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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키르기스스탄인들 고구려 후손 자처

monocrop 2007. 2. 28. 02:59

키르기스스탄인들 고구려 후손 자처

[김지하, 문명의 시원을 찾아서]

허공에 뜬 산정호수엔 '졸본'의 숨결 흐르고…
1600m고지에 180×60㎞… 백두산 천지 떠올려
키르기스의 '키르'는 고구려·고려와 같은 뿌리

김지하 시인· : 사단법인 생명과평화의길 이사장 [입력 : 2005.06.19 ]


5월 28일 현지시각 오후 4시 정각.

해발 1609m의 산상호수 ‘이시쿨(따뜻한 물)’의 물가의 호텔 ‘아브로라(오로라)’에 도착한다.

청청한 대낮 새파란 호수 너머 눈이 시리도록 새하얀 톈산산맥의 연봉이 끊임없이 펼쳐진다. 넓이는 가로 180㎞ 세로 60㎞다. 키르기스의 수도 비슈케크로부터 다섯 시간을 달려 올라온, 분명 허공에 뜬 장엄한 하나의 신기루다.

여기가 어디인가?
나에게, 우리에게 있어 이곳은 도무지 무엇인가?

민족의 아득한 시원을 회복함으로써 전 인류문명사의 일대전환을 시도했던 동학의 창시자 최수운(崔水雲) 선생의 시 가운데 ‘산 위에 물이 있음이여(山上之有水兮)!’라는 구절이 있다.

키르기스스탄으로 오기 전 카자흐국립민속대학의 카스카바소프 박사가 내게 물었다.

―당신은 고구려의 후예인가?
―그렇다.
―그렇다면 우리는 한 형제다. 옛 ‘키리카자흐’는 ‘고구려’, ‘고려’, ‘고리’, ‘커리’, ‘카우리’와 같은 혈통이다.

그러나 나는 그제 키르기스 국경을 넘어오면서 생각했다. ‘어디 키리카자흐뿐이겠는가. 키르기스의 ‘키르’ 역시 ‘커리’와 ‘고리’의 한 혈통일 것이다.

지금 시각 오후 5시45분.

내가 앉아 이 글을 쓰고 있는 호텔 ‘아브로라’가 있는 동네 이름이 다름아닌 ‘촐폰아타’이다. ‘촐폰’은 금성(金星)이란 뜻이다. 유목민들이 산 위에서 저녁에 맨처음 발견하는 가장 밝은 별이니 신화에서는 유목민의 보호자다. 그래서 ‘촐폰아타’는 ‘금성의 아버지’, ‘금성의 고향’이다.

이상하지 않은가?
‘촐폰’이란 말 어디서 많이 듣던 말 아닌가?
그렇다.  고구려의 수도인 바로 그 ‘졸본(卒本)’이다.
이시쿨 호수는 분명 고구려, 고려, 커리와 직결돼 있음을 알겠다. 그렇다면 그 옛날 키르, 고리 등은 이 이시쿨 호숫가에서 무엇을 한 것일까?

‘촐폰아타’ 바로 가까이에 ‘카라콜(검은 계곡)’이란 곳이 있다. 3000년이 넘은 옛 도시로서 소련 점령 전에는 샤먼들이 살았고, 옛 시장 ‘바자르’도 있었던 활기찬 곳이었다고 한다.

이 사실이 과연 이시쿨 호숫가의 옛 신시와 아무 연관도 없는 것일까?

그제 국경을 넘어오면서 카자흐와는 달리 가난과 적막에 쌓인 키르기스의 거리거리를 썰렁한 마음으로 바라보던 중 한 가게간판에 ‘한 탱크리’라고 러시아 글자로 쓰인 것을 일행의 도움으로 해독하였다.

‘탱크리’는 아시아 보편의 우주의 주신(主神)으로 우리말 ‘당골(또는 단군)’의 근원이다. 그리고 ‘한’은 역시 우리말의 ‘한울님’ 또는 ‘한님’이다. ‘낱(個)’이요, ‘온(全)’이며, ‘중간(中)’이자 ‘관계(間)’이니 개체와 전체와 그 관계를 두루 드러내는 한 민족사상의 알짬이다.

전율이 오기 시작했다.

어제 아침 나는 이곳 마나스 연구소의 무사예프 사마르 박사를 만남으로써 결정적 해답들을 거의 초과달성하였다.

문답은 대개 이렇다.

