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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고려현종의 1011년 몽진기록 분석.(Analysis of king Hyunjong`s refugee route record against Kitay war)

monocrop 2013. 6. 24. 17:58

 

   거란성종이 1010년 12월 출정하여 1011년 1월1일 皇城 開京공격으로 고려현종이 피난을 가는 기사가 고려사와 고려사절요에 자세히 나온다.

 

   다른 주장을 가진자들이 합리적으로 다른방법으로 분석해서 반론을 하는것에 대해서는 수긍하나 대륙고려사 부류 운운하면서 아집적 비난에 대해서는 떠들기전에 사적을 많이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현종의 피난로에서 전라도 노령으로 가는 길은 옛날에 없었다고 그지방분들이 말한다.무지한 주장을 이해시키기위해 현종의 몽진이 한반도에서 일어났고 당시 지명과 조선조 한반도 지명이 大差없다고 가정하고 두 사서를 기준으로 다시 분석해본다. 

 

 

 

한반도내에서 현종 몽진설을 가정하여 기록해본 지명 추적.

 

 

1.사서기록 정리 분석.  

<고려사> 기록

1011년 1월 1일(을해) 契丹主入京城。是日。王次廣州

1011년 1월 4일(무인) 王發廣州。次鼻腦驛

1011년 1월 8일(임오) 次長谷驛

1011년 1월 11일(을유) 거란병 퇴각

1011년 1월 12일(병술) 王過仁義縣。次水多驛

1011년 1월 13일(정해) 踰蘆嶺。入羅州

1011년 1월 21일(을미) 王回駕。次伏龍驛

1011년 1월 24일(무술) 次古阜郡

1011년 1월 25일(기해) 次金溝縣

1011년 1월 26일(경자) 次全州。留七日。

1011년 1월 28일(임인) 양규(楊規), 김숙흥(金淑興) 등 전사,

1011년 1월 29일(계묘) 거란성종 압록강 넘어 퇴각

1011년 2월 3일 (정미) 發全州。次礪陽縣

1011년 2월 4일 (무신) 次公州。留六日。

1011년 2월 13일(정사) 次淸州

1011년2월15일(기미)청주行宮에서 연등회 열다(*).

1011년 2월 16일(경신) 發淸州

1011년 2월 23일(정묘) 還京都。入御壽昌宮。 

1011년 8월  개경 궁궐보수 및 서경성 改修. 

 

<고려사절요> 기록

1011년 1월 1일 次廣州

1011년 1월 4일 發廣州。次鼻腦驛

1011년 1월 5일 陽城

1011년 1월 6일 過蛇山縣天安府。石坡驛

1011년 1월 7일 次公州。 至巴山。 次礪陽縣

1011년 1월 8일 至參禮驛長谷驛

1011년 1월 13일 王踰蘆嶺。入羅州

1011년 1월 21일 次伏龍縣

1011년 1월 26일 次全州

1011년 2월 3일   發全州

1011년 2월 4일   次公州

1011년 2월 13일 次淸州

1011년 2월 16일 發淸州

1011년 8월  개경 궁궐보수 및 서경성 改修. 

 

고려사,고려사절요를 기준으로하여 대다수 주장하는 고려 한반도 주재설에 대한 뒷받침 자료에서 운영자가 한반도 지명들을 그대로 인정하고 거리수를 대입해 보았다.(여기서 거리수는 자동차도로 기준거리이므로 실제 옛도보 거리는 15%정도 up하여 산정하는게 맞을것이다) 

 

1010년 12월 모일 개성 황궁출발   

1011년 1월 1일 경기도 광주(廣州)로 피난                                                           (110km)

1011년 1월 4일 광주(廣州)출발 비뇌역(鼻腦驛)에서 머뭄

1011년 1월 5일 경기도 양성(陽城 -현 경기도 안성) 도착                                         (61km)

1011년 1월 6일 사산현(蛇山縣 -현  충남 천안시 직산면) 통과 - 천안(天安府)도착       (40km)

1011년 1월 7일 공주(公州) 파산(巴山)을 지나 여양현(礪陽縣 -익산군 礪山面) 도착    (121km)

1011년 1월 8일 삼례역(參禮驛 -전북 全州郡 삼례면) 장곡역(長谷驛)에서 묵음            (16km)

1011년 1월 11일 거란병 퇴각소식 받음.

