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N-History/01 동이문명관련·동북공정

[스크랩] 항공대 우실하교수의 홍산문명의 시원과 지나의 동북공정에 관한 강연

monocrop 2008. 3. 14. 02:10

-불필요한 부분 前略-

 

김철수 박사님

예 연구실장님의 인사말에 이어서 제가 이제 그 오늘 주제 이제 선생님이 쭉 말씀을 해주시겠습니다만은 발표하실 우실하 선생님을 소개를 해드려야 되는데 뭐 여러분들 전부다 각 방면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분들이신만큼 잘 아실겁니다만은 어떤 분을 소개하기가 아마 녹녹히 쉬운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래도 이제 간략히나마 대신할까 합니다.

 

미리 다 보셨겠지만은 우리 자료집에 앞부분에 선생님에 대한 약력과 또 연구업적들이 나와있습니다. 시민의 신문 뭐 간략히만 말씀드린다면은 시민의 신문 편집위원을 역임하셨고 중국 요녕대학교 한국학과 교수를 역임하셨습니다. 현재는 한국항공대학교 교양학부 교수님으로 제직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뭐 여러분들 다 보셨을 겁니다만은 선생님은 홈페이지를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수많은 업적들이 있는 것을 알 수가 있을겁니다.

 

저서만 여기있는걸 간단히 말씀을 드린다해도 그 ?오리엔탈리즘의 해체와 우리문화 바로 읽기? 또 그 다음에「한국 전통 문화의 구성 원리」뭐 이건 보신분들이 상당히 많을줄로 압니다. 앞의 책은 연구소의 필독서로 배부가 돼서 전부 읽으셨으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리고 이제「전통 음악의 구조와 원리 : 삼태극의 춤, 동양 음악」뭐 요런 요 책 저서들은 다 읽어서 아시겠지만은 선생님께서 이제 이수분화와 동북아 샤머니즘의 3수분화의 세계관이라는 개념을 통해가지고 우리 한국 전통문화의 구성원리를 다뤄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오늘 말씀해주실 내용하고 밀접한 관계가 있는「동북공정의 선행 작업과 중국의 국가전략」요것도 아마 우리 필독서로 전부 배가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전부다 보셨을줄압니다.

오늘 뭐 우실하 교수님께서 우리에게 쭉 말씀해주시는데 한 두시간에서 두시간 반 그 사이 동안을 말씀을 주실겁니다. 그리고 아마 쉬는 시간은 선생님이 임의데로 중간에 아마 쉬시게 될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 이후는 남은 시간은 통해서 우리가 궁금한 점, 질의 및 토의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면 선생님을 모셔서 곧바로 이야기를 듣도록 하겠습니다. 예 박수로. <박수>


강의에 앞서 질문 답변

우실하 교수님

질문하고 싶어도 못하고 편안하게 다 계신분들 저의 선배님이시고 동료이고 그러실테니까 그리고 이게 대중 강연도 아니고 제가 여지껏 중국에 있으면서 수집한 자료들 이런 것들을 여러분들한테 아낌없이 보여드릴테니까 여러분들 나름데로도 아마 이쪽으로 고민을 하고 연구를 하시는 분들이 저는 계실거라고 보는데 그래서 여러분들 자료에 있는 거는 제가 국회에서 발표하고 했던 그런 자료들이기 때매 제가 지금 책을 쓰기 위해서 초고가 되어 있어요.

 

초고가 되어 있어서 여러분들 다들 각 분야의 전문가이시니까 제가 이거를 오늘 공개를 하겠어요. 사진자료가 많아서 여러분들 아까 두시간 반 그러니까 머리가 찌끈찌끈 하실텐데 보시다 보면요 두시간으로도 긴장이 됩니다. 여러분들 아마 지금 공개하는 자료들이 여러분들이 아마 처음 보는 사람들일지 몰라요.

그래서 아까 제가 오기전에 질문지를 봤어요. 여러분들 먼저 읽으시고 질문서를 제가 받았는데 요하문명을 주도한 주체 세력이 누구냐? 그거를 제가 대답 내리는 것 보다 물론 토론 할 때 제가 하겠습니다. 제가 그 자료를 다 보여 드릴 겁니다. 여러분들 자료 가지고 있는 거에는 아직 그 주체가 누구인지를 증명하기가 어려울 거예요. 짧은 시간에 그걸 하기 어려우니까.

그 다음에 홍산문화가 진짜 국가단계에 초기 국가단계에 진입했다고 믿을만 한가? 이건 세계 고고학계에서 다 공인이 된 거예요. 근데 여러분들한테 나눠 드린 자료에는 아직 그걸 입증할만한 고고자료들을 제가 다 넣을 수가 없으니까 그걸 제가 발굴 자료들을 다 공개를 하겠습니다. 함 보십시오. 왜 세계 고고학계에서도 이미 기원전 3,500년에 어떤 사람은 4,000년까지도 올립니다. 기원전 3,500년에 홍산문화 지역에 국가단계까지 진입했다고 판단하는지를 여러분 눈으로 보시라는 거예요.

다음에 세 번째는 한족과 뚜렷이 구별되는 한민족의 국통맥이 확립되어야 한다. 한족과 구별되는. 이 논리는 아주 예전부터 있던 겁니다. 정복국가론이라든지 일본아이들이 만들었던 그런 여러 논리로 한족과 북방족들을 구별해서 보는 시각들이 많이 있었어요. 그게 싫다는거죠

 

중국은. 옛날에는 우리가 전통적으로 황하유역에 중화족이 있어고, 화하족이 있었고, 동쪽에 동이 서용 남만 북적 해가지고 다 이족 취급을 했어요. 근데 그런 개념이 지금 다 사라지고 있어요. 왜냐하면 그걸 전부다 한족이라고 생각하니까. 한족이 아니죠. 중화민족이라는 완전히 상상의 공동체죠.

예전에는 한족이라는 말을 자기네 중화민족과 이콜을 시키고 다른걸 이민족 취급을 했지만은 그 이족을 다 합한거를 중화민족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만들고 있어요. 그리고 그걸 세 집단으로 다시 쪼개고 있어요. 거기에는 동이라는 개념이 없어져 버리는 거예요. 서융 북적 이런 말이 없어져 버리는 거예요. 그걸 이제 도표로 자기네들이 중국에서 해놓은 것들을 제가 다 보여드리겠습니다.

그 다음에 제가 이 답변을 먼저 얘기 드리는게 여러분들이 제일 궁금해한게 이건데 먼저 던지고 제가 자료를 보여 드리겠다는 거죠.

그 다음에 동북공정이나 요런거에 대해서 북한쪽과 연대해서 대응을 하는게 좋지 않느냐? 아! 그 희망사항이죠. 저희들도 북한 학자들을 만나보면 걔네들이 요구하는게 그래요. 그 북한이 가지고 있는 특수 관계 때문에 자기네들은 못 떠든다는 거예요. 몽골학자들도 똑같예요. 몽골학자들도 못 떠든다는 거예요.

 

그 대신에 북한학자들 만나면 그래요. 야! 북한에서는 독도문제를 떠들테니까 동북공정 문제는 남한이 좀 적극적으로 나서달라는 거예요. 정말입니다. 직접 제가 듣는 얘기들이예요. 그 약소국으로써 중국의 지원을 받지 않으면 국가 존립 자체가 위태로운 그런 상황에서 그거 대들기가 현실정치에서 굉장히 힘든 겁니다. 도덕적으로 역사 논리만 가지고 막 대들기가 굉장히 어려워요.

몽골 몽골박물관을 가 보십시오. 울람바타르 박물관에 가면 뭐 선비라든지 요 금 이런거 전부다 몽골역사로 정리돼 있어요. 몽골 박물관안에. 그래도 걔네들 말을 안합니다. 동북공정 뭐 지금 여러분들 징기스칸이 어느 나라 사람입니까? 징기스칸. 우리나라 사람들은 한 99.9%의 사람들이 징기스칸 그러면 몽골사람이라고 얘기를 해요. 그런데 13억 인구중에 중국에 단 한명도 그렇게 얘기하는 사람이 없어요. 왜냐하면 얘네들은 다 중국인으로 배워요. 다 그렇게 배워요.

또 거기에 우리가 그런 논리에 협조를 했다. 여러분들 작년에 징기스칸 8부작 한거 기억납니까? NHK하고 KBS하고 CCTV하고 연합해서 그건 우리가 그 돈을 내고 그 논리를 도와주는 거예요. 중국에서는 장소 제공하고 촬영세트 이런거하고 결국 돈은 KBS하고 NHK에서 낸거예요. 8부작 만들 때. 중화민족에 징기스칸이라는걸 동아시아 전체에 방송하는거예요. 그거 우리가 돈내고 도와준단 말예요. 그런 것들이 이건 뭐 사소한 거지만.

하여간 얘기가 좀 길기 때문에 저는 그래서 한시간 강연하면 난 도저히 못한다. 그랬어요. 왜냐하면 전부 새로운 얘기기 때매 여러분한테 설득을 시킬라면 시간이 필요하고 자료를 제가 보여 드려야 돼요. 이거 시작하면 여러분들 절대로 졸지가 않아요. 졸립지가 않습니다. 보시면은. 자 이제 시작을 하겠습니다. 빨리 끝내고 제가 가능하면 사진 고고자료들을 제가 많이 보여드리는 식으로 정리를 하겠습니다. 이건 대중 강연회가 아니어서 여러분들이 아마 부분적으로는 제가 이미 다 한거를 읽으셨을꺼 같고.



동북공정에 대한 오해


- 동북공정은 국가 전략의 일환이다

자 첫 번째는 동북공정에 대해서 우리가 오해하는게 있어요. 저도 동북공정 책을 냈지만 그 책의 제목 자체가 중국의 국가전략이라는 개념을 썼어요. 그런데 여지껏 국가전략이라는 차원에서 동북공정을 접근하질 않았어요.

그리고 첫 번째는 우리가 동북공정에 대해서 오해하는 첫 번째는 국가전략이라는 것인데 여러분들 다 기억할거예요. 동북공정이 발표됐을 때 한국에서 막 얘기를 하니까 중국에서 외교부 성명이 항상 그런 식이였어요. 지금도 그렇고. 이거는 지방정부의 일이고 학자들의 일이기 때문에 중앙정부가 관여할 수 없다. 그거를 여지껏 반복하고 있었어요.

 

근데 여러분들 그 자료집에「흑하일보」에 2003년 8월 6일 자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어요. 이건 공산당 위원회에서 나오는 겁니다. 동북공정은 후진타우 동지가 2000년 사회과학원에 지시, 승인한 영구 항목 가운데 하나다. 여기 써 있어요. 동북공정 홈페이지에도 이렇게 써 있어요. 중앙정부의 비준을 거친 것이다. 이거는 철저하게 중앙정부 차원에서 지시와 승인을 통해서 이루어진 거예요. 근데 외교적인 업명에서는 아! 이게 중앙정부의 일이 아니어서 우리가 관여할 수 없다. 관여를 못하긴 뭘 못해요.

최근에 9월달에 동북공정은 정식으로 종료가 됐습니다. 그때 왜 종료가 됐냐하면 공산당 지도부의 명령 하나로 끝났어요. 그게 여러분들 내가 해놨지만은 그 자료가 여기 있습니다. 한?미간에 미사일 문제라든지 핵문제 가지고 한?미간에 거리가 벌어지면서 반미정서가 그래서 중국이 그걸 끌어안고 싶은 거예요. 그래가지고 동북공정을 끝내라 그러고 원래 동북공정은 내년 2월까지입니다. 일정이. 그런데 9월달에 끝냈어요. 그건 보도가 되어 있어요. 그 보도한 신문도 제가 여기다 지금 다 자료로 스크랩 해 놨어요.

그 다음에 여러분도 기억할 겁니다. 10월달인가 아 9월달이죠. 9월달에 그 원자바오 총리하고 노무현이 만났어요. 헬싱키에서. 그래서 우리나라에 동북공정에 대한 반론, 반 중국적인 정서를 전하고 적당한 차원에서 국가가 개입해서 좀 뭐 동북공정에 대한 역사 갈등이 없게 해달라 그랬더니 원자바오가 그렇게 하겠다고 사과 비슷하게 했어요.

 

근데 그 내용이 우리나라 신문에는 전체 신문에 막 대서특필이 됐어요. 아! 이 원자바오는 최고 지도부 중에 하나니까. 근데 문제는 중국 신문에 하나도 안났어요. 중국 신문에 한마디도 안나왔어요. 원자바오 혼자만 사과한 거예요. 그 다음날 한국 신문에는 그 내용이 하나도 안났다는걸 또 신문에 냈어요. 그건 외교적인 전략이라는 거예요.

 

외교적으로 그렇게 하면서 할건 다 해놨다 이거죠. 여기서 이걸 철저하게 국가, 그 이거 지금 제가 여기 자료 1로 제시하는게 신문 우리 신문「경향신문」에 9월 12일날 났던, 2개월을 앞당겨서 아 5개월을 앞당겨서 동북공정을 끝냈다는 신문기사를 그대로 스크랩 해논 겁니다. 외교부에서 발표한 거예요. 자 그 다음에 이건 철저하게 국가공정이라는거.


