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nguage & ... Writing/솔본분석모음

단군조선은 정말 있었을까?

monocrop 2007. 3. 7. 03:54

2005-01-01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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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의 제민족 역사를 들여다 보면 정말 고조선이 있기라도 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단군조선의 강대함에 비해 주변의 다른 민족이 단군조선을 기억하는 흔적이
거의 없기 때문이지요.

우리 단군조선이 정말 동북아시아의 패자였고 그 문물이 뛰어나서 모든 제민족이
우리를 흠모했다면 당연히 그들의 전승민담 또는 기억 어딘가에 단군에 대한 실마리가
있어야 할텐데.... 그런 것을 찾기가 힘들군요..

그리고 제가 보기에 한단고기는 그 신화적 측면에서 전형성이 현저하게 떨어져 보입니다.
대개 어느 민족이든 그 시조신화에는 창세기가 나옵니다. 그것도 아주 자세하게 드라마틱하게
전개되죠.

그런데 한단고기에는 아주 간략하게 언급만되어 있고 특히 해와 달을 재정비 하는즉 일월조정
이 없습니다. 아주 희귀한 경우죠.

반면에 우리 민속 무가에서 전승되어온 창세설화에는 그 모든 요소가 다 갖추어져 있습니다.
완벽하게 말이지요.(김쌍돌이본)

그런데 또 여기에는 단군의 단자도 비치질 않는군요.
그보다는 미륵이 주인공입니다.

미륵이 우주을 창조하고 나자  석가가 인간세계를 탐내고 그래서 내기를 하다가 석가가 반칙을
해서 미륵을 이기고 미륵은  다 양보하고 잠자러 간다는...

이런 점을 고찰해 보면 한단고기는 단군치세가 샤먼킹의 세계였음에도 불구하고
대단히 유교적이거나 혹은 노장사상적인 文의 요소를 내세우고 있습니다.
당대의 시대적 상황과 잘 안맞죠.

이러한 면에서 한단고기, 특히 태백일사는 위서라기 보다는 대단히 윤색되어 진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그 구성을 살펴보면 성경의 텍스트 구조를 모방한 흔적이 역력하죠.
창세기, 신명기, 열왕기, 잠언등....

더욱 한단고기가 제게는 어렵게 느껴지는 것은 거기에 등장하는 용어들이 원시알타이어적 요소가
거의 없다는 것과 있다해도 통일적으로 분석해 내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저에게는 후대에 누군가가 상당히 번안해서 개작했을 가능성을  시사합니다.
물론 제가 아직 실력이 달리는 이유가 더 크겠지만요.

하지만 그렇다고 한단고기가 위서라는 뜻은 아닙니다.
한단고기의 많은 부분은 북방아시아의 제민족이 통일되었던 시기의 모습을 그려보는 단서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이 부분은 서양학자들도 자료가 없어 고민하는 부분이기에 면밀히 검토를
해볼 필요가 있는 거죠..

단군조선의 모습은 그 자체 텍스트로만 해석할게 아니라 북방제민족간의 관계속에서도
파악해야 설득력이 있어 보입니다.

-솔본-











* 송준희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5-07-31 16:22)




獨天文 (2005-01-01 16:52:51)  
허성정 국사광복 국민운동본부 이사님의 저서 '아! 고구려'를 읽어보길 권유합니다.

중국 고대사서는 춘추필법에 의거하여 고대 주나라가 단군조선의 위협을 받고 쩔쩔매던 사실을 숨기기 위해 단군조선을 북적, 산융이라는 유목민족의 이름으로 교묘하게 위장시켰습니다.

사대모화사상과 친일 식민사관의 포로가 된 국내 역사학계는 환단고기를 위서라고 하지만 오히려 사마천의 사기와 수호전 및 삼국지연의가 그대로 사기꾼의 위서인 것입니다.
茶香 (2005-01-01 17:36:22)  
'솔본'님이 지적하신 대로 단군조선은『후대에 누군가가 상당히 번안해서 개작했을 가능성을 시사합니다...단군조선의 모습은 그 자체 텍스트로만 해석할게 아니라 북방제민족간의 관계속에서도 파악해야 설득력이 있어 보입니다.』는 말씀에 공감합니다.
우리의 고대사에 관한 기록,특히 고조선을 비롯하여 연대가 올라가면 갈수록 당시의 시점과는 수천년이나 후에 기록된 문헌만으로 연구를 하는 것이 스스로를 혼란에 빠지게 하는 함정이 되고 맙니다. 중국은 갑골문을 통해 전승되어오는 기록에 대한 검증을 지난 100년간 철저히하여 잘잘못을 가렸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장이나 학설만 있을 뿐 검증은 없는 것이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돼놈이라면서 하대하는 중국은 어떻게 자신들의 역사를 찾아나섰는지 《천년의 학술현안》(일빛사)을 일독하시기를 권합니다. 물론 그 외에도 여러분들이 수시로 인용하는 양계초, 서량지, 고힐강, 당란 등의 학자들이 당시의 역사를 해석한 저술들을 참고하시면 더욱 좋을 것입니다.
그나마 다행으로 생각되는 것은 우리나라에서도 박창범 교수님이 천문을 통해 역사를 해석하려는 시도를 보인 것인데, 중국에 비해 현저히 뒤늦은 감은 있으나 바람직한 인식의 전환이라고 봅니다.
허성정 (2005-01-01 18:17:34)  
간단하게 질문해서 '환단고기'가 없다면 지금의 서요하 지역의 대릉하를 중심으로 한
'홍산문화'와 '하가점하층문화' 등이 설명될 수 있을까요.

여기에는 3만평이나 되는 거대성터를 중심으로 70여 개의 성터가 발견되었습니다
'성터'와 '청동기'는 분명히 '국가(state)' 발생의 근원이라고 모든 인류학자들이 말합니다.

