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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케이넨의 정유재란 종군기(2) -출정과 경주까지

monocrop 2009. 12. 11. 04:23

임진왜란 종군기는 정유재란때에 軍醫僧으로 조선에 온 케이넨( 慶 念 ) 이라는 스님이 1497년 6월 부터 1498 2월 8개월동안 조선에 머물면서 왜군의 진공루트를 따라서 본 경상도 와 전라도의 전투상황과 조선인의 참상 과 피해 등을 상세히 기술한 종군기록서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임진왜란은 후세의 사가들이 평가하는 조선의 승전이다 아니다를 떠나 명백한 조선의 패배이며 이는 전장이 왜열도가 아닌 조선에서 벌어진 일이었기 때문에 그 피해와 참상은 고스란이 조선 조정과 조선백성의 몫이 되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19세기말 영국인 외교관이 기술한 일반 조선의 모습은 그 당시로 부터 300년전에 벌어졌던 왜란의 피해를 복구하지 못한것으로 기술됨에 말하여 무었함이 있겠나..   


이글을 쓴 케이넨이라는 승은 일본의 安養寺 주지승 이었는데 규슈의 우스키성의 성주인 오오타 히슈우( 大田飛州 )라는 무사의 군의관으로 종군한 기록이다. 이 원본은 현재 일본 안양사에 보관되어 있는데 그 원본을 편집자인 나이또( 內 藤 )씨가 조선학보에 1961년에 해설과 함꼐 발표한 것이다.


이 종군기에는 일자별로 종군한 상황이 기록되어 있으며 본인이 승이었기 때문에 불심에 기초한 서술이 많이 나온다.하지만 전부 소개 할수는 없고 현재 일본인의 종군위안부로 피해를 당하신 할머니들이 겪었던 일본인들의 만행과 잔인함들이 여기서도 배어 있다.


당시 종군 기간동안의 기록에 의하면 왜군은 경상도 고성,하동근처에 처음 상륙하여 전라도 남원을 거쳐 계속 북진하여 전주에 진입하였고 이어 충청도 진천에 이른다. 그러나 얼마후에 퇴각 명령이 내려져 경상도 상주로 내려와  한동안 머물렀다가 영천에 이른다.

이후로 바다와 가까운 경주에 도달하고 울산으로 내려와 울산성에 한동안 머물면서 축성까지 하다가 퇴각 명령을 받고 울산 서생포를 거쳐 부산에 도달하고 잠시 머물렀다가 대마도로 ,이끼를 거쳐 구주로 상륙하여 고향인 우스끼로 돌아가는것으로 글을 맺는다.


싸움터에서 일어난 참상,사람을 죽이고 방화와 약탈을 하고 고위관직의 집에서나 절등에서 보물을 약탈하고 약탈한 보물을 차지하려고 서로 자기편끼리 죽이는 왜군들, 심지어는 왜군을 뒤따라온 왜상인이 조선인을 매매하는 상황까지 그대로 묘사되고 있다. 


<왜군의 잔악함은 마치 지옥의 사자가 죄인을 잡아 다루듯하였다>고까지 그의 종군기에서 기록하였다.


그의 임진왜란 종군기에서 그 기록을 발췌하여 여러 분에게 알려 드리려한다.


1497년

6월24일 - 규슈현 사가항을 출항한다.


7월2일  -  대마도에 도착


7월8일  - 지금 김해군 가락면 죽림리근처에서 조선수군이 나타나 가고시마 사츠마의 배 8척을 빼았고  불질러버려서 부산해로 후퇴하였다.


7월9일  -부산포에 상륙하니 왜국 각지방의 상인을 볼수가 있었다.


7월10일 - 거제도에 머물러 있던 조선수군의 배를 왜군 3개성의 성주가 연합으로 조선수군의  배를 불태우고 조선군을 남김없이 죽여버렸다.


7월29일 - 경상도 죽도에서 전라도 방면으로 전진하다 ,적선이 머물고있는 모든 섬에서는 적선이 파괴되어 불 태워지고 있었고 성들마다 시체들이 산을 이루고 있었다.


8월3일 -전라남도 고성 당황포의 명소를 거쳐  선진강 입구로 들어가 보니 끝도 보이지 않는 큰강이다


8월4일 - 배에서는 너나할것없이 남에게 뒤질세라 재보를 빼앗고 사람을 죽이며 서로 쟁탈하는 모습들 도저히 눈뜨고 볼 수 조차 없다.


8월6일 - 들도 산도 ,섬도 죄다 불태우고 사람을 쳐 죽인다.산사람은 금속줄과 대나무 통으로 목을 묶어서 끌어간다. 어버이는 자식걱정에 탄식하고 자식은 부모를 찾아 헤매는 비참한 모습을 난생 처음 보게 되었다.


8월 8일 -  조선 아이들은 잡아 몪고,그 부모는 쳐죽여 갈라 놓으니 ...공포와 서러움에 몸을 떨고 있다.


8월12일 -남원으로 가는 높은산은 일본에서도 아직 보지 못한 큰 산이다(지리산인듯) ...


8월16일 -남원성을 공격하여 성내의 사람들은 남녀노소 할것 없이 모두 죽여서 생포한 사람이 없다.


8월18일 - 성안으로 진을 이동하다 날이 밝아 성 주위를 보니 길바닥위에 죽은 자가 모래알처럼 널려 있다 눈뜨고 볼수 없는 처참한 상황이다.


8월20일 - 전라도 전주에 도착하였다....점점 날씨가 추워지기 시작하니 신속하게 전진해야 하겠다.


8월28일 -여기 전주를 떠나면서 가는 도중의 벽촌에서 남녀를 불문하고 죽이고 있는 참상은 차마 두눈을 뜨고 볼수가 없는 처참한 모습이다.


9월4일 -충청도로 들어가 가옥을 보니 불에 타고 심하게 부숴진 집들 뿐이다.  쉴데가 없어 정발로 불편한것 투성이다.


9월9일 -진천까지 밀고 올라간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었으므로 조금이라도 배가 부두에 가까와 지는 것이다...

 

9월19일- 경상도 상주라는 고도에 도착하였다...


9월29일 - 이곳에 체류하는 동안 젊은 이를 많아 잡아 들였는데 수가 많앗다. 성주의 부하중에서도 뛰어난 사람이 많이 죽었다.


10월4일 - 경주에 머무르게 되어 모두 쉬며 식사 준비를 하고 있었다...한충더 훌륭한 관사도 있고 성도 있었지만 모두 도망가고  모두 불타 부서지고 무너지고 있다.

 

계속됩니다. 

출처 : 잃어버린 역사,보이는 흔적
글쓴이 : 운영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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