- 동북공정은‘고구려공정’이 아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우리 동북공정 그러면 지금도 그래요 사람들이. 고구려는 우리 역사다. 그렇게 하면 동북공정을 막을 수 있는 것처럼 생각을 해요. 우리 정부에서도 여러분들 다 알다시피 동북공정의 대응 전략을 만들면서 만든게「고구려연구재단」이였어요. 그건 이미 출발부터 잘못 인지하는 거예요. 동북공정 이콜 고구려공정이라고 지금 대부분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해요. 고구려 역사왜곡 동북공정 이콜시켜요. 그건 웃기는 얘기예요.

중국에서 동북이라는 관념이, 개념이 사용되는 용례가 달라요. 중국에서 동북 그러면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요녕, 길림, 흑룡강, 삼성을 말하는 거예요. 우리나라에서 동북 그러면은 한?중?일을 포함한 동북아시아라는게 머리에 떠올라요. 우리나라에서는. 그런데 중국에서 동북 그러면 동북아시아 그런 개념이 하나도 없어요. 오로지 동북 삼성이예요. 만주일대 전체. 그런 사례들이 많이 있어요.

다른 예를 하나 드리면 예들 들어서 민족주의. 우리는 민족주의 그러면 뭔가 통합 이데올로기의 역할을 하지만은 중국에서는 민족주의라는 말은 완전 분열주의예요. 그 민족주의라는 말을 쓰는 사람들은 분열주의라는 낙인이 찍혀요. 왜냐하면 56개 민족이 모여있기 때매 민족끼리 단결하라 이건 분열주의예요. 곧. 그래서 우리가 민족주의라는 의도로 사용할 때 걔네들은 애국주의라는 말을 써요. 국가주의로 간단 말이야. 애국주의. 민족주의 그러면 56개로 찢어지잔 얘긴데.

그래서 동북공정은 고구려공정이 아니라는 거. 해서 이성 연구주임, 동북공정을 주도하고 있는 변강사지 중심의 주임교수입니다. 이 사람이 최근에 우리나라에서 인터뷰를 했어요. 한국에서 하도 동북공정 얘기를 하니까 뭐라고 얘기했냐면 “한중간에 주요 쟁점이 되고 있는 고구려 등 고대 왕국의 지위와 중국과의 관계를 비롯해서 한국과 관련된 부분은 동북공정의 10%도 안된다” 그 담당하는 주임교수가 이렇게 얘길해요. 근데 왜 자꾸 한국에서 떠드냐. 그런 얘기죠. 뉘앙스는.

 

역사관련 고구려 이런거 10%밖에 안된다. 나머지 그럼 90%는 뭐냐 이거죠. 근데 그 나머지 90%가 정말 핵심인데 우린 핵심을 놓치고 있는 몸통이 따로 있습니다. 그게 탐원공정과 요하문명으로 연결되는 거예요. 그 몸통에 내용을 먼저 간략하게 정리를 하면 이런겁니다. 중국 만주일대 전체가 황제족의 신화시절부터 황제족의 영역권 안에 있었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 이후에 만들어지는 황제시대 이후에 만들어지는 모든 역사시대에 존재하는 소수민족과 소수민족이 형성한 역사는 전부 중국사고 중국민족이라는 거예요.

결론적으로 고구려만이 아니라 요하문명론이 완결이 되면 단군도 황제의 후손이 돼요. 그 논리를 지금 다 만들어 놨어요. 그런데 지금도 우리가 고구려는 우리꺼다 그러고 싸우고 있다 거예요. 그 자료들을 제가 다 보여드리겠습니다.


- 동북공정은 선행하는 역사관련 공정들의 연장선상에 있다

그리고 세 번째는 동북공정에 대해서 우린 동북공정이 어느날 갑자기 하나가 뚝 떨어진줄 알아요. 동북공정이 어느날 갑자기 절대 떨어진게 아닙니다. 걔네들이 동북공정을 하기 위해서 선행하는 역사 작업들이 많이 있었어요. 근데 그거는 거의 소개되어 있지 않아요. 동북공정을 알지만 탐원공정 그러면 사람들이 대부분 모릅니다. ‘하상주단대공정’ 몰라요. 그런거를 제가 소개를 드리겠습니다.

첫째는 9.5계획으로 ‘하상주단대공정’을 했어요. 9.5계획이라는게 뭐냐면 우리도 왜 박정희 시대에 그걸 했잖아요. 1차 5개년 계획, 2차 5개년 계획 해가지고 5년 단위로 전체 국가전략을 따서 밀고가는 그게 중국에서도 마찬가지예요. 중화인민공화국 건설하고 나서 사회가 좀 안정된 다음부터 시작한게 이 1차 5개년 계획, 2차 5개년 계획 그거예요.

그래서 9.5계획이라는게 우리식으로 하면 9차 5개년 계획이라는 겁니다. 그게 96년부터 2000년까지 있었는데, 이때 ‘하상주단대공정’을 했어요. 이것도 어마어마한 규모였어요. 뭐 천문학, 고고학자 한 200명을 모아서 국가에서 다 국가계획을 해서 ‘하상주’에 대한 존속연대를 확립을 한겁니다.

이 ‘하상주단대공정’이 있기 전까지는 ‘하상주’의 설립연도와 멸망년도에 대해서 한 30가지의 가설이 있었어요. 왜냐하면 역사 기록이 없으니까. 그래서 최고로 올라갈 수 있는 문헌기록을 통해서 최고로 올라갈 수 있는 역사시대의 시점이 기원전 841년이었어요. 그런데 그거를 1229년을 앞당긴 겁니다. ‘하상주단대공정’을 통해서. 그러고 나서 탐원공정을 하는 거예요 이어서.

그래서 지금 고 아래 제가 자료 1로 제시하는 이게 그 중국에서 공산당에서 공식적으로 발표한 ‘하상주’의 단대연표입니다. 하나라는 기원전 2070년까지 올라가요. 이제는 이 연표 이외에는 아무도 쓰지 않습니다. 이건 공식 입장이예요. 만약에 사회주의 국가가 아니었으면 뭐 국가에서 뭐 이렇게 하더라도 나는 이렇게 생각 안한다 해서다른걸 쓸 수 있지만 중국은 다릅니다. 중국에서는 국가에서 이걸 공인으로 딱 하면 이거 이외에는 하나도 표기 안돼 이젠.

자 그 다음에 지금 제가 자료 1-3에서 보여드린게 ‘하상주단대공정’을 하면서 그 200억 이상을 들여가지고 이 수많은 유적지들을 다 재 발굴 했어요. 이게 어디냐 하면 전부 ‘하상주’시대의 도읍지들입니다. 근데 뭔 놈의 도읍지가 이렇게 많은가. 그니까 이거는 중국이라는 땅덩이의 지형적인 특수성 때문에 그래요. 여러분들 나중에 이제 지형도도 보여드리겠지만, 그 저 뭐야 중국은 황하가 이렇게 흘러요.

 

장강이 이렇게 흐르죠. 그런데 이 서북쪽 하고 서쪽하고 북쪽하고 이 남쪽은 전부 고원지대입니다. 그죠? 전부 고원지대니까 이 수많은 동서로 막 몇 천키로 되는 이 지역에서 비가 내리면 서쪽으로 흐르는 강이 하나도 없어요. 북쪽으로 흐르는 강도 하나도 없고 남쪽으로 흐를 수도 없어요. 히말라야 다 막고 있는데. 그니까 오로지 동쪽으로만 흘러요. 그런데 그게 다 합쳐서 이 장강하고 황하하고 두개로 합류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여기서 막 비가 막 어마어마하게 온다 허면 여기서는 지금은 인공위성이 있어가지고 야 몇일 뒤면은 거기에 물난리가 나니까 조심해라 이런게 가능하죠. 근데 뭐 춘추시대 전국시대 이건 불가능합니다. 여기서는 그냥 햇빛 쬐고 있다가 도시가 싹 없어져 버려요. 도시가 없어져요 진짜로. 해서 이게 이 황하의 물길이 500년을 단위로 이렇게 일로갔다가 일로갔다가 합니다. 여러분들 중국 역사지도책을 보세요. 500년 단위로 황하의 물길이 바꿔요.

그니까 중국 고대의 사서들을 보면 왕자, 천자가 된 자가 가장 고민을 하는게 치수문제예요 치수. 물을 다스리는게. 우리가 생각하면 웃기지만 여러분들 생각을 해봐요. 이게 무슨 물난리가 나는게 아니라 지금도 그렇잖아요. 이 첨단의 21세기에도 산사태를 막고 이런 상황에서도 올해 여름에도 보세요. 얘네들이 여기 물난리 나면 이재민이 100만 200만 그래요. 지금도. 옛날 같으면 싹 밀고가면 없어져버려 나라가 없어져 버려요. 도시가 없어지고. 그래서 저렇게 물난리가 나면 도읍을 옮깁니다.

고대사회에서 중국에서 도읍을 옮기는 케이스가 두가지 있는데 하나는 저렇게 물로 확 쓸어서 없어지는 경우. 다음에 두번째는 하나라 이후에는 청동기 시대에 진입을 하기 때문에 수도 주변에 항상 동광산이 있었어요. 동광산을 다 파먹으면 옮겼어요. 그건 전부 그 의례의 기기라든지 이런걸 전부 청동으로 만들기 만들었기 때문에 청동을 보급할 수 있는게 가까이 있지 않으면 권위를 유지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도읍지가 이렇게 많은 거예요.

그래서 이걸 다 발굴해가지고 탄소 측정을 다 다시한거예요. 다 다시 해가지고 그 기원을 아까 말씀드린데로 천문학자들 뭐 고 화석학자들 뭐 다 모여가지고 연대를 ‘단대공정’을 한겁니다.

그러고 나서 두번째는 ‘하상주단대공정’을 이렇게 성공적으로 끝내고 나서 ‘중화문명탐원공정’을 2003년부터 실시하고 있어요. 이게 ‘10.5’계획에서 기획돼가지고 실제로 작업이 시작된게 ‘중화문명탐원공정’ 2003년부터 지금도 하고 있습니다. 이 ‘중화문명탐원공정’과 동북공정이 만나면서 최종판이 ‘요하문명론’이 나오는 겁니다.

탐원공정은 글자 그대로 중화문명의 근원을 탐구하는 공정이에요. 공정이란 말은 영어의 Project입니다.

Project. Project를 번역할 때 공정 이렇게 번역을 합니다. 중화문명에 근원이 어디냐를 탐구하는 거예요. 그런데 놀라운 것은 여러분들 학교다닐때 저도 학교다닐때 그렇게 배웠어요. 세계 4대문명 해가지고 이집트문명, 인더스문명, 메소포타미아, 그 다음에 황하문명 그랬잖아요. 그래서 중화문명의 시작을 황하로 봤었어요. 그게 황하문명이란 말이예요.

그런데 73년에 장강 하류에서 하모도 유적이 개발되면서 발굴되면서 중화문화의 시작을 하모도로 옮겼어요. 왜냐하면 그 연대가 1000년 이상 앞서는 기원전 5000년까지 올라가는 거대한 신석기 유적이 발견되니. 그런데 80년대 후반 이후로 지금 여기 여러분들 보이는 그 요하 일대에서 요하 일대에서 그 하모도보다 훨씬 앞서있는 하모도보다도 1500년 이상이 앞섭니다. 제 사진자료 보여드릴께요. 거기에서 어마어마한 새로운 신석기 문명이 발견되면서 중원문화의 시작을 글로(그리로) 보는 겁니다.

중원문화의 탐원이 근원이 어디냐? 글로 가는겁니다. 그래서 요하문명론이라는게 나오는 거예요. 옛날에는 그 지역은 장성 밖에 있는 그 지역은 다 뭐 오랑캐의 땅이었고,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북적의 땅이었고, 기존의 모든 역사서에서는 거길 전부 예맥이 주도하는 야만인의 땅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발굴하고 보니까 어마어마한 유적이 나오는 거예요. 제가 자료 보여드리겠다고 했지만.

그러니까 만약에 황하보다도 앞서고 장강보다도 앞서는 요하지역을 한민족과 바로 연결되는 예맥의 문화권으로 인정을 해버리면 중원문화가 떨거진 문화가 되는 거예요. 무슨 소린지 아세요? 그래서 그걸 어거지로 중국으로 중국걸로 만들기 위해서 동이 서용 이런 말들 다 없앤겁니다. 다 그게 중화민족이다 이거야.

그래서 황제의 영역을 옛날에는 그 여러분들 중국사를 보신분들은 알겠지만은 황제가 신화시대 황제가 활동하던 영역을 북경을 중심으로 해서 장성 넘어는 없었어요. 북경을 중심으로 한 장성부근. 그게 황제의 고유 영역이였는데, 이 영역은 그냥 황제의 영역을 동북 만주 전체로 확대해 버렸어요. 그러니까 그게 정사 기록에 그런 기록이 있겠어요?