자, 국가(state)가 발생해서 존재했다는 증거는 나타났는데 '문헌사료'가 없습니다.
소위 서토의 사기로 부터 비롯되는 정사에는 이 지역에 대한 역사가 단 한 줄도 없습니다

환단고기가 아니면 홍산문화와 하가점하층문화를 설명할 수 있는 문헌이 이 지구상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환단고기가 위서니 윤색한 작품이니 하는 것은 일종의 사치입니다.

그 거대한 유물과 유적에 대한 역사적 근거를 설명해 주는 책이 한국에서 발견되었고 그것이 환단고기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가 필요한 것이지 위서니 하는 얘기를 하고 있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茶香 (2005-01-01 18:29:39)  
『국가(state)가 발생해서 존재했다는 증거는 나타났는데 '문헌사료'가 없습니다』
물론 그렇습니다만, 우리는 너무 지나치게 문헌에만 의존하는 경향이 심합니다.
그 지역에 나온 유물을 있는 그대로 해석하면 됩니다. 그것이 일차사료지요.
그러므로 '홍산문화'와 '하가점하층문화' 를 설명하는데 '환단고기'는 오히려 장애가 될 뿐입니다.
'환단고기'는 이들 문화권이 존재했던 시기로부터 수천년이 지난 후에 후대의 시각으로 편집된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예컨데 우리의 할아버지 세대가 사용했던 '요강'이 앞으로는 이것을 접해보지 않은 세대들에 의해 '과자그릇'으로 해석되는 것과 유사하지 않을까 합니다.
그러므로 '환단고기'의 기록을 있는 그대로 믿을 수 없다는 것은 위서라기 보다는 후대에 편집된 문헌이 어쩔 수 없이 가질 수 밖에 없는 한계이며, 여기에다 편집자가 정치적 혹은 사회적인 목적을 바탕에 깔고 있었다면 그 해독은 더욱 심할 것입니다.
중국은 이미 삼대에 쓰여진 당시의 기록을 통해 공자의 역사편집을 이미 규명해 놓았으며, 취사선택의 기준을 마련해 놓고 있는 것입니다. (최근에는 중국의 정치인들이 역사에 개입해서 정치적 이익을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이 문제가 되기는 합니다만...)
正音 (2005-01-01 18:34:56)  
후대에 개작의 가능성은 거의 전무 하다고 봅니다. 박창범 교수님의 단군조선에 대한 천문관측과
한단고기에서 전하는 가림토문 등등 아무리 학식이 뛰어난 사람들 일지라도 개작? 오늘날 고고학적으로
발굴되는 가림토와 비슷한 유형을 개작할수 있다 봅니까? 천문관측도 우연도 정도 이지 그 엄청난 일치점
등을 두고도 개작이라는 말이 나오는지 어이가 없군요! 허성정님은 고고학적 발굴 결과들이 서서히 한단고기의 기록과 일치해 간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개작이라? 그 개작자가 있다면 그는 예언가인가요? 神인가요?
소설 丹과 백두산족에게 고함! 등의 저자이신 고 여해 권태훈옹의 저서를 보면 쉽게 말하자면 우리의 사상적인
맥들을 보면 형이상학과 형이하학의 양립적 구조로 그 사상의 맥이 이어져 왔다고 합니다.
그 형이상학적 구조의 대표격은 孔子의 사상으로 우리 고유의 仙道수련의 핵심요지는 易經의 계사전 안에
공자가 說한 내용이 있는데 이것이 형이상학적 心宗으로 이것이 우리 고유의 선도의 핵심적 맥이며,
유유히 지금껏 내려왔다고 했습니다. 이런 형이상학적 구조외에 주문,부적등의 좌도방문의 형이하학적인
구조로 내려온 사상이 있는데 이는 성현들이 그 기량이 미치지 못하는 후학들을 위한 배려라 합니다.
주자학에 몰입하여 이러한 수행,사상이 이단시 되었지만,선도에선 그 선도의 맥의 지나국의 분파로 요,순,
공자에게 전해졌다고 봅니다. 공자가 글로서 학문적으로 동이족의 고유 사상을 역경의 계사전에 묵시적으로
기록을 하였다는 겁니다. 아무튼 한단고기등의 사서에 대한 규명은 실증이고,그 실증의 강역은 한반도에
국한된게 아니라 한반도,만주,몽골,연해주,지나국 중,북부 지역이 될 겁니다.
허성정 (2005-01-01 18:38:52)  
해괴한 논리군요. 환단고기가 홍산문화와 하가점문화 연구에 걸림돌이 된다구요?
서토문헌은 오래 전에 쓰여졌기 때문에 믿을 수 있고, 환단고기는 이제 발견되었기 때문에 믿을 수 없다!
발견이 이제 되었을 뿐 없었던 역사를 조작해낸 책이 아니지요.
무엇이 '편집'되었는지 한 번 말씀해 보세요.
正音 (2005-01-01 18:42:14)  
아마도 편집이라기 보다도 과거에 쓰여진 문헌을 가지고 오늘날 작금의 사람들이 이해하기 쉽게
옛날의 언어를 오늘의 언어로 바꾼것을 가지고서 위서를 운운하면 어리석은 겁니다.
한단고기에서 전하는 천문관측,가림토,다른 문헌에서 전하지 않는 기록들이 고고학적으로 발굴되는
것을 보면.., 이 기록을 정리한 사람은 적어도 현대적인 언어를 구사했겠지만,그 본지는 변하지 않았기에,
고고학적으로 증명이 되는 겁니다.
茶香 (2005-01-01 18:42:41)  
개작은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거두절미하고 우리는 여기서 한가지를 선택해야만 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우리민족의 역사가 대륙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만, 최소한 대륙 삼국이라는 주장이 난무하고 있는데 대해서는 우려를 금할 수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현실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기록은 지금으로부터 1400년전의 '문무왕비문'입니다. 그 내용에는 고조선시대로부터 신라의 삼국통합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 들어있습니다. 여기에서도 신라의 선조들의 역사는 대륙에서 시작되었으나 신라 자체는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한반도의 동남부로 되어있습니다.
그러면 이 문무왕비문 조차도 조작된 것으로 보아야 합니까?
허성정 (2005-01-01 18:44:16)  
환단고기의 가림토문의 예를 들어 봅시다. 그것이 개작 윤색이 될수 있는 부분입니까?
훈민정음은 28자 이지만 환단고기의 가림토문은 38자입니다.
그 생김새를 조작하고 그 모양새를 어떻게 만들어서 조작을 한다는 것입니까?
그렇다면 환단고기의 편집자 계연수 선생과 이유립 선생은 세종대왕보다 더 위대한 언어학자였단 말입니까?
현대의 노암촘스키와 같은 세계적인 언어학자 보다 더 아이큐가 높다는 얘기입니까?
허성정 (2005-01-01 18:45:15)  
엉뚱한 방향으로 끌고 가지 마세요. 지금 환단고기의 사료가치성에 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正音 (2005-01-01 18:47:07)  
우리가 알고 있었던 백제장군인 흑치상지(黑齒常知)는 한반도인 입니까? 대륙인 입니까?
허성정 (2005-01-01 18:48:06)  
아무리 천재라도 가림토문과 같은 38자를 그렇게 짧은 시간에 조작해 낼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누가 보더라도 옛날에 어느 문헌에 있는 것을 그대로 베낀 것이란 말입니다.
즉,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전적을 보고 그대로 필사한 것이란 말입니다.
그것이 환단고기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 전해진 것이구요
茶香 (2005-01-01 21:36:06)  
지금 우리가 논하는 것은 사료의 내용입니다.
만약 가림토문자를 논하시는 것이라면 『일본고대문자연구』(형설출판사/문학박사 김문길 저)를 참고하시면 도움이 되실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가림토문자로 기록한 고대사의 내용은 없습니다. 가림토문자의 분포나 기원에 대해서 추정하고 있을 뿐입니다. 계연수(桂延壽) 선생이나 이유립(李裕岦) 선생의 성이 왜 중국글자라고 하는 한자로 표현되었는지 기원을 아는 것도 중요할 것으로 봅니다.

