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나라에서 토산물을 다룬 책은 그리 많지 않다. 내가 토산물에 관심을 가진 것도 그리 오래 되지도 않았다. 역사지리를 연구하면서, 토산물의 일부이긴 하지만, 차(茶)·빈랑(檳木+郞)을 찾다가, 악어(鰐魚)·장독(病에 丙대신章 毒)을 알게 되었으며, 이와 더불어 물고기에 관한 것으로《자산어보》가 구미에 당겼다.
그 원문을 구하여 보고 싶던 차에, 2002년 5월 31일부터 6월 1일까지 서울 건국대학교에서 전국역사학대회(제45회)가 열렸는데, 거기에 참석하였다가, 발표유인물에 "정약전의 <자산어보> 연구"라는 글이 소개되었다. 나는 반가운 나머지 그 발표자에게 찾아가서 봤더니 매우 젊은 학자였다.
나는 그에게 나를 소개하고서,《자산어보》의 원문을 구해보고 싶다고 했더니, 그가 그 자료로써 학위논문을 준비하고 있으니, 완성되는 대로 보내주겠다고 했다. 말만 들어도 고마웠다. 그로부터 4개월이 지난 10월 8일에 학위논문과 그 원문을 함께 보내왔다.
나는 고맙다는 인사를 당장 전화로 해줬다. 그리고 두 시간이 지나서 다시 전화를 걸었다. 나중의 전화는 석사학위논문으로 깊이 있게 다룬 저자에게 반가운 내용은 아니었을 것이다.
몇 가지 질문을 했다. 매우 당황스러웠을 것이다.
첫째, 정약전이 지은 원본이 왜 없는가? 하는 것이다. 그가 흑산도(黑山島)에서 귀양살면서 1807년 여름에 쓰여져 1814년에 완성되었다고 했으니, 지금까지 188년이 지났을 뿐이다.
둘째, 그 이름이 丁銓인가? 丁若銓인가? 원본이란 자료에 왜 若자가 없는가? 丁若鏞도 원문엔 丁鏞이다. 왜?
셋째, 김려(金金+慮)가 1803년에《牛海異魚譜》를 지었는데, 그보다 훨씬 뒷날에 적힌, 1807∼1814년에 지은《자산어보》의 글 내용을 어떻게 보고 그 내용에 실었는가?
넷째, 玆山=黑山인데, 내용에는 대개 오(吳)·절강(浙江)·강소(江蘇)·복건(福建) 지방이 나온다. 그렇다면, 대한민국 서남쪽의 흑산도가 자산인가? 하는 문제이다.
다섯째, 김려의 진해(鎭海)와 정약전의 흑산(黑山)과의 관계는 무엇인가? 내용이 비슷한 것으로 보아 같은 울타리 안에 있는 것이 아닌가? 한반도에서는 동쪽 끝에 있는 경상도의 진해와, 서쪽 끝에 있는 전라도의 흑산도와 관련짓는다는 것은 무리라는 말 그 이상이다.
여섯째,사어(沙아래魚魚: 모래무지)를 沙魚(사어), 즉 鮫魚(교어: 상어)와를 혼동하여 표기된《자산어보》의 모래무지 고기를 鮫魚라고 올바로 교감(校勘)하지도 못했다.《자산어보》에는 글의 내용에는 상어[鮫魚: 沙魚]를 설명하면서, 다른 사료를 들어 모래무지라는 이름을 붙이고, 그 설명이 없다는 것은 전혀 잘못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일곱째, 海龜(해귀)가 玳瑁(대모: 열대지방 바다거북이)라는 사실을 생존 환경적 측면에서는 전혀 검증하지 않았다. 비록 그 원본은 남아있지는 않지만,《자산어보》에 "바다거북 … 이것은 대모인데 지방 풍속에는 그것이 재난을 입을까봐 두려워하여 보고도 잡지 않으니 아깝도다!"라고 한 것은, 정약전이 말한 것처럼, "자산은 흑산이다. 나는 흑산에서 유배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흑산이라는 이름에서 나오는 어두운 느낌 때문에 공포스러웠다."고 한 것에서 그 책이름 자산(玆山)도 흑산도(黑山島)임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그 흑산도는 어딜까?
