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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상주석각은 가을밤 별자리

monocrop 2011. 10. 3. 00:15

남해상주석각 비밀 캐는 조세원 씨
교사 퇴직 후 연구 골몰.. “글자 아니라 가을밤 별자리” 주장
2011년 03월 06일 (일) 21:07:22 하병주 기자 into@news40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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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상주석각을 연구하는 퇴직교사 조세원 씨. 그는 여태껏 주장되는 여러 학설과 달리 이 석각이 밤하늘의 별자리를 표현했다는 새로운 주장을 폈다.
우리나라에서 네 번째로 큰 섬이라는 남해군 남해도. 이 남해를 대표하는 산이라면 망운산(해발 786m)과 함께 금산(해발 681m)을 꼽는다. 그리고 금산의 남쪽 산 중턱에는 ‘거북바위’로 불리는 바위가 있고, 여기에는 그림인지 글자인지 정확히 알 수 없는 애매한 무늬가 오목새김 되어 있다.

경남도는 이를 ‘경상남도 기념물 제6호’로 지정해 놓았는데, 그럼에도 그 선각의 뜻과 유래 등에 관해선 정확히 밝히지 않았다. 여러 가지 설이 거론되고 있지만 하나를 꼭 집어 말하기에는 어느 하나 고증하기가 쉽지 않음이다.

이 암각을 두고 떠도는 이야기를 나열해보면, 거란족문자설, 선사시대각석설, 수렵선각설, 선사석각화설, 고대문자설, 서불기례일출설 등이 있다.

이 가운데 몇 가지를 풀어 설명하면, 수렵선각설은 인도인 학자 데스판데가 주장하는 것으로, 이 그림의 주제가 ‘어느 귀인의 사냥터나 사냥 기념의 표지’라는 해석이다. 그는 이 석각이 과거 1200~1300년 전의 것이며, 글자가 아닌 그림의 선각이라고 판단했다.

   
남해상주석각이 '사냥'을 주제로 한 그림이라는 게 인도의 학자 데스판데 씨의 주장이다. 이처럼 이 석각을 둘러싼 해석은 다양하다.
고대문자설은 1520년께 편찬된 ‘환단고기’(1520를 근거로 하고 있는데, 환단고기 중 이맥이 쓴 태백일사에는 “남해현 낭하리 계곡 바위 위에 신시의 고각이 있다. 그 글은 ‘환웅께서 사냥 나왔다가 제를 삼신께 드리다’는 내용이다”라는 대목이 있다는 것이다. 이를 근거로 지금의 한글 훨씬 이전에 쓰였던 고대문자인 녹도문 또는 가림토문일 가능성이 제기된 것이다. 그러나 환단고기는 남북한 사학계 모두 ‘위서’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어서 한계가 있다.

앞선 두 가지 설보다 더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것이 ‘서불기례일출’ 설이다. 서불기례일출(徐巿起禮日出)은 ‘서불이 일어나 뜨는 해에 예를 표하다’는 뜻으로, 여기서 말하는 서불은 진나라 진시황제의 명을 받아 불로초를 찾아 떠났던 인물이다. 그가 남해를 지나던 중 그의 흔적을 남겼다는 설명으로, 따라서 서불과차(徐巿過此)설 또는 서불도래(徐巿渡來)설로 불리기도 한다.

이 세 가지 말고도 ‘남해 상주 석각’을 둘러싼 해석은 여럿이다. 그러나 이를 증명하기가 어려워서일까? 요즘은 이에 관해 연구하는 학자가 극히 드물다.

   
가을하늘의 별자리(왼쪽)와 조세원 씨가 별자리에 도해한 남해상주석각.
그런데 최근 한 퇴직교사가 이 연구에 골몰하고 있다. 경남 사천 벌리동에 사는 조세원(64) 씨. 그는 사천시 남양중학교에서 국어교사로 오랫동안 교편을 잡은 뒤 지난 2007년8월에 퇴임 했다.

조 씨가 ‘남해 상주 석각’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오래 전이다. 그의 고향은 바로 남해. 중2 때 석각에 관해 처음 듣고는 현장을 방문했더란다. 그러나 큰 감응은 없었다고. 그러고는 남해 성남초등학교에서 처음 교편을 잡았을 무렵에 두 번째로 방문하게 되는데, 당시에도 그저 “뭘까” 호기심 정도는 있었지만 자세히 알아보려는 노력은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후 사천시 남양중학교 국어교사가 되면서 우리나라 고대문자에 관심을 가졌고, ‘남해 상주 석각’이 녹도문이나 가림토문일 가능성이 있다는 자료를 만나고서부터 좀 더 관심을 갖게 됐다.

