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들은 한자로 大和 또는 大倭라고 쓰고 똑같이 'やまと(yamato)'라고 훈독을 합니다. 그런데 각각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진 이 和나 倭라는 한자를 왜 '야마토'라고 뜻을 똑같이 새기는가에 대해 일본인에게 물어 보면 누구도 답을 하지 못합니다. 게다가 '야마토'라는 말의 어원적 의미까지 질문하면 유구무언으로 더이상 대화의 진전은 어렵습니다.
대체 일본인들은 倭라는 한자의 원의미인 '작다=小=矮'라는 訓이나 동양대 김운회교수가 프레시안에 연재한 '쥬신을 찾아서'라는 논고에서 말하는 '동이족중 물가에 가깝게 사는 사람들의 통칭'인 알타이어 '와지'의 한자 음차인 '倭'라는 본래의 용도를 두고, 왜? 倭를 '야마토'로 훈독을 하는가? 그리고 倭와는 전혀 상관도 없어 보이는 和라는 한자까지 또 '야마토'로 훈독을 하는가에 대한 의문은 자연스럽게 발생합니다. 따라서 오늘은 일본인들의 정신을 구현하고 있다고 회자되고 강변되는 '야마토'의 어원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우선 야마토의 어원을 추적하기 전에 논지의 전제로서 이번 '일본어원추적 시리즈의 6편'에서도 일부 언급한 바 있는 일본과 연관된 몇가지 역사적 사실들에 대해서 짚고 넘어가지요.
우선 '지나의 정사중' 하나인 수서(隋書)에서는 '倭王姓阿每(왜왕의 성은 아매라고 한다)'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자 수서에 기록된 '阿每'라는 왜왕의 성씨와 관련하여 이해를 돕기 위해 지나의 남북조시대 宋書중에서 왜의 종주국인 백제 부분을 한번 봅시다. "<義熙>十二年, 以<百濟王><餘映>爲使持節·都督<百濟>諸軍事·鎭東將軍·<百濟王> <高祖>踐 , 進號鎭東大將軍. <少帝><景平>二年, <映>遣長史<張威>詣闕貢獻"-이 기록을보면 백제왕의 映(이름), 餘映(성+이름=부여영) 2개다 사용하고 있는데, 역사를 서술할 때에는 소위 중화 사상에 입각하여 氏 + 이름을 사용하지 않고 그냥 暎.. 하지만 작위를 수여하는 경우는 Full name ( 氏+이름)을 사용했습니다.(여=부여씨)
그러면 위의 백제전의 기록형식을 기준으로 宋書의 倭國傳을 한번 보도록 합시다. "永初>二年, 詔曰: [<倭讚>萬里修貢, 遠誠宜甄, 可賜除授.] <太祖><元嘉>二年, <讚>又遣司馬<曹達>奉表獻方物. <讚>死, 弟<珍>立, 遣使貢獻"-왜의 왕이 송에 가서 관직을 받는 것을 기록한 기사인데 위의 백제전과 같이 분명히 앞 부분에는 倭讚(왜찬)이라고 full name을 쓰고 뒷 부분은 이름만 거론합니다.(여하튼 왜의 왕은 성이 倭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한번 더 宋書의 다른 기사를 확인하지요. 倭隋" 라는 인물이 등장합니다. 중국에 가서 작위를 받은 것은 앞의 백제의 관례로 보았을 때에 왕족이라는 의미인데 저 사람의 氏도 "倭" 입니다. "<珍>又求除正<倭隋>等十三人平西·征虜·冠軍·輔國將軍號, 詔 聽. 二十年, <倭國王><濟>遣使奉獻, 復以爲安東將軍·<倭國王>" -여하튼 남조의 송서기사 3부분을 통해 왜왕의 姓은 倭씨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또한 지난 6편에서 언급했지만 역시 '지나의 정사'중 하나인 구'당서 열전 동이편 백제조'에 보면 "百濟國은 大海의 북쪽, 小海의 남쪽에 자리하고, 東北으로 신라에 이르고, 西로 바다를 건너 越州(중국의 산동성 복건성일대등의 중국 동해안)에 이르고, 남으로 바다를 건너 倭에 이르고, 북으로 바다를 건너 高麗(고구려)에 이른다.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舊唐書 列傳 東夷 百濟조 원문]
處大海之北, 小海之南. 東北至新羅, 西渡海至越州, 南渡海至倭國, 北渡海至高麗.
