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nguage & ... Writing/향가·만엽가·일본서기 해석

[스크랩] 일본에도 야은 길재 선생과 같은 이가 있었네-高市古人

monocrop 2011. 9. 28. 17:55

 일본에도 야은 길재 선생과 같은 이가 있었네-高市古人의 노래

 

만엽가(32번/고단샤 정리번호)

 

일본 고시가를 모아 놓은 책이 만엽집이다. 약 4세기에서 9세기 이전까지 쓰여진 한자로 구성되어진 노랫말이다.

신라의 향가와 맥을 같이하고 있다. 삼국중에서도 신라의 노래집인 "삼대목"은 아직 발견되지않고 있다. 남아있는 향가는 15수이다. 반면에 일본에는  

약 4600여수의 노래 중에 다양한 주제들로 구성된 만엽집의 노래가 존재하고 있다. 향가의 보고이다. 일본인들의 문화적 자랑거리가 바로 만엽집이다.

일본이 문화인으로서 자부심을 갖게한 만엽집, 일본 고전문학의 한 장르로서 수 많은 논문과 이설 및 통설이 난무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현재 일본어로서는 그 노래의 정확한 해독이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난제의 이유로 일본 고대어의 소멸을 들었다. 그러나 그 만엽가를 쓴 주체가 한국어를 쓴 한민족이라는 사실을 간과한 큰 오류를 범했다.

 

필자가 이미 91년, 93년 [일본서기 고대어는 한국어]와 [전혀 다른 향가와 만엽집]에서 그 주체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해독을 통해서 알린 바 있다.

 

신라 향가에 비해 대부분 짧은 문장으로 되어있다. 짧은 것들은 詩的 서정적인 노래말로 되어있다.

주제가 다양하다. 수 많은 당대의 문장가들의 실력이다. 서민들의 노래가 아니라는 점이다.

 

한문적인 소양과 소질을 갖춘 상류 사회의 지적 부산물이다. 이 노래말을 정확히 해독하므로써 그 시대의 정신과 풍속 등 제반 정보가 함축된 문화적 보고를 찾을 수 있다. 

 

 

이 노래는 高市古人이란 인물이 天智천황(백제계통천황)이 이룩한 近江(오오미)國의 폐허지를 둘러보고  회상에 잠겨 노래한 노래이다.

 

이 노래를 해독하고난 후 고려시대 개경이 무너지고 길재선생이 개경을 둘러보고 난후 쓴 시조가 생각났다.

아래에 소개해 놓겠다. 비교해 보면 같은 분위기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옆 그림은 일본 浮世繪(민속화)로서 오미국大津宿을 그려놓은 그림이다. 琵琶(비화)湖 아래 지금은 滋賀縣 大津市에 해당하는 곳이다. 아래 노래에 나오는 大津宮은 大津市(오오쯔 시)에 있었다>

 

高市古人感傷近江舊堵作歌(惑書,高市連黑人)

(高市古人이 오오미국의 폐허가 된 大津宮을 거닐며 느낀 슬픈 심정으로 쓴 노래말이다. 다른 책에선 쓴 작가가 高市連黑人이라함)

 

 

 

본문:古人爾和禮有哉樂浪乃故京乎見者悲寸

 

 

 

옛 못잊니                            :古(녯몬)人(인)爾(니)

(불)탄 절(寺)까지 재(灰)       :和(탄)禮(절)有(가지)哉(재)

나온 멋(벚,버찌) 결(물결) 내 :樂(나온)浪(믓결)乃(내)

옛 벚꽃지오                         :故(녯벗)京(곳짓)乎(호)

보자, 옛(지나간) 빛(光)이      :見(보)者(자)悲(옛비)寸(치)

 

현대어 복원

 

옛 못잊니                           

(불)탄 절(寺)까지 재(灰)       

나온 멋(벚,버찌) 결(물결) 내

옛 벚꽃지오                        

보자, 옛(지나간) 빛(光)이 

 

해설

옛날을 못잊니, 옛 거처(近江大津宮)에 돌아오니, 불탄 절까지 재로 쌓여있다.

