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nguage & ... Writing/향가·만엽가·일본서기 해석

[스크랩] 신간소개<神들의 이름>-일본천황이름이 한국어로 되어있다

monocrop 2011. 9. 28. 17:57

 

<신들의 이름 >-신간 소개

부제-일본 천황가의 한국식 이름 연구

<2009년2월25일 출간.출판사 <오늘>>

 

 

 

 

 

 


신들의 나라! 일본의 고대 역사서에 신으로 등재된 천황들의 휘와 시호를 한국어 식으로 명쾌하게 풀이함으로써 일본열도를 긴장시킬 역작 국내 우선 출간!

-이 책은 신라향가 일본 와카(和歌)와 만요슈(萬葉集) 연구의 독특한 해법제시로 양국 고대사학계를 놀라게 한 형제 역사학자가 쓴 화제의 신간이다.

 

일본인들의 의식구조 속에는 자신의 나라가 ‘신들의 나라’란 생각이 깊이 박혀 있고, 천황의 존재는 그 숱한 신들의 정점에 자리 잡고 있다. 천황은 신이기 때문에 성이 없고 이름뿐이다. 우리가 일본 고대사 연구에 깊이 천착하면서 특별히 주목한 것은 신으로 추앙되던 고대 일본천황들의 중국식 시호(두 글자로 된 짧은 명칭) 옆에 또 다른 긴 이름이 붙어 있다는 점이었다.
한자로 표기했지만 정격한문이 아니어서 그동안 일본학계는 그 뜻을 전혀 해독하지 못했다. 그냥 나열된 한자를 일본식 음ㆍ훈독으로 호칭할 뿐 뜻은 잘 알 수 없다는 식으로 치부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자차용
휘으로 기록된 제법 긴 수수께끼 같은 이 별칭들은 이른바 신라의 향찰식 표기처럼 음독과 훈독의 조합을 통한‘소리 매김 부호로서 고대 한국어로 읽힌다는 중요한 발견을 통하여 이 책이 쓰였다.
이 책은 부제에서 언급하고 있듯이 일본 천황들의 이름을 연구하여 그 이름이 지어지게 된 내력과 그 이름이 말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밝힌 연구서이다.
이 책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일본이라는 나라가 어떻게 생성되었으며 일본인들의 의식과 무의식 속에는 무엇이 존재하고 있는지를 알아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일본이라는 나라는 어떤 나라이며 천황의 이름은 어떻게 지어졌는가?

일본은 가히 <신들의 나라>로 불릴 만하다. 일본열도의 곳곳에 신들을 모신 각종 신궁 및 신사에 대한 참배행위도 일상화 되어 있다. 그리고 그들이 숭배하는 온갖 신들 가운데서도 으뜸은 역시 천황이었다.
 소위 태평양전쟁을 일으켰던 일본이 미국에 패망함으로써 비로소 인간선언을 한 일본국왕은 그 이전까지만 해도 현신인으로 추앙받았던 것이다. 그러한 사실은 신의 나라 백성이라는 일본인의 특이한 의식구조에서 연유한다. 대관절 그와 같은 사고방식의 연원


신은 어디서부터인가?

 그것은 일본인들이 단순한 역사서를 넘어 <국민문학>으로까지 인식하는『고사기』 및『일본서기』에서부터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관찬정사(官撰正史) 이들 두 고서 (고사기)에는 고대 일본의 신화, 일본민족의 탄생과 유래, 그리고 국가형성 등의 모든 것이 기술되어 있다. 그런데『고사기』에는 제1대 신무부터 추고까지 33인,『일본서기』에는 제1대 신무천황 부터 0대 지통까지 40인의 천황들의 시호와 휘(諱) 나온다.
 ‘시호’또는‘휘’란 것은, 왕이나 기타 지체 높은 분의 사후에 그들의 공덕을 기려 생전의 업적이나 특징 따위를 함축하여 붙였던 이름이다.
 
 
-천황의 이름이 향찰식의 표기로 붙여지게 된 배경과 내력은 무엇인가?