 

지금 어떤 논리를 가지고 그걸 합리화 시키냐면「산해경」을 끌어들여요.「산해경」여러분「산해경」어떤 책인지 아십니까? 그거 신화 학자들이나 보는거지 뭐 이런거예요. 예를 들면 어디에서 300키로를 가면 무슨 나라가 있는데 거기는 뿔이 10개 달린 꼬리는 뭐 말이고 뭐 이런게 지배하고 이런 거야. 정사기록도 아닐뿐더러 역사학이라고도 하지도 않아요. 사람들이. 그게 신화기록이고. 뭔지도 성격도 모르는 그 책을 인용을 해요. 역사학자들이. 걔네들 얼마나 답답하면 그러겠어요. 정사기록에서 그걸 합리화 시키려니까 안되거든.

근데 그걸 예맥쪽으로 그냥 놔둬버리면 중원문화가 완전히 그 문화에 떨거지가 돼요. 왜냐하면 요하에서 남하한 세력들이 만든게 상문명이란 말이예요. 동이의 일파들이 내려오면서. 그거는 지금은 중국학자들이 거의 주류에요. 한 30년 전 만해도 부산현(?)이라던지 몇몇 학자들이 제기한거였지만 그때만 해도 그걸 잘 인정하지 않으려 했어요. 왜냐하면 그 상이 내려왔다는 발해만 요하유역이 아직도 그 때만 해도 저런 어마어마한 문명이 없었기 때문에 그 야만인들이 내려와서 상을 만들었다? 이게 도대체 해석이 안되는 거예요.

그런데 지금은 왜 주류가 되어있어요. 그니까 거기서 내려온 아이들이 상문명을 만들고 중원문명을 주도했다고 그러면 자기네들이 반계문화가 된단 말이예요. 그래서 요하문명을 새롭게 논리를 만드는 겁니다.


- 한반도를 염두해 둔 다양한 역사관련 작업들도 진행되었다

그 다음에 우리 동북공정 관련해서 한반도를 염두에 둔 다른 역사관련 작업들도 이미 있었다는 거예요. 어느 날 갑자기 고구려 왜곡하기 위해서 동북공정을 딱 터트린게 아니라는 거죠. 아까 이런 선행 작업들도 있었지만.

첫번째는 귀근원과 중화삼조당이예요. 이거 글자 그대로 귀근원이란 말은 근본으로 돌아가는 정원 그런 뜻이예요. 중화민족의 근본으로 돌아간다 그거예요. 그리고 중화삼조당은 글자 그대로 중국 중화민족의 3명의 조상을 모신 사당이란 뜻이예요.

근데 여러분들도 중국의 고서 같은걸 읽어보면 중국민족들은 중화민족의 시원을 어디로 잡냐하면 대부분 자기네들을 염황지손 이렇게 불러요. 염제와 황제의 후손이다 이런 말이예요. 그리고 그 염제와 황제와 동아시아 최초의 대 전쟁을 벌인 세력이 치우세력인데 그 치우는 관심도 없었어요. 여지껏. 그리고 치우는 역사 기록을 보면 항상 그 중화민족의 시조인 황제와 염제에 대들은 야만족의 수장이란 말이예요.

 

 동이의 수장 그런 얘긴 별로 안나와요. 환단고기에나 나오지. 중국의 역사에는 전부 묘만족의 수장이란 말이예요. 하여간 치우는 관심도 없었어요. 아주 자기네 선조에 대들은 아주 기분 나쁜 야만인들의 수장이었는데, 여러분을 아는 것처럼 80년대 이후에 한반도쪽에서 남북한을 포함해서 재야사서쪽이 나오면서 치우가 막 부각되기 시작해요. 14대 자오지 천왕이었다. 그것부터 시작해서 우리 뭐 그 2002년 월드컵 할 때는 붉은 악마의 상징도 치우라고 그러고 그러잖아요.

 

그런데 그게 우리만 그런게 아니라 북한에도 그래요. 93년에 단군릉을 복원하면서 단군릉을 어마어마하게 지어놨잖아요. 피라밋 식으로. 사방에는 비파형 단검을 세워놨습니다. 그리고 앞에 문인석과 무인석에 있는 인물이 누구냐 하면 그게 전부 환단고기에 나오는 태자부루부터 시작해 가지고 그 환단고기의 인물들을 여섯명씩 쫙 배열을 해 놓은 거예요. 그쪽에서도 그걸 적극적으로 환영해요. 주체라는 이름으로. 그러니까 한반도에서 막 치우를 높이니까 가만 놔두면 안되겠거든. 그러니까 여지것 자기네 선조와 전혀 상관없는 버르장머리 없는 야만의 수장을 자기 민족의 시조의 한명을 끌어 앉는 거예요.

그걸 언제 작업을 했냐 하면 92년에 시작을 해요. 92년이 언제냐면 한중 수교를 새롭게 시작하는 거예요. 한중 수교를 딱 하는 그 해부터 중화삼조당을 짓는단 말이예요. 이게 그 기록이 있단 말이예요. 이게 지금 제가 보여드리는 이 사진자료는 옛날 문헌에 나오는 탁록현 그 우리가 탁록대전이라 그러거든요. 황제와 싸운. 탁록현에 유적지들에 지도예요.

가운데 보이는 이 사당이 이게 황제 사당이고 요 밑에 성이 있고 이런게 치우성 치우관련 유적지예요. 지금도 가면 치우송, 치우우물, 치우천이 다 있어요. 여기도 황제송이 남아있고 황제천이 남아있고 다 있어요. 이걸 기본으로 해서 다시 삼조당을 복원을 하는겁니다. 기록이 있고. 탁록현이 어디냐 하면 북경에서 서북쪽으로 한 4시간 정도 가요.

 

서북쪽으로. 거기에 가면 이 귀근원이 정문 사진인데 여러분 보면 어마어마하게 크죠? 여기 남녀가 사랑을 속삭이는지 손잡고 있는데 남자가 남자인지도 모르겠어요. 근데 그 크기하고 요 사람들 크기하고 글자 크기하고 비율을 해 보세요. 글자 하나가 3m, 막 4m 이렇게 되는거예요. 그거 담장 높이가 한 10m 이상 되는거죠. 어마어마하게 커놔요 하여간. 그리고 저 안에 건물 하나 보이죠? 요게 중화삼조당인데 거기까지 300m에요.

300m를 걸어가야 돼. 3000m갈려면 뭐 옆에 볼거리를 만들어 놔야지 아무것도 없어. 그냥 길만 쫙 300m를 걸어가야 저길 가. 저길 들어가면 삼조당 안에 모셔져 있어요. 여기 가운데가 황제고 염제고 여기가 치웁니다. 요 벽면에는 벽화가 그려져 있는데 즉 치우와 염제가 싸운 판천대전, 그 다음에 치우한테 염제가 지니까 염제가 황제족에 구원을 요청해서 염황세력과 치우가 싸운 탁록대전,

 

그것을 그림으로 벽화로 그러놨는데 여러분들 치우는 고대 역사서에 치우는 항상 동두철액이라고 기록이 되어 있어요. 즉 동으로 투구를 만들고 절로 가면을 만들어 썼다 뭐 그렇게 다 해석을 하는데 그니까 무슨 얘기냐면 그 황제나 염제족보다 가장 앞서서 청동기 문명을 들고온 세력집단들이예요.

 

근데 벽화를 보면 저 뭐야 치우는 돌도끼들고 표범가죽 입고 워워워 거리고 원시인으로 그려 있고 황제족은 완전히 면복까지 다 입고 그렇게 그려 있어요 염제황제는. 나중에 토론할 때 있으면 시간이 되면 그 사진자료들 여기 다 있으니까. 이 중화삼조당을 통해서 치우를 끌어 안았어요.

그 다음에 웅녀. 여러분들 우리나라 단군신화의 구조를 보면 호랑이족과 웅녀족이 만주의 토착세력입니다. 그죠? 그리고 환웅족이 어디선지 모르지만 와요. 그래서 그 두 세력이 만나서 단군을 낳아요. 그니까 중국에서 통일적 다민족 국가라는 그니까 지금 현제 중국안에 있는 모든 소수민족과 역사는 중국사라는게 통일적 다민족국가론인데, 그 시각에서 보면 호랑이족 웅족은 중국민족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웅족의 대표인 웅녀를 동상을 만들어 놨어요. 높이가 18m예요. 여러분들 대한민국에서 단군상을 세워도 목을 자르는 판인데, 웅녀 나는 그림도 본적이 없어요. 웅녀가 그냥 신화에만 있지 웅녀가 어떻게 생겼는지 형상화 한다는게 힘들잖아요. 그죠? 동상은 더더군다나 본적도 없고. 지금 중국에서 그걸 해 놨어요 이미.

자 여기가 만천성국가살림공원인데 여기가 연변 자치주 안에 있습니다. 여기 보시면 여기 잘록한 여기에 댐을 만들면서 인공호수가 만들어 진거예요. 인공호수 한가운데 섬이 있죠? 요 섬을 들어가려면 여기서 배를 타고 10분, 15분 이렇게 가는데 그 배에서 선녀봉이랑 선녀봉, 섬의 꼭대기 이름이 선녀봉인데, 선녀봉 올라갈라면 이렇게 계단을 올라가는데 계단 위에도 웅녀와 곰과 호랑이가 있어요.

 

그런데 이거는 새발의 피죠. 한 2m뿐이 안돼요. 2m도 사실 큰거지만. 중간에 선녀봉으로 올라가는 길에 여러분 자료에도 있죠 이거는. 선녀봉으로 올라가는 길이 요 꼭대기에 인제 웅녀를 세워 놨는데 가는 길에 뭘 해놨냐면 여러분들 웅녀가 되기 전에 뭐였어요? 곰이였잖아요. 그죠? 그래서 곰 조각을 해놨어요.

 

그리고 요 앞에 마늘입니다. 파랗게 있는게 요게 쑥입니다. 마늘 한 쪽이 높이가 한 50cm돼요. 요렇게 그려 놨어요. 이걸 거쳐서 꼭대기에 가면 웅녀상이 세워져 있어요. 이게 높이가 18m고 무게가 520t입니다. 그리고 모르는 사람이 보면 멀리서 무슨 약사보살인줄 알아요. 그런데 여기 손에 있는게 뭔지 아세요? 마늘입니다 마늘. 손에 들고있는게 마늘이예요. 그리고 요쪽 왼손에 들고 있는건 쑥, 이렇게 그려놨어요.

그리고 이거를 한민족의 시조 웅녀 이렇게 소개하는게 아니라 중화민족의 하나인 조선족의 시조 백의신녀 이렇게 설명해 놔요. 웅녀 그러면 뭔가 한국 떠오르니까 백의신녀라고 소개해 놨어요. 이거 해놨어요 다. 여기다가 이제 요하문명 완성되면 단군 옆에다가 엄마 아들이니까 단군 딱 세워놓고 단군도 황제의 후손이다 이렇게 갈껍니다 분명히. 지금은 여기다 단군 세워놓고 중화민족의 그 일원이다 그렇게 하면 한국사람들 머리 다 돌죠. 아직은 거기까지 안해놨어. 근데 웅녀상은 다 해놨다 이거예요. 치우도 다 끌어 안았고.

그런 작업을 이미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92년부터 삼조당 짓기 시작하고 이건 2001년에 세운 거예요. 이런 것들을 전체적인 네트웍을 시켜서 총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눈이 필요한데 역사학만 하는 사람들 이런게 안보이는 거예요.


- 동북공정을 바라보는 시각을 바꿔야 한다

자 그래서 동북공정을 보는 시각을 바꿔야 된다. 우리는 왜 자꾸 동북공정이라는걸 동북지역에 역사 왜곡으로만 해석하기 때문에 다른 통일적 다민족국가론에 ‘하상주단대공정’, ‘중화문명탐원공정’, ‘요하문명론’ 이런게 어떻게 엮이는지가 머리에 안들어오는 거예요. 그러니까 기껏 국가에서 대응책을 만든다고 한게「고구려연구제단」을 만드는걸로 끝난다 이말이예요. 고구려만 연구하면 해석 됩니까 이게? 해결책이 나옵니까? 그렇지 않다는 거죠.

그 고구려 공정은 우리가 아는 서북공정이나 서남공정과 다 링크가 되어 있어요. 중국에 최고 지도부가 항상 콤플랙스가 있어요. 아까 말씀하신데로 물 다스리는 문제하고 또 하나는 분열에 대한 두려움 이예요. 그 분열에 대한 두려움은 역대, 지금 공산화 이후 그 이전에 고대시절부터 중국 최고 통치 통치자들의 최고의 고민거리예요.

근데 지금 중국에서 분열될 수 있는 가능성 지역이 크게 3군데예요. 여러분들 알고 있는 티벳 지역은 이미 독립운동 하다가 망명정부까지 있잖아요. 그죠? 달라이 라마에 망명 정부가 있어요. 그거를 중국역사가 다 끌어안기 위해서 만든게 서남공정이에요. 중국에 서남족이다 이거예요. 이것도 다 시작 했어요.

 

그리고 또 한군데가 어디냐하면 위구르 지역. 그 서북공정이라고 그래요. 서북쪽은 여러분들 아는 것처럼 거기 여행을 가보면 거기 인종이 다릅니다. 인종이 달라요. 종교도 다르고 말도 다르고 생긴거 눈도 파랗고 생긴게 다 달라요. 그러니까 걔네들은 우리는 보도가 잘 안됩니다. 지하에서 아직도 무장투쟁을 합니다. 그쪽이. 보도가 다 안돼서 그렇지. 거기도 분리독립 무장투쟁을 하고 있단 말이예요.

