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N-History/01 동이문명관련·동북공정

홍산문화와 고조선

monocrop 2007. 3. 3. 21:09

: 구산

출처: http://www.history21.org

2007-03-02 13:19:52

 

다음은 통설 고조선에 해당되는 진국(辰國)의 정체를 알아보기 위해서 여러 분야의 학설을 취합한 다양한 글들입니다.

사적(史籍)의 기록상에 고조선과 삼한의 사이에 끼어 있으면서도 그 정체가 뚜렷하지 못한것이 사실이었던 진국(辰國)을 중국의 사학자 전백찬은 진국이 동이족의 중심이었다고 하고 있습니다.

앞서 웅악성을 근거지로 하는 예맥조선의 실체를 밝혀 보았기에 이번에도 역시 근접 지역에서 발흥한것으로 추정이 되는 진국에 대한 근원을 공부하기로 합니다. 먼저 홍산문화와의 연관성을  알아보기 위해서 조의선인님의 글을 소개드립니다.


<
홍산문화에 대하여>-하늘민족의 역사     편집  조의선인


발해 북안의 신석기문화중 가장 주목할 문화가 홍산문화입니다.
이 홍산문화는 실로 엄청난 문화입니다. 이 문화를 발굴하므로 인해서 중국은 황하 중심 문화 전파론을 지양하고 이른바 '다중심문화론'을 인정하게 되었으며 산동반도에서 발견 되는 북신문화-대문구-용산문화가 바로 이 문화의 영향을 받았다는 이론까지 나오게 되었습니다
.

또한 이문화가 바로 고조선 중심지였다고 우리나라에서도 공식화되고 있는 요녕에서 발견되었기 때문에 중국 학자 부사년이 주장하였던 이하동서설의 주인공인 夷가 바로 고조선인이거나 그 선조였다는 이론으로까지 확산될 기미가 보이고 있습니다.

또 우리나라 학계의 일부에서도 이 문화를 가지고 고조선이 실제로 기원전 2333년에 건국이 되었을 가능성을 제기 하기도 하였고, 기존의 고조선의 중심이 평양으로 주장하는 학자와 논쟁을 벌이게 되었습니다. 이 문화는 또한 한단고기를 중심으로 하여 꾸준히 강단 사학계를 한반도 중심의 식민사관이라고 비판했던 재야사학자들에게 힘이 되어주었습니다.

홍산문화는 황하문명 보다도 빨리 고대 국가를 형성한 유적이 보이며 성곽이나 왕궁터등이 발견되어 고조선이 건국되기전에 이미 고대국가의 발판을 만들었다는 재야사학자들의 주장을 뒷받침 하는 근거까지 되었습니다
.

한단고기에서 나오는 배달국이 바로 홍산문화(B.C.4500~B.C.2500),

더 나아가 홍산문화의 전신인 흥륭화문화, 신락문화(B.C.6000~B.C.5000)를 기반으로 세워졌다는 주장이 전혀 근거가 없는 주장이라고 매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홍산문화는 요녕지역과 내몽고동부 지역에 광범하게 전개된 6천년 (B.C.4,000)의 신석기 시대중기에 해당하는 2단계 신석기문화로 인식됩니다. 홍산문화는 앙소문화의 채도와 이전단계의 연속고선문계 토기와 세석기등을 융합하여 한단계 발전하여 전개되었는데 후에 이 지역 하가점하층문화에 연결되고 중국 황하유역과 산동반도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
東夷族'의 활동지역을 문헌상으로 보면, 하북성 동북부와 산동일대, 양자강하류 유역등입니다.


산동지역에서 가장 앞서는 신석기문화유적은 북신문화인데, 북신문화는 7천년전까지 소급되어지고 황하의 자산, 배리강문화와 뚜렷한 차이를 보이고 있으며, 또한 B.C.4500년경의 이지역 대문구문화와도 직접적인 연원관계에 있습니다.

대문구문화는 하남성서쪽의 앙소문화와 대비되는 문화로써 東夷系문화로 추정되고 있고 이후의 용산문화에 연결됩니다. 홍산문화의 가장 큰 특징은 석묘계(石墓系) 돌무덤입니다. 돌을 쌓아 묘실을 구성하는 적석총(積石塚-돌무지무덤)과 돌판을 잘라 묘실벽을 짜는 석관묘(石棺墓-돌널무덤)가 대능하상류지역 요녕성 우하량유적에서 발굴되었습니다
.

고고학에서 가장 중요시하게 여기는 분야가 묘장법인데 죽은 사람을 장례치르는 의식이야말로 오랜기간 변하지 않는 그민족 고유의 전통이기 때문입니다
.

중국의 경우 은(나라)이전에는 땅을 파서 묘실을 만들고 시신과 유물을 안장하는 토광묘가 유행하고 있고, 주대(周代)에 들어와서야 나무로 곽을 짜서 묘실을 만드는 목관묘가 유행합니다
.

