바로 이러한 관점으로 니뽕의 수사체계를 본다면 니뽕수사체계는 이러한 한국식 수사체계가 고스란히 열도로 이식된 짬뽕 혼함형식이라 할 수 있고 '1'을 나타내는 '히토츠'와 같이 '2'을 나타내는 '후타츠'역시 소위 니뽕인들이 주장하는 '부여-고구려-백제-가야'계가 아닌 다른 수사체계라는 맥락으로 바라봐야한다.
그러한 시각에서 접근하게 되면 위에서 말한 '후타리'의 '후'의 어근은 '둘'이 아니라 '둘'과 같은 의미로 쓰이고 있는 한국어의 수량사 중에서 찾을 수 있다. 자 그렇다면 결론으로 들어 가기 전에 우선 다음과 같은 왜어를 사전에서 찾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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ふく [副=huku]
【Ⅰ】 [명사] 부. ↔ 正せい.
1 부차적인 것. 버금
2 부본. 사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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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사전에서 보듯이 두번째를 의미하는한자로 副라고 쓰고 '후쿠'라고 훈독한다. 즉 '副(버금 부)'는 중국식 발음으로도 'fu''로서 일본식 발음 'huku'는 아니다. 따라서 '후쿠'는 고유의 왜어라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이 말은 고대 한국어에서 유래한 것이라는 거다.
그런데 Two, 또는 The Second라는 의미의 한국어 '버금', 이 말은 한국에서 바로 '으뜸과 버금'이라는 관용어로 자주 쓰이는 현역어이며 두번째를 나타내는 '하나,둘..'체계와는 또 다른 수사적 흔적이며 현역 수량사인 것이다.
자 '후쿠=두번째, 둘' '버금=두번째,둘' 비교해보라 언어학에 문외한이라도 단박에 알아 볼 수 있을 것이다. 바로 '후쿠'라는 말은 바로 한국어 버금이 음운변화한 형식인 것이다.
그렇다면 '후'와 '버' 또는 '금'과 '쿠'는 어떻게 대응되는 형식인가 궁금해 할 것이다. 우선 한자로 '大本營(대본영)'이라는 말을 쓰고 이 말이 왜어로 어떻게 발음되는가 살펴 보자. 왜어로 이 '대본영'이라는 말은 '다이뽄에이' '다이혼에이' 심지어 '다이콘에이'까지 모두 발음 된다.
즉 한국어 '벌'이 '벌<바라<하라'로 변화하는 형식을 그대로 좇고 있다. 자음 'ㅂ'과 'ㅎ'과 'ㄱ'은 상호 호환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어 '버금'의 1음절 '버'는 '버<부(먹다<묵다의 예처럼 모음은 가변적이다)<후'의 형식으로 모음 '어'가 모음 '우'로 전성한 형태이다.
또 2음절 '금'은 '금<그<쿠(자음탈락및 무성음화)'로 전이한 것이다 따라서 '버금<부그<후쿠'의 형식으로 언어적 변천을 할 수 밖에 없다. 즉 왜어 '후쿠'는 한국어 수량사인 '버금'의 왜어 발음 형식일 뿐인 것이다.
결국 위에서 살펴 본 '두사람'을 의미하는 '후타리'는 '후쿠타리'가 본딧말 형식이고 중간의 '쿠'는 발음 전략상 생략된 것이다. '후쿠토리<후타리(자음 생략 모음변이)' 발음해보시라 당신의 구강이 어떤 형식을 선호하는가를..
따라서 왜어로 '2'을 의미하는 '후타츠(ふたつ)'에서 앞의 두음절 '후타'는 순수한 의미에서의 '둘'이고 뒤의 '츠(つ)'는 한자 '數'가 후일 접미사 형식으로 붙어 토착화한 것이다. 물론 '후타리+츠<후타+츠(리 생략)'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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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ふたつ [二つ]
[명사]
1 둘. 두 개. 두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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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인들의 멍청한 언어에 대한 접근 방식 중에서 니뽕어에서 불과 4개정도 밖에 안되는 수사를 가지고 왜어는 '부여-고구려-백제-가야'계통을 잇고 있다고 망발을 떠는 것이다 참으로 가소로운 망동이다.