그 다음에 한 곳이 동북지역이죠. 동북지역 다른 소수민족들은 국가를 건설한데가 별로 없어요. 다 옛날부터 통합이 되가지고. 만주족 얘네들은 중국에 주민등록증 보면 주민등록증 같은 증이 있는데 거기에보면 자기 민족이 다 표기가 되어 있어요. 한족, 만주족 이게 다 써 있어요. 조선족은 조선족 선족 이렇게 써 있어요. 그런데 만주족들은 이미 그 거대한 청나라를 세웠음에도 불구하고 자기들 말도 다 잊어버렸어요. 거의 다 동화가 되어버렸어요. 다른 소수민족도 대부분 그래요.

근데 동북지역에 주도세력인 조선족들은 옆에 독립국가가 있단 말이예요. 북한 남한을 포함한 독립 국가가 있는 거예요. 그리고 여러분들 아는 것처럼 탈북문제가 막 심각하게 되면서 통일 이후를 대비를 해야 될 것 아니에요. 그런 문제들을 염두해서 마지막으로 걱정되는 지역이 동북이예요. 그게 동북공정이에요. 고구려 역사 왜곡 그게 문제 그게 몸통이 아니란 말이예요.

그니까 동북공정을 안정화시킬라면 어떻게 해야되냐? 걔네들 서북공정 서남공정할 때 로직이 뭐였냐면 통일적다민족국가론을 기반으로 해서 그 지역에 너네 선조 선조 선조 역사이래로 중화민족이었다는 논리를 만드는 거예요. 서남공정도 그랬고 서북공정도 그랬어요. 동북공정도 마찬가지예요. 고구려가 중국꺼다 그게 아니라 그 지역에 모든 소수민족과 이런 역사들은 아주 옛날부터 다 중화민족이었다 그 얘기를 만들고 싶은거야.

예를 들면 고구려가 여러분들 702년 동안 독립국가를 유지하는데 702년 동안 중원에서는 34개 왕조가 멸망을 합니다. 34개 왕조가. 우리 민족 참 이상한 민족이야. 한번 나라가 만들어 지면 기본이 500년이죠. 신라는 1000년 가까이 갔고. 고구려도 거의 500년 넘죠. 고구려 아 그니까 고려도 조선도 600년이라 그러고 중국에는요 20년 짜리가 무진장 많아요. 20년짜리가 무진장 많습니다.

 

그니까 고구려가 하나가 단독국가로 있는 사이 34개가 바꿔요. 중원에서는. 그래도 조공했다 그러잖아요. 그니까 이런 식의 시각으로 보니까 지금 동북공정을 이렇게 보니까 전체적인 틀에서 안보이는거예요. 전체적으로 안보이면 대책도 단말마적으로 나갈 수 밖에 없어요. 백두산공정 그러니까 또 막 떠들다가 또 잠잠하죠. 이건 계속 나온단 말이예요. 전체적으로 못보게.

그래서 이제 바꾸자 이거예요. 보는 시각들을 이제. 21세기를 향한 중국의 국가전략이라는 차원에서 이런 것들이 다 엮여 있단 거예요. 역사 관련 공정들은 ‘탐원공정’과 ‘하상주단대공정’, 그리고 통일적다민족국가론이 다 연대되면서 최종판으로 만들어지는게 ‘요하문명론’ 이라는 거예요. 아직은 요하문명론에 대해서 많이 알려져 있지도 않고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이예요. 정말 몸통은 저는 이거라고 보고 있어요.



중국문명의 기원에 대하여

자 그 다음에 중국이 중화문명의 기원지를 아까 잠깐 제가 말로만 설명 드렸는데 지금 황하에서 자기 중원문화의 중심지를 황하에서 장강의 하모도로. 그 다음에 요하로 옮긴다 그랬어요. 그죠? 뭐 앙소문화 그 황하, 그 황하문명이라고 얘기할 때 황하의 신석기 문명의 핵심이 앙소문화입니다. 앙소문화 여기도 뭐 그려놨는데 마가요, 반파, 머족으로 합친 그 지역을 전부 앙소문화라고 통칭을 합니다. 그건 유형이예요. ‘묘족의 유형’ 보통 그렇게 부릅니다. ‘앙소문화 묘족의 유형’, ‘앙소문화 반파유형’ 이렇게 부릅니다. 그걸 합쳐서.

그래서 이 73년에 여러분 자료에는 이게 없을겁니다 아마 그죠? 나중에 다 그 한가지로 엑기스로 만들어서 보여드렸지마는 장강으로 자기네들의 문명의 시작점을 옮깁니다. 그게 하모도 유적이예요. 하모도는 기원전 5000년까지 올라가요. 신석기 문명이.

그 다음에 요하일대로 지금 옮기는데 요하일대에서는 소하서라던지, 소하서 문화는 기원전 6500년까지 올라갑니다. 흥룡와는 6200년. 이건 어마어마한겁니다. 세계에서 가장 이럴수도 있어요. 제가 사진자료 보여드리겠지만, 이미 이 때 거대한 집단 주거지가 해자로 둘러싸여 있고 해자 해자 아시죠. 성 쌓으면 왜 바깥으로 물길을 돌리잖아요. 그죠? 그게 나와요.

 

그래서 얘네들도 중화제일촌이라고 부르는 겁니다. 중화제일촌, 중화제일용, 중화제일봉 이런게 전부 요하에서 나와요. 중국에 문화상징에 최초의 영상이 전부 거기서 나오는 거에요. 그게 맞는거지. 그니까 걔네들이 내려가면서 만들었는데 시원이 여기였다 그러면 중원문화 자체가 떨거지가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얘네들이 무리수라도 두어서 그걸 끌로 가려고 그러는 거예요.

자 여기 지금 여기 지금 사진으로 해놨는데 이게 중국의 주요 신석기 문명인데 우리가 지금 오늘 집중적으로 얘기할께 요하가 요렇게 흐릅니다. 이건 여러분들 자료에도 없나요? 요하가 이렇게 흘러요. 심양 위쪽으로 요렇게 흐르는데 요 적봉, 우리 츠펑, 링웬, 차오양 이런 요 지역이 홍산문화 지역이에요. 그리고 홍산문화는 그 이전 선 신석기 문명을 갖고 이제 아까 흥륭와 라던지 소하서 같은건 6500년까지 올라간단 말이예요.

그담에 마가요 반파 묘족오 요게 우리가 흔히 황하문명이라고 얘기할 때 중심적인 앙소문화지역이예요. 그담에 여기 하모도가 있구요. 그니까 중화문명의 중심이 여기에서 여기로 그 다음에 일로 옮기는 거예요. 시기적으로 여기가 제일 앞서요. 자 이거보세요. 이거 제가 가지고 있는 CD, VCD자료인데 중국 고고발굴에 대한 그 얘기들을 시리즈로 한건데 여기보면 중국 최초의 원시 촌락사회를 앙소문화의 반파유적으로 보고 있어요. 이거 옛날 자료라는 거죠. 지금은 이렇게 안봐요. 지금은 중화제일촌이 흑륭와에서 발견돼요. 이미 자기네들이 명명 그 사진자료 제가 보여드릴겁니다. 조금 있다가.

그 다음에 최초의 문명의 서광 이렇게 해놨잖아요. 중국 문명의 서광을 어디로 설명하냐면 하모도로 설명을 해요. 이거 틀면요 하나에 CD가 두개씩 들어있는데 막 정말 뭐 이 워더 중국신 같은 민족 애국주의를 자극하는 배경음악에다가 여기서 중원문명이 시작되었다 그러고 발굴 과정 다 보여주고 그럽니다. 그런데 이것도 낡은 거라는 거죠. 이제 새로운 테이프가 만들어지면 요하부터 잡는다는 거예요. 이것만해도 이미 요하문명의 논리가 들어가기 이전 자료라는 거예요.

자 그러면 요하지역에 어떤 신석기 유적이 있는지 눈으로 보십시오. 자 소하서 문화는 지금 여러분들이 보는거 6500년까지 올라갑니다. 6500년. 이거는 뭐 그 세계 고고학대에서 이미 다 보고된거기 때문에 이게 동북아시아 최초의 신석기 유적이예요. 동북아시아에서. 그리고 집단주거지를 가지고 있는거로써는 세계 최초일 수 있어요. 그거는 이제 아직도 연구중인데 이게 전부 홍산문화 적봉유역에서 나오는 겁니다. 이게 지금 소하서 문화가 동북아 최초의 신석기 문명이라는걸 정식으로 공표한 그 내몽고 신문망에서 보도자료입니다. 이거 뭐 구체적으로 읽지 않겠지만.

그 다음에 흥륭와입니다. 이거는 시기가 조금 돼가지고 82넌 1월 때 발견되었기 때문에 정리가 되어 있어요. 이것도 6200년까지 올라가는데 여기에 화하제일촌이 나옵니다. 그리고 세계 최초의 옥이 나옵니다. 이 때. 여러분들 보이십니까? 여기 시신에 이게 귀걸입니다. 귀걸이. 귀걸인데 여러분들 제 부언을 하면 그 신석기시대에 옥에다가 이렇게 구멍을 뚫으려면 중국학자들이 옥 전문가들이 많으니까 철기 이런게 없으니까 어떻게 했겠어요.

 

모래 뿌려가면서 나무로 이렇게 돌려서 했을거란 말이예요. 7mm두께의 옥에다가 구멍을 뚫는데 실제 실험을 했어요. 저 논문도 가지고 있고. 해봤더니 구멍을 뚫는데 30시간 이상이 걸려요. 구멍 하나 뚫는데. 무슨 말씀인지 아세요? 그 30시간이 밥먹는 시간 다 빼고 순수 작업시간만. 그러면 쉬고 밥먹고하면 구멍 하나 뚫는데 한 사람이 한 3, 4일 걸린단 예기에요. 그걸 했어요.

그리고 더 놀라운건 이 옥이, 옥은 아무데서나 나는게 아니기 때문에 옥에 성분을 분석을 하면 산출지를 알 수 있어요. 그런데 이게 어디서 나온거냐하면 이거 재미있는거죠. 여러분들 아까 그 아 제가 위로 그 신석기 지도로 잠시만 돌아가면 자 여기가 츠펑이라고 되어 있는데 있죠? 여기가 적봉인데 적봉 요지역에서 아까 흥륭와 옥이 나왔단 말이예요. 기원전 6200년까지 올라가는. 근데 거기서 사용된 옥이 어디 출신거냐하면 심양에서 한 3시간쯤 동쪽으로 가면 여기에 수암이라는 곳이 있어요. 요쯤에. 여기에서 난거예요. 이게 1000Km가 넘습니다.

무슨 얘기냐 하면 기원전 6200년 이때 이미 만주의 동쪽과 서쪽 끝이 교류를 했다는 거예요. 저 밑쪽으로 대문구 용산으로 내려가는거 기원전 3000년 때 돼야지 내려가요 옥문화가. 대문구라던지 양저문화 이런 쪽으로. 그런데 지금 내가 먼저 세계최초로 그게 적봉부근에서 발견된건데 흥륭와에서, 수암옥이라는거예요. 놀라운겁니다 사실.

지금 장광직이라던지 세계적인 고고학 중국계 고고학자들이 얘기하는 신석기 문명간의 교류는 기원전 4천년 돼야 문명간의 교류가 이루어져요. 신석기 문화간에. 그런데 기원전 6000년에 이미 이 요동과 요소를 포함한 이 지역은 교류가 되었다는 거예요. 이건 뺄 수 없는 증거죠. 성분 분석을 하면 다 나오는 거니까. 그래서 이게 이런 문명이 기원전 6200년에 이미 최초에 옥이 나오고.

그 다음에 이게 더 놀라운거죠. 이게 중국학자들이 중화원고제일촌 보통은 축약해서 화제제일촌, 중화제일촌 이렇게 부릅니다. 이게 뭐냐하면 한 50개 이상의 주거지가 밀집되어 있고 해자로 둘러싸여 있어요 해자. 여기서는 잘 구별이 안되는데 제가 다른 자료가 있는데 하여간 뭐 지금은 그건 공인된 겁니다. 해자가 다 발굴되었어요. 이건 굉장히 놀라운 겁니다.

 

이 시절에 여러분 기원전 3000년 4000년 때 신석기 유적 발굴되는거 보면 방 유적지가 한 2, 3개 있고 이거로 끝이예요. 50개 100개의 유적지가 방 유적지가 한꺼번에 해자로 둘러쌓여있는 마을을 촌을 형성하는건 이건 굉장히 놀라운 거예요. 기원전 6200년. 세계의 고고학계를 계속 놀라게 만드는 겁니다. 이지역에서. 이건 어마어마한 거예요. 여러분들이 보면 아무것도 아닐지 모르지만. 다른 전공이 다른 사람은 그럴지 모르겠지만 이건 대단히 놀라운 자료예요.