[부연]越州 지역에는 백제가 진출하여 세운 晉平郡이 있었고, 고구려 지역 근처에는 遼西郡이, 倭는 백제의 담로였고 신라는 백제의 附傭國이었다,
[梁職貢圖..百濟 본문]普通二年, 其王餘隆遣使奉表云, 累破高麗, 所治城曰固麻, 謂邑?魯 於中國郡縣 有二十二?魯, 分子弟宗族爲之. 旁小國有 叛波, 卓, 多羅, 前羅, 新羅, 止迷, 麻連, 上己文, 下枕羅 等附之)
[양직공도 백제 본문-번역문]普通二年 그 왕 여륭이(=武寧王)이 사신을 보내 표를 올리고 이르기를 고구려를 여러 번 破했다고 했다. 치소성(=首都)을 고마라고 하고, 읍을 일러 담로라고 한다. 중국의 군현이다. 22담로가 있다. 子弟,宗族이 그것을 나누어 가졌다. 백제에 부용하는 小國은 叛波, 卓, 多羅, 前羅, 新羅, 止迷, 麻連, 上己文, 下枕羅 다.
또한 이를 받아 지나의 '북송 곽약허'가 저술한 '도화견문지'에는 "왜국은 일본국이다. 倭라는 원래 이름을 부끄러워했는데, 극동에 있다고 해서 스스로가 일본이라고 부른다. 고려의 속국이다." (倭國乃日本國也. 本名倭旣恥其名. 又自以在極東因號日本也. 今則臣屬高麗也) - 郭若虛.『圖畵見聞志』 卷6. 高麗國-라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또한 元史에는 '백제는 22담로로 이루어져 있고 그중 가장 큰 곳은 倭담로이며 그곳은 백제의 왕족과 왕자들이 다스린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한 청나라시대의 공식적 역사서인 흠정만주원류고에는 "其國內衆建候王以酬勳懿-" 欽政満州源流考 -그 나라 안에 候王을 세워 공훈에 보답한다-라고 되어 있어, 候王이라는 것이 백제 안에 종속된 정치 시스템 상의 작위라고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백제는 왕과 후를 세워 피정복지를 대리 통치하는 봉건제적 황제국가임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지요.
또한 근래에 지나의 낙양 근교 북망산에서 백제의 유장 '흑치상지'의 생애를 기록한 1604자의 묘비가 발견되었는데 거기에는 "그 조상은 부여씨(백제왕족)로부터 나왔는데 흑치지역에 봉해지면서. 흑치를 성으로 삼았다. "라고 각인되어 있습니다.
위에 적시한 역사적 기록등을 통해서 우리는 몇가지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첫째로 백제는 봉건제후인 왕과 후를 거느린 帝國이었다는 점, 두번째로 피정복지를 담로라는 체제로 구분하여 백제 왕족에게 封分하여 대리통치하게 했다는 점, 세번째로 흑치상지의 묘에서와 같이 피정복지를 다스리는 백제 왕족에게 그 지역의 지명을 새로운 姓으로 하사하여 그것을 성으로 삼게했다는 점,
그리고 구당서, 북송의 도화견문지, 元史등에서 확인 되는 바와 같이 倭는 백제의 피정복지였다는 것이며 倭를 다스리는 자의 姓은 宋書에서 확인 바와같이 倭氏라는 점 그리고 수서를 기록한 자의 취음이지만 倭의 訓을 '阿每'로 하여 거의 'yamato'의 음가 'yama'와 근사하게 기록했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일본인들은 백제 패망후 신라에 대한 컴플렉스로 자기들의 역사서를 윤색하거나 왜곡 또는 날조했지요.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영원히 묻혀질 수는 없는 것이며, 위에 적시한 것처럼 지나의 역사서가 일본이 백제의 담로라는 것을 증명하기도 하지만 일본인 역사학자들 스스로 또는 외국의 역사학자들이 일본의 역사적 왜곡과 백제에의 종속성을 입증하기도 합니다. 한번 그러한 예를 살펴보지요.