묻고 싶습니다.
가림토문자로 기록한 우리의 고대사 내용이 발견되었습니까?
그 문장을 해석하신 분이 계십니까?
가림토문자가 고조선 혹은 단군시대의 글자라는 것이 증명되었습니까?
계연수 선생보다도 1300여년 전에 실존했던 인물들이 기록한 한민족 최고(最古)의 역사기록보다 환단고기를 더 신뢰해야 합니까?

일전에도 가림토문자라고 주장하였으나 면밀히 검토한 결과 원나라 시절의 문자였던 것으로 규명된 바도 있습니다. 가림토문자라고 하나 명확하게 규명해야 할 과제가 남아있는 것이며, 전세계 어느 나라의 문자도 처음부터 모음과 자음이라는 근거에 의해 이루어진 문자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가림토문자 또한 후대에 등장한 글자라는 추정이 가능하며, 따라서 고대의 글자로 주장하기에는 무리가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관건은 고조선 시대의 글자로서 기록된 역사가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우리 문자가 있었다고 할지라도 기록이 없거나, 해독하지 못한다면 주장은 할 수 있으나 확정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가져야할 역사연구의 자세는 문헌과 당시의 유물과 과학, 언어, 문화와 풍속 등 그 어떤 것으로 접근해도 동일한 결론이 도출되어야 한다는 점을 수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돼놈이라고 우리가 하대하는 중국인들은 우리보다는 100년 가량 앞서있습니다.
그들은 그동안 숭배의 대상으로 비판이 터부시되어오던 공자를 '역사 조작의 원조요, 중국인들의 정체성을 흐려놓은 장본인'임을 증명하고, 지목해서 비판했으니까요.

만약에 우리에게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역사해석을 방해하는 터부가 존재한다면 우리의 후진성을 그대로 드러내는 결과를 가져올 뿐입니다. 그런 자세는 우리의 역사를 우리 손으로 말살하거나 비틀어버리는 셈이니까요.
正音 (2005-01-02 13:11:52)  
다향님 엉뚱한 방향으로 질문과 답변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한단고기의 사료 가치성에 대해 허선생님이 질문하고 있습니다.
즉 가림토문을 어떻게 조작하였는가? 를 묻고 있습니다.
님은 거기에 대한 구체적인 답변을 회피하고 막연히 딴 서책을 근거로 화제를 다른곳으로 유도하고
있습니다. 조작이 가능하다는 것에 대한 실증적인 논거를 제시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가림토문과 같은 글자체가 고고학으로 발굴되었어도 우연의 일치라 보아도 되겠습니다.
한두개도 아니고 아주 여러개가 나와도 님은 조작이라 보시겠습니까?
전 한단고기를 정리한 사람들이 현대적인 언어에 입각한 한자를 구사하여 썼다는 것은 그 시기에 한글보다는
한자가 보편적인 문자였고,다만 언어의ㅡ 효율성을 이용했을 뿐이지 그 本旨는 편한게 없어 고고학적으로
일치성이 늘고 있다 봅니다. 그 한단고기를 이루는 사서가 전할려는 근본취지와 사건등은 변함없이,
가감없이 전했다고 보는 겁니다. 그래서 고고학적인 성과와 놀라운 일치율을 보인다고 합니다.
근본 취지를 왜곡,개작했다면 고고학적인 일치율은 기대하기 힘들다고 봅니다.
아무리 천재라도 천문관측에 대한 조작은 어림없는 일 입니다. 가림토문도 옛부터 전해져오는 글을 보고
베낀 것이지,한단고기 저자들도 그 뜻을 알지도 못했을 겁니다. 이러한 기록을 조작이 가능하다면,
그 조작자는 神인가요? 전 神이라고 밖에 볼수 없습니다. 인간으로는 불가능하다고 보니까요..,
茶香 (2005-01-02 23:30:42)  
正音님, 문장의 요지를 잘 파악하시면 좋겠습니다.
제가 말씀드린 것은 역사의 내용을 변조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것은 이미 공자로부터 시작하여 사마천 조차도 사기에서 역사를 조작했음을 양계초를 비롯한 유력한 학자들이 이미 증명했습니다. 그것마저도 설명이 필요하다면 장문이 되기는 하겠지만 성의를 보이는 차원에서 글을 올릴 용의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사실 조차 모른다면 역사를 논할 필요가 있을까 의문입니다.

