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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에 관한 글 하나...

monocrop 2006. 12. 5. 17:38

터키가 형제의 나라인 진짜 이유.

 

 

'터키'라는 국가를 말하면 우리는 이스탄불, 지중해의 나라, 형제의 나라 등 여러 수식어를 떠올리지만 정작 우리나라와 터키가 왜 '형제의 나라'라고 불리워지는 지 그 이유를 알고 있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그 이유를 아느냐 물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6.25 때 미국, 영국, 캐나다에 이어 네 번째로 많은 병력을 파견해서 그런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한다고.
그런데 여기서 놀라운 사실은 파병 된 15,000명이 넘는 터키군 대부분이 자원병이였으며 그중 3,500명이 사망(미국 다음으로 많은 사상자)할 정도로 그들이 열심히 싸웠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왜?' 그렇게 많은 병력을 파견했으며, '왜' 그렇게 목숨을 걸고 싸웠을까요..

 

그리고 대부분의 터키인들 역시 한국인에게 굉장히 우호적이며, 그들은 모두 한결같이 대한민국 '코리아'를 Brother's country 라 부릅니다.
또, 한국말과 비슷한 단어가 많은 헝가리 사람들 역시 한국이랑 헝가리랑 sister다 라는 얘기를 합니다.
이게 대체 무슨 말일까요..

여기, 한 아침 라디오방송에서 나온 이야기를 잠시 참고해보도록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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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인들은 자신들의 나라를 '투르크'라고 부른다.
우리가 코리아를 '대한민국'이라고 하는 것처럼.


역사를 배웠다면
과거 고구려와 동시대에 존재했던 '돌궐'이라는 나라를 알고 있을 것이다.
투르크는 돌궐의 다른 발음이며..
같은 우랄 알타이 계통이었던 고구려와 돌궐은 동맹을 맺어 가깝게 지냈는데
돌궐이 위구르에 멸망한 후, 남아있던 이들이 서방으로 이동하여
결국 후에 오스만 투르크 제국을 건설하게 된다.

원래, 나라와 나라사이엔 영원한 우방도, 영원한 적도 없는 법이지만
돌궐과 고구려는 계속 우호적이며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서로를
'형제의 나라'라 불렀고 세월이 흘러 지금의 터키에 자리잡은 그들은,
고구려의 후예인 한국인들을 여전히, 그리고 당연히

'형제의 나라'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즉, 우리는 아주 오랫동안 형제의 관계였던 것이다.
6.25 때부터가 아니고.


그렇다면 의문점 하나.
우리는 왜 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을까?
그리고 터키인들은 왜 아직도 우리를 형제의 나라라고 부를까?

답은 간단하다.

우리나라의 중,고 역사 교과서는 '돌궐'이란 나라에 대해
단지 몇 줄만 할애하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돌궐이 이동해 터키가 됐다느니 훈족이 이동해
헝가리가 됐다느니 하는 얘기는 전무하다.

터키는 다르다.
오스만 투르크 제국을 경험했던 터키는 그들의 역사를
아주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학교에서 역사 과목의 비중이 아주 높은 편이다..

실제로 터키인들은 한국인들 역시도 그들과 같은 생각을 할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한국인들도 터키를 형제의 나라라 칭하며 그들을 사랑할 것이라 믿고 있었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했다.
1988년 서울 올림픽 때
터키의 한 고위층 관계자가 한국을 방문했다.
자신을 터키인이라 소개하면 한국인들에게서 큰 환영을 받을 것이라 생각했으나
그렇지 않은 데 대해 놀란 그는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잡고 물었다.

'터키라는 나라가 어디 있는지 아십니까?'

돌아온 답은 대부분 '아니오'였다.
충격을 받고 터키로 돌아간 그는 자국 신문에 이런 제목의 글을 기고했다 한다.

'이제.. 짝사랑은 그만합시다..'