1882년에 고사기를 영어로 번역한 '첌벌린(1982판: 137-8)'은, 에도(江戶)시대 후기국학파(國學派)의 거장인 '모도오리(本居宣長, 1730-1801)'가 고사기를 (가나로) 번역을 하면서 '한국(가라)'이라는 표현을 삭제한 사실을 지적하면서, “모도오리가 내용을 변조하려 한 이유는 오로지 전통적인 신대 설화에서 한국이 적대적이 아닌 형태로 거론된다는 사실을 은폐 하고 싶다는 분명한 이유에서 였다. 자신이 논평-해설을 한다는 원문을 그렇게 부정직하게 처리한 행위는 절대로 용서될 수 없는 것이다” 라고 강력하게 왜곡을 비난합니다.
'기마민족 야마토정벌설'로 유명한 일본의 역사학자
이외에도 무수한 일본학자들의 증명과 증언, 사료적 입증 및 외국학자들의 증언과 분석적 입증이 있으며 그 일단으로 지난 6편에서 외국학자들의 일본어의 기원에 대한 견해도 아울러 충분히 살펴 본 바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일본서기와 고사기 속에 은유적으로 숨겨진 일본의 역사를 잘 파헤치고 백제의 일본정벌과정까지 추적하여 분석한 책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서울대 홍원탁교수의 'Archeological Break : Event or Process'라는 저서로서 up-korea에도 연재된 바 있습니다. 그 논고를 보면 백제는 근초고왕 무렵인 4세기 후반 근초고왕의 외척인 '진정'계 세력을 分封시키기 위해 열도정벌의 배경을 설명하고 기 과정을 일본서기나 고사기의 은유를 통해서 분석합니다.
그 정벌루트는 야마토의 어원과 관련이 되는데 대략 살펴보면 '규슈-세토나이카이-오오사카 나니와-二上山-야마토 아스카'로 이어집니다. 마침내 4세기말 경 근초고왕은 열도를 정벌하고 선주하던 가야계 세력을 밀어 내고 지금의 기내지방(畿內)일대인 나라부근의 야마토지역 아스카에 倭담로를 세우며 정벌을 일단 마무리합니다. 이 때 일본정벌의 기념으로 倭王 旨에게 수여된 것이 칠지도이고, 이 칠지도는 신라의 황남대총에서도 발견됩니다. 즉 백제가 5세기 전까지는 신라를 부용국으로 삼았다는 증좌이기도합니다.
그 倭담로의 중심지가 있던 아스카에 대한 어원분석을 통해서도 倭담로의 가야,백제 연관성을 규명할 수 있지만 그 내용이 광범위하고 방대해서 다음에 별론으로 하기로 하고 오늘은 그 아스카가 위치한 일대를 일컫는 지명인 야마토와 倭의 훈독인 '야먀토'와의 상관관계를 규명하는 어원추적을 선행하기로 합니다. 기묘하게도 아스카일대의 현재 행정구역 명칭을 大和郡이라 쓰고 'yamato郡'이라고 훈독하는 것도 倭,和를 병용하는 패턴과 똑같습니다.
자 그럼 야마토의 어원 추적에 앞서서 일본어 사전에 게재된 倭와 和에 대한 음독과 훈독의 풀이를 살펴 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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ワ(wa)
やわらぐ·やわらげる·なごむ·なごやか·あ-える |
뜻풀이 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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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네이버 일본어사전 풀이에서 보듯이 이 倭와 和는 뜻 풀이인 훈독에서 전혀 의미가 상통하지 않습니다. 즉 倭는 '야마토'라고 훈독을 하고 있지만 和는 전혀 다른 의미인 '어울리다, 뜻이 맞다'등으로 쓰이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인들은 이 倭와 和를 병용하여 '야마토'로 쓰고 있습니다.
이를 테면 和食, 和牛, 和服, 大和魂(야마토 타마시)등의 和를 倭자로 대치해도 똑같은 의미임에도 불구하고 和를 굳이 병용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을 발견할 수 있는데 倭나 和나 읿본식 발음상의 음가가 모두 wa로서 같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아울러 위에서 적시된 북송의 '곽약허'가 지은 '도화견문지'에서 보듯이 고래로 일본인들은 주변에서 자신들을 칭하는 倭라는 한자를 수치스럽게 여겼다는 것을 상기하면 자연스레 의문이 해소됩니다. 즉 경멸칭의 성격이 짙은 倭대신 같은 음가인 和로 대치하고 아예 의미까지도 'yamato'로 윤색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글머리에서 적시했지만 도대체 일본인들은 倭를 원래의 의미인 '작다'라는 의미나 '동이족중 물가에 사는 사람의 통칭'으로 사용되는 알타이어 '와지'의 음차인 倭라는 의미로 쓰지 않고, 일본인들도 그 의미조차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やまと(yamato)'라고 뜻을 풀어서 새기는가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남는 것입니다.