가림토문을 어떻게 조작하였는가를 설명하라는 주문은 이해가 되지 않는군요.
가림토문으로 기록된 역사가 없으며, 이를 해독한 바도 없는 마당에 조작 운운하는 것은 처녀에게 사내아이를 가졌느냐, 여자아이를 가졌느냐고 묻는 것과 별반 다를 바가 없는 것 같습니다.

님의 주장처럼 한단고기가 어떤 부분에서는 고고학적인 성과와 놀라운 일치를 보이고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만, 반대로 고고학적인 성과와 배치되는 부분이 있음도 사실입니다.
(이것을 증명하라고 하시면 기본개념부터 처음부터 설명하는 수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제가 그동안 기록한 내용이 약 500페이지 정도되는데 이를 어떻게 요약해야할지 난감하군요. 다만 솔본님이 언어학적 차원에서 접근하는 방법이 제가 연구해온 것과 방향이 부합하는 점이 많다는 점에서 공감하는 것입니다. 물론 전부는 아닙니다만.)

正音님이 특정한 주제를 설정해놓고 저와 토론을 원하신다면 기꺼이 응하겠습니다.
거듭 말씀드리거니와 제가 공부해온 것은 고조선문자로 기록된 우리의 역사에 관한 것입니다. 분명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고조선시대에는 가림토문자는 존재할 수가 없다는 것이며, 한단고기에 고고학적인 성과와 일치하는 것도 있으나 그렇지 못한 부분이 있다는 것은 한단고기 자체가 나타나기 이전의 역사기록을 모본으로 하였다는 반증으로 저는 해석하고 있습니다. 그 모본에는 역사 사건의 기록과 함께 천문도 당연히 포함되었겠지요. 한단고기가 그렇게도 정확하다면 왜 한반도에서 발견되는 가장 오래된 역사기록과 그리도 다른지 설명하시는 것이 순서가 아닐까 합니다. 거기에는 소호금천씨와 진시황이 신라인들의 조상으로 되어있습니다.

『 가림토문과 같은 글자체가 고고학으로 발굴되었어도 우연의 일치라 보아도 되겠습니다. 한두개도 아니고 아주 여러개가 나와도 님은 조작이라 보시겠습니까? 전 한단고기를 정리한 사람들이 현대적인 언어에 입각한 한자를 구사하여 썼다는 것은 그 시기에 한글보다는 한자가 보편적인 문자였고,다만 언어의ㅡ 효율성을 이용했을 뿐이지 그 本旨는 편한게 없어 고고학적으로 일치성이 늘고 있다 봅니다...,』

님이 언급하신 이 말씀은 마치도 제가 가림토문자의 존재를 부정하는 듯한 뉴앙스를 갖는 것으로 보입니다만, 고조선 시대에는 가림토문자가 존재할 수가 없으며, 가림토문자는 고조선 시대로부터 수천년이 지나서 등장한 글자라는 뜻입니다. 물론 가림토문자로 기록된 역사내용은 현재까지 없습니다. 그저 유사한 글자를 새긴 바위나 관련문자들이 단편적으로 발견되었을 뿐이지 체계적으로, 일정한 내용을 갖춘 문장은 없다는 말씀입니다. 저로서는 가림토문자를 놔두고 왜 굳이 한자로 기록하였을까 하는 것과 우리의 역사 기간 중에 가림토문자가 일반적으로 사용된 문자였다면 역사기록에 왜 남아있는 것이 그리도 없을까 하는 의문이 듭니다.