 

이런 어색한 기류가 급반전된 계기는 바로 2002 월드컵이었다.
'한국과 터키는 형제의 나라, 터키를 응원하자'라는 내용의 글이
인터넷을 타고 여기저기 퍼져나갔고
터키 유학생들이 터키인들의 따뜻한 한국사랑을 소개하면서
터키에 대한 한국인들의 관심이 증폭되게 되었다.
6.25 참전과 올림픽 등에서 나타난 그들의 한국사랑을 알게 된 한국인들은
월드컵을 치르는 동안 터키의 홈구장과 홈팬들이 되어
열정적으로 그들을 응원했다.


하이라이트는 한국과 터키의 3,4위전.
자국에서조차 본 적이 없는 대형 터키 국기가 관중석에 펼쳐지는 순간
TV로 경기를 지켜보던 수많은 터키인들이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한다.
경기는 한국 선수들과 터키 선수들의 살가운 어깨동무로 끝이 났고
터키인들은 승리보다도 한국인들의 터키사랑에 더욱 감동했으며
그렇게.. 한국과 터키의 '형제애'는 더욱 굳건해졌다.

 

우리는 이유를 알아야 한다.
터키가 형제의 나라가 된 궁극적인 이유를 모르면
KBS의 어느 아나운서가 패널이었던 터키인에게 '아우님'이라 불렀던
어리석은 짓도 가능한 것이다.
형제는 '형과 동생'을 따지자는 말이 아니다.
그들에게 형제는 곧 친구며 우방이니까.

 

- 10월 16일 CBS '시사자키 오늘과 내일'(대전지역 98.1MH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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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앨범 > 월드컵 터키전

터키의 언어에는 순우리말과 비슷한 단어가 참 많습니다.

말뿐 아니라 음식, 문화, 습성, 국민정서 (터키인 우월주의에, 감정적 다혈질이면서 반대로 다정다감하고, 거나하게 놀기 좋아하고, 어쩜 그렇게 성질 급한 것까지..)도 상당히 유사한 점이 많습니다.

유럽인치고는 흔하지 않게 몽고반점도 있습니다.

 

과거 돌궐(투르크 => 터키)과 고구려는 그냥 우방이 아니라, 이와 잇몸 같은 관계였다고까지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

고구려의 연개소문은 돌궐의 공주와 결혼을 하였을 정도니까요.

고구려 멸망 후 돌궐도 망했으며 서쪽으로 옮겨 서돌궐을 건국하게 됩니다. 서돌궐이 훗날 오스만 제국... 그리고 터키가 됩니다.

혈통이 고구려와 혼혈이라고 생각하시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역사 교과서에서 돌궐을 다루지 않는 이유는 아마도 돌궐의 위치 때문이 아니였나 생각됩니다.
사서에는 고구려와 돌궐이 국경을 맞대고 있는 것으로 기술되어 있는데, 당시 돌궐은 중앙아시아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고구려의 영토가 중앙아시아, 즉 실크로드(서안) 부근까지가 영토라는 이야기가 됩니다.
그리고 돌궐은 만주 지역에까지 영토를 넓힌 적도 없습니다.
따라서, 고구려의 영토가 만주와 한반도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중앙 아시아 까지(돌궐과 맞닿은), 매우 방대했다는 것을 반증합니다.

중국이 동북공정에 더욱 박차를 가하는 이유도 여기서 기인한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보면 '터키'라는 나라는 과거 청동기시대인 배달국, 고조선, 부여 시대에는 동이족에 속해 있다가 고구려의 세력이 확장되면서 고구려가 부여를 정벌하자 그곳에 살던 원주민(예맥 동이족)들이 요하를 건너가 이루게된 민족입니다.

돌궐족은 중국의 대부분을 수나라가 통일하자 고구려와 돌궐은 연합하여 수나라를 공격하게 됩니다. 그러나 오히려 수나라의 침략을 받아 요서지방은 수나라에 점령되고 돌궐은 서쪽으로 쫓겨나게 되는데 그들이 서쪽으로 이주해 정착하여 오스만-투르크 제국을 건설하였고, 아랍과 발칸반도를 지배하며 강성했던 오스만-투르크 제국이 19세기 중반부터 쇠퇴하면서 주변의 영토를 잃고(소수민족 모두 독립) 지금에 터키만 남게 된 것입니다.