물론 일본식 문자체계가 신라의 원효대사의 판비량론에서도 발견되는 각필의 발전형식인 이두의 아류라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도대체 倭의 訓을 '야마토'로 새기는 가에 대한 일본인들의 설명은 군색하기만합니다. 참고로 고대 한국인들이 일본인에 전해 준 이두식 표기방식인, 일본 문자 ‘가나’의 ‘아이우에오’(あいうえお/アイウエオ)는 고대 백제인들이 만들었습니다.
백제인들은 서기 6세기경부터 일본말에 맞는 글자를 하나 둘 만들어 쓰기 시작했는데 이런 사실을 구체적으로 밝힌 사람은 가쿠슈인대학(學習院大學) 고대사학자 오노 스즈무(大野晉) 교수지요. 우리나라 ‘이두’와 마찬가지로 한자어를 일본어에 맞춰 써 온 ‘만요가나’가 “이두의 영향을 받았다”(鄕歌及び‘吏讀の硏究’ 1929)고 처음으로 밝힌 사람도 역시 일제하 서울 경성제대 조선어학과 오구라 신페이(1882∼1944) 교수였습니다.
자 지난번 이 시리즈 6편에서도 말했듯이 일본어란 2300년전 일본열도로 건너간 한반도 남부인들을 지칭하는 야요이이들이 쓰던 고대한국어이며 시간이 경과해도 비교언어학적으로 어근 추적을 통해서 고대한국어가 어떻게 음운변화를 해 현대일본어로 정착돼 왔는가를 분석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일본인도 설명 못하는 '야마토'라는 倭의 훈독이 과연 한국어와 어원적 측면에서 어떤 관련이 있는 것일까? 찬찬히 살펴보기로 합니다.
우선 倭라는 말의 원래 의미는 '작다=小=矮'라는 한자 고유의 표의적 의미 외에 김운회교수의 '동이족 중 물가에 사는 사람들의 통칭'인 알타이어 '와지'의 음차라는 것은 위에서 몇번에 걸쳐 확인해봤습니다.
그런데 이 倭라는 한자에는 또 하나 중요한 의미가 있는데, 그것은 倭를 삼국초기에는 하나의 정치적 집단내지는 고대의 가야연맹체를 지칭하는 의미의 고유명사로 사용범주가 제한되거나 '가야=倭'로 인식됐다는 것입니다. 즉 고대의 한반도 남부와 당시의 일본열도에 대해서 종주권을 가지고 있던 가야계 세력을 일반적으로 倭로 지칭했다는 것입니다.
원래 동양대 김운회교수의 지적처럼 '동이족 중에서 해변가등의 물가에 정주하는 사람들의 별칭'을 알타이어로 '와지'로 했고 이를 근사한 음가인 倭로 표현했을 겁니다. 그러다가 그 사용의 범주가 한반도 해변가에 정주하던 동이인 가야인들을 지칭하는 범주로 제한되었고 더 후대에는 가야인들 중 열도에 건너간 사람들을 지칭하는 형식으로 더욱 국소화되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그 중간 단계인 초기의 삼국시대에는 한반도의 가야나 그 가야의 종속적 지방단위인 열도倭를 구분하지 않고 倭라는 凡稱으로 사용했을 개연성이 높습니다.
즉 야요이 무렵부터(후에 가야 고대연맹체로 성장하는)한반도 남부지역에서 이주한 야요이인들은 그들이 떠나 온 고향인 가야지방을 모국으로 인식했을 것이고 어떤 형태로든 모국인 가야지방에서는 일본열도로 이주한 야요이인들에게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그들을 종속적 지위에 두었을 것입니다.