『조작이 가능하다는 것에 대한 실증적인 논거를 제시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는 이미 앞에서 역사의 내용을 변조한 원조가 공자이며, 사마천으로서 중국의 학자들은 이미 논문을 통하여 증명하고 비판한 바가 있습니다. 따라서 어떤 문자로 기록하든 내용은 얼마든지 변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부분에 대한 관심이 있으시다면 <「中國歷史硏究法」, 第三章 ‘史之改造’, 『梁啓超史學論著三種』, 香港 三聯書店, 1988, 78쪽>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물론 이외에도 관련 내용들은 다수 발견할 수 있습니다.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닐 수 있으나, 이 정도면 대체적인 답변이 이루어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보다 구체적인 주제를 정해서 토론을 원하신다면 언제든지 응하겠습니다.
正音 (2005-01-03 10:52:47)  
모든것을 한반도를 기점으로 우리의 역사를 이해한다는 것은 무리 입니다.
이 한반도는 우리 역사의 시발점은 아니라고 보고있고,이 한반도를 기점으로 한국사를 이해한다면,
한단고기의 내용은 거의다가 허구 입니다. 가림토나 천문관측도 허구고 즉,한단고기는 소설인 것이죠!
가림토에 관계된 고고학적 유물이 홍산문명에서 발굴되었다고 하더군요! 그 홍산문명이 발굴된 곳은
단군조선의 기본 강역 이었고,지나국의 사서에도 없는 삼황오제 이전의 문명이었다고 하더군요!
그곳에서 발굴된 가림토계의 글자의 흔적은 뭐라 해야 하나요? 또 그 강역이 단군조선의 기본강역이었슴을
한단고기는 전하고 있고,이 한반도를 기점으로 한다면 뜬구름 잡기 인데,님의 주장은 이곳의 사이트의
주장과 상당한 괴리감이 있다고 봅니다. 또 사서에서 殷나라가 鬼邦을 멸했다는 기록조차 없다고 하는데..,
한단고기는 이를 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현대에 와서 갑골문 해독으로 殷나라가 鬼邦을 멸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것은 어찌 해석해야 합니까? 님과는 토론의 격차를 줄일수 없다고 봅니다.
한반도 만을 기점으로 인식하는 역사관으로는 한국사를 이해할수 없다고 봅니다.
한국사의 흔적은 고대사로 갈수록 반도보다 만주등의 대륙에 많이 상존하지,반도는 그만큼 흔적이 많지
않다고 봅니다. 님과의 토론은 서로간의 시간적 낭비이고..,격차를 줄일수 없다고 봅니다.
님과 그 취지과 같은 분과 토론을 권합니다.
茶香 (2005-01-03 13:23:46)  
正音님!
앞글은 저에게 하시는 말씀이신가요?
아니기를 바라지만 행여라도 저에게 하신 말씀이라면 아마도 앞에서 제가 쓴 글을 읽어보시지 않으신듯 합니다. 분명히 말씀드리거니와 한반도에서 발견된 문무왕비문을 예로 들어 대륙에서의 우리의 역사가 2천 5백년 이상 진행되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일부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삼국은 물론이며 대륙고려라는 말은 수긍할 수 없다는 것이 저의 견해입니다. 분명히 고조선과 한국을 시발로하는 우리의 역사무대는 대륙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우리 역사를 한반도를 기점으로 이해한다고 하는 것은 님의 착각인 듯합니다. 대륙을 기점으로 삼국과 고려를 이해려한다면 이 땅에서 발견되는 가장 오랜 기록과 유물은 모두 부정하며 외면해야 한다는 현실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환단고기? 민족정기를 높이겠다는 취지에서 나온 것이라보여서 물론 좋습니다.
그러나 이런 기록들이 아무리 우리의 자긍심을 높이고, 한 트럭분의 후대 사서가 발견된다고 해도 단 한개의 파편 조각이 말하는 내용이 훨씬 무게가 있는 것입니다. 이런 증거들을 외면한다면 공자가 역사를 왜곡한 것과 우리가 무엇이 다르단 말입니까?

홍산문명이 왜 단군과 연결되어야 하는 것입니까?
중국은 중국대로 자신들과 연결시키고 있는데 말이죠.
한중간에 충돌되는 이런 견해를 해결하는 것은 누구나 이해할 수 있고, 논리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설득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주장만하지 왜 그런 것인지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못합니다. 무조건 자기 것이라고 하면 자기 것이 되는 것입니까?

님의 지적처럼 "한국사의 흔적은 고대사로 갈수록 반도보다 만주등의 대륙에 많이 상존하지, 반도는 그만큼 흔적이 많지 않습니다" 그 고대사의 흔적은 고조선 시대의 유물과 기록이 대륙에서 수천년의 긴 잠에서 깨어나 그대로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음에도 우리가 가림토에 눈멀어 있는 동안 조상님들이 남긴 유물은 중국 것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다시 물어볼까요.

우리가 알에서 태어났다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우리가 차례를 지내는 것은 무슨 이유입니까?
신라왕관은 왝 그런 형태를 띄어야 하는가요?
무궁화가 왜 국화가 되었습니까?
가림토문자를 놔두고 주체성이 강하고 정체성을 찾는 님들은 성씨를 왜 한자로 나타냅니까?
삼국의 건국시조는 한결같이 사마천의 사기에 나오는 중국왕조에서 갈라져 나온 것으로 되어있는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김부식도 이 부분에 대해 상당한 의문을 나타냈습니다.)
이런 질문에 답할만큼 가림토문자 혹은 고대 역사발생 당시에 기록된 유물이 발견된 적이 있습니까?

이 질문에 답할만큼 한단고기나 기타 사서에서 답이 있다면 제 주장을 과감하게 접겠습니다.
답변을 기대합니다.

주장한다고 다 정답이 아닙니다. 더구나 증거를 한개라도 제시할 수 없다면 더더욱 그러하겠지요.
그것이 우리가 돼놈이라고 하대하는 중국인들보다 역사인식이 낙후된 원인입니다. 중국은 지난 100년동안 자신들이 수천년간 자긍심으로 지켜온 터부를 과감히 포기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의 강단 사학자는 한반도를 결코 놓지 않으려하고, 이곳의 일부 님들은 대륙을 결코 놓지 않으려 합니다.
그러나 양측이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증거를 내놓지 못하면서도 터부를 고수한다는 점에서 오십보 백보에 있는 분들이라고 저는 봅니다. 제 말이 틀렸다면 앞의 질문에 한기지라고 납득시켜 주시기 바랍니다.
도성덕립 (2005-01-03 15:23:09)  
꼬리만 땅 밖으로 나온 맘모스 보고 뱀이다 아니다 하는 것과 같습니다.
맘모스를 미리 알고 있는 사람과 본 적이 없는 것은 못 믿는다는 사람과는 논쟁이 되지 않습니다.
어차피 실증사학은 땅 파서 나와야 인정합니다.
트로이 전쟁도 신화였다가 실리이만이 몇십년 두루 땅 파고 다니다 발견하고 나서야 역사가 되었습니다.

서양의 학문은 원리가 없고 뵈는 것만 가지고 따집니다. 귀납법적 학문 연구죠.
지구와 태양 사이의 거리가 지금과 같은 것은 "아주 엄청나게 재수가 좋아서"라고 합니다.
지금의 세상이 다 재수의 산물이고 힘이 세면 약한 자를 등쳐 먹어야 되는게 그들의 철학입니다.
그 철학으로 인디언을 학살하고 흑인을 노예로 부려먹은 미국이 일등, 식민지 피 빨아먹고 큰 전쟁을 일으켜 엄청난 사람을 죽인 일본과 독일이 이, 삼등인 세계를 만든 것입니다.
자식들에게 작은 애 패서 뺏어 먹으라고 가르칠 수 있습니까?
그게 바로 귀납법의 단점입니다. 도덕과 정의는 가면으로 사용하지요.