같은 우랄-알타이 계통의 언어를 사용했지만 통일신라시대 이후 우리는 중국의 영향으로 한문을 사용했고, 터키는 아랍의 영향을 받아 언어는 전혀 다르게 발전하게 됩니다.

 

유전학이나 인류학적으로도 터키는 우리와 마찬가지로 몇개 안되는 북방계 몽골리언국가(몽고, 한국, 일본, 에스키모, 인디언) 중 하나로, 헝가리 와 함께 북방계 몽골리언의 유전자가 많이 남아있는 유럽국가입니다.

 

 

터키

 

 

터키인은 '코리아'의 어원이 고구려를 계승한 고려의 영문표기라는 것까지도 알고 있습니다. 대단한 형제사랑이지요..

그렇다면, 북한도 같은 민족인데 어째서 한국과 형제인 터키가 6.25 때 남한편에만 병력을 파병했을까..

한국과 일본의 관계만큼이나 아르메니아인들과 터키는 견원지간입니다. 아니, 원수지간이라는 말이 더 적절하겠네요.

과거 아르메니아인(오스만 기독교인들)들이 터키인(투르크 이슬람교도)에게 대학살을 당했기 때문이지요.


과거 오스만터키에서 소수민족들이 독립을 하면서 쇠약해진 국력과 맞물린 굴절된 민족주의로 말미암아 아르메니아인 수천명이 죽임을 당하는 1차 대학살의 참사가 벌어집니다.

유럽으로 남진하려하는 러시아의 힘을 얻어 루마니아와 세르비아가 독립을 하게되고 오스만터키의 아르메니아 영토 대부분을 러시아가 차지하는 셈이 되자 이에 분노한 투르크인들이 러시아와 붙어먹은 아르메인들을 표적으로 인종청소라는 대학살을 감행한거죠.

1차 대학살 20년후 또 다시 오스만터키 정부의 도움을 받은 투르크 이슬람교도들은 아르메니아인 5만명에 대학살을 자행합니다. (2차대학살) 게다가 정부는 학살된 아르메니아인 외 175만명을 추가로 메소포타미아와 시리아로 추방하고 그 추방하는 과정에 60만명이 사막에서 목숨을 잃게 됩니다.

(1894년~1915년까지 250만명이였던 아르메니아인은 30만명만이 살아남게 됩니다.)

그후 1912년 발칸전쟁 때 몬테니그로, 불가리아, 그리스가 오스만터키에서 독립할 때도 알게모르게 러시아가 개입하여 아르메니아인을 도와줍니다. 따라서 러시아가 북한을 지원하기 때문에 당연히 터키는 그 반대 쪽인 남한에만 병력을 파견한 거지요.

 

물론 혹자는 당시 터키가 미국과의 우방적 연계로 말미암은 국제적 이득을 노린 선택일 뿐이였다고 말하기도 하는데 역사의 흐름이라는 큰 범주에서 바라본다면,
터키가 2차 세계대전 때 우리의 동맹국 중의 하나였던 이유가 필연적으로 러시아와 적대 관계일 수 밖에 없는 과거사 때문이였다고 보는게 타당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형제의 나라..

한국의 경제성장을 자기일처럼 기뻐하고 자부심을 갖는 나라, 2002년 월드컵 터키전이 있던 날 한국인에게는 식사비와 호텔비를 안받던 나라.. 월드컵 때 우리가 흔든 터키 국기(國旗)가 터키에 폭발적인 한국 바람을 일으켜 그후 터키 수출이 2003년 59%, 2004년 71%나 늘어났다는 KOTRA 통계가 있습니다.

이런 관계를 지닌, 자기 나라로부터 수백만리 떨어진 곳에서 보내는 의리와 애정을 받는 나라가 세상에 몇이나 되겠습니까.