이로써 석각을 두고 여러 가지 학설이 제기되고 있음은 알았지만 그에겐 하나 같이 마음에 쏙 와 닿지 않았다. 그렇다고 일상에 쫓겨 더 깊이 연구에 열중할 수도 없었던 그. 결국 퇴직을 하고서야 본격적인 연구에 들어갔다.

   
조세원 씨의 연구자료 중 일부. 석각을 부분으로 나눠 별자리와 비교해 놨다.
이런 저런 생각을 더하던 중 그가 눈 여겨 보기 시작한 것은 ‘하늘 천(天)’자. 사실 보통의 사람이 보더라도 다른 부분은 글자로 인식하기가 어렵지만 이 ‘天’자 만큼은 쉽게 알아볼 수 있음이다. 따라서 그는, 다른 고대 암각화 자료를 검토하면서 이 석각이 ‘밤하늘의 별자리를 그린 것일 수 있다’는 데까지 이르렀다.

이때부터 별자리에 관한 자료를 수집, 연구하기 시작했다. 조선 태조 때 만들어진 석각천문도인 ‘천상열차분야지도’를 비롯해 동서양의 별자리 자료를 망라했다. 문제의 석각이 별자리 일 것이란 가정 아래 연구에 들어가자 모든 것이 잘 맞아 들어갔단다.

이때가 지난해 7월. 조세원 씨는 그때의 기분을 이렇게 표현했다.

“한 마디로 깜짝 놀랐지. 바위에 새겨진 선각이 별자리 일 수 있다고 생각하고 맞춰보니까 모두가 맞아 떨어지는 거야. ‘드디어 수수께끼가 풀리는구나!’ 생각하니 며칠 동안 잠이 안 왔지.”

   
남해상주석각이 경남도기념물6호임을 알리는 표지판 아래에서 이 바위에 관해 설명하고 있는 조세원 씨(왼쪽 위)와 석각이 새겨진 '거북바위' 모습(왼쪽 아래). 표지판은 석각에 관한 여러 가지 설이 있음을 알려 주고 있다.
그의 이론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남해상주석각은 조선조 천상열차분야지도와도 다르고 서구의 천문도와도 다르지만 천문도(또는 성좌도)에서 성수의 위치가 대부분 같다. 천체의 자오선과 선각바위 경사면 방향이 일치한다. 이 석각은 북극성을 중심축으로 하여 페르세우스자리, 양자리, 삼각형자리, 가을대사각형자리, 안드로메다자리, 물고기자리, 도마뱀자리, 백조자리, 페가수스자리, 카페우스자리, 조랑말자리, 독수리자리를 표현했다. 계절로 보면 가을에 해당하며, 24절기 중 한로(매년 10월 8~9일) 무렵에 석각과 매우 일치하는 별자리를 볼 수 있다. 밤11시에서 새벽1시 사이가 관찰하기에 가장 좋다.”

반면 이 석각을 두고 문자로 해석하려는 경향에 대해서는 “문자가 되려면 크기나 배열에 있어 규칙성이 있어야 하는데 이와 거리가 멀다. 그래서 서불과 연결 짓는 것은 전혀 맞지 않다”라고 설명했다.

조세원 씨는 그가 정리한 내용을 경남도와 문화재청 등 관련 기관이나 관련 학계에서 검토해 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은 그의 연구에 귀 기울이는 사람이 적은 편이다. 기관에서는 그의 연구결과를 일종의 민원으로 보고 남해군에 이첩한 상태다.

   
글인지 그림인지 정확히 알 수 없는 거북바위의 오목새김(가로100cm, 세로80cm). 조세원 씨는 가을 밤하늘의 별자리라고 확신하고 있다.
남해상주석각. 수 백 년인지 수 천 년인지, 여전히 그 역사와 유래를 정확히 알기는 힘들다. 어쩌면 영원히 미궁 속에 남겨둬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진실에 조금이라도 더 다가가려는 노학자의 열정에 고개가 숙여진다. 영국의 역사학자 에드워드 핼릿 카(Edward Hallett Carr)가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말한 대목이 새삼스럽게 들린다.

21세기에 들어선 이래로 관광산업이 더욱 주목받고 있다. 이렇다보니 지역의 소소한 일도 과거 역사적 인물 또는 사건과 연결 짓고 싶어 한다. 그래야 이야기가 있고 주제가 있는 관광상품을 개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억지’와 ‘억측’을 동원해선 안 되겠다. 그런 점에서 조세원 씨는 제주와 거제, 남해 등에서 ‘서불’과의 인연을 지나치게 확대 해석하는 건 아닌지 물음표를 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