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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탈라트 테킨의 <돌궐비문연구>에 대해

monocrop 2009. 5. 9. 02:14

탈라트 테킨의 <돌궐비문연구>에 대해

 

글 : 심제 / www.coo2.net / 네티즌자유게시판 15897 / 2009-05-08

 





1.돌궐의 역사적 유래  

돌궐은 유라시아 초원 지대를 지배한 여러 종족 중에서 처음으로 자체 기록을 남겨 놓았다.
이들은 돌궐문자로 불리는 고유의 문자를 개발했으며 이 문자로 쓰여진 몇몇 비문이 전해진다.
돌궐은 582년에 동서로 분열되었으며 630년에는 동돌궐이, 658년에는 서돌궐이 각각 당에게 멸망하였다.

이후 독립운동이 성공해 다시 국가를 건설하니 이를 돌궐 제 2제국 또는 후돌궐이라 한다.
돌궐 비문은 725~735년 무렵 후돌궐의 마지막 전성기에 건립되었다.
후돌궐의 뛰어난 세 지도자인 퀼 테긴, 빌게 카간, 톤 유쿡의 송덕비이다.

이 비문들은 돌궐사 뿐 아니라 중앙 아시아 유목민의 역사 연구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 준 귀중한 문화 유산이다.
비문의 내용은 돌궐 제국의 건국에서부터 역대 카간들의 치적, 중국을 중심으로 한 주변국가들과의
관계, 정복전, 교역, 사회조직, 법제도, 관습에 이르는 등 유목 사회의 특징과 생활 양식을 잘 전해주고 있다.

돌궐 비문의 존재를 기록한 최초의 문헌은 12세기 이슬람 역사가 주와이니가 저술한 『세계정복자의 역사』이다.
근대에 와서 처음으로 그 존재를 학계에 보고한 사람은 스웨덴 장교 스트라렌베르그(Johann von Strahrenberg)였다.

그는 스웨덴과 러시아 간의 북방전쟁(1700~1721) 중 1709년 폴타바 전투에서 러시아군의 포로가 되었다.
시베리아에서 13년간 유배 생활을 하던 중 외몽고의 오르혼 강변에 있는 비문들을 발견하였다.
1722년 고국에 돌아온 그는 1730년 비문 연구 결과를 학계에 발표하였고 19세기 말에 본격적인 학술 탐사가 시작되었다.

1887~1888년 핀란드 조사단을 시발로 1889년 러시아 학자 야드린체프(N. M. Yadrintsev), 그리고 1890년
핀란드 학자 하이켈(A. Heikel)을 단장으로 하는 조사단에 의해 비문의 추가 발견과 정밀한 연구 보고서가
작성되었다. 드디어 1893년 12월 덴마크의 언어학자 톰센(Vilhelm Thomsen)이 판독에 성공하여 중앙
아시아 투르크사 연구에 신기원을 이루었다.



2. 주요한 세 비문의 구성  

  1. 퀼 테긴 비문 : 빌게 카간이 후돌궐의 국가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한 동생 퀼 테긴의 치적을 기리기
                         위해 732년 세웠다. 높이 3.75m, 너비 122~132cm 크기의 비문으로 동남북면은 돌궐어로 서면은 한자로
                         표기되어 있다.

  2. 빌게 카간 비문 : 734년 빌게 카간의 사후 그의 아들에 의해 735년 세워졌다.
                            비문의 내용은 빌게 카간이 직접 국민들에게 훈시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빌게 카간이후 사건들 이 나중에 첨가되기도 하였다.
                            구조나 형식은 퀼 테긴 비문과 유사하고 서쪽면은 한자로 표기되었다.

  3. 톤유쿡 비문 : 720년 경 노령기에 톤유쿡 자신이 건립하였다.
                         3대 카간에 걸쳐 행정수반과 군 사령관을 역임한 제국의 원로로서 재임 중 업적을 기록했다.

                        (네이버에서 인용)


3.책의 내용.

멀게는 사라진 고조선어,고구려어를 추상적으로나마 알수있는 단어들이 많이 등장한다.
그중에는 지금까지도 이어지고있는 단어중 <우뚝한>을 <위트켄>으로 발음하며 뜻은 같다.
이런 언어의 전통에 대해서 서울대 신용하 교수는 그의 유라시아 역사에서 이미 고구려와의 연관성을
설명하였다.

한가지 더욱 놀라운것은 돌궐의 단어중 한문의 발음법이 현 지나어 발음보다 더 한국어 음독에 가깝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어순이 한국어와 같은 <람스테드의 분류>에 따른 우랄 알타이어족에 속한다
(이 근거는 이제 구식 분류가 되었고 한국어는 우랄알타이어족에 속하지 않는다는 이론이 대두되었다).


톤유쿡 비문은 음독으로 돈유곡이다.지나음으로 표현 한다면 툰위꾸 정도로 발음될것이지만 ...

7세기중반 당나라시기 北魏에 대해 중국(탁발)이라 표현하고 탁발,키탄등을 무찔러야 할 적으로 표현하였다.
그 이유로는 비단,금등 풍부한 물산으로 유목민들인 돌궐인들을 교활하게 유인하여 동돌궐을 멸망시키고

그들의 칸과 왕족을 노예로 팔아먹은 중국 천자를 응징하기 위해 과거 그들의 용병으로 전락했던

치욕스런 역사적 사실에 대해 잊지말자 그리고 서돌궐의 칸인 퀼테킨,빌게,툰유쿡비의 주인들은

백성에게 경계하라 주문한다.



그리고 그들의 정복지인 동으로는 황하,산동(대흥안령),서로는 알타이산맥서부 타르만,남으로는

장성넘어 평원을 휩쓸고 지나가면서 정복한 역사를 적어놓았다. (퀼 티킨 비문중) 아직도 비문엔

그 발음도 생생한 키르기즈, 쿠르칸,타타르,쵤릭(철륵),퇴뵛(티벳),키탄(거란)등으로 기록되어 있다.

돌궐이 멸망의 위기시 최후 17명이 반란을 일으켜 700명으로 불어나 대제국을 세우기까지의

역사를 비문에 기록해 놓았다.


서진한 돌궐인들은 스스로 돌궐,튀르크,타타르 민족이 그들과 같은 민족이라 규정짓는다.

그렇다면 당시에 희박했던 대초원의 인구밀도를 가정할때 서진했던 서돌궐인들의 수장중

한사람이었던 고구려인 막리지 <고문간>은 분명히 그들과 정치적 목적이 동일했음과 동시에

민족적,어원적 근사성이 있었을것임에 틀림없다고 생각된다.


당시 거란(키탄)인들을 최대의 적으로 지목하고 동점서역햇던 그들의 언어적 근사성은 맥구려나

북방민족의 이름까지 비문에 거명된것으로 보아 충분히 연구해볼 가치가 있는 책이라 본다.


심제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