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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任那임나흥망사 개요(2)-칠지도와 칠소국

monocrop 2007. 10. 24. 20:48

임나흥망사 개요(2)-七支刀와 七小國

글 정광산인 글돋선생.

 

1.일본서기 중에 백제가 큐슈에 진출한 기록

  임나흥망사 개요(1)에 계속하여 진출기사는 병인년(정시7년:246년,고이왕 13년,신공46년)에 일본(기나이조정)에서 "시마노스꾸네"를 탁순국(큐슈 현재多久타구)에 보냈을 때, 탁순 왕으로부터 백제의 이야기를 전해 듣고 그의 종자가 백제에 다녀온 것을 계기로 그 이듬해 정묘년(正始8년:247년 고이왕14년)에는 백제의 사신들이 처음으로 기나이조를 방문케 된다.

 

 그 행로의 중간에서 길을 잃어 沙比新羅(사히시라기)에 당도하게 되었다는 것과 이때 (沙比사히)신라가 백제 사신의 공물을 탈취한 이야기 등은 <일본서기> 편찬자의 조작이었다기보다 이 무렵 이끼(壹岐)섬이나 쯔쿠시 연해 지역의 제부족의 하나였던 辰(秦)韓係진한계의 어떤 집단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최소한 6세기 말 이전까지도 이러한 제부족들이 각기 일본열도에 독립된 세력으로 산재하였던 시기였다.[지방의 족장(國造국조)]아래에는 아직 부족화가 안 된 私屬民사속민들도 상당수 존재하였을 뿐만 아니라 족장층이 이끌고 있던 [공동체(나라)'는 통합된 독립적인 집단으로 존속하던 시기였고, 백제는 이들을 정벌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즉 신공47년조 (정시8년,247년 <위지> 및 <북사>의 [왜여왕비미호 死사] 기사는, 백제가 왜 여왕의 [사마대국]을 침공한 일과 또 [일본 貴國귀국]이라고 표현한 기나이조정의 관계를 맺기 위해 사자를 보냈던 일, 도중에 길을 잃고 연해 지역의 부족에게 공물을 탈취당한 사건 등을 함께 뒤섞어, 한 줄거리의 이야기로 꾸며놓는 바람에 전체적인 내용이 믿을 수 없는 설화처럼 되어 버린 것이다.

 

즉 성격이 다른 사건들을 한 덩어리로 주물러서 이야기를 엮어놓은 데서 이런 결과가 유래했다고 볼 수 있다. 아무튼 백제 사신의 공물탈취 사건을 계기로 기나이 야마토 조정에서는 찌쿠마나가히꼬(千熊長彦)를 (사히)신라에 보내 백제의 헌물을 더럽힌 것을 꾸짖었다고 한 내용도. 실은 쯔쿠시(현 큐슈의 옛이름)연해 지역의 어느 부족 집단의 해적행위에 대해 그 죄를 추궁하였던 것으로 해석된다.

 

따라서 이 기회에 백제와 왜(사실은 [일본 귀국]으로 표현된 기나이조)가 연합하여, 쯔쿠시 연해지역의 독립된 제부족 집단을 공벌한 사건이 바로 신공49년조의 이른바 신라 7국 평정이다. 물론 이때는 <위지>나<북사>에서 전하는 바대로 왜 여왕 히미꼬와 어떠한 형태로든 연관이 전혀 없는 神功后신공후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조작된 역사의 진상을 사실대로 밝히자면, 신공49년은 <일본서기> 기년 그대로 己巳기사년 嘉平가령 원년이요, 백제 고이왕 16년에 해당하는 249년의 사건이었다. 이 연대는 신공, 즉 히미꼬가 죽은 지 2년 후이므로 큐슈 북 일대를 이 무렵에 백제.왜(기나이조)연합군에 의한 합동작전으로 장악했던 사건으로 이해하게 될 때 그 동안 수수께끼로 남아 있던 역사의 진상이 확연히 드러나는 것이다.

 

 2.백제 지도의 명문을 보면 이 점이 더욱 문명해진다(백제와 왜연합군이 큐슈의 7소국을 평정한 것)-칠소국과 칠지도

 

이러한 시각에서 백제 칠지도 의 명문을 보면 이 점은 더욱 문명해진다. 즉 고이왕 16년(249년)에 큐슈의 [七小國칠소국(쯔쿠시 연해 각국의 족장 치하 공동체적 제집단)]을 평정한 이래, 이 정벌작전에 연합군으로 편성되어 참가한 기나이의 야마토 조정에 대하여 백제본국은 큐슈에 개척한 분국적 성격의 전진기지인 [구다라]로 하여금 현지에서 칠지도 를 제작, 영원한 우호를 다지고 기념하는 신표로 삼았다. 이를테면 이것은 한반도로부터 당시 백제의 세력이 일본열도에 본격적인 식민지 개척을 위한 진출을 시도한 이래 대규모의 정벌작전을 감행하여 달성한 소기의 성과를 기념하는 의미의 매우 소중한 증거물이었던 셈이다.

 

 또한 이때 정벌한 그 [七小國칠소국]이 나중 백제 주도하에 [임나연방]의 모태로 성장하게 되는 것도 다 이런 연유에서였다고 볼 수 있다.

 

2.일본서기 신공기에서 고이왕 정벌 기사를 삭제하기위해 왜곡. 이주갑인상설이 등장

 

그래서 사실은 큐슈의 有明海유명해(현재큐슈 玉名(다마나)市앞) 연안의 [구다라]의 중심으로  그 평정한 [7국]을 旁屬國방속국으로 삼은, 이른바 [海西諸韓 해서제한의 땅(큐슈 섬) 기나이조정에서 본 큐슈의 땅은 서쪽이며 韓(구다라,시라기,고마)민족의 분국]을 백제가 할양받아, 기나이의 야마토 조정과 통교하게 되는 과정을 <신공기>는 말해 주고 있다. 요컨대 고이왕 시절에 일본의 큐슈가 백제에 의해 정벌당하는 역사적 사실을 의도적으로 감추기 위해 <일본서기. 편찬 당시, 고이왕 재위시대의 것을 모조리 삭제해 버릴 수 있는 교묘한 방편으로 고안해 낸 것이 백제 왕명의 허위기재화 사망 및 즉위 기사의 대체였던 것이다. 이른바 二周甲引上說이주갑인상설의 등장도 여기서 유래했던 것이다. (임나흥망사 2 끝)

 

 <칠지도:이소카미신궁에 보관된> 

 <일본 큐슈소국인 7개 소국(七小國)을정벌한 백제,야마토왜 연합군은 칠지(7개의가지속국/旁屬國)처럼 본국백제에 충성을 맹세한다는 의미와 상징으로 7支를 만들었다>-7支상징의 의미

 

 

출처 : 전혀 다른 향가 및 만엽가
글쓴이 : 庭光散人글돋先生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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