요컨대 한자를 차용하여 기록한 그 수수께끼 같은 천황의 별칭들을 명쾌하게 해독한 연구서가 이번에 출간되었다.『신들의 이름』(부제ㅡ일본 천황가의 한국식 이름 연구)가 바로 그것이다.
 그동안 학계에서는 일본어의 음과 훈을 빌려 적었으리라 여겨왔고, 또 그렇게 읽고 있었다. 그러나 무슨 뜻인지 전혀 알 수 없었던 그 일본천황들의 휘를 고대 한어({ &)로 해독했을 때 비로소 그 이름들이 지닌 수수께끼 같은 비밀이 확연히 풀린 것은 놀라운 일이다. 이로써 이 연구서는 일종의 <어문역사연구>라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한 학술적 의의를 지니는 책으로 평가받을 만하다.
 일찍이 일본에 문자, 즉 한문을 전래한 것은 백제인들이었다. 그 사실은『수서』권81의 <동이전 왜국> 조에 기록되어 있다. 또『일본서기』에서도 응신천황 때 태자의 스승이 된 백제인 아직기 다시 왕인박사를 천거하였고, 그는 한문의 전적들을 본격적으로 전래하여 태자를 가르쳤다.훗날 왕인 박사는 이른바 서수의 시조가 되었던 사람이다. 게다가, 백제의 멸망 후 일본으로 건너간 백제계 유민인 태안만려(오노 야스마로)는 천무천황의 명을 받아 사서편찬의 일에 착수하게 되었는데, 후일 원명천황의 재조를 받고 마침내 서기 712년『고사기』3권을 완성케 되었다.
 특히 천무천황 재위 중에 편찬이 시작되었을『고사기』외에, 훗날『일본서기』의 원본이 된『일본기』의 성립연대를 학계에서는 서기 720년으로 추정하고 있다.
 아무튼, 이 두 사서를 근간으로 하여 보완된『일본서기』역시 이른바 백제삼서(백제기, 백제신찬, 백제본기)를 많이 인용하고 참고해서 완성된다. 이런 점에서, 이들 천황의 긴 이름들이 당시 한어의 음과 훈을 빌려 적는 소위 향찰식 표기였던 것으로 볼 개연성은 충분하다. 말하자면 한자를 최초로 일본에 가져와서 사용한 집단은 주지하다시피 한반도에서 도래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한자의 음과 훈을 빌려 자기 나랏말을 적는 방식에 고심했다는 것은 결국 본국이었던 고대 한국에서 행했던 방식과 유사했을 것이라고 쉽게 추정할 수 있다.
『삼국유사』에 기록된 신라 향가는 8세기 이후 신라인이 향언, 즉 신라 말을 적기 위해 소위 향찰을 이용한 표기방식을 사용한 것으로 추정해 왔다. 그러나 그보다 훨씬 이전인 6세기에 백제인들도 한자의 음과 뜻을 빌려 우리말을 기록하는 향찰식 표기법을 사용했다는 연구결과도 나와 있다.
 지난 1971년 발견된 백제 무령왕릉의 지석이 한국식 어순과 한문이 혼재돼 있는 점, 또 2000년 충남 부여 능산리 고분의 인근에서 발견된 목간의 내용, 다시 2002년 부여 능산리 절터에서 발굴한 목간(6세기 유물) 등을 통해 이미 서기 6~7세기 초에 백제인이 향찰로 쓴 가장 오래된 글귀들이 그 대표적인 사례였다.
  신라의 경우, 현존하는 25수의 향가에 국한시켜 말하더라도「서동요」라고 통칭되는 향가는 신라 진평왕 시대(579~632년)에 지은 것으로 돼있다. 따라서 그 창작시기의 상한점은 6세기가 되는 것이다. 이 점은 일본에서 만엽가가 처음 창작되던 시기와 일치한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향찰식 표기법의 기원은 8세기의 신라학자인 설총이 이두를 발명했다는 692년보다 훨씬 앞서 나타나고, <남산신성비>나 <갈항사조탑기> 조성연대인 7세기는 물론이고, 간단한 인명, 관명, 지명 등에서는 한자차용에 의해 우리말을 표기한 방식이 고대 3국에서 기원 1세기 무렵에 벌써 사용되었던 예를 볼 수 있다.
 따라서 인명 등을 향찰식으로 적고 읽는 방식은, 일본으로 건너간 한지의 도래인들에 의해 그대로 전해져, 거기서 더욱 발전하였다. 바로 이 책은 일본의 역대천황들의 시호 및 휘를 고대 한어로 해독한 연구서이다. 그리고 여러모로 고정관념의 기존 틀을 깨는 참신한 발상과 독창적인 연구방법으로 논지를 펼치고 있는 점이 특히 주목할 만하다.
 일본의 역사왜곡 문제는 비단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8세기에 이미『일본서기』편자들의 가필과 변개와 조작까지 이뤄진 사례들을 이 연구서는 <탐색>과 <쟁점>을 통해 다루고 있어, 날조된 역사는 언젠가 반드시 그 진상을 드러내기 마련임을 보여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한국식 이름을 가진 일본 천황가의 정체를 밝힘과 더불어, 이 연구서가 시사하는 바에 따라 가장 괄목할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역사의 진실을 은폐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변조하면 훗날 반드시 역사의 보복을 당하게 된다는 교훈인 것이다.