 

 

세계 역사를 좌지우지하는 대부분의 위인들은 평생 독서를 즐겼으며, 그들이 가장 즐겨 읽었던 분야는 역사라고 합니다.

우린 세계사를 떠나 국사에 대해서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관심이나 있을까요..

아니, 제대로 된 우리의 국사나 현대사를 과연 배운 적이나 있었나요..

내 나라 역사조차 바로 알지 못하면서 남의 역사를 논했던 제 모습에 한없는 부끄러움을 느끼는 새벽입니다.

 

 

월드컵터키전 > 한국과 터키의 공동 승리

 

우리가 보통 터키를 형제의 나라라 생각했던 이유는 단지 한국전쟁의 인연으로만 생각해왔었는데 그보다 더 오래된 사연(?)이 있었군요...

 

어느 누구는 과거의 동맹관계는 주변 상황에 어쩔수없는 단순한 동맹이라 하는 이도 있지만 원인이야 어쨋던 그 누가 제 자신을 사랑해주는 만큼 행복한것도 없을겁니다....

 

한가지 묻고 싶은건 만약 터키가 다른 나라와 전쟁을 벌린다면 여러분들은 과연 어떻게 생각할런지가 궁금하군요...우리에게 해준것처럼 자원하여 도와줄것인지 그전쟁이 어떤 상황에서 벌어진 전쟁인지를 파악하고 행동하겠는지 즉 명분이겠죠..아님 그냥 바라만 볼것인지..여러분의 판단이 궁금하군요...

 

 

 돌궐,흉노,선비,고구려,몽골,만주족.... 심지어 일본까지 뿌리는

 

하나지요. 일본을 제외하고 위에 종족들은 모두 고조선의 멤버로

 

알고 있습니다.   그 고조선마저 망하자 모두 흩어지게

 

되었죠.

 

 과거에 이들은 서로가 한뿌리 라는걸 알았던것 같습니다. 선비족이

 

세운 북위의 황제는 고구려의 장수왕이 죽었다는 부음을 듣자

 

'마땅히 찾아가야하나 그럴 수 없으므로 제단을 쌓고 장례를 치르겠다'

 

라고 했습니다.

 

 

 금나라를 세운 누르하치는(성이 김씨라고 하죠. 쥬신족에게 金은 매우

 

특별합니다) 조선을 '부모의 나라'라고 하면서 자기들 편을 들것을

 

요구하죠. 조선이 거부하자 '적극적으로 명의 편을 들지만 않아도 된다'

 

라고 양보하는데도 이를 거절하죠. 그러다가 침공을 받고서 항복하고

 

'형제의 나라'로 격하됩니다. 항복시에 인조가 머리를 땅에박고 절을

 

하는것으로 묘사되어있는데 실제로는 누르하치가 매우 정중했다고

 

합니다. 금의 장수는 인조에게 '평상시라면 왕께서 항복의사만 표시하시

 

면 되지만 누르하치가 친히 여기까지 오신이상 왕(인조)께서 나와보셔야

 

겠습니다.' 라고 했을 정도죠. 누르하치는 잔치를 벌이고 바로 군대를

 

돌렸는데 인조가 또다시 '친명배금'으로 뒤통수를 치자 다시 침공을 받죠.

 

이때는 '신하의 나라'로 격하되어버립니다. 조선의 '중국꼬붕'사상이

 

나라의 위상을 망쳐버림은 물론 백성을 전쟁의 고통으로 몰아넣어버렸죠.

 

 

 몽골역시 우리가 한 뿌리임을 알았기에 적극적인 식민정책을 펴지는 않았

 

다고 합니다. 몽골이 지배한 나라중 고려처럼 자치권이 확실하게 확립된

 

곳이 드물었다고 하죠. 쥬신족 통합전쟁쯤으로 생각했을 수 있습니다.

 

참고로 쥬신이라는 말은 17~18세기 까지도 계속 쓰였던 말입니다.