―이시쿨 호숫가에서 제사가 치러졌는가?
“그렇다. 이시쿨만 아니라 송쿨, 샤토르쿨 등 모든 산 위의 호수에서 치러졌다.”

―하필이면 왜 산 위의 호수에서였는가?
“유목민에게 절대 필수적인 물이 풍부하고, 아름답고, 신성한 곳이기 때문이다.”

―호수의 필요성, 아름다움, 신성함은 어떻게 유지되고 지켜졌는가?
“오랜 옛날부터 산 위의 호수에서는 목욕, 수영, 오염이 금지되었다. 자연과 생명 전체에 대해서 절대적으로 필요불가결한 것 이외에는 결코 여분을 취하지 못하도록 했고, 이 명제를 주문으로 해서 외워야 했다.”

―주문(呪文)은 원어로 무엇인가?
“게레이네 자라샤 포파이난 바이달란!”

―그 주문을 포함한 호숫가의 제사를 뭐라 불렀는가?
“‘스에노’다.”

―그 제사에서 공동체의 정치 문제도 협의되었는가? 되었다면 그 이름은?
“그렇다. 매우 민주적으로 협의되었다. 그 이름은 ‘갱애쉬’라고 불렀다.”

―그 제사 때에 교환시장 ‘바자르’도 열렸는가?
“당연하다. 그러나 제사와 뒤섞이지는 않았다. 바자르와는 또 다른 호혜(互惠), 선물(膳物), 자선(慈善), 증여(贈與)의 경제행위가 있었다.”

―그런 경제행위의 이름은 무엇이었는가?
“‘스이’라고 불렀다.”

―마나스 서사시에 나타난 키르기스 문화와 사상의 핵심을 무엇이라 보는가?
“인간과 자연 일체를 적극적으로 보호하는 생명사상과 자기종족의 생명을 지키려는 최소한의 필요 이외에는 어떤 경우에도 전쟁을 회피하는 철저한 평화사상이다.”

―그것은 어디에 표현되어 있는가?
“마나스 서사시다.”

―그 생명과 평화 사상이 신화에서는 어떻게 나타나는가?
“‘가이베렌’이라는 여신(女神)이 자연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사냥꾼을 처벌하는 신화형식이다.”

―마지막으로 묻는다. 1만4000년 전 파미르 고원의 마고(麻姑) 신화를 어떻게 보는가?
“마고는 없다. 그러나 ‘우마이’라는 여신의 신화와 모권제, 모계 사회의 전통은 분명히 있었고, 마나스 서사시에서는 그 여신의 기능을 ‘간느게이’라는 여성이 대표한다.”

―마고라는 이름이 아예 있지도 않았단 말인가?
“‘마고 코곡크’라는 신화는 있다. 그러나 이 신(神)은 왼쪽 다리는 여자이고, 오른쪽 다리는 남자인 중성적이면서 단성(單性) 생식적인 신이다. 그러나 심판에서는 악한 역할을 맡는 부정적 여신이다.”

아항!  알 만하다.

박제상의 부도지(符都誌)에 나타난 마고(麻姑)도 중천(中川) 또는 짐세(朕世)에 태어나 선천(先天·남성)과 후천(後天·여성)을 결합한 단성생식의 신이었기 때문이다.

첫 샘물이 흔히 자취를 감추듯 마고 역시 현장 부근에서는 지워지고 한반도의 끝 신라에서 홀연히 그 모습을 드러낸 사례다.

더욱이 생각컨대 8세기 이후 이슬람 도그마에 의하여 아주 인멸되거나 부정적으로 와전되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유교 도그마 밑에서 화랑이 활랭이로, 단군이 당골네로, 풍류가 노름으로 전락하듯이….

어제 오후 일행은 톈산 밑 ‘알아르차’라는 서낭당에 가서 점심을 먹었다. 거기 서낭나무에 한 조각 천을 묶으며 빌었다. 한국과 키르기스의 산상호수의 전통이 양국 젊은이들을 통해 거대한 아시아 르네상스의 태풍으로 부활하도록!

글쓰기를 마치니 5월 29일 아침 8시다.
푸른 호수 건너 하얀 톈산 너머 파미르 고원의 모습이 드디어 보이기 시작한다.

‘환상도 사실이다!’  ----- 다른 이 아닌 루이 알튀세르의 말이다.

출처 : 파랑새는 오늘도 비상을 꿈꾼다
글쓴이 : 다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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