-천황의 이름을 풀이한 실례

제8대 대일본근자언국견


대일본근자언국견천황(오호야마토네코히코 쿠니쿠루노스메라미코토·おほやまとねこひこくにくるのすめらみこと)라 읽는다.
중국식 시호는 (효원)(かうぐゑん)이다.
그런데 위의 풀이에서 본 바와 같이 "천하를 부리셔 나라 이끌천황"이란 이름이 붙은 만큼, 선황(제7대 효령천황) 때부터 천하를 부릴 뜻을 도모한 그 유업을 좇아 효성을 다한 것을 찬양하여 (효성의 으뜸)이란 시호가 붙은 것으로 해석된다.

제 9대치일본근자언대일일(開化ㆍ개화)


치일본근자언대일일천황(稚日本根子彦大日日:와카야마토 네코히코 오호히히노스메라미코토·わかやまとねこひこおほひひのすめらみこと)의 시호인 開化(개화)(카이쿠와·かいくは)는 개명(開明과 같다. 즉, [사람의 지혜가 열리고 사상과 문물의 제도가 진보함]의 뜻으로, 위에서 풀이해 본 것처럼 [우매한 새 땅 부리셔 환히 밝아져](즉, 세상을 밝게 열어 진보시킨) 천황의 이름과 부합됨을 볼 수 있다.
특히 稚日本(치일본)은 [어린해불휘]로 읽고, 그 뜻은 [미개한 새 땅, 혹은 어린애(幼稚I·유치)에 비유된, 진보하지 못한 새 땅]이다. 즉, 일본이란 영토가 아직 미개했던 시절을 암시한 것인데, 표기상의 문제에서 [愚(우)일본]이란 국호는 상서롭지 못하여, 같은 뜻이라도 조금 더 나은 이름인 [稚(치)일본]으로 기록한 듯하다.
 이밖에도 아주 재미있고 풍자적인 작명의 예들이 자주 등장한다. 한 가지만 예를 더 들어, 제34대 식장족일광액천황(息長足日廣額)
息長足日廣額)의 경우를 보자.

 

식장족일광액천황(息長足日廣額)
=(오시나가타라시히 히로누카노 스메라미코토ㆍおしながたらしひひろぬかのすめらみこと) 즉「舒明,서명)」(죠메이ㆍじよめい)천황의 재위기간은 13년간이었다. 결코 짧다고만 할 수 없는 그 세월동안『일본서기』의 <서명기>는 매우 간략하고, 전체 분량도 짧다. 그러면서도 특별히 눈에 띄는 것은 다른 천황기록에 비해 유난스레 온천행락 기사들로 채워져 있는 점이다. 짧게는 3개월 남짓, 보통 4개월 정도를 온천에 행차하여 시간을 보내느라고 신상(新嘗[햇곡식을 조상의 사당에 올리고 음식을 맛보는 예식)을 제 때 거행하지도 못하고 뒤늦게 치른 것을 본 사가(史家)는 오죽하면 이를 유감스럽다는 투의 글귀를 기사 속에 첨부해놓기까지 했다.
 바로 이와 같은 서명천황의 특징을 빗대어「씻기 좋게 넓은 이마」라는 이름을 붙였던 것으로 짐작된다.

그리고 중국식 시호인「舒明(서명)」은 그 훤한 이마의 광채만큼 <밝음, 또는 광명을 펴다>라는 뜻이 된다. 실제 그의 치세에 백제대사(百濟大寺)를 건립하고, 많은 학문승들을 자주 당(唐)유학 보내기도 하였다. 이런 점에서 불교가 융성해지고 불은(佛恩)에 의한 만민교화를 통해「밝음을 펼친(舒明(서명)」천황이란 뜻은 잘 어울린다. 

 