 

 신기한 사실은 삼국지의 여포아시죠? 쥬신족이었다고 하네요. 진수의

 

삼국지에 '여포는 동이족이다' 라고 나와있답니다. 어쩐지 활을 잘쏜다

 

했습니다.(방천화극 가지를 화살로 쏘아 맞추었죠) 동이족의 '夷'는 원

 

래 오랑캐라는 뜻이 아니라 '큰활'을 쓰는 민족이라는 뜻입니다. 이것을

 

공자가 '중국이외에는 모두 오랑캐다'라는 논리로 '오랑캐 이'자로 부

 

르게 됐죠. 

 

 

돌궐은 고구려와 한뿌리였고 동돌궐과 서돌궐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중

 

서돌궐이 이동하여 투르크(터키)가 되었다고 합니다. 흉노족역시 서쪽

 

으로 이동해서 대제국을 세우게 되는데 그왕은 아틸라로 알려져 있습니

 

다. 세계3대 제국을 세운자로는 알렉산더, 징키즈칸, 아틸라 가 꼽힙니다.

 

로마는 유럽에서만 영향력이 있을뿐이고 오스만 투르크도 지역국가였지

 

위의 3대제국처럼 거대하지는 못했습니다. 3대제국중 2개가 쥬신(몽골계)

 

족이 세운 제국이네요. 이런걸 교과서에서는 안가르쳐주죠. 왜냐면

 

일제가 뼈대를 세운 교과서를 그대로 계속 배우고 있으니까요.

 

 

외국 영화를 보면 아틸라가 잘생긴 서양인으로 되어있는데 몽골계통

 

의 동양인이죠.  얼마전 독일과 미국의 방송이 공동으로 제작한 다큐멘

 

터리에서는 아틸라가 한반도에서 기원했다고 나와있습니다. 유전자 추적

 

어쩌고 하더군요. 아틸라는 쥬신족의 '알랑' '아랑'등이 발음 일 것이라고

 

추측하는 사람도 있구여. 이 흉노족이 헝가리 대평원에서 자리를 잡고

 

오랜 세월 혼혈하다보니 현재의 유럽인으로 모습이 바뀌었어요. 그렇지만

 

아직도 생활습관이나 음식에서는 유목민의 전통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참, 마지막으로  '선녀와 나무꾼'  '심청전' 등의 이야기 아시죠? 그것역시

 

쥬신(조선)들의 공통점이라더군요. 만주족이나 몽골, 한반도에도 같은

 

전설이 있는데 기원은 바이칼호라고 합니다.  선녀가 목욕하던 연못이나

 

심청이가 몸던진 인당수가 바이칼호였던 거죠.  바이칼호에는 풍랑

 

이 거친 지역이 있는데  실제로 매년 처녀가 몸을 던져 풍랑을 잠재웠다

 

고 하네요. 또, 바이칼호주변의 원주민들은 지금도 한국사람이 자신들과 같은

 

계통임을 알고있다고 합니다. 이것역시 우리만 모르고 있죠.

 

 

 

 남들 다 아는 역사를 왜 우리만 모를까요? 교과서가 개떡같아서지요. 제대로

 

된 역사가 담겨있질 않습니다. 일제잔재가 그래로 녹아있죠. 실제 존재했던

 

(중국 기록에도 엄연히 남아있는)고조선이 신화로 묘사되고 고조선과 고구려의

 

영토를 축소시키고 업적을 깍아내리며(광개토대왕비의 기록도 훼손시켰죠)

 

일제의 역사왜곡 주목적은 한민족의 자신감을 말살시키려는 것이었으니까요.

 

때문에 쥬신족의 활약도 생략내지는 대폭축소되었죠.  정신 차려야 합니다.

 

 

 

어느날 한국어 포럼에 한 터키인의 글이 올라왔습니다.

'oh~ pilseung Korea'를 한글로 써달라는 것이었죠. 