그러나 환단고기 같은 우리 민족사에 등장하는 우주의 주재자는 좌시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 분이 동양에 내려 주신 철학은 모든 것을 설명해 줍니다.
음양오행과 같은 연역법에서는 양자와 전자의 무게까지도 미리 추론됩니다.
역사를 정신사적 측면은 완전히 무시하므로 전세계의 땅을 다 파보지 않는 한 이 논쟁은 끝이 나지 않습니다.
역사서의 첨삭은 상식적으로 추론하면 얼마든지 가려낼 수 있습니다.
가림토문자나 천문학적인 기록은 전세계 땅을 다 파 보지 않아도 상식적으로 후세의 창작일 수가 없는 것이죠.
일본의 식민지 주장인 임나일본부는 상식적으로 말이 안되죠.
사서란 사서는 다 조작의 가능성이 있으니 땅이란 땅은 다 파 보겠다면 어느 세월에 진리를 밝혀 냅니까?
正音 (2005-01-03 17:01:22)  
다향님 님께 무례했다면 죄송 합니다. 님의 생각등을 진지하게 토론코자 하신다면
http://baedalguk.com 에 가셔서 토론하는것도 좋을듯 싶군요!
그럼 이만^^
비오는날 (2005-01-03 18:28:10)  
은왕 무정의 귀방 정벌 기사는 주역에도 나옵니다.

<周易> 既濟 : 九三高宗伐鬼方三年克之小人勿用
茶香 (2005-01-03 19:48:12)  
『사서란 사서는 다 조작의 가능성이 있으니 땅이란 땅은 다 파 보겠다면 어느 세월에 진리를 밝혀냅니까?』

그렇습니다.
사서는 아무리 객관적으로 서술한다고 해도 시대상황과 기록자의 주관이 작용할 수밖에 없기에 조작까지는 아니더라도 내용의 비중이 실제와 편차가 생길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기록과 사실의 편차를 확인하기 위해 사건발생 당시의 기록과 유물을 확인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느 세월에 진리를 밝혀내느냐는 말씀은 우리뿐만 아니라 중국도 같은 질문을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100년이 걸렸습니다.
그 바탕은 역사인식의 전환에서부터 비롯된 것입니다. 역사의 시원을 밝힐 수 있는 자료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런 인식이 바탕을 이루지 못하면 '애 업고 애 찾는 어리석음'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자료가 충분히 있는데도 바로 이런 인식을 갖는데 실패했기 때문에 재야사학이든, 제도권사학이든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심지어 제가 갖고 있는 역사책에서는 '도통한 자가 천하를 다스린다'는 사설을 늘어놓고 있더군요. 이게 역사책입니까? 차라리 책을 내지 않는 것이 도움이 될 것 같은데...
이런 류의 설명으로는 역사가 아닐 뿐더러 차라리 종교를 하나 창시하는 것이 나을 것 같았습니다.
역사에서 중요한 것은 진리가 아니라 사실입니다. 그것을 찾기 위해 땅이란 땅을 다 파 볼 필요는 없습니다.
이미 우리 앞에 있으니까요.
치우의 '동두철액'이 무엇입니까.
타 민족보다 앞선 문명을 가졌다는 상징적인 표현이지요. 그것은 출토된 고대의 유물로서 짐작하고도 남습니다. (다만 치우는 제후의 왕이 될 수는 있겠으나 당시의 시대상황으로서는 천자가 될 수는 없었습니다.)
한자의 시작은 한민족의 직계선조의 이름인 Ⅰ으로부터 비롯됩니다. 사진을 올릴 수 없어 유감입니다만, 고조선 시대의 화폐에 Ⅰ이 새겨진 것을 확인(《四庫全書》「錢錄」844-12)함으로서 한민족이 타민족보다 철기문명을 먼저 일으킨 민족이며, 문자 또한 가장 먼저 사용했음을 알게 합니다.
이렇게 설명하는 것은 대다수 사람들이 랑케사관을 비판하면서 증거물을 찾을 노력을 하지도 않으며, 오히려 랑케사관을 자신의 나태함을 합리화하는 도구로 비겁하게 악용하고 있다는 의심을 갖게 하기 때문입니다. 증거는 이미 필요한 만큼 있습니다. 우리가 고조선 시대의 기록을 읽지 못하는 '눈 뜬 장님'이기에 그런 구차한 변명을 하는 것뿐이죠.
중국을 욕하려면 최소한 중국보다 이론적으로나 실증적으로 앞서야만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럴 입장이 못 됩니다. 어느 쪽으로 말해도 우리가 중국에게 실력이 달리니까요.
그러므로 추상적인 이론으로 시작하여 추상적인 결론을 내리기 보다는 하나의 실증자료를 가지고 이론적으로 증명하는 것이 훨씬 값진 것입니다. 저도 한단고기, 삼일신고 등의 책을 지금 보고 있습니다만 한결같이 문헌 속에서 시작하여 문헌으로 끝나더군요. 사진으로 증거라고 제시하는 것도 사실은 그렇게 연결시킬 이유도 없고, 또한 그 이유가 타당하지도 않지요. 이제는 무조건 우리는 위대했다, 남보다 앞섰다, 찬란했다는 등의 감성을 자극하는 말보다는 바늘 한 가지 만이라도 발견해서 타당한 이유를 제시하는 것이 우리의 역사를 제대로 확인하는 길이라고 믿습니다.
충분히 전제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는 자료가 박물관에 널려 있으니 랑케사관을 탓하지 마시고 그것을 우리 눈으로 읽을 수 있도록 스스로를 연마하는 도리 밖에 없을 것입니다.