그것을《신증 동국여지승람》에서 보면, "흑산도는 물길로 900여 리인데, 둘레가 35리이다. 옛날에는 흑산현(黑山縣)이라 했는데, 그 터가 아직도 남아있다. <송사(宋史)>에, '명주(明州)·정해현(定海縣)에서부터 순풍을 만나면, 사흘만에 바다에 들어가고, 닷새만에 흑산도에 이르러 그 나라 고을에 들어간다.'고 한 것이 바로 이 섬이다."고 했다.
여기서 <송사(宋史)>는 양자강 입구에 있었던 남송(南宋)을 가리키며, 명주니, 정해현은 절강성 항주만(杭州灣) 동쪽의 고을이다.
그렇다면, 바로 그 지역의 흑산도를 가리킬 것이다. 이것을《중국고금지명대사전》에서 그 이름대로 찾으면, "흑산군도는 절강성 남전현(南田縣) 동남쪽 바다에 있다."고 했다. 지금의 중국지도에는 그 방향의 곳에는 어산군도(漁山群島)가 있다. 바로 이곳이 정약전이 귀양갔던 곳일 것이며, 그 바다에는 바다거북이가 생존할 수 있는 환경이 된다.
여덟째, 물개좆[瑥의 王대신 肉변, 肉변+內,臍(올눌제)]의 생산지를 보면, 이《자산어보》에서도《당서(唐書)》<신라전>과《삼국사(三國史)》<신라본기>를 인용하는 것으로 보아, 이 흑산도는 전라도의 것을 가리키는 것일 수도 있지만, 오히려 경상도 지역임을 알 수 있다. 이 지역이 경상도라는 다른 이유의 하나는 "복건성 지역에 나는 인삼을 신라인삼이라고 한다"는《본초강목》의 기록에서도 충분히 알 수 있다.
그리고, 정약전은 우이도(牛耳島)에서도 귀양을 살았는데, 그곳은 남전현인 남전도(南田島)에 우두산(牛頭山)이 있으니, 거기에서 우이(牛耳)라는 말이 유래되었을 것이며, 흑산도로 가는 길목에 있는 섬이다.
이렇게《자산어보》한 가지에서만 많은 의문을 설명해줄 수 있는 지리적 환경은 한반도로써는 불가능하다.《자산어보》를 연구한 그 사람 또한 지명 몇 가지가 한반도에 있으므로, 그런 이름들이 지금 중국대륙에도 있는가? 하면서 반문했지만, 당연히 그런 지명이 역사 속에 들어있다. 결국《자산어보》는 절강성 지역을 중심으로 한 토산물 - 물고기류를 기록한 책이다.
그 원문을 구하여 보고 싶던 차에, 2002년 5월 31일부터 6월 1일까지 서울 건국대학교에서 전국역사학대회(제45회)가 열렸는데, 거기에 참석하였다가, 발표유인물에 "정약전의 <자산어보> 연구"라는 글이 소개되었다. 나는 반가운 나머지 그 발표자에게 찾아가서 봤더니 매우 젊은 학자였다.
나는 그에게 나를 소개하고서,《자산어보》의 원문을 구해보고 싶다고 했더니, 그가 그 자료로써 학위논문을 준비하고 있으니, 완성되는 대로 보내주겠다고 했다. 말만 들어도 고마웠다. 그로부터 4개월이 지난 10월 8일에 학위논문과 그 원문을 함께 보내왔다.
나는 고맙다는 인사를 당장 전화로 해줬다. 그리고 두 시간이 지나서 다시 전화를 걸었다. 나중의 전화는 석사학위논문으로 깊이 있게 다룬 저자에게 반가운 내용은 아니었을 것이다.
몇 가지 질문을 했다. 매우 당황스러웠을 것이다.
첫째, 정약전이 지은 원본이 왜 없는가? 하는 것이다. 그가 흑산도(黑山島)에서 귀양살면서 1807년 여름에 쓰여져 1814년에 완성되었다고 했으니, 지금까지 188년이 지났을 뿐이다.
둘째, 그 이름이 丁銓인가? 丁若銓인가? 원본이란 자료에 왜 若자가 없는가? 丁若鏞도 원문엔 丁鏞이다. 왜?
셋째, 김려(金金+慮)가 1803년에《牛海異魚譜》를 지었는데, 그보다 훨씬 뒷날에 적힌, 1807∼1814년에 지은《자산어보》의 글 내용을 어떻게 보고 그 내용에 실었는가?
넷째, 玆山=黑山인데, 내용에는 대개 오(吳)·절강(浙江)·강소(江蘇)·복건(福建) 지방이 나온다. 그렇다면, 대한민국 서남쪽의 흑산도가 자산인가? 하는 문제이다.