나중에 별론으로 다루는 가야를 지칭하는 '미마나'의 어원 분석에서도 자세하게 논하겠지만 열도에 이주한 야요이인들은 전기고분시대(서기 375년前)까지 한반도에서 영향력을 유지한 가야계의 세력권 안에 수렴되었을 것입니다. 즉 초기의 왜왕가는 가야계라는 것은 일본역사계에서도 정설입니다. 칠지도의 왜왕을 지칭하는 旨라는 한자도 가야왕을 지칭하는 의미인데 백제가 열도를 정복하고도 가야계가 통치하던 倭열도를 계승한다는 의미에서 侯王인 倭의 백제 총독에게 그대로 가야계 왕의 명칭을 승계하게 했을 것입니다.
따라서 삼국사기의 초기기록에 무수하게 보이는 倭의 신라 침입은 삼국의 하나로서 후에 강성해진 신라가 아닌 진한의 한 연맹체로서 신라의 전신인 아직 부용국(소국)수준의 사로국에 대한, 가야계를 지칭하는 범칭인 倭의 침입을 말합니다.
즉 열도의 倭가 침입한 것이 아니라 열도의 倭를 아우르던 정치적 세력인 한반도의 가야가, 사로를 침입한 것을 후대에 삼국사기의 저자 김부식이 개념을 혼용하여 倭로 기술한 것입니다. 실제 가야계는 열도倭까지 아우르는 정치적 실체였으니까, 당시의 시각으로는 가라=倭로 인식되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삼국사기 초기기록에 보이는 倭가 신라를 침입한 기록은 많지만, 가야나 백제를 침입한 기록이 안 보이는 것은 이러한 연유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열도倭의 종주국 가야연맹 대부분을 정벌한 인물이 백제의 근초고왕이고, 백제는 가야-백제연합정권의 형식으로 왜열도에 진출하여 倭열도에 잔존 저항하던 가야계 세력을 복속하여 야마토 담로의 중심지를 아스카에 세우게 됩니다. 그리고 열도에 진주한 백제인들은 '가야계 사람들이 통치하던 땅'이라는 의미에서 倭라는 명칭을 계속 사용했을 것이고 이러한 맥락에서 倭는 '가야계의 땅'이라는 의미도 됩니다.
그렇다하더라도 倭가 왜 '야마토'로 새기어 지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즉 백제가 열도倭에서의 가야의 역할을 인정했다면 倭의 일본식 음가인 wa를 사용하여 倭를 음독하든가, 또는 가야의 당시의 음가인 '가라'를 사용하여 倭를 '가라'라고 훈독하든가 했으면 되는데 굳이 '야마토'라고 훈독을 했는가에 대한 의문말입니다.
그런데 일본어 '야마토'의 '야마'는 山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따라서 오히려 倭라는 한자 고유의 의미인 '작다=小=矮'라든지, '가야의 땅' 또는 '동이족중 물가에 사는 사람들의 통칭'이라는 알타이어의 음차인 倭로 쓰이는 범주보다는, '야마'라는 말의 어근에서 야마토의 어원을 추적 하는 것이 보다 합리적일 수 있습니다. 자 그러면 일단 한국으로 돌아가봅시다.
한국어에서 山의 고어는 '몰(mor-'아래 아' 字型이 없어서 그냥 '몰'이라고 표기함, 또한 한국어나 일본어에서는 r이나 l 발음을 구분하지 않는다.)'입니다. 후에 이 '몰'은 뫼(moi) 또는 메(me)로 음운전성되어 병용됩니다. 이를테면 '멧돼지'할 때는 '메'가 쓰이는 예이고 '가람과 뫼'할 때는 '뫼'가 쓰이는 경우입니다.
하지만 고어이기때문에 현대의 표준어 표기법에 의해서 어떤 것이 표준어라고 정의할 수는 없습니다. 표기는 부차적인 것이고 언어학에서는 항상 말이 먼저이며 발음은 그것이 방언이라도 중시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한자 墓는 '모이'로 쓰이기도 하는데 이는 '뫼'의 파자형식이며 방언형식이기도 합니다.
또한 이 '몰'은 높은 것을 의미하는 고어로서 여기에서 '머리' 또는 '마리' '마루'등이 파생되는 공통의 조어입니다. 특히 '몰'의 사용례는 서울 남부, 성남과 분당의 경계에 위치한 '모란시장'이라는 곳과 서울 북가좌동의 '모래내'라는 곳에 그 흔적을 남기고 있습니다.