무조건 대륙은 우리의 역사라고 주장하는 것은 일본이 독도를 자기 영토라고 주장하는 심보와 다를 바 없기 때문입니다.(대륙은 우리 역사의 출발점이라는 사실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니 오해 없으시기를...)

正音님!
저에게 결례를 하신 적이 없으니 마음에 두시지 마시길 바랍니다. 오히려 제가 결례를 하지 않았나 걱정이 됩니다만 제가 본래 의도한 바를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많은 책들이 있습니다만, 《천년의 학술현안》(일빛사)을 시간이 나시는 대로 꼭 일독하시기를 권합니다. 이 책이 우리의 역사를 찾아주지는 않으나 우리가 역사를 어떤 방식으로 찾아야 할 것인지 인식을 바꾸는데 도움이 될 듯하여 권하는 것입니다.
정진하시어 우리 역사를 밝히시는 주역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正音 (2005-01-03 20:12:01)  
비오는 날님! 제가 알고 있는 취지를 잘못 전달했군요!
갑골문의 귀방: 은나라의 갑골문에서도 환단고기 단군세기의 기록이 사실임을 입증하는 유물유적이 발견되었습니다. 즉 BC 1291년 단군조선 제21세 소태 단군 재위 때 은나라 국왕 무정이 '귀방'을 쳤다는 기록이 환단고기의 단군세기에 남아 있는데, 과연 은나라의 갑골문에서 은나라의 귀방정복 사실에 대한 기록이 나타나서 세상을 놀라게 한 것입니다. 환단고기는 이토록 확실한 역사적 근거와 고고학적 근거를 증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귀방의 실증이 갑골문에서 드러났고,이런 실증을 기록하고있는게 한단고기라 이런 말 입니다.
도성덕립 (2005-01-04 14:11:17)  
학문을 함에 있어, 꼭 눈에 보이는 바로 증명하고 물질로 보여 주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학문의 목적이 무엇일까요? 단순히 호기심을 충족시키고 남에게 자랑하는 것일까요?
과학을 가장 안믿는 사람이 과학자입니다. 완전히 믿어 버리면 발전하지 못하니까요.
과학은 영원히 사실을 밝혀내지 못합니다. 온 우주의 모든 증거를 수집하기 전까지는요.

특히 역사에서는 반실증이 아주 중요합니다.
역사상의 많은 분들이 기행이적을 행하셨습니다. 물론 학문에서는 다 과장이나 조작이라고 하겠죠.
그래서 야사나 구전은 전부 별로 쓸모없는 것으로 여기고, 종교 경전은 허황된 넋두리겠죠.

자, 전세계 인구의 약 90%는 영혼을 믿습니다.
학문하는 입장에서는 다 환상 속에 사는 거죠. 영혼을 실증할 길이 없으니까요.
사실, 학문하는 입장에서는 장례식 가서 "명복을 빕니다"라고 하는 것은 그저 입에 발린 소리죠.
솔직한 말은 "고기가 되셨군요." 정도가 되겠죠. 영혼이 없으니 죽으면 그냥 고기일 뿐이죠.

과학이 더 발전하면 영혼도 실증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그 때까지는 그냥 나온 유물만 가지고 깨진 조각 맞추기 해야 합니까?
조각 중 유실된 부분이 많으면 추리를 하겠죠. 상상의 나래를 펼칩니다.

역사라는 대하는 유유히 흐르면서 보여 주는 바, 그 반 이상이 실증할 수 없는 신의 이야기입니다.
아주 태고적부터 동양에서는 상제님께 제를 지내고 서양에서는 미트라 혹은 알라를 섬겨 왔습니다.
천벌을 받는 이야기도 많고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영혼의 존재를 체험했습니다.
다 환상일까요? 환상을 보는 게 인간의 고유 특질입니까? 그렇다고 하겠죠.
성인들의 기적을 행하는 것을 본 사람들의 기록이 무슨 목적이 있는 거짓말 같습니까?
종교의 가장 기본적 속성이 거짓을 척결하는 것입니다.

도통이라는 말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은 아마 자기들은 살아있는 고기라고 생각하고
영혼이라는 것은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만들어 낸 개념이라고 여기죠?
역사의 기록들을 보면 정신적 측면을 공부하는 것이 더 학문적이었는데,
인류가 타락하면 할수록 유물론적으로 흐르죠. 유물론이 아니면 아무도 인정 안한다구요?
그러라고 하세요. 진리를 아는 자, 도통하는 자가 이제 곧 세계를 지배합니다.
도덕과 정의는 5만년간 숨어 있다가 이제 그 위력을 보여 줍니다.

학문을 한다고 이중 인격자로 살지 마세요. 실증 안되는 사건들이 숱하게 일어납니다.
보이지 않는다고 진실을 짓뭉기지 마세요. 영혼을 근본으로 역사를 탐구하세요.
민영환 열사의 푸른 대나무를 보는 일본인들의 마음으로 역사를 보지 마세요.
기적이란 없다고 여기는 일본인들이 그 일대를 샅샅이 뒤졌으나 아무 조작의 증거를 찾지 못했습니다.
그러면 그 청죽은 역사가 아니고 있었던 일이 아니라고 하시겠습니까?

한 원시인 마을이 있어 미국이라는 아주 덩치가 큰 깡패가 거의 지배하고 있다고 합시다.
힘이 없으면 맞고 살아야 하니 모두 힘을 기르는데 몰두합니다. 중국이라는 자가 조금 있으면 그 미국
과 맞짱 뜰 정도가 될 것도 같습니다. 힘을 기르는 것과 상관 없는 연구는 발표도 못하게 합니다.
그 중 한 작은 자가 이상하게 힘을 연구하지 않고 도구란 걸 연구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도구를 가진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고 주장하지만 모두 비웃습니다.
茶香 (2005-01-04 20:10:12)  
『역사의 기록들을 보면 정신적 측면을 공부하는 것이 더 학문적이었는데, 인류가 타락하면 할수록 유물론적으로 흐르죠. 유물론이 아니면 아무도 인정 안한다구요?』

제가 쓴 글을 염두에 두고 하신 말씀이라면 상당한 오해를 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유물론이 아니면 인정하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라, 작은 증거 하나로 태산같은 사실을 증명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 작은 것 하나 조차도 제대로 갖지 못했으면서 주장만 있다면 그것은 학문이 아니라는 말씀이죠.

