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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 고인돌은 왜 한반도에 집중되어 있을까.

monocrop 2009. 3. 15. 08:09

전세계 고인돌은 왜 한반도에 집중되어 있을까.

 

글 : 솔본 / 2007-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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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 고인돌의 숫자는 대략 7만여기라고 합니다.
이 가운데 한반도에 4만여기가 있고 다시 전남에 1만여기, 그리고 대동강유역에
1만4천여기가 분포해 있습니다.

고인돌의 분포는 유라시아를 비롯 중동과 인도에 까지
미칩니다.

그러한 점에서 전세계 고인돌의 약 절반 가량이 한반도에 집중돼 있다는 점은
여러모로 이상합니다.

만일 이 고인돌이 한반도가 아니라 북경이나 로마등에 집중돼 있었다면
분명히 지나 학자들이나 서구 학계가 가만있지 않고 난리를 쳤을 겁니다.

고인돌이 거석문화의 시발점이라는 점에서 피라미드나 스톤헨지등 고대문명의
전파자가 자신들이라고 얼마나 떠들어 댔겠습니까?

그들은 고인돌의 집중지가 한반도라는 사실에 시큰둥하면서 한편으로는
'그거 뭐 다 건너간 거지'하는 태도로 일관하는 것 같습니다.

- 한반도의 고인돌, 그 축조 연대는 여전히 미스테리

우리 고인돌의 축조연대는 대략 언제 쯤일까?
흔히 고인돌의 부장품과 유물연대를 들어 BC 10세기니 BC8세기니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연대는 분명히 부장품을 기준으로 한 것이지 그 고인돌이 축조된
연대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고인돌의 축조 연대에 대해서 우리 학계에는 통일된 의견이 없습니다.
한마디로 '모른다'입니다.

이 '모른다'라는 의미는 적어도 고인돌에서 출토되는 부장품보다 더 오래되었을 수
있다는 의미를 포함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한반도 고인돌의 축조시기는 '그 상한선이 BC10세기 이전'이라고 말하는 것이
맞습니다.

현재까지 확인된 가장 오래된 고인돌은 프랑스 지방에 있는 BC4,000년 경의 고인돌
입니다.

그렇다면 이 고인돌은 유럽에서 한반도로 전파된 것일까요?

- 한반도 고인돌의 밀집은 한반도에서 그러할 사유가 많았다는 이야기다

자, 이제 고인돌이 유럽에서 한반도로 전파되어 왔다고 가정해 봅시다.
고인돌의 축조는 무게가 몇십톤이 나가는 돌을 찾아서 운반하는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따라서 고인돌의 축조에는 많은 노동력을 필요로 합니다.

그런데 고인돌은 일상생활에서 필요한 존재가 아닙니다.
세형돌날처럼 수렵과 어로에 획기적인 도구로 활용되는 것과는 다른 것입니다.

우리는 고인돌이 그 어떤 생산을 증대시키지도 않으며 또 전쟁에서 쓸모있는 무기로
사용되지도 않았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다시말해 고인돌에는 일반적인 문화전파, 그 가운데서도 사람의 이동이 수반되지 않는
문화차용의 성격이 처음부터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전세계에 분포하는 고인돌에 대해 어떤 부족이 다른 부족이 고인돌을 만드는
것을 보고 그것을 차용했다고 설명하기 보다는 그 고인돌 축조 부족이 이동하면서 그러한 고인돌
을 만들었다고 설명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한번 생각해 봅시다.

상고대의 유럽에 고인돌을 처음 축조했던 부족이 있었다고 가정해 봅시다.
이 부족이 동쪽으로 이동하면서 고인돌을 만들어 나갔다고 합시다.

그러다가 한반도에 이르러 이제까지 만든 고인돌의 절반을 한반도에 축조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 설명에는 한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유럽에서 한반도로 이주한 고인돌 축조부족이 있다면 이들은 이주과정에서
그 숫자가 분명히 감소했을 것이고 따라서 원 거주지역에서 멀어질 수록 그 고인돌의
축조 밀도는 떨어질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 유럽부족은 대단히 강력한 정복력을 갖고 이주한 곳의 부족을
통합하여 고인돌을 축조케 해야 합니다.

만일 정복에 의한 고인돌 축조가 이뤄졌다면 이 유럽의 고인돌 축조 부족이
유라시아와 인도, 중국등을 남겨두고 유독 한반도만을 집중 공략해서 절반의 고인돌을
만들었다는 설명이 되므로 이것도 합리적이지 않습니다.

결국 전세계 고인돌이 한반도에 집중되어 있고 그 연대의 상한을 확정할 수 없다면
고인돌의 전파는 한반도에서 유라시아로 이주한 집단에 의해 주도되었다는 설명이
합리적일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전세계 고인돌은 특정 종족의 지표일 수 있다.

위에서 우리는 고인돌이 그 어떤 생산력이나 전쟁의 도구로 사용되어 진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차용에 의한 '문화전파'의 대상이 아님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고인돌이 많은 노동력을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고인돌은 어떤 종족의 상징이었을 가능성
이 많다고 봅니다.

그것은 다시 말해 고인돌의 축조 부족이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면서 고인돌을 축조해
그곳 원주민들에게 일종의 경각심을 갖게 하는 것이죠.

고인돌을 통해 그 부족의 막강한 단결력과 파워를 상징적으로 드러냄으로써 다른 부족이
함부로 얕보거나 텃세를 부리지 못하게 하는 일종의 과시물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고대인에게 거대한 바위는 일종의 성물이었는데 그러한 큰 바위를 들어 올려
축조물을 만들었다는 것은 다른 부족이 보기에 그 부족에게는 강력한 신이 함께 한다는
의미로 작용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한반도의 밀집된 고인돌 역시 부족간의 파워 과시용이었을까요?

