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nguage & ... Writing/레이니의 일본어 어원 추적

[스크랩] 일본어의 수사체계는 `남북(南北)퉁구스어`의 혼용 융합체계이다

monocrop 2008. 2. 26. 04:41
가끔 왜인들의 주장 중에서 어처구니 없는 것이 한국어와 왜어가 현대에서 통하지 않게 된 이유는 왜어는 고구려어에서 뿌리를 뒀고 한국어는 신라어에서 뿌리를 두었기 때문이고 고구려어와 신라어는 전혀 계통이 다른 언어라고 말을 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언어학의 기본도 모르는 웃기는 이야기이다. 주지하다시피 이 시리즈에서도 강조했지만 언어란 단절되어 시일이 지나게 되면 같은 뿌리를 가진 동종의 언어라도 음운적 차연이 생기고 그것은 한국과 왜의 경우에서도 적용되어 백제 멸망전에는 사투리 정도만 알면 통하는데 지장이 없던 말이 9세기 중엽쯤부터는 통역이 필요하게 되었다고 일본후기에서도 적고 있다.

 

이러한 명백한 역사적 사실조차 외면하며 니뽕은 본국인 한국에 대한 영원한 컴플렉스에 시달리며 에도시대 이후 만세일계의 황통을 조작하고 그들의 생래적 열등감의 원천인 모국 한국을 부인하기 위해서 많은 것들을 왜곡했다. 대표적인 것은 역사지만 그 외 많은 것들이 왜곡되고 윤색된다.

 

언어도 그 중 하나이다. 조작된 황국사관에 맞추어 언어도 신라어는 고구려 백제 가야계의 알타이어와는 다른 계통이라는 주장이 그것이다. 즉 왜의 전통적인 한반도 분리사관에 의해 신라와 그외 3국을 분리하여 신라를 고립시키려는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신라는 전혀 별개의 종족인 양 즉 외계인인 듯 묘사하는 후안무치를 고의적으로 행한다. 필자가 엇 그제 왜인 하나와 논쟁을 하면서 쪽바리 하나를 안드로메다 넘어로 날려 보냈지만 그 논쟁에서도 그 왜인은 이러한 관점을 세뇌받은 대로 앵무새처럼 지껄이기만 하다 자가당착에 빠져 나중엔 자신의 알량한 역사적 기본소양의 무지를 그대로 노정하고 마는 망신을 당한다.

 

그 쪽바리처럼 황국사관적 프로파간다에 의해 세뇌된 자들도 문제이지만 가끔 니뽕의 연구자금을 받은 멍청한 외국의 언어학자들도 생각 없이 니뽕측의 주장을 무비판적으로 자신의 저서에 싣는 경우도 있는데 Unger라는 인어학자가 그 대표적인 경우이다.

 

그는 한국어가 일본어의 모태라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신라어가 별종의 언어일 수도 있다는 뉴앙스를 풍기며 니뽕 학자들의 의견을 차용하여 모호하게 기술한 적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런 말이 쏙 들어 갔다. 학자적 양심으로 공부해보면 알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언어학적으로 현대 일본어와 현대 한국어의 어근 5000여개가 똑같다. 따라서 이 융합되어 하나가 된 어근을 고구려계나 신라계로 구분한다는 발상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그냥 고대 삼국의 언어는 약간의 방언차이만 빼고 그대로 융합되어 일본어에 녹아 있기 때문이다. 

 

만일 현대 일본 언어학자들이 왜어가 고구려 계통이라고 주장하려면 그에 대한 언어학적 분석과 음운적 어휘적 분석의 기저가 선행되어야 하는데 그런 것조차도 없이 그냥 왜어는 고구려계통이라는 뻘짓만 해댄다.