-이 책 神들의 이름’-차례

_권두언
_저자의 말  발간에 즈음하여
_프롤로그  일본 천황가의 한국식 이름 연구

●제1부-25페이지
역대 일본천황의 시호와 휘
  ―신무에서 응신까지

서장-26
1. 고대인의 작명 방식-31
2. 향찰의 3가지 표기 원리-35
작명 방식의 사례-37
    액전왕 혹은 액전희왕의 이름에 담긴 의미
    ―두 왕을 섬기는 여인의 운명이 함축된 작명
제1장-42
신무동정신화와 가공의 천황들
 ●신무 ●수정 ●안녕 ●의덕 ●효소
 ●효안 ●효령 ●효원 ●개화
탐색-48
 일본국호에 대한 언어적 고찰
탐색-53
 일본을 국호 이외의 보통명사로 볼 수 있는 다른 이유
제2장-69
  숭신천황 출자의 수수께끼와 천일창
  ●숭신 ●수인 ●신라왕자 천일창
탐색① -75
  숭신천황은 도왜한 가야족의 수장인가?
탐색② -82
  천일창과 동경
제3장-90
  일본적 [和]정신의 모델과 경행(景行)천황
  ●경행 ●성무
제4장-101
왜 여왕 비미호와 신공황후
  ●중애 ●신공황후   
제5장-107
  응신천황 출생지의 비밀
  ●응신
탐색① -110
 기존의 음훈 읽기에 대한 의문
탐색② -119
  1. 응신천황 출자의 비밀
  2. 응신천황의 난파조정에 도래한 부여국인들과 발장원의 정체
  3. 응신천황은 부여국의 의라왕이었나
탐색③ -128
   1. 백제는 왜 적극적으로 응신왕조를 도왔는가
   2. 백제가 응신왕조를 도울 수밖에 없었던 이유

●제2부-137
천황명의 수수께끼
 ―인덕에서 지통까지
제6장-138
  교체왕조의 융성과 세계 최대의 천황릉
  ●인덕
쟁점-148
[記] [紀]의 상이점에 따른 의도적 편찬과 그 진상
  1. 난파에의 천도
    고야선의 건조(建造)
    천일창=天之日矛의 도래시기 등의 문제
  2. 인덕천황 즉위전기의 <해인(海人이야기>
     길비국 천도하(川嶋河의 <대규(大규) 이야기>
제7장-161
  조정의 내홍과 격변
  ●이중 ●반정 ●윤공 ●안강
  ●웅략 ●청녕 ●현종 ●인현
제8장-196
  후사의 단절과 청동거울 속의 바닷길
   ●무열 ●계체
탐색①-203
  우전팔번경에 새긴 명문의 진상
탐색②-212
  금동신발의 영역
쟁점-223
 송서의 왜왕 무(武는 무령왕이었나

제9장-228
  백제계 부여씨의 천황가 편입과 불교의 융성
    ●흠명 ●추고 ●서명 ●황극[=제명]
제10장-243
   양위인가, 찬탈인가 ―피를 피로써 씻는 황위쟁탈전
   ●효덕 ●천지 ●천무 ●지통
탐색-258
  천무기의 특징
쟁점-262
  천무천황의 계보는 신라계인가


■ 부록-279
Ⅰ. 해독의 근거 및 한자의해례-280
 ―본문에 제시한 모든 인명에 대한 주석)
(제1부) 신무에서 응신까지-280
제2부) 인덕에서 지통가지-302
고대어의 표기방식-324
제1장 만요가나 향찰식 표기-324
    1. 한자차용에 의한 표기방식의 공통점
    2. 중세 이후의 일본어로는 해독 불가능한 만요슈(만엽집)
    3. 구결,이두,향찰
제2장 향찰의 원리,원칙-338
    1. 향찰의 새로운 개념
    2. 향찰의 원리에 의한 표기 실례
      (1)관명(2)인명(3)지명
 ●발문-355
 ● 책을 엮고 나서-358
 
-저자소개
김인배
경남 삼천포 출생.
동아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졸업.
1975년 계간[문학과 지성』에 소설로 등단.
소설작품집 : [하늘궁전][후박나무 밑의 사랑][문신][비형랑의 낮과 밤]
역사연구서 : [고대로 흐르는 물길][일본서기 고대어는 한국어](공저),
[전혀 다른 향가 및 만엽가](공저) [임나신론](공저), [만엽가의 謎](일본 월간 [보석]지 중本 1993년 11월호]

역사논문 : [해류를 통해본 한국 고대민족의 이동](계간 [역사비평] 6호 1989, 가을)
한국소설가협회 회원. 동아시아고대학회 회원.
현재 창신대학 문예창작과 외래교수
e-mail : ink4800@hanmail.net

김문배
경남 삼천포 출생.
동아대학교 법학과 졸업. 법학 및 교육학전공.
역사연구서 :[일본서기] 고대어는 한국어』(공저)[전혀 다른 향가 및 만엽가](공저), [임나신론](공저), [만엽가의 謎](일본 월간 [보석]지 중本 1993년 11월호]

기타 저작 : [참 만엽의 노래][글돋선생의 만엽집][일본어 시원탐색][전혀 다른 만엽의 노래」[고대일본어의 부활][남산 천룡사지 가는 길][부석사엔 함박눈이][역사논문:「구야한국과 변진구야국은 과연 김해일까] 등.
(사)한배달 학술위원 역임. 동아시아고대학회 회원
e-mail : kmb2274@hanmail.net

출처 : 전혀 다른 향가 및 만엽가
글쓴이 : 庭光散人글돋先生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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