불과 몇년전까지만 해도 서울은 역대 이래로 백제의 수도라는 것을 거의 인정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이를 주장한 사람은 한심한 사람, 학자로 취급받지 못하는 열등한 인간으로 취급하는 분위기가 팽배했었죠.
그러나 태풍을 맞아 무너진 풍납토성의 일부에서 나온 유물로서 초기 백제의 수도였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무것도 없이 문헌만으로 서울이 백제의 수도다 아니다를 놓고 지루한 공방을 하면서도 결론을 내리지 못하던 것을 토성의 잔해에서 나온 유물로 일거에 뒤집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말로서 말만 많았던 것을 잠재울 수 있었던 것은 증거물이었습니다. 역사는 윤리도덕이 아니니 증거와 논리가 없으면 이미 역사가 아닙니다.

참고로 말씀드리면 고조선 시대에 오늘날 한자로 임금 제(帝)의 원형은 ▽자 입니다.
▽자가 나타나야 임금이라는 문자를 쓰기 시작하는데 이 글자 이전의 임금 제자는 없습니다. 임금은 분명히 존재했는데 말이죠. (이것은 통치자를 임금 帝자로 표현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자 이전에 존재한 통치자를 상제(上帝)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상제라는 분이 누구인지는 설명이 길어지므로 생략합니다만, 고조선 시대의 화폐에도 이분의 이름이 그대로 남아있음을 말씀드립니다.
역사는 종교나 윤리가 아닙니다.
역사를 이처럼 윤색한 자는 공자가 그 원조이며, 대표적으로 역대 제왕이 '선양'의 방식을 취했다는 술취한 소리를 서슴없이 내뱉은 자입니다. 생각이 없는 우리들은 공자라면 일점일획도 틀림없는 진리만을 말했다고 믿고 비판이라는 것은 꿈도 못 꾸죠. 그러나 정작 공자를 신으로 받들어야 할 중국의 사학자들은 공자라는 터부를 과감하게 깨버린 것입니다. 그 결과 공자의 모순을 지적한 책들이 허다하게 나오고, 심지어 공자의 직계 후손까지 여기에 가담을 하게 됩니다.

우리는 우리의 발목을 묶고, 우리의 눈을 가리고 있는 이런 터부를 철저하게 검증하여 취사선택하려는 학문적 자세가 되어있는지 되묻고 싶습니다. 우리에게 아직도 넘을 수 없는 터부가 존재한다면 중국을 따라잡기에는 애초에 날 샌 일입니다.
비오는날 (2005-01-05 11:57:32)  
정음님/ "또 사서에서 殷나라가 鬼邦을 멸했다는 기록조차 없다고 하는데..,"라고 하시길래요.

무왕의 귀방 정벌은 춘추전국시대의 문헌에서부터 나오는 사실이고,
한단고기가 그 사실을 전하는 최초의 문헌도 아니니,
갑골문에서 실제로 증명이 되었다 해도 별로 놀랄 만한 일은 아니라는 거지요.

주역에도 나오는 기사이니 누군가 보고 썼겠지..라고 말하면 할 말이 없다는 겁니다.
머리에 먹물깨나 들은 사람치고 주역 안 읽어본 사람은 없을테니까요.

저도 한단고기의 신빙성을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이지만,
기본적인 사실 관계를 명확히 해두지 않으면 논쟁에서 매우 불리해지기 때문에 드린 말씀입니다.
진실 (2006-10-26 18:16:37)  
제왕운기에서도 단군을 설화식으로 언급하고 삼국유사에도 설화식으로 나오는데
제왕운기는 어느정도 글자가 첨삭됐다고 하더군요 그런데도 보물로 지정됐고
삼국유사는 정사라고 들었읍니다

한단고기도 이와 같은 측면에서 정사나 보물이 되야 겠지요
사마천에 사기도 거짓이 많치만 중국최고에 정사 아닙니까?

한단고기도 후대에 첨삭될 가능성도 있겠지만 그것이 정사가 되지 말란 법이
없읍니다

한단고기가 위서로 몰린것은 한단고기가 한국과 환웅.단군을 다뤄서가 아니라
북부여와 고구려.대진국을 다루고 있기 때문인것 같고여

제왕운기는 어느정도 중국을 더 띠우면서 우리 상고사를 그것보다 좀 낮추는
경향이 있어서 보물이 된것 같읍니다..시적으로 써서 좀더 같이도 있어겠겠지만

만약 제왕운기가 한단고기 처럼 북부여나 고구려 .대진국.고려 위주로 대서사시
를 쓰고 중국을 깔아 뭉겠다면 위서로 몰렸겠죠..글자 수도 첨 젖가 몇자 쓰겠
다고 했는데 적게는 한 60개 많개는 100개이상 더 글이 붙기도 했다는데요

한단고기 내용중에 녹도문자를 설명하고 어느시대 무슨 문자가 있고 뭐 쫙쓰던데
결론은 한자도 한웅시대 우리가 만든 녹도 문자에 아류라는 식인데
이것이 맞다라고 처도 이런 내용을 정사로 끌고 갈수는 당시 시대상황이나
현재도 그리 쉬운건 아니죠

다분히 정치적인 이유로 위서가 됐다고 봅니다..

한단고기를 정사로 끌어 올릴려면 중국과 일본을 눌러 버려야 겠지요
그전엔 힘들다고 봅니다

그냥 많은 자료중에 하나로 보고 ..언어학적 접근이 어려우면 고고학적 접근
으로 가야지요..


어쨌든 수고들 많으십니다..좋은글 많이 보고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