그담에 고 바로 밑에 기원전 5600년까지 올라간 사해문화가 있는데 여기서 만들어 지는게 이게 세계제일옥이였는데 아까 이거는 흥륭와에서 그 세계제일옥이 만들어지기전까지 이게 세계제일옥이였어요. 그런데 한 500년 앞서는게 후대에 발견되가지고 흥륭와가 세계제일옥으로 바뀌어버렸는데 그때도 옥이 이미 기원전 6000년 이때 이미 옥을 이미 다 다듬어져가지고 썼대는 거예요. 어마어마하게 나옵니다.

중국학자들 무슨 얘기하냐면 타재석기 마재석기 청동기 철기 이거는 동북아에 안맞는단 얘기예요. 그래서 뭐라고 얘기하냐면 타재석기 구석기 마재석기 신석기 그 다음에 청동기로 넘어가는데 그 가운데 옥기시대를 넣어야 한다는 얘기를 합니다. 옥병기시대 혹은 옥기시대를 넣어야지 안그러면 해석이 왜? 그 시절에 옥기를 쓰던 그 시절이면 국가단계에 진입을 하는데.



홍산문화의 특징


- 중화문명의 상징 모두 발견되었다


자 홍산문화에 가장 핵심적인 특징이 뭐냐하면 우리는 청동기 시대에 넘어가야만 국가가 성립된다고 그게 일반적인 상식이예요. 청동기 시대로 되면 어떤 변화가 일어나냐면 첫째는 계급이 분화됩니다. 즉 지배자와 피지배자가 생겨요.

그 다음에 그 지배자와 피지배자가 생기니까 초기에 국가, 국가단계에서 신전이 생기고 그 군장급에 해당하는 거대한 묘제가 생겨나기 시작하고 그 다음에 직업이 분화가 됩니다. 이런 변화가 홍산문화에는 기원전 3500년에 다 이루어져요. 청동기는 하나도 없는데. 그게 놀라운거죠.

자 그다음에 중화제일용이 사해문화에서 이게 아까 말씀드린 82년에 그 기원전 5600년에 사해문화에서 석소룡이라 해가지고 돌을 쌓아가지고 용 형상물을 만든겁니다. 이게 중국에서 나오는 최초의 용 형상물이예요. 돌로 쌓은. 자기네들 맨날 중국은 용의 자손이다 그런 얘기를 했는데 용의 원형이 전부 여기에서 나오는거예요. 뒤에 옥으로도 만든게 무진장 많습니다.

그 다음에 요하제일촌, 이것도 아까 중화제일촌 나오기 전까지 흥륭와에서 나오기 전까지 이게 중화제일촌이였어요. 이게 석소룡이 있고 이 주변에 주거지가 한 100여개가 쫙 밀집되어있어요. 지금은 발굴 끝내고 다 덮어놨어요. 다 덮어놨어요.

그 다음에 기원전 5000년에 조보구문화가 있는데 이게 전부 요하일대입니다. 적봉을 중심으로한. 여기서 중화제일봉이 발견됩니다. 이건 내가 명명한게 아니라 중국학자들이 발굴하면서 명명한거예요. 봉황의 원형도 여기서 나온다는 거예요. 근데 이건 조금 좀 견강부회한 느낌도 있는데 하여간 벼슬도 나오고 꼬리도 있고 새 형상물이예요. 이게 최초로 나오는 거예요.

 

이후에 앙소나 이런데에서 도기에다가 새 그림도 나오고 하지만 이게 최초로 나오는 겁니다. 벼슬을 가진. 그래서 이걸 자기네들이 중화제일봉 이렇게 명명을 한거예요. 명명을 한거예요. 중화제일촌, 중화제일옥, 중화제일봉, 중화제일룡 이게 전부 요하에서 나오는 거예요. 그걸 예맥족 문화라고 띄워 놓으면 이건 완전 자기네들 병*신 되는 거죠. 그러니까 무리수를 둔다 말이예요.

홍산문화에서 중화제일용이 발굴되었어요. 이게 아까 석소룡이 발굴되기 이전에 한거라 이게 지금 홍산문화를 대표하는 전형적인 옥저룡이라고 하는데 옥, 이게 돼지 저자를 씁니다. 돼지코같이 생겼다고 해가지고 원래 용은 돼지코처럼 생겼죠? 용은 원래 열두개 동물의 특징이 합쳐진 복합토템이라고 얘기합니다. 코는 돼지코예요. 이게 여러분들 보시면은 중화제일용 써있죠?

 

중화제일용 탑이요 탑에 써 있잖아요. 중화제일용 해가지고. 기념탑도 만들어 놨어요. 그런데 이거 발굴돼가지고 야! 중국 최초의 용이 여기서 나왔는데 더 이른시기에 아까 그 석소룡이 있잖아요? 그게 나와가지고 얘가 또 깨갱 한거죠. 그래서 그건 천하제일용 그렇게 부릅니다.

하여간 문제는 그 자기 중화문명의 상징이라고 얘기하는 모든 상징의 가장 이른 시기께 전부 요하에서 나온다는 거예요. 그니까 그걸 어떻게 놓칠 수가 없는 거죠. 자기네들 입장에서.


- 국가단계에 진입하였다

자 그래서 홍산문화가 국가단계에, 여기 질문에도 누가 하셨더라고요. 정말 그게 국가단계에 진입한걸로 볼 수 있는가? 그거를 제가 자료를 보여드리겠습니다. 이건 뭐 초기발굴과정 이런거는 뭐 생략하겠습니다.

홍산은 이건 진짜 이렇게 시뻘겋습니다. 보십니까? 저도 처음에는 여기 가보기 전까지만해도, 그 이름도 많은데 하필이면 적봉 적봉시에 붉은 적자입니다. 홍산 왜 전부 붉은것만 했더니 산 자체가 나무가 없어요. 적철광이라 완전히 시뻘게요. 그래서 이게 홍산입니다. 그래서 이 뒤에서 발견돼서 홍산후문화 그러다가 나중에 55년에 홍산문화라는 이름으로 정식 명명이 됩니다.

자 홍산문화 주요지역이 여러분들 지도에 보이는 것처럼 발해만 위로 삼각형으로된 지역이 전부 중요한 유적지 발굴지역이예요. 네모나게 아니 삼각형으로 이렇게 된데 있죠? 팔인자, 치우치 이게 화면이 작아서 여러분들이 좀 그럴텐데. 이건 아마 여러분들 자료에도 제가 해놨을 겁니다.

지금 우리가 국가단계에 진입했다는 홍산문화 유적이 어디냐하면 여기 건평과 능원 사이에 16번, 제가 요기를 집중적으로 보여드릴 겁니다. 요 지역인데 이 지역에서 이미 국가단계에 진입한 거대한 신전과 천제단과 적성묘와 이런게 다 나옵니다. 그걸 보여드릴께요. 이거는 뭐 쭉 지나가도 될겁니다. 일본학자들도 초기에 이거 막 했는데 이때만 해도 그 거대한 국가단계에 진입된 그런 유적들이 발견되지 않았어요. 이거는 여러분들 없을겁니다.

자 세계를 놀라게한 우하량 유적진데 왜 국가단계에 진입되었다고 하는지를 여러분들이 한번 보십시오. 자 아까 16번지점, 능원과 그 건평사이에 유적지가 이게 지금 여러분들 쌔까맣게 되있는게 전부 적석총입니다. 적석총아시죠? 전부 삼단구조로 되어있습니다.

 

백제 적석총도 삼단으로 되어있죠? 적석총 묘지는 중원에는 하나도 없습니다. 만주일대에서 고구려로 이어져서 백제로 이어지고 일본까지 넘거가요. 중원으로는 안들어옵니다. 적석총 묘제가. 그니까 이거는 적석총 하나만 가지고도 이 문화의 주체세력들이 예맥과 부여로 이어진다는걸 얘기할 수 있어요. 중원쪽으로 안들어가니까. 적석총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 왼쪽 아래있는 거대한 적석총이 있거든요. 이거 아직 공개를 안합니다. 여기보면「금자탑식거석건축」이렇게 되어있죠? 금자탑이 뭐냐하면 피라미드를 한자로 번역할 때 금자탑 이렇게 번역을 합니다. 그런데 저도 이걸 가보지 못했는데 공개를 안해서 그 중국 학자들한테 듣는 얘기에 의하면 한변의 길이가 한 130m정도 된다고 그래요.

 

한 변이. 그거를 기원전 3,500년 4,000년에 지었다는 거예요. 이게 무슨 부족국가나 씨족단계에서는 만들 수 없어요. 야 둘째야 100m짜리 하나 쌓아라. 이게 됩니까 말이. 안돼요. 이미 국가단계에 진입하지 않으면 이런거 만들 수 없어요. 요 지역에서 나오는 요기 지금 고고공작잔 아래의 요기가 우하량 2지점 유일하게 일반 관광객들한테도 공개되는 지역입니다. 이게 여러분들 사진에 나오는 천단입니다.

 

그리고 이 사진을 보십시오. 이게 우하량 제2지점에 제단 유적지입니다. 제단 유적지인데 여러분들 보는 것처럼 전부 3원구조로 되어있죠? 이 규모가 원에 지름이 20m, 30m되는 겁니다. 이게 전부 삼단으로 되어있던건데 5,000년동안 다 허물어 진거죠. 그리고 뒤에는 방형제단이 있어요.

 

원형. 앞에 방형이 있고 뒤에 네모난게 있죠? 여기도 마찬가지예요. 여기 원형제단이 있고 뒤 방형이 있어요. 중국학자들이 이게 중국에 있는 천단의 원형이라고 논문들이 많이 나와있어요. 이건 다 상식입니다. 천단 가보신 분도 있겠지만. 그건 또 좀 있다 소개를 할테니까.

여기 여러분들 글씨가 적혀있죠? 사진아래. 그 사진에 뭐라고 요 글씨가 뭐라고 써있냐면 고걸 내가 박스로 처리한게 이겁니다. 영어로도 써있고 중국어로도 써있는데 한국어로는 내가 번역한거고. 요게 뜻이 뭐냐하면 약 5,500년 전에 즉 기원전 3,500년에 이미 국가가 되기 위한 모든 조건을 다 구비하고 있는 홍산문화 유적지라고 써있어요.

자 그게 이게 왜 왜 그런가를 인제 제가 자료를 보여드리겠다 이거예요. 요 지역을 발굴하면서 발굴자들이 그린 그림이예요. 요걸 보면 원단이 전부 삼원구조로 되어 있죠? 방형도 이게 다 삼단으로 되어 있어요. 요 박스하나가 6m?6m입니다. 격자 박스하나가 6m, 6m에요. 그니까 규모가 벌써 한 20m막 이렇게 되죠? 30m, 20m 되는겁니다. 이런게 즐비합니다. 즐비해. 수천개가 발굴됐어요 지금. 이거는 거대한 문명권이 아니곤 불가능합니다. 이런식으로 나옵니다. 제단이. 이게 하나가 한 20m, 30m 짜리입니다.


- 삼수문화

그리고 요게 지금 북경 북경에 가시면 여러분들 북경 가본 사람 있지만은 북경가면 천단 이렇게 생겼죠? 삼원구조로. 삼원구조 3수분화 혹시 읽어보신 분이 있기 때문에 요게 전부 3수분화로 되어있습니다. 여기 가운데 천심석이 있고 하늘에 마음 돌 해가지고 천심석인데 여기 첫째바퀴는 아홉조각으로 되어있죠? 대리석이.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아홉 해가지고 아홉개로 되어있어요.

 

두째바퀴는 하나가 둘로 쪼개져 있어요. 그죠? 18개, 그리고 세번째는 3개로 쪼개져 있어요. 그래서 마지막 바퀴 아홉 번째 바퀴는 81개 대리석으로 원이 구성되어 있어요. 1 3 9 81의 구조를 논리를 건축물로 만들어 놓은 거예요. 그리고 요 난간도 계단도 전부 아홉 개고 난간도 여기는 9개 18개 27개 이렇게 돼있어요. 계단도 전부 9층으로 되어있어요.

 

근데 지금 중국학자들이 천단에 대해서 연구한 논문들을 보면 어떻게 써있냐면 아! 이게 왜 이러냐? 이건 하늘에 제를 지내는 원단이기 때문에 양수에 극대화된 9수의 제곱수로 이렇게 했다. 이런 음양으로 해석한다 이말이예요. 제가 본건 짜장면같은 얘기예요.

 

 

요하문명론의 핵심

예. 자 이제 요하문명론인데 요하문명론이라는 개념이 정식으로 등장하는거는 2006년 6월부터 시작된 겁니다. 그니까 저도 여러분들이 갖고 계시는 제가 쓴 동북공정 그 책에도 요하문명론을 눈치를 못챘어요. 저도. 그 탐원공정이나 이런걸 다 합쳐서 도대체 뭘 뭘 낼려고 그러는지 궁금하긴 했지만 그 정체가 뭔지 안보였단 말이예요. 그런데 최근에 그 심양 박물관에서 요하문명전이라는 전시를 했어요. 그런데 거기에 모든 논의가 다 압축되어 있어요. 그걸 중심으로 제가 사진자료 중심으로 보여드릴께요.