1011년 1월 12일 인의현(仁義縣 -전북 태인)을 지나 수다역(水多驛 -정읍 입압면)도착  (52km)

1011년 1월 13일 노령(蘆嶺 - 노령산맥 현 갈재라 부름)을 넘어 나주(羅州)로 들어감   (78.2km)

1011년 1월 21일 나주를 떠나 복룡역(伏龍驛)에 묵음.현종 回駕

1011년 1월 24일 고부군(古阜郡)으로 상경                                                            (89km)               

1011년 1월 25일 금구현(金溝縣 -전북 김제)으로 이동                                             (40km)

1011년 1월 26일 전주(全州)서  7일을 머뭄                                                            (26km)

1011년 1월 29일 거란성종 압록강 넘어 퇴각

1011년 2월 3일 전주(全州) 출발 여양현(礪陽縣 - 충남 여산)으로 감                           (36km)

1011년 2월 4일 공주(公州) 도착. 6일간 머뭄                                                          (56km)

1011년 2월 13일 청주(淸州)로 이동                                                                      (77km)

1011년 2월 15일(기미) 行宮에서 연등회 열다(*).

1011년 2월 16일 청주(淸州) 출발 개경으로 향함

1011년 2월 23일 개경(京都)에 환궁하여 수창궁(壽昌宮)에 거함                                (210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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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1012 km

 

2.해설.

 

  첫째 려-요전쟁의 성격은 고려와 송이 연합하여 거란을 칠 우환에 대비해 미리 양국관계를 정리할 필요성 때문에 적국의 수도에서 고려의 항복만 받고 물러서는것이 성종의 침략 목적으로 보인다. 피난을 갈 당시 왜 일반적 루트인 과천을 지나 수원 이남으로 내려가지 않고 광주를 돌아갔을까  하는것이 첫번째 드는 의문이고 분명 고려가 세작이나 첩자를 보내 戰線의 거동을 살폈을터 인데도 현종은 개경이남 보다 1000리 더 나주까지 내렸갔다. 현종은 1011년 1월 12일 인의현(仁義縣 )을 지나 수다역(水多驛)에 도착하기 하루전에 거란병 퇴각소식 받고도 불안하였는지 13일까지 130 km (320리)를 더 남행한후 어가를 되돌리게 된다. 그날로 부터 13일지난 26일 이전에는 이미 개경을 焚蕩질 했던 거란주 성종이 압록강을 넘어 퇴각했다는 첩보를 1월 20일경 접했을것이다  고려사 기록중 현종은 와중에도 여유를 갖고 신하들에 대한 논공행상을 하면서 全州에서 7일을 머물고  公州에서도 6일간 더 머물고  2~3일동안  200여리를 비교적 천천히 御駕를 움직여 淸州로 들어가 行宮에서 연등회를 주관했다 기록되어있다. 

 

還道를 보자면 ,한반도에서는 청주에서 개경까지 약 230km거리가 될것인데 거란병이 되돌아간후 전시에 피신을 위해 南行했던 50km/day의 속도로 북으로 올라가 거란병이 전부 불사른 개경에 궁실을 정리하고 이미 23일에는 수창궁에 기거했다 기록되어있다. 고려사와 고려사절요를 보아도 전쟁중 고려현종의 행적은 급하지않았다.그런데도 이 주장은 합리적인가?

 

충청북도 淸州에 고려왕의 行宮이 존재했던가? 

 

이에 대한 답변을 하지못하면 한반도 고려개경설은 억지주장이 될것이다.또한 거란병은 어떻게 高麗宮城을 분탕하다 돌아갔는가하는 기록을 종합적으로 살펴보아야 전체가 이해가 될것이다. 알다시피 거란왕 聖宗 야율진서는 9세에 즉위하여 약 50년동안 거란사에서 보기드문 정복 군주여서 3차의 고려정벌을 진두지휘했다. 그의 어머니는 蕭太后로서 거란장수 소손녕,소배압이 그녀의 친족이다.이에 앞서 1차로 고려를 정벌하기위해 성종은 동경이 아닌 王都에서 직접 공격했는데 거란의 초기 동경은 발해의 동경용원부 자리가 아닌 北京인근에 있었고 발해를 망하게 한 후 동경용원부를 그들의 東京으로 삼았다.거란의 2차,3차 고려침공은 동경에서 비롯되었고 거란왕이 居하는 치소는 北京 通州 北邊이었다. 말대로라면 거란主가 한반도 고려황성을 치기위해서는 1700km이상을 행군하여 고려진영을 뚫고 진군 해야한다. 고금을 털어서 이 전법 역시 합리적인가?