다섯째, 김려의 진해(鎭海)와 정약전의 흑산(黑山)과의 관계는 무엇인가? 내용이 비슷한 것으로 보아 같은 울타리 안에 있는 것이 아닌가? 한반도에서는 동쪽 끝에 있는 경상도의 진해와, 서쪽 끝에 있는 전라도의 흑산도와 관련짓는다는 것은 무리라는 말 그 이상이다.
여섯째,사어(沙아래魚魚: 모래무지)를 沙魚(사어), 즉 鮫魚(교어: 상어)와를 혼동하여 표기된《자산어보》의 모래무지 고기를 鮫魚라고 올바로 교감(校勘)하지도 못했다.《자산어보》에는 글의 내용에는 상어[鮫魚: 沙魚]를 설명하면서, 다른 사료를 들어 모래무지라는 이름을 붙이고, 그 설명이 없다는 것은 전혀 잘못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일곱째, 海龜(해귀)가 玳瑁(대모: 열대지방 바다거북이)라는 사실을 생존 환경적 측면에서는 전혀 검증하지 않았다. 비록 그 원본은 남아있지는 않지만,《자산어보》에 "바다거북 … 이것은 대모인데 지방 풍속에는 그것이 재난을 입을까봐 두려워하여 보고도 잡지 않으니 아깝도다!"라고 한 것은, 정약전이 말한 것처럼, "자산은 흑산이다. 나는 흑산에서 유배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흑산이라는 이름에서 나오는 어두운 느낌 때문에 공포스러웠다."고 한 것에서 그 책이름 자산(玆山)도 흑산도(黑山島)임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그 흑산도는 어딜까?
그것을《신증 동국여지승람》에서 보면, "흑산도는 물길로 900여 리인데, 둘레가 35리이다. 옛날에는 흑산현(黑山縣)이라 했는데, 그 터가 아직도 남아있다. <송사(宋史)>에, '명주(明州)·정해현(定海縣)에서부터 순풍을 만나면, 사흘만에 바다에 들어가고, 닷새만에 흑산도에 이르러 그 나라 고을에 들어간다.'고 한 것이 바로 이 섬이다."고 했다.
여기서 <송사(宋史)>는 양자강 입구에 있었던 남송(南宋)을 가리키며, 명주니, 정해현은 절강성 항주만(杭州灣) 동쪽의 고을이다.
그렇다면, 바로 그 지역의 흑산도를 가리킬 것이다. 이것을《중국고금지명대사전》에서 그 이름대로 찾으면, "흑산군도는 절강성 남전현(南田縣) 동남쪽 바다에 있다."고 했다. 지금의 중국지도에는 그 방향의 곳에는 어산군도(漁山群島)가 있다. 바로 이곳이 정약전이 귀양갔던 곳일 것이며, 그 바다에는 바다거북이가 생존할 수 있는 환경이 된다.
여덟째, 물개좆[瑥의 王대신 肉변, 肉변+內,臍(올눌제)]의 생산지를 보면, 이《자산어보》에서도《당서(唐書)》<신라전>과《삼국사(三國史)》<신라본기>를 인용하는 것으로 보아, 이 흑산도는 전라도의 것을 가리키는 것일 수도 있지만, 오히려 경상도 지역임을 알 수 있다. 이 지역이 경상도라는 다른 이유의 하나는 "복건성 지역에 나는 인삼을 신라인삼이라고 한다"는《본초강목》의 기록에서도 충분히 알 수 있다.
그리고, 정약전은 우이도(牛耳島)에서도 귀양을 살았는데, 그곳은 남전현인 남전도(南田島)에 우두산(牛頭山)이 있으니, 거기에서 우이(牛耳)라는 말이 유래되었을 것이며, 흑산도로 가는 길목에 있는 섬이다.
이렇게《자산어보》한 가지에서만 많은 의문을 설명해줄 수 있는 지리적 환경은 한반도로써는 불가능하다.《자산어보》를 연구한 그 사람 또한 지명 몇 가지가 한반도에 있으므로, 그런 이름들이 지금 중국대륙에도 있는가? 하면서 반문했지만, 당연히 그런 지명이 역사 속에 들어있다. 결국《자산어보》는 절강성 지역을 중심으로 한 토산물 - 물고기류를 기록한 책이다.
출처 : 대륙 조선사 연구회
글쓴이 : 최두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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