- 만주지역을 세계 최고의 문명권으로

자 하여간 요하문명론의 핵심은 핵심을 정리하면 만주일대는 전부다가 신화시절부터 황제족의 영역이었고 거기에서 발원한 모든 소수민족과 그 역사는 중원민족의 역사이고 중화민족의 이론이라는 논리를 만드는 겁니다. 그래서 그게 완결이 되면 완결이 되면 무슨 고구려 이런 하나씩 싸울 필요가 없는거예요. 그냥 모든게 다 중화민족의 역사가 되고 중화민족이 되는 거예요. 단군까지도. 그건 자동으로 그렇게 되는 거죠. 거기서 탄생했다고 얘기를 한다면.

자 이게 요녕성 박물관에서 2006년 6월부터 전시를 시작을 했어요. 그 논리들을 인제 적립하면서 쫙 전시를 시작했는데, 첫 번째 입구에 가면은 오제시대에 삼대집단이라는게 그 도표가 그려있어요. 여러분 그거는 거기 있죠 여러분한테도. 이 핵심의 논리가 뭐냐 하면 얼마 전에 그 느낌표? 느낌표 거기서 동북공정해가지고 석일수 선생님이 여기저기 막 돌아다니면서 막 동북공정 뭐 고구려 산성도 왜곡하고 그거 막 나오는데, 내 강의를 들은 사람이 거기다 제보를 했대. 야! 그 아직도 고구려 공정 그러고 있냐?

 

우실하 선생이 강연한걸 내가 들었는데 요하문명이라는 몸체가 있더라. 박물관에 가면 이런걸 다 해놨더라. 그랬더니 PD가 뭐라고 얘기하냐면 나도 가봤는데 별거 없던데? 그렇게 대답을 하더래. 이거 못 읽은 거죠? 아까 임효제 선생도 홍산문화 학술대회 제 3회 학술대회에 가서 자기 발표 바로 앞에 있는 중국학자들이 요하문명이 중국문화의 기원 이런거 다 논문 발표 했잖아요.

 

그래도 못 읽은거랑 똑같애. PD가 가서 그거 다 봤데. 봤는데 별로 문제 없는데요? 그렇게 대답을 하더래. 그게 이게 뭐냐 하면 이걸 여러분들이 아까 내가 서북공정을 전체 전체적인 틀에서 조망할 수 있는 눈이 없으면 그게 안보이는 거예요. 근데 핵심적인건 여러분들 오제시대에 삼대집단 이게 왜 중요하냐면 기존에 중화족을 중심으로 동이 서용 남만 북적 하던 개념을 다 완전히 새로 새판을 짜는 거예요. 그 개념을 안씁니다 이제.

그래서 중원을 중심으로 한 염제신농씨의 화족집단과 동해연안에 옛날에 이게 전부 동이의 지역이란 말이예요. 근데 그걸 포함한 동이지역을 하족집단으로 다시 재편성을 하는거예요. 옛날에는 화하족 그래가지고 중원에다가 넣었단 말이예요. 화하족 그래가지고. 그런데 그걸 화족과 하족을 분리해가지고 하족은 동이 영역을 다 산둥반도를 중심으로 발해만과 장강까지 이르는 그 동이 영역을 다 하족으로 바꾸는 거예요. 그 다음에 만주일대 요소를 중심으로 한 그 만주일대를 전부 황제족 집단의 영역으로 재편성을 하는 겁니다.

기존에 우리가 몇 천년동안 중국사를 인식할 때 가지고 있었던 황하유역의 화하족과 동쪽에 동이족 남만 서융하는 그 개념이 다 재편되는겁니다. 그 논리는 그런거예요. 그 이족이라고 표현하는 전부가 중화민족이다. 그래서 그 중화민족을 다시 셋으로 쪼개는 겁니다.

그리고 특별한 거는 만주지역은 관심도 없다가 만주지역을 황제집단을 만주지역 전체를 지배하는 신화시절부터. 그 논리를 개발하고 있는 거예요. 이미 국민 홍보까지 들어간거죠. 물론 여기에 관련된 논문들은 이미 많이 나와 있구요. 그걸 정식으로 세계학회에 다 공표한 거예요. 그게 아까 제가 사진자료도 보여드린 그 제 3회까지 이루어진 홍산문화 국제학술대회라고. 우리 학자들도 참가를 하고.


- 요녕성박물관 각 전시실의 주제 및 핵심 내용

그 다음에 제 1전시실에 문명의 서광 해가지고 아까 말씀드린데로 중화문명의 서광을 요하에서 시작되었다 그렇게 가는 겁니다. 그걸 전시를 하고 있는 겁니다.

그 다음에 제 2전시실은 상주북토인데 상주북토라는 말이 무슨 말이냐면 그 만주일대는 상나라 주나라 때부터 북쪽 영토였다 그런 뜻이예요. 상주북토라는게. 간단한겁니다.

그 다음에 제 3전시실의 제목이 화하일통인데 이 내용은 뭐냐하면 진한이후로 즉 중원왕조가 통일왕조를 이룩한 이후로는 동북 만주 지역의 모든 역사는 중원왕조의 직접적인 관할안에 있었다. 그래서 진한 이후에는 전부 지방정권이 되는거예요. 그래서 여러분들 고구려와 수나라와 당나라가 전쟁을 하잖아요. 그런데 여지껏 모든 역사서에는 전쟁으로 기록이 되어있어요. 그런데 지금 중국학자들은 전쟁이란 표현을 절대로 쓰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내란이니까. 지방정부에서 반란을 일으킨거지 국가 대 국가의 전쟁으로 볼 수 없데는 거예요. 여지껏 모든 역사를 다 새로 쓰는겁니다. 완벽하게.

그 다음에 제 4전시실, 제 5전시실은 거란왕조와 만주족의 청 왕조를 중원역사로 연결하는겁니다. 아까도 말씀 드렸지만 울람바타르 몽골 국립박물관에 가면 이 역사는 전부 몽골 역사로 정리가 되어있습니다. 그렇게 정리를 해 놓고도 막상 이런 동북공정이나 탐원공정이 나올 때 몽골쪽에서 막 비난하고 못해요. 원체 인원도 뭐 몽골 인구가 250만이라 그러잖아요. 인원도 적고 국력도 약하고 하니까 그냥 속으로 부글부글 끓긴 하는데 말은 못하는 거예요. 이게이게 학술이 아니라는 거죠

 

그래서. 그죠? 얘네들 자꾸 학술문제고 국가문제가 아니라 그렇게 얘기 하는데 이건 정치문제화 되어 있어요. 이미. 이 정치적인거지 이게 무슨 학술문제로 학술문제로 하면 정말 그렇게 토론하고, 우리는 장기적으로는 중국 주변민족의, 주변지역의 학자들을 모아서 그 대응하는 학술대회를 해야 되는겁니다. 학술적으로 정말 얘기를 하고 그런데 말을 못해요. 혼자 해놓으라고 그러면 말을 못해요. 북한도 못하는데. 북한도 적극적으로 못 떠드는데. 이게 여러분 보이는 이거는 해놨겠지만.


- 북방의 모든 소수민족은 황제의 손자의 후예

그 요하문명과 관련해서 그 핵심적인 논리를 제가 한 서너가지로 정리해놨어요. 첫째는 기존에 동이 서용 남만 북적 등 모든 민족을 중화민족에 넣는 논리이고 두 번째는 요하일대를 전부 황제족에 판대로 넣는 새로운 판짜기고 북방에 모든 소수민족은 황제의 손자이고 또 황제의 손자라는 전욱과 제곡의 후예라는 논리를 만들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아주 구체적으로는 홍산문화. 그 많은 문화중에 홍산문화는 전욱세력의 문화라고 이미 논문들이 나와있어요. 이게 지금 안내문이고 여러분들 사진자료집에 이건 있을 겁니다. 요하문명 이 때 요하문명이라는 개념을 새로 만든거예요. 기존에 연구들을 다 종합해가지고.

그 다음에 이게 지금 여러분들, 여러분들한테도 있죠? 이 제목이 오제시대의 삼대집단이예요. 그니까 신화시절을 역사가 바로 링크시키는 거예요 지금. 우리는 단군 역사만 하더라도 단군조선만 하더라도 신화다 이러고 싸우고 있는데 얘네들은 그것보다 훨씬 이전인 신화시대의 모든 것을 직접적인 지역과 역사와 연결, 링크시키고 있는거예요. 그래서 지금 하족집단과 화족집단 신농씨를 중심으로한 황제집단 이렇게 세 집단으로 새로 편성을 하고 있어요. 이렇게 국가적으로 하면 모든 학자들은 이걸 따라가야합니다. 그게 사회주의예요. 이 논리를 거부하고 아 나는 이렇게 생각 안한다. 이거는 거기선 안된다는거죠. 중국에서는.

자 그 다음에 이게 지금 하버드대학에 장광직 세계적인 그 세계적인 상 문명 연구자죠. 장광직 선생이 표로 그리는 고대 중국민족들의 분포지역이란 말이예요. 점선으로 되어 있는게 화하족이고. 옛날에는 화족과 하족이 하나로 합쳐져서 하화족 이렇게 불렸단 말이예요. 그리고 그 동쪽에는 여러분들이 빗금친게 동이족이잖아요 그죠? 이게 동이족 영역인데 이거를 하족과 화족을 분리하는겁니다 지금.

동이를 없애고 하족과 화족을 중원과 동이지역으로 따로 만들고 묘만 이런거 다 없애버리고 동곡 만주지역을 전부 다 황제족으로 재편성을 한겁니다. 이거는 어마어마한 음모예요 사실은. 보기에 따라서. 이거 간단한거 같지만 이렇게 되면 거기서 동북에서 발원한 모든 민족은 황제의 자손이 되는 거예요. 웃기는 거예요.

이게 고구려 문제만 아니다 이거예요. 이게 이런식에 논리가 동북공정 나오기 이전까지 세계학계가 공인한 분포도란 말이예요. 그리고 여러분들 보는 것처럼 이 산동을 중심으로 저 위쪽까지 여기 지도가 짤려서 그렇지만 요하 일대까지가 전부 동이로 보는겁니다. 요하일대 여기를.

자 이게 그 상주북토예요. 상주북토는 아까 말씀했지만 상나라 주나라 때부터 이 요하일대는 북쪽영토였다. 그런 뜻입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발원한 소수민족들의 여러 국가나 이런걸 전부 방국문명으로 해석을 합니다. 방국은 쉽게 설명하면 우리식으로 설명하면 제후국이예요. 관할권 안에 있었다는 거예요. 직접적인 관할은 이제 통일된 이후부터 화하일통 하잖아요.

그니까 화하일통의 뜻은 모든 북방 소수민족이 중화민족으로 통일되었다 그런 뜻입니다. 화하족으로 통일되었다. 그래서 진한시대 이후 진한이라는 통일국가가 이루어진 이후부터는 직접적인 관할 안에 있었다. 그래서 지방정권이라는 개념이 나오는 겁니다.

이 제 3전시실 안에 고구려 부여 유물들이 전시가 되어있어요. 물론 딱지가 붙어있죠 지방정권 해가지고.


- 요하문명의 진정한 주인이 누구인가

자 이 요하문명의 진정한 주인이 누구인가? 이거는 여지껏 중국학자들이 전부 요하문명의 주도세력들을 물론 요하문명이란 말이 없었죠 그때는. 그 요하일대의 주도세력을 전부 예맥으로 봤었어요. 지금도 그렇게 보고 있고. 그런데 지금 논리는 어떻게 가냐 하면 그 예맥이 누구냐 하면 황제의 후손이라는 거예요. 여지껏 연구된 결과를 다 부정할 순 없잖아요 그죠?

 

그 주도세력이 예맥이라는걸 다 인정 한다고. 근데 예맥이라던지 그게 우리민족과 연결된다고 상상하기 쉽지만 그렇지 않다는 거예요. 그 예맥이 바로 황제의 후손이다 이렇게 가는 거예요. 중간에 그걸 인터셉터 하는 거예요. 무슨말씀인지 아시죠? 그 논리를 계발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정사기록에서 그런거 찾기 어려우니까「산해경」을 끌고 들어가는 거예요.

자 근데 그 주도 세력은 아까도 예기했지만 예맥족들은 지금 제가 말씀드린 홍산문화에 나오는 적석총의 유적이라던지, 홍산문화 지역에서는 중원에서 안나오는 여러 유적들이 있어요.

첫째 적석총. 중원문화에서 하나도 안보여요. 둘째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빗살무늬토기 있죠? 줄문토기. 홍산문화의 특징이 줄문토기입니다. 그거 중원쪽으로 하나도 안나와요. 비파형 동검, 하나도 안나옵니다. 그건 전부 만주에서 한반도로 일본으로만 연결되는 거예요. 북방문화.

그래서 지금 여러분들이 보는 이 지도는 뭐냐하면 신석기시대에 4대문명 문화권이예요. 이게 아래위로 빗금쳐 있는 아래위로 빗금처럼 되어 있는게 이게 빗살무늬토기의 전승 루트예요. 근데 보시면 중원지역에는 빗살무늬토기가 하나도 들어가지 않아요. 저 북유럽쪽에서부터 쭉 시베리아쪽을 통해서 만주 한반도로 일본까지 넘어갑니다.

