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XT/비쳐진 세상

한국 스키점프의 숨은 손- 독일인 랄프 고르츠

monocrop 2009. 11. 29. 23:17

한국 스키점프 독일 기업인이‘점프’시켰다 [조인스]

2009.11.21 16:18 입력

이사람 | 스키점프의 ‘숨은 손’ 랄프 고르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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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 스키를 타고 급경사면을 내려오다 새처럼 날아 오르는 스키점프. 올 여름 극장가에서 시원한 스키장을 감상하게 만들었던 한국영화 <국가대표>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스키점프의 그 짜릿한 도약을 기억하리라.

스키를 타고 급경사면을 내려갈 때의 그 긴장감, 도약하는 순간의 박진감, 그리고 새처럼 날아오를 때의 해방감과 아름다운 모습을 기억한다면 누구나 스키점프라는 경기에 매료될 것이다.

스키점프가 영화 <국가대표>를 통해 자세히 소개되면서 전 국민의 관심 대상으로 떠올랐다. 영화 <국가대표>는 관람객이 800만 명을 돌파하면서 대형 블록버스터 영화로 자리매김했고, 이 영화의 소재가 된 스키점프는 날이 갈수록 국민의 관심을 끌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 스키점프 선수들의 실력 향상 뒤에는 한 독일인의 헌신적 노력이 있었다는 것을 아는 한국인은 많지 않다.

랄프 고르츠(68). 현재 세계적 엔지니어링회사인 독일 아이리히그룹의 아시아태평양담당기술영업이사이자 서울연락사무소장으로 일하고 있다. “한국인은 스키점프라는 경기에 매우 우수한 자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스포츠 단체와 올림픽위원회가 조금만 더 관심을 갖고 스키점프를 지원한다면 한국의 스키점프 선수들은 올림픽에서 반드시 금메달을 딸 것입니다.”

서울 여의도에 있는 사무실에서 만난 랄프 고르츠는 다소 상기된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현재 한국스키협회의 스키점프 부문 고문이기도 한 고르츠는 한국 스키점프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그 어느 때보다 정열적으로 변한다. 사실 그의 삶은 스키점프와 함께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는 어린 시절 독일의 산악지역에서 성장했고, 여섯 살 때부터 스키를 탔습니다. 아홉 살 때부터는 스키점프를 시작했습니다. 대학시절에는 독일의 바덴(Baden) 지역에서 스키점프 지역대표선수로 활동했고, 1965년에는 캐나다로 건너가 캐나다의 스키점프 국가대표선수로 활동했습니다.”

1968년까지 캐나다 국가대표로 뛰었던 고르츠는 1970년 독일로 돌아온 뒤 스키점프를 취미로 하면서 후배들을 가르치는 데 주력한다. 그런 그가 한국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93년. 그해 5월 한국 근무를 시작한 고르츠는 한국의 스키점프에 관심을 갖게 된다.

“한국에서 스키점프가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한 것은 1993년 11월 당시 쌍방울그룹이 무주리조트에서 스키대회를 열면서부터일 것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당시 한국에는 스키점프를 하는 선수가 거의 없었고, 한국 팬들의 관심도 거의 없었습니다. 저는 순수하게 한국의 스키점프를 양성해 보겠다는 일념으로 한국 스키점프 선수들을 도울 생각을 했습니다.”

그는 한국스키협회와 연락을 취하면서, 스키점프를 하는 어린 한국선수들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사비를 털어 한국의 어린 스키점프 선수들을 데리고 유럽 전지훈련을 다녔다. 특히 독일에서는 그의 선수 시절 친구들이 한국선수들의 훈련캠프를 도왔다. 이런 노력은 곧 성과를 나타내기 시작했다.

한국의 어린 스키점프 선수들이 독일의 스키점프 주니어대회에서 입상했던 것. 한국 선수들이 주니어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자 현지 신문들은 이를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이런 성과에 힘입어 고르츠는 쌍방울에 전문 코치가 필요함을 설득했고, 이윽고 1996년 그의 친구이자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 동계올림픽 스키점프 은메달리스트인 요헨 단네베르크(Jochen Danneberg)를 한국 스키점프팀 수석코치로 영입하기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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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5일 강원 평창군 알펜시아 스키점프장에서 열린 ‘2009평창FIS스키점프대륙컵대회’ K-125경기에서 우승을 차지한 국가대표 김현기가 멋지게 밤하늘을 날고 있다.