역사상에서 홍산문화와 동일한 석묘계의 묘장법을 채용하고 있는 나라가 고조선이므로 고조선의 전단계인 홍산문화는 고조선의 선조들이 이룩한 문화로 보지 않을 수 없다는 주장이 그래서 힘을 얻고 있는 것입니다. 돌을 이용하여 구조물을 축조하는 방식이 고조선 이후 부여, 고구려에도 계속하여 전승되는 고유의 산물이기도 합니다

중국의 고전이나 사서에 나오는 황제헌원과 대결을 벌였던 치우의 세력 근거지로도 지적이 되기도 하는데 황제헌원과 결전을 벌이며 하북과 산동일대를 개척하여 청구국을 세웠다는 기록은 (사마천의)[사기]에 더 자세히 기록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홍산문화 이후 하가점 하층문화(B.C.2000~B.C.1300)가 그 지역에 보다 광범하게 확산되어 등장하는데 홍산문화는 하가점하층문화로 이어졌고 하가점하층 문화는 바로 고조선의 문화였다는 주장으로 이어졌습니다.

홍산(紅山)문화는 소하연(小河沿)문화를 거쳐 하가점하층문화로 연결된다는 것은 중국학계에서 거의 공식화 되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소하연문화에 이어지는 하가점하층문화, 구체적으로 풍하 (豊下)문화에서는 고조선의 건국연대보다 조금 앞서는 서기전 24백년경으로 보이는 청동기 유적이 발굴되었는데 출토된 유물을 보면 화살촉, , 창 등도 발굴되어 기원전 2333년에 고조선이 건국되었다는 기록의 신빙성을 높여주고 있습니다.

이 요동, 요서일대에 발굴된 이 청동기 유물은 황하유역에서 발굴되는 청동기 유물보다 연대가 훨씬 빨라 중국 동부지역에 발견되는 청동기에도 상당한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예상 되기까지 합니다.

이 홍산문화의 발견은 우리나라와 중국의 고대역사를 다시 써야할 정도로 파장이 실로 큽니다. 중국의 학자들은 지금까지 중국의 앙소문화와 대비되는 문화로 대문구문화와 용산문화로 보았었는데 홍산문화를 발견한 이후로 이 대문구문화와 용산문화의 주인공으로 홍산문화를 들고 있습니다
.

, 홍산문화의 주인공을 고조선이나 그 선조로 파악하였을 경우에는 중국의 문화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하북,산동등지의 동이족이 한민족의 선조였다는 근거가 됩니다. 또한 북신문화-대문구문화-용산문화-악석문화로 이어지는 산동문화와 흥륭화문화,신락문화-홍산문화-하가점하층문화(풍하문화)로 이어지는 요령문화의 주인공이 한민족의 선조가 되는 것입니다
.

그래서 중국의 학자들도 산동문화의 주인공인 동이족이 동북에서 기원하였다고 주장을 하면서도 구체적으로 어느민족이었나를 밝히기를 꺼려하고 전백찬 같은 중국학자의 일부가 사적상에 보이는 辰國(고조선?)이 동이족의 중심지였다고 주장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과연 홍산문화는 고조선인의 선조가 일으킨 문명일까?
분명한 것은 중국학계에서도 은나라때까지 화하족이 하북성과 산동성을 넘어오지 못하였다고 하였습니다. 홍산문화의 주인공이 동이족이라는 것은 중국학계가 인정하는 것인데 중요한 것은 그 동이족이 과연 고조선인이냐하는 것입니다
.

현재 우리나라학계에서도 고조선의 중심을 예전의 평양에서 요서, 요동 등 요녕으로 보고 있습니다. 한민족의 기원도 그곳에서 발생하여 한반도로 이주를 해왔다는 이론이 점차로 신빙성을 더해 가고 있기 때문에 홍산문화의 주인공 나아가서 중국의 문화의 중요한 획을 그었던 세력이 누구냐 하는 중요한 기로에 서있게 되었습니다
.

이 홍산문화의 주인공이 누구냐 하는 것을 떠나서 분명한 것은 이 문화가 고조선을 건국하는데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는 것입니다
.


출처
: http://cafe.daum.net/japancaryz00000


구산 (2007-03-02 15:15:24)

다음은 중국의 역사학자 임혜상의 글입니다.

[
고조선의 위치가 어디었을까 이설이 자못 많다. 강양부는 조선은 본시 은 민족이니 그러므로 그 분포지 또한 그러할 것이다. 그 당시는 요동조선 반도였을 것이다. 혹자는 그때 아직 깊은 바다가 이루어 지지 아니하였으므로 그 교통로가 반드시 산해관 일대에서 시작되었을 것이다.(夏段氏度考
)

여사면은 "조선국의 최초의 위치는 오늘날의 조선의 경토에 있지 아니하였다."한다. 대관하면 그 당시에 조선은 연나라 북방에 위치하여 맥과 더불어 잡거하되 맥지를 국토로 하고 맥족을 민으로 하였던것 같다. 맥족의 문화는 은과 대동하다. 기씨가 나라를 가진 이래 점차 은 문명의 영향을 입게 되었던 것이다
.(中國民族史上 87)

[
古朝鮮之地何在 頗有異說. 姜亮夫以爲朝鮮本殷氏族族的分布之地...以當時的遼東朝鮮半島. 或者還未成深洋共交通的道路不必起程乎山海關一帶. (夏殷氏度考) 이하 원문 생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