그 다음에 시커멓게 되어있는게 뭐냐하면 거석문화권이예요. 스톤헨지(stonehenge)부터 시작해서 그 다음에 무슨 고인돌, 적석총 이런 큰 돌을 이용해서 뭔가 만드는 거석문화권이라 하는데 거석문화권도 보시면 북유럽과 중동지역 이쪽으로도 이집트 피라밋 이런 것으로 해서 두 쪽으로 쪼개집니다.

 

하나는 우리 비단길 루트 비슷하게 만주 초원으로해서 요렇게 해서 만주쪽으로 들어옵니다. 한반도로. 그 다음에 하나는 고원을 피해서 남방으로 내려갑니다. 그래서 고인돌도 남방식이 있잖아요 그죠? 그래서 남방으로 내려간 그것은 인도나 이쪽으로 동남아로 퍼집니다. 그런데 중요한건 중원 안으로는 하나도 안들어온다 이거예요. 이해됐죠?

그 다음에 채도문화인데 요 점선으로 요렇게 된거 있죠? 요렇게. 요런게 채도문화인데 채도문화도 발원지는 여기로 봅니다. 메소포타미아 이쪽에서 발원 해가지고 이동되는 루트가 남쪽으로 가면서는 인더스 쪽으로 들어가고 초원의 길로 쭉 들어와서 이거는 유일하게 천산 남북로쪽으로 들어가서 황제에 어 저 황하지역으로 들어갑니다. 이게 앙소문화입니다. 그래서 앙소문화의 가장 큰 특징이 채도예요. 여기 지금 채도문화가 들어갑니다.

그리고 초원쪽으로 들어온거는 만주쪽으로 들어와요. 여기를 저거가 우리가 Y벨트라고 부릅니다. 고고학에서 황하가 이렇게 흐르고 이게 대흥안령이 있습니다. 대흥안령이 있고, 여기가 북경이고 심양이 요즈음인데 홍산문화 지역이 요기인데 앙소문화지역이 여깁니다. 앙소문화지역이 막 흩어지면서 황하를 중심으로해서 요걸 우리가 화서회랑이라고도 역사학에서 얘기하는 요게 문화가 이렇게도 들어오고 이렇게 나가고 합니다. 그래서 이걸 Y벨트라 그래요 Y, Y벨트. 고고학에서. 요기가 문화가 교류되는 지점이예요. 오루도수, 청동기니 뭐 이런게 전부 요런 루트입니다.

그래서 채도가 만주지역으로 들어오는 것도 물론 이렇게 해서도 늦게 들어오지만 이런 시기는 이렇게 들어가는 걸로 봅니다. 채도문화가. 그래서 초기에 중국학자들이 홍산에서 하가점 하층 정도되면 아주 너무나 아름다운 채도들이 나오는데 그 문양은 상대 청동기랑 똑같예요. 그 채도 문화가 요렇게 들어온걸로 봅니다.

 

그래서 처음에 우하량 유적지 이런 국가단계에 진입한 홍산문화가 적극적으로 계발되기 발굴되기 전에는 이 지역에서 들어온 앙소문화에 영향을 받아서 홍산문화가 후대에 형성된걸로 생각을 했어요. 그니까 70년대 막 80년대 논문보면 중국학자들 다 그렇게 설명했어요. 시기가 그렇게 빠른거 생각도 못한거예요. 그리고 기원전 3,000년, 4,000년이면 국가단계에 진입한 뭐 그런 유적이 발견되기 전에는 이 후속문화로 봤다고요. 여기서 앙소에서 들어가서 홍산문화를 만든걸로 해석했단 말이예요. 이제 완전 뒤집어지는거죠.

그 다음에 나머지 점선으로 되어있는거 있죠? 폐곡선으로 이렇게. 점선으로 폐곡선으로된 이거는 세석기문화예요. 세석기. 세석기는 여러분들 흑요석으로 왜 잘게 다듬어서 화살촉도 만든 그거 있잖아요. 근데 세석기도 아무데나 나오지 않습니다. 그 세석기문화도 이 중동지방으로 해가지고 쭉 북진하면서 초원에 루트길로해서 쭉 들어와서 중원에는 하나도 들어가지 않고 만주와 한반도로 이어집니다.

이거 잘 보세요 여러분들. 이거는 내가 왜 보여주냐하면 이 만주일대는 두가지 특징이 있어요. 만주일대는 세계 어디에도 유래가 없이 신석기 4대문명이 다 오버랩되는 유일한 지역이예요. 세계 어디를 봐도 이 4대 그 신석기 문화권이 전부 오버랩되는 지역은 만주 한반도 일대밖에 없어요. 어디를 보세요. 다 오버랩되는거 유일한 지역이예요. 이런 오버랩되는걸 바탕으로 해서 거대한 문명이 형성되는 거예요. 중원문화와는 아주 이질적이란 말이예요. 그래서 그 지금 제가 말씀드린 줄문토기 거석문화권 이런 바탕들은 중원으로 하나도 안들어가고 동진하면서 한반도로 만주로 들어오는거예요. 일본까지 넘어갑니다.

자 그 다음에는 언어적으로도 이렇게 달라요. 이거 지형도를 보시면 여러분들 그 우리 지도를 볼 때 맨날 평면도를 보는데 저는 어떨 때 막 머리아프고 책도 안보이고 그러면 이거를 화면에 크게 띄워놓고 재미있어요. 이거. 사람들이 문화가 어떻게 이동했을까. 이 지형도를 보면 그냥 보이잖아요. 그죠? 문화가 막 산 넘어 옛날에는 청동기 시대 이전에는 산을 넘어간다는건 이거는 자살행위예요. 자살행위.

 

산은 인간이 범접할 수 있는게 아니예요. 다 동물의 세상이었고 인간이 군대형태로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이 나눠져서 누군가 대장을 하고 20명 30명 단위로 무장하고 넘어가기 전까지는 산을 넘어간다는건 있을 수 없어요. 씨족단위로. 이건 불가능해. 다 죽는거예요. 그건. 그래서 산은 항상 문화를 나누는 경계예요. 물은 항상 문화를 연결하는 링크, 네트웍을하는 루트였고 문화는 고대문화는 전부 산맥사이에 평지를 통해서 이렇게 이동하는거예요.

여러분들 생각을 해 봐요. 왜 만주일대에 신석기 4대문명이 오버랩되는지를 역으로 생각해보래매 지형도로. 이렇게 들어오면 미쳤다고 이렇게 내려갑니까? 이 산을 뚫고 여기 여기가 지금 앙소문화라고 하는 지역이 여긴데 이 거대한 산맥을 뚫고 뚫고 일로 왜 내려갑니까? 이 넓은 초원이 있는데. 갈 이유가 없어요. 그러니까 일로가면 쭉 들어오면 그대로 직진하면 바로 시라무랜과 요하로 이어지는거예요.

그 다음에 하나는 또 위쪽으로 간 사람들은 일로 가다보면 중간에 산을 넘기 힘드니까 강줄기를 따고 이렇게 들어오는 거예요. 이게 송화강입니다. 흑룡강. 그러니 일로 들어온 거예요. 강을 타고 어떻게 들어옵니까? 여러분들 가면 내몽골 쪽만 가도 아주 비가 많이 오는 한 우기를 제외하면 전부 건천이예요. 애지간하면 다 건천이예요. 겨울에는 딱딱 얼면 거기가 길이 되어버려요.

 

제가 겨울에 여기 답사를 가면 그냥 차타고 그 강을 따라 움직이는게 가장 빠른 길이예요. 어디를 가던. 이거는 전혀 고민하지 않아도 강줄기는 그냥 길이예요. 길. 강을 넘어가고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도 된단 말이예요. 이게 우리 문화가 들어오는 루트예요 이쪽에서부터. 한 루트예요 이게.

그 다음에 하나는 여기 그 만주리 하라얼 있는 지역인데 여기가 세석기문화 세계문화유산이예요. 요기. 그래서 요쪽으로 해서 요기가 지도상으로는 잘 안나오는데 여기가 고원평지 지역이예요. 그래서 여기가 유일하게 철도가 연결되어 있어요. 몽골 들어가는 아니 그 이르크추크, 바이칼까지 연결되는 철로가 연결되어 있어요. 요쪽으로 세석기는 요렇게 들어옵니다.

그니까 지형도를 보면 그게 왜 그렇게 들어오고 중원과 문명적으로 문화적으로 이질적일 수밖에 없는지를 지형도를 보면 보여요.

언어도 다르죠. 우리 한국어와 중국어는 언어적으로도 계통을 달리 합니다. 스키타이 동방교역로인데 스키타이가 이렇게 움직입니다. 그림을 여기까지만 그려서 그렇지 스키타이는 최종적으로 어디로 안착하냐하면 일부세력은 신라 김씨입니다. 신라 김씨. 신라 김씨가 스키타이예요. 얘네들이 저 흑해로부터 초원지대를 왔다갔다 했어요. 자 뭐 이런 청사진 이런거는 여러분들 필요없을거고. 이제 이 발표를 끝내고 제가 다른 재미있는 발표들을 홍산문화 옥기자료들을 지금 이거는 저 밖에 안가지고 있어요 국내에는.

여러분들 중국에서는 중국 북경대학에서 어떤 논문들이 발표되기 시작하냐면 박사학위논문으로 그 홍산문화 유역에서 은 선은세력이죠. 은이 내려가면서 상문명이 나오니까. 그 세력들이 동진에서 잉카 아즈택 마야문명을 만들었다고 얘길해요. 아시겠어요? 걔네들 다 청반있는거 알죠? 근데 그걸 박사논문이 다섯개가 나와있어요 지금. 북경대 고고학과에서. 그중에 하나는 나도 가지고 있어요. 그 논리가 내가 몇개 여러분 이런거 하나 보십시오. 걔네들이 뚱딴지같이 그렇게 얘기하는게 아니라는 거예요.

자 그런데 이게 맥시코 국립 인류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올메카 옥조 옥으로 만든 석인상인데 이게 편두를 했어요. 편두까지 얘기하면 막 정신없으니까 하여간 지금 옥으로 만든 거예요. 얘네들도 옥문화가 굉장히 발달되어 있어요. 그런데 전 세계적으로 옥을 이렇게 활용하는 시원은 전부 요하에 있어요. 지금도 중국 사람들은 금보다 옥이 더 비쌉니다. 세계인이 이해를 못해요. 비싼 옥은 가격이 없어요. 걔네들 얘기가 그래요. 중국에서 뭐 중국에서 공부한 사람은 알겠지만 금은 가격이 있는데 금은 가격이 있어요. 국제공인가격이 있어요. 1g에 얼마. 옥은 가격이 없단 얘길 합니다. 진짜 가격이 없어요.

근데 문제는 여러분들 잘 보시면 그 이 석인상 뒤에 요 뭐 나무기둥 같은게 있죠? 근데 여기에 뭔가 막 새겨있죠? 그거를 내가 확대하면 어떻게 생겼느냐하면 이렇게 생겼어요. 보이세요? 갑골문을 좀 보신분은 금방 이게 할애비 조자에 갑골문입니다. 이거는 뫼산자에 조산이예요. 그 위에거는 뭐 해석이 잘 힘들고 이것도 좀 전체자료가 있으면 해독이 가능해요.

 

올메카 잉카 마야에서 정식으로 발굴된 갑골문이 123자입니다. 그리고 여러분들 이게 새조, 할애비 조자를 갑골문을 지금 구별을 못할거 같아서 제가 이걸 갑골문 책에서 조자에 원형을 갑골문을 스캔받아서 해놨어요. 이게 갑골문 조자, 할아비 조자에 나중에 인제 볼시자 옆에가 붙는거고 이게 할애비 조자에 석인상, 옛날에는 이거를 남근이란 말이예요. 남자 성기인데 이거는 돌로 실물처럼 만들어서 하기도 했고 글자가 이렇게 변형하는 겁니다. 갑골문에 다 이렇게 나와요.

그 다음에 뭐 태극도 나오고 이런것도 보세요. 얘네들이 올메카에서 나오는 그 이것도 다 옥으로 만든 겁니다. 완전히 몽골리안이죠. 홍산에서 나오는 가면이랑 똑같예요. 그건 좀있다 다른걸 먼저 보여드려야.

자 이게 이게 뭐냐하면 제가 있을 때, 요녕대학에 있을 때 황강태라는 분이, 황강태라는 분이 20년동안 혼자 홍산일대를 돌아다니면서 옥을 모았어요. 저도 한 10점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도 가면 아저씨들이 밭갈다가 주워가지고 자기 뭔지도 모르고 갔다가 팔아요. 그런데 그걸 20년 요게 황강태라는 분인데 요 친구는 이제 저 자료수집하는데 많이 도와준 조선족이고. 제목보는 것처럼 홍산문화 옥기 정품전 해가지고 2001년에 열렸어요. 그런데 이게 지금 전부 거기서 전시된 자료인데 재미있는게 많이 있어요. 이런 옥이 기원전 3,500년, 4,000년 전에 만들었다는 거예요.