즉 '모란'은 흔히들 와전된 형식으로 사람들이 꽃 '모란'으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은데, 실제 '모란'은 '몰+안=모란'의 연철형으로서 '산 안쪽마을'이라는 의미입니다. 실제 모란시장에서 주위를 둘러 보면 북동으로는 남한산이 둘러 쌓여있고 서로는 청계산 남으로는 수원 광교산으로 둘러 쳐진 형세입니다. 지명이란 전통적으로 불변하는 자연의 지형과 지세를 중심으로 명명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또한 서울 북가좌동의 '모래내'는 '몰+안+내' 즉 '산 안쪽 냇물'의 연철형입니다. 사람들은 보통, 모래내가 '모래가 많은 개울'로 아는데 이는 민간전승의 와전된 형식으로서' 모래내'는 모래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지명입니다. 실제 모래내는 북한산에서 발원해서 한강으로 빠져 나가는 마른개울(건천)입니다.
즉 모래가 퇴적 될 사이도 없이 물이 말라버리거나 우기때는 한강으로 바로 물이 빠져 버리는 마른개울입니다. 부연하자면 모래내가 위치한 '북가좌동'의 '伽佐'도 대표적으로 와전된 민간전승이 한자화로 고착된 것으로서 '가좌'는 순수한 한국어 '가장자리'를 의미합니다. 북가좌동이란 '북쪽에 있는 가장자리 마을'이라는 의미인데 사대적 탁상공론식 전시행정의 비극적 名命의 예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 '몰(mor)'이라는 한국어가 2300년전 한반도 남부 지방의 한국인들이 일본열도에 건너가서 꽃 피운 야요이시대 때 그대로 숲이나 山을 의미하는 일본어의 원형이 됩니다. 즉 일본어로 숲을 의미하는 말은 森이라 한자로 쓰고 'もり(mori)'라고 훈독하여 읽습니다. 그리고 山은 위에서도 적시했듯이 'やま(yama)'라고 훈독합니다.
즉 한국어 '몰'이 "mor<mo+ri(일본문자는 고정된 음절 문자이기때문에 영어나 한글처럼 모음과 자음을 분해하거나 결합해서 표기 할 수 있는 음소문자는 아니다. 따라서 영어나 한글의 자음은 일본어에서는 開音節化라는 언어학적 음운변화를 거쳐 자음이 별도로 모음을 수반하여 독립적인 음절로 거듭난다. 따라서 자음 r에 모음 i가 붙어 ri라는 독립음절로 발음이 되고 가나로 표기할 때도 그러하다.)<mo+ri"로 음운변화 하여 일본어 '모리'가 되는 것입니다.
즉
mor<mor+i(개음절화)<mori(もり=森=숲)
또한 한국어 '몰'은 숲을 의미 하는 '모리'로 파생되는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산을 의미하는 'yama'로 음운변화합니다.
그런데 음절문자나 음소문자는 어근이 너무 축약되서 그 뜻을 구분하기 힘들 때 언어전략상 접두어나 접미어를 붙이는 경향이 있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일본어의 yama입니다.
즉 ya+ma 앞의 ya는 음운전략상 채택한 의미 없는 접두어라는 것입니다. 한국어가 일본에 건너가게 되면 자음이 독립음절화하거나 또는 자음이 탈락하는 경우가 있는데 한국어 mor의 본래 의미인 山을 나타내기 위해서 자음 r을 탈락시켜서 mor<ma 또는 mo(자음 r 탈락)가 됩니다[원래 한국고어 '몰'은 아래 아를 모음으로 하기 때문에 모음의 음가는 'ㅏ' 또는 'ㅗ'가 될수도 있다.]
동시에, ma 또는 mo라는 표기방식이나 발음만 가지고는 그 의미를 다른 말로부터 구분하기 힘드니까 앞에 의미 없는 접두어 ya를 붙여서 다른 말과의 변별성을 확보한 후, ma 또는 mo와 결합된 모음 '아래 아'는 언어학적 법칙상 가변적이므로 ya와 음운을 맞추어 yama가 되는 것입니다.