 

겨우 90개정도 밖에 안 남아있는 고구려 어휘에 대한 기본적 분석조차도 없이 또는 고구려계 어휘 90여개와 현대 일본어의 근간이 되고 있는 왜어의 어원인 남북 퉁구스어가 융합된 한국어 어근 5000여개를 평면적으로 비교하여 몇개가 고구려계통이라해서 이미 하나로 용해된 삼국의 언어를 고구려계통과 신라계통으로 나눈다는 뻘짓이 얼마나 황당무계한 것인지 언어학의 기본소양이 있는 사람이면 인지 하고 있는 기본적 ABC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국사관적 논리에 의해 한국어를 고구려어니 신라어이니 하며 방언적 차이에 불과한 북부퉁구스어와 남부퉁구스어를 전혀 다른 별종의 언어로 프로파간다하려는 먹히지도 않는 개나발을 불고 있다. 이는 신라에 의한 삼한 통일기에 신라에 의해 쫓겨 난 백제에 기반을 둔 니뽕 위정자 집단의 무의식적 컴플렉스가 언어연구에서도 이러한 정치적 목적성을 띄게 만든 것이다.

 

그리고 가까스로 갖다 대는 변명이 구차스럽게 몇개 닮지도 않은 수사다. 1에서 10까지 다 들어 맞지도 않는 수사체계를 그 변별의 기준으로 자랑스레 들이민다. 한마디로 개가 하품할 논거이다.(참고로 알타이제어는 같은 계통이라도 수사체계가 다른 것이 일반적이다.)고구려어나 신라어나 삼국사기 어디를 봐도 삼국간에 통역이 필요한 경우는 한 번도 없다는 사실을 굳이 거론하지 않더라도 삼국시대 언어는 동일했다.

 

신석기 초기인 13,000여년 전 만주와 한반도에 선주하던 고아시아족은 빙하기 이후 만주와 북중국 그리고 한반도로 쇄도해 오던 우리의 직계 조상인 신몽골리안이자 퉁구스계인 예맥계에 의해 삼국시대 전까지 거의 1만여년에 걸쳐서 완전히 정복 당하거나 피의 융합이 이루어지면서 언어 조차도 완벽하게 하나로 일체화되는 과정을 거친다.

 

즉 고아시아족의 언어는 신몽골리안중 알타이어족 퉁구스어군과 하나가 되어 고대 한국어로 완성되는 것이다. 그래서 소위 고아시아족의 일파인 길략어라든지 아이누어나 벼농사 전파 루트를 통해 들어 온 남방계 어휘들은 고대한국어의 기저에 수용되고 그것은 알타이어와 하나가 되어 현대 한국어의 원형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고아시아나 남방계 어휘가 가족관계라든지 벼농사관련 어휘 그리고 조사체계에 그 흔적을 남기고 있는 것이다.

 

니뽕인들이 니뽕어가 고구려계통이라면서 변명으로 견강부회하는 고구려 수사계통으로 왜인들은 3=미츠(みつ) 5=이츠(いつ) 7=나나(なな) 10=토오(とお) 등을 들어 왜어는 고구려어라고 뻥을 친다.

 

그런데 아주 가소로운게 똑같은 논리로 왜인들에게 한국어 '우에=위'가 일본에 건너가서 '우에(うえ=上)'가 됐다고 이야기하면 왜인들의 반응은 깜짝 놀라며 그건 아니란다. 즉 음운이 일대일로 완벽하게 대응되는 데도 언어학적 이유도 못 대면서 왜어의 '우에'는 한국어 '우에'가 아니라며 쩔쩔맨다.

 

왜인들의 '한국어 우에'는 '왜어 우에'가 아니라는 식의 논리라면 삼국사기에서 간간이 보이는 고구려어 수사 密은 어떻게 음운적으로 왜어 미츠와 대응 된다고 할수 있으며 고구려어 于次(5)나 難隱(7)이 어찌 왜어 '이츠'나 '나나'와 매치된다고 할 수 있는가?  

 

더구나 德이 어떻게 '토오'로 등치되는가라는 질문에 왜인들은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실제 이렇게 물어보면 답하는 놈 하나도 없다. 한국인은 이런 경우 왜인들처럼 우기지 않는다 음운적으로 密과 미츠의 근사성과 합치성을 인정하고 음운학적으로도 설명할 수 있기때문이다.