위의 '히토' '후타'의 예에서 보았듯이 히토나 후타는 모두 한국어 '홑'과 '버금'에서 유래한 말이다. 그리고 이들 말은 한국에서 지금도 쓰이고 있는 현역 현대한국어이며 이들의 기원은 백제 가야 신라를 아우르는 남부퉁구스어이다.
니뽕처럼 분류하는 것은 정치적 목적의식이 다분한 잘못된 분류방식이다. 부여-고구려계통은 북부퉁구스어 백제-신라-가야계통은 남부퉁구스어로 분류하는 것이 정합성을 띄는 것이다.
신석기 청동기 삼국시대를 거쳐 남북 퉁구스어가 융합된 한국어는 이미 신라 통일전에 화학적으로 결합하여 방언적 차이 외에는 언어적 차연이 전혀 존재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고구려니 백제니 신라니 구분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불가능해졌음에도 불구하고 왜인들이 저러한 태도를 견지하는 것은 한국에 대한 열등감에서 발로하는 것이다.
1편에서도 말했지만 오히려 백제지역의 방언은 신라지역의 방언과 같아서 수사체계도 고구려계통이 아니라 신라체계와 같았다.
나는 우리나라 왕조 중에서 신라시대를 가장 경멸한다. 그들의 사대모화 형식은 한국인의 생존 형식으로 신라가 당을 끌어 들일 시에 모델로 도입이 됐고 그것은 김부식을 통해서 합리화의 매뉴얼 과정를 거쳐 이론적 토대를 마련했고 그 이후 한국인의 관념에 내면화하는 작업을 거쳐 반도사관과 식민사관의 모태가 되었다는 의미에서 더욱 그렇다.
그런데 그 멍청한 신라왕조 중에서도 나는 경순왕대를 가장 경멸하는데 전대의 당의 의복과 관제 이름작명방식을 흉내는 것도 모자라서 한 민족의 정체성의 근원이라 할 수 있는 지명을 몽땅 한자식으로 갈아 치운 것이다.
현대에 논쟁이 되고 있는 한자 우리민족 창제설은 잠시 논외로 하더라도 당시 신라인의 입장에서는 한자는 당연히 지나인들이 창제한 것으로 받아 들였을 것이며 그들의 생존방식상 새끼지나화 하는 것이 주변의 다른 민족들과 자신들의 변별성을 부여하는 행위이며 지나의 눈치를 보고 살아 남을 수 있다는 생존본능의 발현일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런 민족사적으로 보면 참으로 통분할 일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당시 경순왕이 지명을 한자식으로 바꾼 기록이 삼국사기 지리지에 그대로 전승되서 고구려방언과 백제방언 신라방언의 원형을 탐구할 수는 있다는 것으로 그나마 위안을 삼아야 하려는지...
여하튼 삼국사기 지리지를 보면 신라방언의 수사와 백제방언의 수사가 같았다는 것이 그대로 증명된다. 따라서 왜인들의 부여-고구려-백제-가야언어학 계보가 얼마만한 날조인가를 웅변하고 있다. 즉 북부퉁구스방언(부여-고구려)와 남부 퉁구스어(백제-가야-신라)으로 분류하는 것이 정합적이라는 것을 논증하고 있는 것이다.
너무 길어지면 처음 이 글을 접하는 독자들의 독해에 지장을 줄 수 있다는 어느 블로거의 어드바이스처럼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고 다음 3편에서 백제방언과 신라방언에서 말하는 수사의 동일성을 삼국사기 지리지를 근거로 해서 예시를 들어 논하기로 하고 오늘은 여기에서 잡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