이런 예는 일본어에서 자주 볼 수 있는데 일본고유어로 '馬'를 뜻하는 'うま(uma)'역시 ma라는 어근이 너무 짧아서 다른 말들(일테면 yama에서의 ma와 구분이 안된다)과 변별성을 확보하기 위해 앞에 의미 없는 접두사 う(u)를 붙여 う+ま=うま(uma)가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한국어 '몰(mor)'은
"mor<ma 또는 mo(r자음탈락)<(접두어 붙음)ya+ma 또는 mo<yama"의 음운 변화 과정을 거쳐서 やま(yama=山)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산을 나타내는 고어 '몰'은 일본에서 숲을 의미하는 '모리'와 산을 의미하는 '야마'로 음운파생되어 갈라집니다.
훅시 일본 아스카지방을 가보신 분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일본의 나라현 야마토군 아스카촌이라는 곳은 북으로는 우네비산(畝傍山), 아마노가쿠산(天香久山), 서쪽과 남쪽으로는 콘고산(金剛山), 가츠라기산(葛城)산 등에 의해 둘러 쌓여 있는 산골마을입니다. 즉 우리말로 '두메'내지는 '산골'이라는 것이지요.
바로 이 산으로 둘러 쌓여 있는 야마토지역의 아스카라는 곳이 倭담로의 중심지였던 것입니다. 자 이제 눈치가 빠르신 분들은 대략 감을 잡을 수 있으실 것입니다. 즉 倭를 왜? '小=矮'의 의미도 아니고 '가야의 땅'의 의미도 아니며 '동이족중 물가에 사는 사람'이라는 의미의 음차인 倭도 아닌 'yamato'라고 훈독을 하는지를 말입니다.
더구나 한국어의 '터(址)'를 의미하는 일본어는 같은 음가를 지닌 'と(to)'입니다. 이 일본어 '토'는 단독으로 쓰이는 경우도 있지만 명사의 뒤에 붙어서 쓰이는 경우가 일반적입니다. 즉 일본어로 釜處라 쓰고 'がまと(kamato=한국어 그대로 가마터)'로 훈독하거나 窯跡이라 쓰고 'がまあと(kamaato=역시 한국어 가마터임)'로 새기거나 집戶자를 'と(to)'로 새기는 경우 모두 한국어 '터'를 일본식 발음이나 표기상의 한계 내에서(가나에서는 'ㅓ'발음이 없다) 가장 근사한 음가인 'to(토)'로 표기하거나 발음 하는 것입니다.
더구나 일본의 시코쿠와 아와지시마를 잇는, 鳴門해협이라는 곳이 있는데 이 곳은 조수의 차가 너무 심해서 물이 빠질 때 한국의 명량해협처럼 소리가 난다는 의미로 한자로는 鳴門으로 쓰지만 읽을 때는 'なると(naruto')라고 새깁니다. 즉 다시 말해서 그 'naruto'라는 곳은 시코쿠와 아와지시마를 잇는 나루터가 있었다는 의미에서, 한국어의 '나루터' 바로 그 말을 의미하고 언어학적으로 야요이이래 전혀 변하지 않고 지금도 전승되는 한국어 그 자체인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한국어 '터=일본어 と'라는 것이지요.
따라서 'やま(yama=山)'라는 말에 'と(to=터)'가 결합되어 'やまと(yamato)'가 되고 이말은 한국어의 '메터 또는 뫼터=두메=산동네=산골'이라는 의미로 당연히 귀결됩니다. 참으로 허탈해질 지경이지만 일본어 やまと(yamato)의 의미는 말 그대로 한국어 '산골'이라는 뜻에서 더 뺄 것도 없고 더 보탤 것도 없는 바로 그 자체입니다. 비로소 일본인들이 倭라고 한자를 쓰고 왜 yamato로 읽는지 그 비밀이 벗겨지는 순간입니다. 이렇게 진실이란 까 놓고 보면 어이가 없을 정도로 소박한 것이기도 합니다.
프랑스의 철학자 메를로 뽕띠가 이야기 하듯이 인간은 어떤 구조나 메커니즘을 만들 때 처음부터 관념적 '숭엄미(崇嚴=venerableness)'가 본질적으로 존재하는 양 기획하거나 의도하지 않고 natural drift(자연표류)하며 자연과 근사한 형식을 모색하다가 그 구조가 정교화해지거나 진화하면서 후대에 관념적 '숭엄미'를 부여한다고 합니다.