 그러나 봄철에 핀 버찌가 벚나무에 열려, 물결치듯 열렸구나,

옛 벚꽃이 지오. 자세히 보자, 옛 지나간 추억의 빛이 어려있구나.

 

<전혀다른 향가 및 만엽가/우리문학사/93년 김문배,김인배><일본서기고대어는 한국어/빛남/91년 /김인배/김문배>

 

 

   문자해설

     

 향찰문자에서 한자는 뜻이아니라 소리부호이다. 음가가 중요하다. [  ]은 음가이다. 즉 발음 기호이다.       古은 [녓몬]이다. 옛일(古事)의 고어이다. [몬]은 事(일)의 고어말이다. 일본어 [모노/物]의 어원이 된다(일본서기고대어는 한국어/필자)

和 는 [탄] [타다/혼합하다],禮(절/절하다), 고어[덜]이다. 동음 寺(뎔)의 음차이다.

有(가지다/가지/) 동음 고어 [가지/(까지)]음차이다. 樂은 [나온]은 즐거운의 고어이다.

浪(믓결)은 물결의 고어, 믓=멋(버찌,벚)의 동음 차용

故(녯벗) 친구의 고어,京(곳짓) 창고의 고어이다.

悲(옛비)는 불쌍히의 고어이다.음차.寸(촌)은 한치 두치와 같이 치수를 나타내는 단위 [치]<99.1.11 밤 해독한 노래>

 <방화로 폐허가 된 남대문 몰골>

 

고려가 망한 후에 옛 서울 개성(開城)을 지나면서 옛 왕조를 그리며 읊은 노래이다. (2수) <폐허가된  불국사 사진>



길재

 

 오백 년 도읍지를 필마(匹馬)로 도라드니,

산천은 의구(依舊)하되 인걸은 간듸 업네.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원천석

 

 흥망이 유수(有數)하니 만월대(滿月臺)도 추초(秋草)로다.                

오백년 왕업이 목적(牧笛)에 부쳐시니,

 석양에 지나는 객이 눈물겨워 하노라

 

길재(吉再 1353∼1419 고려 공민왕 2∼조선 세종 1)


고려 말 조선 초의 학자. 자는 재보(再父), 호는 야은(冶隱)·금오산인(金烏山人). 본관은 해평(海平). 고려 말의 삼은(三隱)의 한사람으로 1370년 개경에서 이색(李穡)·정몽주(鄭夢周)·권근(權近)의 문하에서 공부했다. 83년(우왕 9) 등과하고, 87년(우왕 13) 성균관학정(成均館學正), 이듬해 성균관박사(成均館博士)가 되어 학생들을 교육했다. 89년(창왕 1) 노모 봉양을 이유로 귀향하여 선산(善山) 임천(林泉)에서 은거했다. 그 뒤 고려왕조가 멸망하고 조선왕조가 세워져 1400년(정종 2) 태상박사(太常博士)의 직을 내렸으나 두 왕조를 섬길 수 없다고 사퇴하고 선산에서 후진교육에 진력했다. 김종직(金宗直)의 아버지 김숙자(金叔滋)에게 성리학을 가르쳤고, 그 학통은 김종직·김굉필(金宏弼)·조광조(趙光祖)로 이어졌다. 죽은 뒤 금산(錦山)의 성곡서원(星谷書院), 선산의 금오서원(金烏書院), 인동(仁同)의 오산서원(吳山書院)에 제향되었다. 1400년 상경하여 지었던 것으로 보이는 시조 한 수가 전해지는데, 그 내용은 옛 수도 개경에 들러 인간사의 덧없음과 고려왕조 멸망의 안타까움을 노래한 것이다. 저서로 《야은집(冶隱集)》 《야은속집(冶隱續集)》 등이 있다. 시호는 충절(忠節). (다음 신지식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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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전혀 다른 향가 및 만엽가
글쓴이 : 庭光散人글돋先生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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