 

어가가 하루에 불철주야로 움직일수있는 거리를 평균적으로 100리(40Km)로 본다면 남행,상경길에서 흔하게 100km 가까이 움직인 기록을 어찌 설명해야 할것인가? 御駕가 아닌 御馬로 이동하였다? 아니면 중간 지명기록이 누락되었다? 혹은 평지였다? 피난할때 보다 귀경할때는 쉬어서 정무 보는날도 많고 쉬는날도 많았다.

 

고려개경을 분탕하고 돌아가는 소배압군 기사중에서.

요사 성종조 >

二十八年 。高麗禮部郎中渤海陀失來降。庚子,遣排押、盆奴等攻開京,遇高麗兵,敗之。王詢棄城遁去,遂焚開京,至清江,還。
" 경자일 소배압과 야율분노등이 개경을 고려병을 우회하여 공격하다 패했다. 왕순(현종)이 성을 버리고 도망가길래 개경까지 처들어와서 분탕질하고 청강에 이르러  돌아갔다."  여기서 淸江은 사학계에서 주장하는 청천강이 아닌 고려의 한강과 합쳐지는 지류로서 東流한다고 讀史方與紀要에 분명히 기록되어있고 이 청강은 淸州 남부에 있다 즉 개경과 청강,청주가 가깝게 있음을 시사하는것이다.(운영자 기사를 보라)

 

또하나, 거란군이 개경에 진입해 현종의 행방을 묻는 기사중에서  

[庚戌元年宋 大中祥符三年,契丹 統和二十八年]  

丹兵先鋒,已至昌化,拱辰等,具陳前意,丹兵,問國王安在,答曰,今向江南,不知所在,又問遠近,答曰,江南太遠,不知幾萬里,追兵乃還。

거란병이 선봉에서 이미 창화 공진 등에 이르렀다.거한병이 국왕이 안전하게 있는지 묻자 왕은 지금 강남으로 가고 있어 어디있는지 모른다. 가까운가 먼가?라 물으니 "강남은 무척 멀어서 몇만리나 되는지 모르오하자 추격하던 거란병사가 이내 돌아갔다". 대부분이 임진강을 강남으로 해석하는바 "강남으로 몇만리나 되는지 모른다"라는 고려신하의 답변은 대륙에서나 나올법한 대답인것이지 땅의 끝을 다 아는 한반도를 뜻하지 않았을것이다.

 

이를 분석하건데 거란주가 거하는 거란황궁의 위치,동경의 위치, 수계,지명등이 종합적으로 고려되어야 할것이다. 고려황궁의 위치를 개성으로 비정하고 모든것을 짜맟추어도 고려의 지명을 참고로 조선초에 단행된 행정구역이어서 거의 비슷할수도 있겠지만 거란과 고려가 전쟁을 치룬지명,기록등에서 청주의 행궁은 고려왕들이 자주 나들이하던 지명에 설치한 궁터로 여관이나 호텔 같은 곳이 아니고 황도 가까운 곳에서 정기적으로 관리하고 왕명에 의해 보관되는곳이니 마치 인조의 남한산성,정조의 화성행궁과 같은 곳이어야 한다. http://blog.chosun.com/article.log.view.screen?blogId=55927&logId=5362936 

 

고려의 지명은 중국왕조의 지명과 다르게 많은 부분을 독자적인 고유지명을 사용햇던것으로 보이고 위치도 서로  지명의 위치와 비슷한 위치에 배열되었던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거란과의 동일 접전지역에서도 서로 다른 지명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eot   大城은 큰 城墻으로 둘러쌓여있으며 靑縣에도 가로세로 1km의 성곽안에 마을이 있다. 

 

대청광여도에서는 친절하게 고려사에 존재하는 靑縣이 淸州라하고 臨津江 수계인 交河 등을 가르쳐준다.

현종은 이 淸州行宮에서 팔관회를 치루고 6시간만에 갈 거리에 있는 불타버린 북쪽 개경황궁으로 올라가기전에 신하들이 미리 당도하여 닷새만에 궁궐을 대강 수습하고 현종이 臨居한다. 그리고 8월에 皇宮을 重建한다는 논리가 더 설득력이 있을것이다. 그렇기에 윗 중국역사지도 처럼 淸州에서 황궁(大城 比定)으로 가는 거리는 27.2 km로 매우 가까운 지역인 것이다.

 

운영자 심제글

출처 : 잃어버린 역사, 보이는 흔적
글쓴이 : 心濟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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