나중에 메신저로 이야기를 나눠보니

2002년 너무나 큰 감동을 받아 형제나라 한국을 꼭 방문하겠다고 마음을 먹었답니다. 그리곤 한국어를 배우고, 이제 자신들이 한국을 응원할차례라고 월드컵에 쓰이는 문구들을 알려달라고 물어본 것이었어요.

 

자신이 15살이었던 2002년, 한국과 터키의 경기가 끝나고 감격한 나머지 눈물을 흘릴뻔했다고 합니다.

다른 어떤 국가로부터도 이런 호의는 받아본 적이 없는데 한국인들이 보여준 환영과 스포츠맨십에 진심으로 감동을 받았다네요. 포럼에 한터전 영상도 올렸더군요. 몇 번을 봐도 감동적 영상이고 세계에 모범을 보였다구요. ^^

 

그리고 2005년, 그때 받은 감동을 잊을 수 없어 형제나라 한국을 찾았다고 합니다.

한국에 직접 와본 후 터키와 비슷한 문화가 많다고 느꼈답니다.

손님을 환영하고 귀히 여기는 것, 가족을 중시하는 것, 존경이나 존중을 표하는 문화가 터키와 같다네요. 

또 한국어가 터키어와 같은 우랄 알타이어족이라 놀랐다고 합니다. 역사 시간에 배우길 고대에 4개의 형제국이 있는데 같은 자손이며 3개국은 지금도 터키와 형제라고 배웠는데 한국이 그 중의 하나인 것 같다고요. 또 터키에서는 헝가리도 몽골리안의 피가 섞여 자신들과 같은 계통의 민족이라고 생각한다고 합니다. 

 

이 친구는 월드컵때 우리가 터키를 환영해준 것이 너무 고마워서

이번에 독일에  사는 자신의 친척들과 친구들에게 한국을 응원하라고 이메일까지 보내고

그들한테도 아는 터키인에게 전부 이 메세지를 돌리라고 했다네요. ^^

이제는 터키인이 한국인의 우정에 보답해야된다고 메신저 이름도 '오~ 필승 코리아'로 바꿔놓았구요. ^^ 

자신을 유럽인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아시아인이라고 하며 그것이 자랑스럽다고 말합니다. 터키의 뿌리가 아시아에 있기때문에 비록 외모는 다르지만 아시안이라고요.  

 

위의 로고는 또다른 터키인이 만들었다고 올린 한국-터키 우정 공동체입니다.

아래는 원문입니다. 가입하실 분들은 아래 이메일로 문의해보세요. ^^

HELLO MY FRIENDS..
I AM FROM TURKEY..
I AM KOREAN LOVER.
SO I ESTABLISHED A COMPETITION ABOUT KOREA IN MY UNIVERSITY...
TURKISH-KOREAN FRIENDSHIP COMPETITION.

cevatonder@yahoo.com

 

 

우리는 단지 그들이 고마워서 펼쳤던 응원인데 그것이 한 소년의 가슴을 적셔 이렇게 인연을 이어나갈 수도 있네요.

터키가 돌궐족의 후예이고, 몽골리안의 피가 섞여있고 우리 고구려와 혈맹이었던 형제국가라는 것. 역사를 왜곡하는 주변국을 생각해보때 터키와 우리가 형제였다는 기록은 한국 역사를 알아가는데도 큰 힘이 될 것 같습니다. 

그러나 물론 이런 모든 것을 다 떠나서 우리는 지난 월드컵으로 정말 든든한 친구를 하나 얻은 것 같습니다.  

 

 

1.  터키 식당에서의 에피소드(6.12)

 

프랑크푸르트 중앙역을 등지고 카이저 거리를 거닐 다 보면 케밥을 파는 식당이 하나 있습니다.

 

제가  간단한 기념품을 사기 위해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점심이 되어서 터키의 케밥을 시식하고자 

 

그 식당을 들어갔습니다.  이 식당  문앞 벽면 왼쪽엔 대형 태극기가

 

오른쪽 벽면엔 독일기가 세로로 세워져 있더군요.

