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story-NEWS/일본의 기원과 한국

[스크랩]삼국시대 왜는 열도와 전혀 무관

monocrop 2009. 4. 24. 11:20

 

[re] 7C말 열도는 하이(蝦夷)와 백제담로의 분할통치시대: 삼국시대 왜는 열도와 전혀 무관

 

글 : 솟대 / 2009-04-23  / www.coo2.net 네티즌 자유게시판 15797


 

그림 1. 열도를 통치한 하이(蝦夷)의 시대별 강역 변화
          [7C~15C까지는 열도는 남북국시대 혹은 이국시대로 보아야 한다]

지금 일본열도에 일본이란 나라가 있다고 시초부터 그들이 그곳에 살았던 것은 역사에 대한 몰이해로 인한 강단과 일본인들의 오인입니다.

그들이 열도에 처음으로 나라를 세운것은 백제가 멸망한 이후 수십년이 흐른 후였으며 고구려-백제-신라시대의 지나사서에 등장하는 왜와는 전혀 다른 세력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4C이전의 열도는 단군조선의강역이엇고 이후 부여-고구려에 신속되거나 복속된지였이며 가야와 신라의 진출이후의 시기를 한정해 본다면  열도의 남부는 고대의 가야나 신라나 백제가 정복한 강역으로  열도의 북부는 15세기초엽까지도  하이(蝦夷)의 강역으로 나누어 보아야 옳을 것입니다.

고대에  5세기말부터 ~ 7세기말까지 현 일본열도는 두개의 세력으로 분할되어 통치되고 있었습니다.
열도북부는  하이(蝦夷)의 강역이었고   열도 남부는 백제 담로의 강역이었습니다.

5세기말의 하이(蝦夷)와 해외침입세력과의 국경은 열도 남부의 주인이 계속 바뀌었지만 7세기말까지 변함없이 현 일본열도의 절반을 자신들의 땅으로 유지할만큼 세력이 강력하였고 진국-발해=사신이 해풍으로 인하여 하이(蝦夷)땅에 표류하여 억류된 기록이 있을 정도로 여러 사서에 기록이 나와 있습니다.

백제패망후 성립된 왜국과 함께 열도를 양분하여 통치하였던 하이(蝦夷, 일본어로 에조)는 원래 고대에 에미시 혹은 에비시라고도 불렀으나 헤이안시대(794~1192) 후기부터는 하이(蝦夷, 일본어로 에조)라고만 부르게 되었습니다. 현재는 아이누(Ainu)라는 다른 호칭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참조> 아이누족(Ainu), 하이(蝦夷, 일본어로 에조)
현 일본열도내 아이누 민족(Ainu, 일본어: アイヌ民族)은  8~9세기이후 백제의 패망으로 인한 왜국의 성립과 함께 왜국측의 계속적인 침략정책으로 동북쪽으로  밀려나서 9세기이후에는 도호쿠지방북부와 훗카이도만이 자신들의 땅으로 남아 세력이 점차 약해지기 시작했고 15C 임진란이후로 도쿠가와막부때부터는 도호쿠북부지방에서조차도 왜인들이 침략해 들어와 여기에서도 소수민족으로 전락하였고 19세기 메이지시대에 이르러서는 일본이 무력으로 강제 흡수합병하여 마지막 남은 그들의 영토인 훗카이도마저도 상실하고 소수민족으로 전락하였다.
이후 민족 말살정책과 철저한 탄압으로 인하여 인구가 급속하게 감소하여 오늘날의 일본 홋카이도지방에 남은 수는 대략 10만명에 불과하다.



이들 열도의 신생왜국이, 삼국시대의 해상활동을 왕성히 하던 왜와는 무관하다는 점은 그들의 열악한 해상항해능력으로도 입증된다 할 수 있습니다.

백제가 멸망하고 열도에 남은 백제담로세력이 새로이 나라를 세웠음에도 백제멸망후 180년이 지났음에도 그들은 항해할 선박을 건조하지 못하여 839년에도 신라선6척을 수입하여 운용하였고 839년에 이르러서야 역사시초로 대양항해능력이 있는 능능파해한다는 당시로서는 최첨단 기술의 집성체인 <신라선>의 건조를 시도하게 됩니다.
심지어 항해할 배의 선장과 선원조차도 신라인을 고용해야 했습니다.


추가로, 장보고 의 출생년도는 알수없지만 사망한 년도는 846년입니다
장보고가 이미 해적소탕을 완전히 끝내고 무역선과 함께 회역사(廻易使)를 일본 조정에 파견한 것이  840년(문성왕 2)입니다.
대양항해할 선박도 없는 주제에 백제패망후 성립된 현 열도의 신생 왜국이 무슨 주제로 해적이 되어 노략질을 하겠습니까?


항해술에도 무지한 신생왜국이 대양을 건너서 해적질을 한다는 것은 기지도 못하는 갓난얘기가 서커스공연을 하는 격이지요.

그럼에도 강단은 일본인들의 사서조차도 무시하며 고구려-백제-신라시대의 왜와 현 열도의 왜국을 동일시하는 황당무계한 소설을 쓰고 있습니다.

장보고활약시에 나온 해적들은 건조는 커녕 대양을 항해할 줄도 모르는 무지한 열도 남부의 신생국인 백제담로후예인 왜국인들이 아니라 바로 백제와 고구려, 특히 백제의 대륙왜 세력이라 보는 것이 맞습니다.

현 차이나대륙동부의 하수와 해안가에서 고대 삼한시대부터 삼국멸망기까지 강안이나 해안가에서 해상활동을 업으로 하던 세력이 바로 지나사서의 왜의 정체라 보는 것이 맞습니다.

백제패망후 180년이 지난후에도 선박건조는 물론 항해조차도 할 줄 모르는 무지한 열도의 신생왜국은 차이나사서에 등장하는 왜와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고 보여집니다.

거론되어지는 汗人등이 바로 지나사서의 '왜'의 정체임을 규명할 수있다면  대륙에서 활동하던 수상세력의 실체를 규명하여 대륙동안의 해상활동역사의 큰 축을 이루는 고대 한민족의 한 갈래를 밝혀내고 동아시아 고대 해양활동사를 복원해내는 금자탑을 쌓는 세기적인 업적이 되리라 봅니다.

문제는 강단에서 이 문제에 관심있는 양반이 한 두명도 안된다는 사실입니다.
민족사학에서도 두~세분이 이 분야에도 침착하셔서 그 해상활동사를 연구해 많이 밝혀내셨지만 그 해상활동세력의 기원을 명확히 규명해내지까지는 못한 상태입니다.

다행히 좋은 사료를 여러분께서 계속 소개해주시고 계시니 누군가 좋은 결과를 얻으실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앞으로, 고대 동아시아 해양사 복원이란 휼룡한 업적을 어느 분들이 나오셔 이루게 되실지 정말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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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운] 오랑캐들이 바다를 건너는 배를 박(舶:큰배 박,장삿배 박,상선 박)이라하고 한다.

[속일본후기] 승화 6년(839년) 7월 17일 "조정은 대재부에 하달하기를 신라선은 풍파를 능히 감당할 수 있으니 건조하라"

[속일본후기] 승화 6년 9월13일  대마도가 조정에 보낸 공문
         "항해는 풍파로 위험한 것이어서 해마다 조공과 네 차례의 공문을 보낼 때마다 번번히 표몰합니다.
          전문컨대 신라선이 능능파해한다고 하오니 바라건대 신라선 6척중 1척을 분급해 주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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