나가노올림픽에 처녀출전

1998년 일본 나가노동계올림픽을 준비하기 위한 코치와 선수들의 노력은 눈물겨웠다. 이를 후원하는 고르츠의 마음도 열성적이었다. 올림픽 출전권을 따낸 한국선수들에게 전 세계 동계스포츠인의 시선이 집중됐다. 한국선수들은 처음 올림픽에 출전하는 데다 참가선수들의 연령이 13~16세로 전 세계 선수들 중에서도 가장 어린 선수들로 구성돼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한국 선수들은 김현기(13)·최용직(14)·최흥철(15)·김흥수(16) 등이었다. 그러나 올림픽에 처녀출전한 한국 스키점프팀의 약점은 경험이 부족한 나이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1997년 한국경제를 강타한 IMF 구제금융의 혼란 속에서 스키점프의 후원자였던 쌍방울이 법정관리에 들어갔고, 이에 따라 동계올림픽 출전을 위해 모셔왔던 단네베르크가 지원자금 문제 때문에 수석코치에서 물러나야 했다. 올림픽 출전을 눈앞에 두고 청천벽력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고지가 바로 저기인데’ 예서 그만둘 수는 없었다. 고르츠는 단네베르크와 함께 자신의 집에서 생활하면서 한국 스키점프 올림픽팀을 급여도 없이 헌신적으로 후원했다.

“단네베르크가 나가노동계올림픽 한국 스키점프팀 코치를 계속했다면 한국팀의 올림픽 성적은 실제보다 훨씬 좋았을 것입니다. 스키점프는 경기의 성격상 경기 당일의 컨디션이나 선수들의 정신적 상황에 크게 영향받는 경기입니다. 따라서 단네베르크가 중도하차한 것이 선수들의 사기에 많은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올림픽 출전을 앞두고 유능한 코치가 계속 지도하지 못하게 된 상황은 매우 애석한 일입니다.”

지금도 고르츠는 짧은 시간에 일궈낸 올림픽 출전 자격으로 메달권 진입까지 노렸는데 못내 아쉽다는 표정이다. 그러나 시련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나가노올림픽이 끝나고 후원사인 쌍방울의 지원도 끊기는 바람에 한국의 스키점프팀은 해체 위기를 맞는다.

“결국 또 후원 문제가 불거졌습니다. 쌍방울의 지원이 끊기고, 올림픽에서 메달도 딸 수 없었던 한국 스키점프팀은 존폐 위기에 놓였습니다. 이를 그냥 두고 볼 수 없어 개인적으로 스키점프팀의 유럽 전지훈련을 마련했습니다. 독일을 비롯해 유럽 전역에 퍼져 있는 지인들의 도움을 받아 한국 스키점프팀과 함께 독일·오스트리아·스위스 등지에서 훈련캠프 생활을 했습니다. 스키점프의 훈련 설비가 좋기로 유명한 독일 남부의 이즈니(Isny)는 한국 스키점프 선수들의 제2의 고향이라는 이야기가 절로 나왔습니다.”

한국 스키점프팀을 후원하기 위한 고르츠의 노력은 계속됐다. 그는 2000년 하반기에 같은 독일인으로 한국에 뿌리를 내린 이참(현 한국관광공사 사장) 씨와 함께 스키점프 후원에 매달렸다. 봄은 다시 왔다. 기아자동차가 스키점프의 후원사로 나선 것이다. 단네베르크도 다시 한국 스키점프팀의 코치로 영입됐다.

한국팀의 성적도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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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랄프 고르츠(앞줄 맨 오른쪽)가 한국의 스키점프 선수들과 유럽 전지훈련을 갔다. 앞줄 맨 왼쪽의 두 사람은 최용직·김현기 선수다.
이처럼 심한 우여곡절을 겪은 한국 스키점프팀의 성적은 놀랍다.

“1997년 이후 한국의 스키점프 선수들은 각종 국제대회에 돌아가면서 각각 30경기 이상 출전해 왔습니다. 다수의 유럽 주니어선수권에서 우승하고, 유럽의 5개 스키점프 경기장 기록을 보유한 최흥철 선수는 최근까지 국제대회에서 네 번의 우승과 2위 네 번, 3위 다섯 번을 기록했습니다. 김현기 선수는 최근 중국에서 열린 유니버시아드대회에서 우승한 것을 비롯해 2위 두 번, 3위 한 번을 기록했습니다. 강칠구 선수도 2003년 이탈리아에서 열린 유니버시아드대회 우승을 포함해 2위 한 번, 3위 한 번을 기록했습니다. 최용직 선수는 아직 우승 경험은 없지만 무려 일곱 번이나 2위를 기록한 훌륭한 선수입니다.”