 

이런 엉터리 주장이 왜인들의 딜레마라는 것이다. 더구나 위에서 말한 수사 4개 정도가 같은 것이 무슨 고구려어와 왜어의 동질성을 확정해주는 부동의 증거를 발견한 것 처럼 아주 꼴갑을 해댄다. 그런데 나머지 수사 하나나 둘 또는 넷 여섯 여덟 아홉에 대해서는 전혀 말이 없다. 입조차 꿈뻑하지 못한다.

 

왜 못할까? 왜어로 하나 둘 넷 여섯 여덟 아홉은 모두 왜인들이 다르게 분류하고 싶어하는 남부퉁구스어인 가야-신라계방언으로부터 유래한 것들이기 때문이다. 왜인들이 멍청한 것은 가야와 신라를 구분하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변진한(弁辰韓)은 그 둘이 일체로서, 변한과 진한으로 분리하는 것은 역사적 용어이지 그것이 지리적 민중사적 분리개념은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 멍청한 족속들은 가야와 신라만 관념적으로 분리해 놓으면 모든 것이 황국사관의 뜻대로 되는지 아는가 보다. 한마디로 말해서 가소로운 짓이다. 눈가리고 아웅 하는 가증스런 행태일 뿐이다.

 

우선 니뽕 토착어라는 '히토(ひと)'를 보자. '히토'는 사람을 말하기도 한다. 즉 '하나'라는 뜻으로서 하나라는 관념이 인간이라는 개념으로 까지 확장된 경우이다. 니뽕어로 외톨이를 '히토리(ひとり)'라고 한다. 한국어로 밤이나 도토리같은 것을 셀 때 그 단위 개념이' 톨'이다. 한톨 두톨 거기에 명사형 접사 '이'를 붙여서 톨이하게 되면 사람 하나를 나타낸다. 즉 외톨이가 되는 것이다.

 

무슨 이야기냐하면 일본어 '히토리'란? '히토+톨이'라는 한국어의 축약형이라는 것이다. 즉 연철해서 쓰면 '히토토리'가 되고 이중에서 음운전략상 겹치는 토는 생략되는 것은 언어학적 기본법칙이다. 그런데 이 왜어 '히토'가 처음부터 '히토'였을까? 그것은 전혀 아니다 지금 설명한 것은 왜어 '히토리'가 형성되는 과정을 음운학적으로 풀어서 쓴다면 굳이 이런 경우라는 것이지만 왜어로 히토의 어원은 히토 자체가 아니라 다르다.

 

한국어로 1을 하나 또는 '홑'이라고 한다. 또는 '홑'이라는 폐색음이 유음화되서 '홀'이라고도 한다. '홑이불'할 때 쓰이는 것이 그예이다.' 홑겹'같은 말도 좋은 예이다. 주지하다시피 언어학적으로 모음 어근은 유동적이며 특히 '아래 아모음 변이'가 있는 우리말에서는 이 '아래 아'가 후대에 여러가지 모음으로 분화된다.

 

즉 '아래 아'에서 '아' 또는 '오  우  이 으' 등등으로 얼마든지 가변적으로 변화한다는 이야기이다. 예를들면 한국어 섬은 그 표기상의 한계상 이 말이 일본에 건너 갔을때는 한자로 '사마'로 썼다 무령왕의 유아명이 사마인 것은 바로 이경우를 말한다. 그리고 이 사마는 후에 '시마'로 변한다. 가끔 왜놈들과 대화를 하다보면 島 즉 섬을 뜻하는 한자음 '도'가 한국어인지 아는 멍청한 작자들이 있다.

 

이 '섬-사마-시마'의 경우도 '아래 아모음 변화'의 일종이다. 한국어 섬을 한자의 이두음차로 사마로 표기했지만 섬의 원래 음가는 아모음에 가까운 아래 아 모음이었고 이는 한국에서 아래 아 모음이 바뀌듯이 일본에서는 후대에 역시 이모음으로 변했을 것이다.