 

바로  옆 건물이  "괴테민박"이라고 한글로 적힌 이층 계단 입구가 있는 곳인데..

 

나는 첨엔 한국 교민이 운영하는 식당인줄 알고 찾아 갔더랬지요.

 

그런데 모두 주방장이나 서빙하는 사람이 외국인 뿐이더군요. 

 

그래서 그냥 주문하러 다가갔더니... 저를 보고는  바로 "브라더" 라고 하더니..

 

한국에서 왔냐고 묻더라구요.  그래서 어떻게 알았냐고 했더니.. 

 

티셔츠에 적인 글보고 알았다네요.  그 셔츠는 독도 방문 기념 셔츠로

 

가슴 부근에 영어로 " I love dokdo" 적혀 있습니다.  그러더니 자기도 그 독도를 잘 안다더군요.

 

한 술 더 뜨서 독도는 한국꺼라고 주장하더군요.

 

암튼 케밥을 너무 큰 걸 줘서 배터지는 줄 알았습니다.

 

 

2. 토고전 경기장에서..(6.13)

 

제가 앉았던 좌석은 24A 16열  일등석이 였는데.. 바로 앞줄이 전부 외국인이었습니다.

 

붉은 악마의 엄청난 응원 때문인지.. 거의 대부분의 외국인이 지고 있는  "토고"를 외치더군요.

 

그런데 유독 한 부부와 딸로 생각되는 소녀가 있었는데.. 그 소녀의 얼굴엔 KOREA라는 페인팅과

 

함께 큰 태극기를 손에 쥐고 열심히 한국을 응원하더군요.  특히 안정환의 역전골에선 3명 다 일어서서

 

울 나라 국민이냥 좋아하더군요. 다른 외국인은 묵묵히 박수정도만 치던데..

 

중학생쯤으로 생각 되는 아주 예쁜 소녀였는데, 나중에 제가 사진 찍어도 되냐고 하니..

 

바로 태극기를 펼치면서  폼을 잡더군요.  그 가족분들은  바로 독일에 사는 터키인이였습니다.

 

감동적이었습니다. 터키는 한국을 진심으로 형제국으로 여기는 나라였습니다.

 

 

 

 

이번 스위스전 길거리 응원때 태극기와 함께 터키 국기도 같이 흔들었으면 좋겠군요...

 

출처 : Tong - greatcorea님의 역사왜곡통

 

..............................................................................................................Mimesis

역사적 배경이라는 근원없이 불쑥 명칭이나 관습이 생겨난는 일은

거의 없는 일인데,

우리가 '영문'을 잘 모른다거나 하는 이유는 바로

우리의 역사교육이, 우리의 역사책이 올바르지 않은 상태에 연유함에도

제대로 시정이 않되는 현상황이 안타깝다.

요즈음 터키의 우리나라 무기 구매도 이러한 역사적 배경의 영향이

전혀 없었울까...

 

 

역사가 우리에게 주는 '지혜'는

 

'전체를 보는 눈' 이라고 본다.

 

국사뿐만 아니라 문화전반에 있어서도 '전체를 보는 눈'이 결여되면

 

국가적 시스템외에도 작은 문화현상의 토론에서조차

 

지향점을 놓치고 오류를 범하기 쉬워지는 것 같다.

 

전체의 공감대 형성 이전에 작은 부분에서

 

필요없는 논쟁으로 내부에서 열정을 소모시키고

 

우리끼리 발목잡는 크고 작은 현상들도

 

이러한 역사교육의 부실로 인한 폐해일 수 있다는 지적은

 

쉽게 넘어갈 문제가 아닌 숙고해야할 문제이다.

 

올바른 역사교육과 지식은

 

입시과목에서 비중을 따지기 이전에

 

국력신장의 기초 이전에

 

문화전반과 개개인의 정체성에 이르기까지

 

가장 효율적인 투자임을 재고해야할 충분한 필요성이 있고

 

그 시기도 이미 주변국들로 인해

 

자의반 타의반 도래한 것이 아닌가,

 

때늦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