즉 풀어 말하면 용비어천가에서 이성계의 조상들은 실존에서는 범상한 인물들이지만 후대에 이성계가 조선을 창업하고 '六龍이 날아샤...'로 신비화시키면서 숭엄미를 부여받아 신격화되는 것처럼, 인간이 자연과 소통하면서 구축해가는 삶이란 대개 자연스러운 형식들의 연장이 일반적인 모습이고 그것이 관념적으로, 가치판단의 상위적 개념으로 재단되며 형이상학화되는 것은 구조가 진행되어 안정화 된 한참 후의 일이라는 것입니다.
地名, 역시 '뽕띠'의 언명대로 고대에는 지세나 지형등의 불변하는 자연적 구조물들을 준거의 기준으로 삼아서 작명되었을 것입니다. 최초에 당시의 일본열도에 진출했던 야요이시대의 가야계 사람들은 고대 한국어를 가지고 야마토 일대의 지형과 지세를 배경으로 그들이 사는 곳의 지명을 생각해냈을 것이며, 그 이후 가야계 야요이인들을 복속시키며 다시 일본열도에 진주한 백제계 사람들 역시 선주민들이 쓰던 지명을 관성적으로 사용했을 것입니다. 또 그것이 자연스러운 형식이었을 것입니다.
지금의 관점으로는 다소 유치할지 모르지만 고대의 백제인이나 가야인의 관점에서는 소박하고도 자연스럽게 오랜 기간을 거쳐 집단의 입에 의해 오르내리고 회자된 '산골마을'을 의미하는 '지명이 바로 'yamato'일 것입니다.
그러나 백제멸망후 이 소박한 'yamato'라는 지명은 인간의 정치적 요구에 부응하여 새로운 윤색을 거쳐, 관념적으로 재창작되고 ,'yamato'의 원 의미와는 전혀 다른 한자인 '和'로 작위적, 형이상학적 상승을 예비하더니 결국 근대에 힘을 축적한 일본인들은 '야마토'에 大和魂이라는 실존하지 않는 허상의 관념적 숭엄미를 부여하여 야요이이래 2300년간 모국 한반도에 주눅들었던 단어인 倭에 함축된 컴플렉스와 숙명을 엑서더스하기 위해 신기루같은 '야마토 타마시'라는 것을 왜곡해냅니다.
'yamato'가 倭에서 和로 대치되고 魂과 大를 앞뒤에 붙여서 '大和魂'으로 거듭나고 '야마토 타마시'하며 절규한다 해서 그것이 거창한 '일본정신'으로 승화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보아도 그것은 '산동네 촌놈정신'이라는 본질은 숨길 수 없는 것인 데 말입니다. 결국 뽕띠의 지적처럼 관념은 순차적으로 후대에 덧 씌워진다는 명제를 증명하는 도구로서 기능한 倭의 자화상일 뿐인 것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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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연-물론 '야마토'를 '해가 뜨는 곳'이라는 의미의 '아마터'로 분석할 수도 있다. 즉 '아마터 -> 야마터 -> 야마토'로 음운 변화했다고 추정하는 분석도 가능하다.
일테면 "아마" 는 "해의 꼭대기, 해의 근본"을 뜻하는 알타이어의 흔적이다. "아"는 "아-이", "아-침" 에서도 알 수 있듯이 떠오르는 해를 의미하는 접두어이다. (고)조선의 한글이름인 "아사달"은 원래 "아ㅅ달" 즉 "떠오르는 해의 땅"이라는 의미이고 "마"는 "마루(정상)" "마ㄷ이(첫째 아이)" 에서 보이듯이 꼭대기,처음을 의미한다. 이 말의 어원은 위에서 적시했던 '산의 고어 '몰'을 공통의 조어로 한다.
"터"는 위에서 분석했듯이 나루터,우물터등의 '곳, 장소'임은 재론할 필요도 없다. 따라서 알타이어어이자 한국어 고어의 흔적인 "아마터"라는 말은 '해가 떠오르는 곳'이라는 뜻이며 이렇게 어원을 분석할 수도 있다. 하지만 위에서 지적한 뽕띠의 자연표류의 개념처럼 이러한 관념적 작명방식은 어쩐지 자연스럽지 않고 어색하다.
따라서 이러한 작위적인 분석보다는 언어학적 음운론에 입각하고 고대의 소박한 언어적 소통이나 어원적 흐름을 고찰해볼 때 '산골=야마토'라는 것이 더 분석적이다. 또한 이는 후쿠오카대 시미즈 키요시교수도 채택하는 어원분석방법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