“한국팀은 2003년 이탈리아 유니버시아드대회와 2009년 중국 유니버시아드대회에서 두 번이나 팀 우승의 감격을 안았습니다. 팀 성적 2위도 세 번이나 기록했습니다. 올림픽 성적으로는 2002년 미국 솔트레이크 동계올림픽에서 팀 성적 8위를 기록함으로써 메달 가능성을 충분히 보여 주었습니다. 스키점프는 경기 성격상 세계 20위권에 들어가는 선수의 경우 그날의 컨디션과 날씨 상황에 따라 누구든 우승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한국선수들이나 한국팀이 올림픽에서 메달을 딸 가능성은 언제든 열려 있습니다. 다만 세계적 실력을 갖춘 스키점프선수를 길러내기 위해서는 대략 8~10년의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올림픽 메달을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10년을 내다보고 투자해야 합니다.”

비인기 종목이라고 해서 그동안 제대로 지원하지 못했던 한국 스키점프팀을 바라보는 고르츠의 안타까움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스키점프 국제대회는 생각보다 다양합니다. 4년마다 열리는 올림픽을 비롯해 월드챔피언십·월드컵 등 세계적 규모의 대회가 있습니다. 그리고 B월드컵이라 불리는 인터내셔널컵 등의 국제대회도 있습니다. 여름에 열리는 그랑프리대회도 있고, 보다 많은 선수들이 출전하는 유니버시아드대회와 각종 주니어대회 등이 있습니다. 한 명의 세계적 스키점프선수를 키우기 위해서는 어린 시절부터 많은 국제대회에 출전시켜 실전 경험을 쌓도록 해야 합니다.”

고르츠는 스키점프 후원회가 필요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고르츠는 2007년 이후 또다시 고민에 빠져 있다. 한국의 스키점프팀이 또 후원사를 잃으면서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인들은 스키점프에 매우 유리한 자질을 가졌습니다. 1990년대 중반부터 어린 한국선수들과 유럽 전지훈련을 다닐 때도 한국선수들의 기량은 매우 단기간에 향상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유럽이나 일본·미국선수들은 스키점프팀에 코치는 물론 보조코치 및 업무도우미까지 보통 4~5명의 스태프가 따라 붙어 도와주는데, 한국의 경우 달랑 코치 1명이 모든 일을 다하면서 이런 성적을 거둔다는 것은 매우 놀라운 일입니다.”

그는 “2018년 강원도 평창의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무려 6000만 유로 이상의 돈을 들여 평창에 스키점핑파크를 짓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그런데 정작 스키점프선수들의 기량을 향상시키는 데는 재정지원이 거의 없다니 이해할 수 없다”며 고개를 설레설레 흔든다.

한국 대표팀 후원 절실

다행히 최근 한국 스키점프 팬들에게 희소식이 날아들었다. 2009년 9월18일, 스키점프팀 국가대표인 최용직·강칠구 선수와 김흥수 코치가 하이원(High1)의 스키점프팀 소속으로 합류하게 된 것.

최흥철과 김현기 선수는 이미 지난해부터 하이원에 소속돼 있었는데, 이번에 나머지 국가대표팀 선수와 코치가 모두 하이원의 지원을 받게 됨으로써 국가대표팀 모두가 한 소속사에서 호흡을 맞추게 된 것이다. 2010년 캐나다 밴쿠버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다행스러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고르츠의 마음은 아직도 답답하다.

“자격을 갖춘 외국인 코치를 영입해 선수들을 제대로 훈련하고, 실력 향상을 위해 필수적인 장기 전지훈련 등을 하기 위해서는 스키점프선수들에 대한 재정지원은 더 늘어나야 합니다. 스키점프는 각종 국제대회에 참석하는 것이 필요한데,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지원은 아직도 부족한 형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더욱 안정적이고 충분한 재정지원이 스키점프팀에 제공돼야 합니다. 그래야 올림픽이나 월드컵 같은 범세계적 대회에서 메달권에 들어가는 선수들을 양성할 수 있습니다.”

고르츠는 또 “어린 선수를 양성하는 프로그램을 지금 당장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면서 “다가오는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서는 10년 앞을 내다보는 자세로 어린 선수들을 양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언젠가는 치르게 될 한국의 동계올림픽에서 스키점프팀의 성적을 걱정하는 고르츠의 마음은 그 어떤 한국인보다 간절함을 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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