 

한국어 사슴(sasum)같은 경우도 이와 같은 케이스로서 일본어에서는 'sasum< sisi'로 변한다. '아 모음'과 '우 모음'이 모두 '이'모음화'한 경우이다. 고래같은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고래(korai)에서 ku(d)zira가 된 경우가 그것인데 자음 k는 변동이 없고 rai에서 자음 r이 닫혀서 d음으로 변하고(술<숟가락으로 변하는 경우와 같음)ai음 즉 '애'음에서 이 이중모음이 '이'모음'으로 단순화해서 뒤에 접사 ra를 붙여서 'kud(후에 구개음화로 z음으로 변화)ira'가 되는 경우이다.

 

korai<kudira<kuzira(구개음화로 d음이 z음으로 변화)

 

또한 '이'모음'에서 그 반대의 경우로 가는 경우도 있는데 이를테면 한국어 '찌르다'에서 어근 'tsiru'가 倭에 건너가게 되면 tsi가 sa로  '이 모음'이 '아 모음화'하고 r은 s음으로 변화하고 u모음이 그대로 붙어 sasu가 되는 것이다.

 

tsiru<sa(ㅊㅈㅅ음은 상호 호환됨+i모음이 a모음으로 변화)+su(r자음은 倭에서는 s z ch음으로 규칙적으로 변화됨)<sasu

 

그리고 한국어 '밑'이 왜에 건너가게 되면' 이'모음'이 '오 모음'으로 변화하여 mit

이 'moto'로 되는 경우는 잘 알려진 케이스이다.

 

mit<moto-[예]산밑=山本(yamamoto-따라서 안양 인근의 산본은 倭式조어법의 잔영이다)

 

이렇게 모음은 항시 가변적이고 한국어에서 '아래아 모음변이'가 일어 나듯이 열도에서도 그와 유사한 변화가 일어나며 韓倭 모음간에 상호 1대 1로 호환되는 규칙성을 띄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자음 어근은 잘 변하지 않는 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서 우리는 현대어에서 고대어의 어원을 재구해낼 수 있는 것이다.

 

역시 한국어로 하나를 의미하는 홑은 '아래 아 모음 변이'를 일으키며 열도에서는 '홑<히토(개음절화)'가 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이치이다. 따라서 한국어 홑은 당연히 일본어 수사 '히토'의 어원이며 그것은 하나를 말하고 사람이라는 관념적 의미로 까지 확장된다.

 

니뽕인들은 仁이라는 글자에까지 사람의 의미인 히토를 갖다 붙여서 히로히토니 아키히토니하며 니뽕의 황국사관을 윤색하는 데 이용하고 있지만 지들의 왕인 히로히토나 아키히토의 성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쌩까고 답을 안한다.

 

그들의 성은 倭이다. 지나의 역사서 '宋書  百官 編'에 보면 '왜 5왕'의 성과 이름을 분명히 명기하고 있다. '倭王倭濟'하는 식으로 말이다. 경멸스럽지 않은가 족보를 숨기는 종놈같은 꼴이라니...ㅎㅎ 이런 소이로 위에서 잠깐 언급했지만 한국어 외톨이처럼 일본어 히토리라는 말도 원래 한국어 '홑+톨이'의 연철로서 '호토리<히토리'로 자연스레 전성된 형식이다.

 

자 그럼 倭의 수사 1을 나타내는 말 히토가 한국어 홑이라는 것을 알았으니 그러면 한국어로 1을 나타내는 수사 '하나'가 과연 일본에 있는가?  이를 찾아 보는 것도 흥미 있을 것이다. 한번 보자 있을까 과연?  아래 사전을 보자

/

はな

 

 はなかさいごまで(하나까라사이고마데=처음부터 최후까지)'라고 쓰거나 말을 해도 니뽕인들은 이 관념을 인지하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이 말이 관용어로 잘 안쓰는 것이지만 이러한 조어법이 니뽕에서 틀린 말도 아니고 니뽕인들이 못 알아 듣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 바로 이 현대 한국어의 수사 하나가 니뽕에서 살아서 기능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출처 : 슈뢰딩거의 고양이
글쓴이 : 레이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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