한반도 고인돌의 비밀은 해안선과 하천에 있다

우리 고인돌의 분포를 보면 대개 서해안과 하천가에 집중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하천의 경우 내륙하천보다는 바닷물이 들어오는 하천이 주를 차지하고
있지요.

뿐만 아니라 발해만 요동지역과 중국 동부의 고인돌 역시 동일한 분포현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과거 BC1만년에서 BC3000년 사이는 황해 해수면이 큰 변화를 보이던 시기였습니다.
간빙기에 접어들면서 해수면의 높이는 약 100M상승을 보였고 그 당시 태풍의 진로를 고려
해 본다면 황해평원에 거주했던 집단들은 거대하고도 불규칙한 쓰나미를 겪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황해수면의 진입으로 고대부락들은 동과서 그리고 북쪽으로 후퇴해 갔고 당연히
이러한 지역에 홍수에 대한 여러 형태의 전승과 예방, 그리고 방재신앙등이 동반되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 점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고인돌이 초기에 홍수에 대한 측정과 방재신앙의 대상이 아니었을까 하는 것이죠.

그것은 선돌(당간지주)과 솟대를 과거에 수살막이 (水殺막이)라고 불렀던 점에 비추어서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눈물흘리면 홍수나는 돌장승'이야기는 전남 서해안에 널리 퍼져 있는 설화이기도 합니다.

선돌과 고인돌은 태풍과 지진등에도 비교적 오랜 시간동안 고정적인 위치를 유지할 수 있으므로
특정부면을 기준으로 해수면과 내륙수면의 변화를 체크할 수 있는 것이죠.

황해평원을 떠나 사방으로 흩어진 고대 한겨례의 상징물. 그것이 바로 고인돌이었고
유럽과 중근동에 거석문명을 연 기원이 되었다는 설명은 하늘이 두쪽나도 있을 수 없는
이야기일까요?


-솔본-





카오스 (2007-04-17 00:42:54)  
솔본님>좋은 글이시기는 한데....

고인돌이 주로 '묘'로 사용되었던 점에서 솔본님의 앞부분 추정은 매우 개연성이 잇다고 봅니다만,
후반부 즉, "고인돌이 초기에 홍수에 대한 측정과 방재신앙의 대상"일지도 모른다는 추정은 조금 비약일 것 같군요.

거대한 고인돌이나 어떤 제사적 상징물이었던 선돌 등이 홍수 후에도 남아서 수위를 가늠하는 척도가 되었을 수는 있겠지만, 처음부터 홍수 측정용으로 저런 거대한 석물을 이용햇다고 보기에는 선듯 납득이 않되는군요.

고인돌과같은 거석문화가 한반도에 밀집되어 있다는 것이 거석문화의 원류가 한반도일 것이라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추론이라고 봅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코끼리손 (2007-04-17 10:36:33)  
고인돌이 그 규모에 비해 국내에서 애써 과소평가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솔본님 말씀은 당연하신 지적입니다.
(2007-04-17 12:55:54)  
고인돌과 같은 거대한 거석은, 건축자재로 쓰기에 딱 좋습니다.

따라서, 현재 유적이 남아 있지 않은 지역이 고대에 고인돌이 존재하지 않았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중요하게 보아야 할 것은, 고인돌이 남아 있는 지역이 풍파가 적었던 지역이었다는 점, 다시 말해서, 다른 지역보다 좀 안전한 지역이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입니다.

수몰된 서해안 바닷속 고인돌은 환타지군요. 지형이 변화되기 훨씬 전 사람들이 만들었다는 것인데, 그 때가 언제인가요?

고대인류중에는 여러인종이 있었는데, 현대인은, 거인족의 후손이라고 하더군요.

그러니까, 고인돌이, 서해안 바닷가 아래로 잡기기 전에 만들어 질려면, 자이언트족들이 만들었다고 보아야 하는데, 그렇다면, 그들에겐 그 돌이 그리 큰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얘기가 됩니다.

옛 한국인은 장신이었다고 하니, 고인돌이 유독 많은 한반도 라면, 거인족들이 끝까지 남아 있던 지역이라고 볼 수도 있는건지?

이야기가 이상하게 흘러갔네요.

이만..
구신 (2007-04-19 00:34:30)  
아리아인??
웅스(강운기) (2007-04-25 04:12:29)  
제가 보기에는 모두 맞는 이야기로 보입니다. 예전에(지금으로부터 1년 이내) 어떤 교수가 쓴 글에서 고인돌이 홍수 즉 물의 흐름에 버티는 힘이 강한 구조로 만들어졌다는 글을 읽은 기억이 납니다.
한가지 빠진 내용이 있다면... 뭐 다 아시는 이야기겠지만, 고인돌이 영어로 '돌멩'이라는 점이죠. ^^
dolmen : (명사) 고인돌
웅스(강운기) (2007-04-25 04:14:38)  
솔님의 댓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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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몰된 서해안 바닷속 고인돌은 환타지군요. 지형이 변화되기 훨씬 전 사람들이 만들었다는 것인데, 그 때가 언제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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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안이 가라앉은 것은 불과 몇천년 밖에 안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신의 지문]을 쓴 저자도 세상에서 가장 흥미로운 곳 중에 하나로 발해만을 꼽았습니다. 불과 20미터~100미터 정도 밖에 되지 않는 발해만 바닷속에 어떤 고대문명이 우리의 방문을 기다리고 있을지 모릅니다.
정민호 (2007-05-01 21:11:01)  
고인돌, 영어로 돌멘은 우리말로 하면 돌묘의 영어식 발음이라고 하는 것을 읽은 적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