자 예를 들면. 이런 신상들을 보면 전부 가슴이 풍만한 여신상의 모습이예요. 그래서 이게 홍산시절에는 국가단계에 진입을 했지만 아직도 모계사회란 거예요 그게 웅족문화라는 거예요 웅족.

자 여러분들 이게 제가 아주 이거 발견하고 아주 며칠동안 내가 아주 기쁘게 며칠동안 술먹었습니다. 이 용봉이 합체되가지고 여러분들 우리 고문을 보면 서경이나 시경 옛날 책을 보면 용생구자라는 표현이 나와요. 용이 9마리 새끼를 낳고 용의 비늘은 81개라는 기록들이 나와 있어요. 그래서 나도 그걸 3수분화와 연결을 시키는데 그 기원이 어디일까?

 

그게 얼마나 고고학적으로 자료가 있어야 될거 아니예요. 그죠? 그런데 이 시점에는 문자가 없으니까. 이게 9?9 81의 논리를 다 갖고 이게 하나가 9마리의 새끼를 낳고 그 9마리 등에 용이 9마리씩 또 올라가 있어 새끼가. 81수가 나오는거지. 요게 확대를 하면 어떻게 돼있냐 하면 요렇게 꽂게 되어있어요. 보이세요? 홈이 있고 하나씩 꽂게 되어있다고. 분리가 된단 말이예요. 그니까 이런걸 만들라면 이 국가단계가 아니면 이런 규모를 만들 수 없어요.

그 다음에 이런 신상들을 보세요. 뭐 하여간. 이런게 곰입니다 곰. 곰상이 많이 있어요. 자 요거를 제가 보여드릴게요. 요런 모양이 많이 나와요. 홍산에 대표적인 옥을 여신이 타고 있어요. 이게 사젠지 뭔지 지금 뭐 이건 연구도 안되있는거 저는 이거 동영상으로 다 찍어놨어요.

 

양해를 구하고. 여기 보이죠? 내가 이걸 깜짝놀랬어요 이걸보고. 왜냐하면 요런게 비슷한게 몇 개가 나오는데 예를 들면 여기도 있죠. 그죠? 뱀을 타고 있죠 용을? 그런데 여러분들 여기서 눈 여겨 볼께 전부 여신이란 말이예요. 그래서 모계사회란 얘기를 하는데 요걸 보시면 올메카에 이런 자료가 나와요.

 

보이세요? 이 캐찰코아트리아라는 용이잖아요. 그죠? 용이 C자형으로 요렇게 되어 있고 요기 사제가 제사장인지 뭔지 타고 있잖아요. 그죠? 상징이 똑같죠? 모양도 비슷하지 않아요? 곰 아니 곰이래. 용의 형상도. 이런 자료를 얘네들이 박사논문으로 쓰는 거예요. 그게 링크되어 있다는거를.

그 다음에 여러분들 그 비파형동검 아십니까? 비파형동검은 요동 요서 그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비파형동검 나오는 지역까지를 고조선 강역이라고 흔히들 얘길합니다. 그리고 비파형동검은 중원쪽으로는 하나도 안나와요. 근데 홍산문화에서 옥기로 만든건데 난 이게 이거보고도 또 깜짝 놀랐어요. 이것도 한 이틀은 술 먹은거 같애. 그런데 이게 비파형 아주 유사한 옥으로 만든게 나와요 이렇게. 이런게 있으니까 청동시대가 열렸을 때 비파형동검을 만드는거지. 가운데 심도 있어요 요렇게. 가운데 이렇게 톡 튀어나온거 있죠? 이런게 있어요.

그 다음에 이런 돌도끼 이런거. 아까도 칼도 보여드렸지만. 그니까 청동기 시대가 되면 청동기를 일반인들이 쓰는게 아니죠. 다 아실거예요. 청동기 시대에 청동기는 아주 주요한 의기를 만들거나 상징을 만들거나 이렇게 쓰는거지 일반인들은 아직 돌 가지고 쓰는거예요. 옥기시대에 얘네들이 옥기시대에 만들잖아요. 그래서 이런 거예요. 모든 의례 장식품이나 신상이 전부 옥으로 만들어져 있잖아요.

도깨비도 나옵니다 도깨비. 도깨비 방망이도 있어요. 가면도 끝내주죠. 이게 아마 치우상이나 이런거에 기원이 이런데 있을지도 몰라요. 아직 저도 연구도 안해봤지만. 가면도 아주 재미있는 것들이 굉장히 여기 보세요. 굉장히 다양한 가면들이 나옵니다. 다 보여드리긴 힘들고.

그리고 요런 것도 요런 것들이 대단히 여러개 나오는데 여러분들 사신도 얘기할 때 북방 현무도는 하필이면 왜 두 마리가 그 저 뭐야 거북이를 구렁이같은게 막 감싸고 있잖아요. 그런데 이런 형상이 옥기에서 한 4?5점 나와요. 그런데 처음에는 나도 안놀랬는데 이것도 한 2~3일 술먹게 만든게 뭐냐면 조양박물관에 가면 이 홍산문화의 거점중에 하나 조양박물관에 가면, 요나라 때 석관이 바깥에 전시가 되어있는데, 거기에는 동서남북으로 사신도를 그려놨는데 요거랑 똑같이 생겼어요.

 

그 사진은 내가 지금 찍어놨는데 사진자료가 많아서 아직 찾지를 못했어요. 똑같아요. 거의 유사해요. 그래서 이것도 아마 사신도는 아직도 현무도의 비밀은 풀려있지 않습니다. 현무도가 어디서 기원하고 무슨 상징인지 정설이 없어요. 여러 가지 가설은 있는데. 근데 이것도 링크될 가능성이 있어요. 아직 저도 연구를 안해봤습니다. 네 또 곰상 또 나오죠? 그니까 이런 것들이 이게 전부 홍산에서 나온 것들이예요. 어마어마하게 많아요.

이런 신상들을 보면 여러분들이 주목해야될게 전부 이 생산여신이죠. 가슴이 다 이따만해요. 도깨비 방망이도 나오고. 더 재미있는거 하나 보여드리고 끝내께요. 여러분들 그 우리 고구려 부여 역사 얘기할 때 유화부인 얘기하죠. 하백의 딸 뭐 그 얘기 하는데 인어가 나와요 인어가. 이것도 자기 전시한 사람도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될지 모른데 근데 지가 전시하는 사람이 안내문 한게 하백의 딸 유화 이렇게 해놨는데 이게 손으로 여자 모습이 나오죠? 앞면 완전히 사람인데 뒷면을 보면 이게 좀 보입니까? 이게 화면이 내 화면만 흐린가? 머리카락이 물고기로 되어 있어요.

 

머리카락이 물고기를 한마리 이렇게 뒤집어쓰고 이게 수메르쪽에 엥키라는 수신입니다. 수신이 이렇게 쓰고 있어요. 아시는분 있을 겁니다. 그리고 뒤에는 보입니까? 비늘까지 표현돼 있어요. 이게 화면이 이상하게 흐린데요. 깨끗한건데. 비늘까지 있고 그 물고기 꼬리로 되어 있어요. 그니까 이거는 또 수메르와 링크가 되던지 뭐 하여간 있어요. 이게 여러분들 코펜하겐에 가면 인어공주 얘기 나오죠? 인어 동상도 있고. 그거는 이쪽과 시간적으로 문화적으로 링크가 되어 있어요. 하하하. 아 이게 술먹는 시간이 자꾸 줄어드는데 이거.

하여간 이게 지금도 해석을 못하는거죠. 아직은 연구된게 없고 이건 한 한 80cm이상 돼요. 사이즈가. 그리고 물고기를 뒤집어 쓰고 한게 수신계열이란 말이예요. 저 수메르 쪽에서 엥키 해가지고 그 사진들이 있어요. 대단히 유사해요. 그래서 인어공주 서양의 인어공주가 여러분들 그게 시베리아 북방 문화권으로 해서 북방쪽으로 이어집니다. 아시죠? 북유럽신화는 샤머니즘이예요. 거기 보면 3수분화의 논리 다 나옵니다. 예

예를 들면 북유럽에 이그드라실이라는 우주수가 나오죠. 이그드라실. 그건 가지는 천계와 연결되어있고 뿌리는 지하세계와 연결되어있고 그렇게 되어 있어요. 그리고 고 그 이그드라실 아래에 샘이 있는데 그 샘에는 운명의 3여신이 있어요. 한여인은 운명의 실을 잡고 한여인은 길이를 재고 자매신인데 한여인은 잘라요. 그게 삼신이죠. 산신이고. 우리가 왜 산신할머니 삼신할머니 혼용되잖아요.

 

우리문화에서도. 셋이라는 삼신이라고도 쓰고 낳을 산자 이거 그니까 삼신이면서 생명을 낳는 거예요. 그게 북유럽신화는 우리는 서양신화 얘기하면 맨날 그리스 로마 얘기를 하지만은, 그리스 로마 신화와 전적으로 체계가 다른 신화구조가 북유럽신화예요. 우리 뭐 반지의 제왕, 이런거 보면 뭐 무슨족 무슨족 거인족 나오잖아요. 그거 다 나와요 거기. 그 문화권에서 계속 유목쪽으로 통해서 연결되어 있단 말이예요.

그래서 그게 어쩌면 여기서 거꾸로 간걸지도 몰라요. 물론 아직은 몰라요 저도. 시기적으로 이게 훨씬 앞서니까. 요런 자질만한 자질구레한 옥기들 이건 작은거예요. 요런것들을 다 패용했단 말이예요. 구멍이 다 뚫려.

홍산옥기의 특징이 매달 수 있게 구멍이 다 뚫려 있어요. 그러니까 요런 작은 것들은 자기의 부족 상징으로 걸고 다녔을 수도 있고, 아까 그 석가묘나 이런거 보면 죽은 자들을 위해서는 그건 사이즈가 커요 보통 한 10cm~20cm 막 26cm 이렇게 까지 나와요 이만한. 그런것들은 부장용으로. 부장용에도 구멍이 다 뚫려 있어요. 홍산의 특기 특징 중에 하나예요.

그래서 여러분들 부여 고구려 역사를 볼 때 저도 어릴 때 참 이해가 안되는게 왕 밑에 마가 우가 저가 해서 전부 동물이 있잖아요. 그죠? 동물성씨로. 그거 왜그랬을까? 그래서 사람들이 뭐 부족에 토탬 그런 얘기도 했지만 증거가 없는.

여기에는 옥기들의 몸은 전부 여신 형상으로 가슴이 이만하고 엉덩이 빵빵하고 그런데 얼굴 쪽에는 뭐 닭 돼지 뭐 동물 별로 다 있어요 다양하게. 여기도 보면 여러 가지 나오죠? 여러 형상이. 형상이 다 달라요. 똑같은게 아니고. 요런 작은 것들은 패용하고 다녔을 수도 있어요. 그니까 부족간에 다툴 수도 있으니까. 나는 이런 족이다를 지금이야 뭐 주민등록증 있으니까 주민까봐 그러면 되는데 얘네들은 이거 깠겠죠 뭐. 그건 알 수 없지만 하여간 그렇게들 많이 해석을 합니다.

이렇게 큰 것들은 신상이예요. 이거는 사이즈가 한 한 20cm에서 30cm정도 됩니다. 이거는 가구별로 아니면 신상을 자기네 부족의 여러분들 여기도 보면 다 모양이 다르잖아요. 그죠? 얼굴모양은 다 다릅니다. 이건 뭐 새족이겠지 새족. 이거는 소족도 있어요. 소족. 그죠? 소족 소는 홍산에서는 중국학자들 연구한거는 홍산의 태양신이 소머리 소형상이라고 얘기하는데 내가 논문을 몇게 읽어 봐도 근거가 너무 미약해. 그래서 그건 좀 더 내가 봐야되고. 하여간 소머리 돼지머리 닭머리 다 나옵니다.

 

이것도 아 이건 보여드렸나요? 곰은 곰머리. 이건 또 말입니까 토끼입니까? 이런식으로 전부 동물형상으로 되어있어요. 머리부분은. 사람형상으로 된게 별로 없어요. 둘리도 나옵니다. 둘리. 허허. 이것도 여러분들 이거 보세요 요 돌기도 있죠? 제가 재미삼아 둘리라 하지만 이건 여러분들 무령왕릉 발굴될 때 앞에 지키는 서수가 있었죠? 그죠? 서수의 전통도 있었을 지도 몰라요. 하여간 돌기가 다 있어요. 이게 뭔지 도마뱀인지 도마뱀에는 이런게 없잖아요 그죠? 뭔지 모르지만 저는 혼자서 둘리라고 부릅니다. 둘리도 나와요.

여러분 홍산 저룡의 모습인데 배아 모습이죠? 그래서 중국 학자들이 홍산옥 하는 사람들이 우리 곡옥있죠 곡옥. 곡옥에 아직도 비밀이 안풀려져 있는데 중국학자들이 연구한게 그 C자형 곡옥의 원형이 생명 태아가 형성되어서 태아때는 다 요렇게 되어있잖아요 그죠? 그거를 형상한거라는 얘기를 많이 해요. 그래서 이게 시기별로 쫙 나옵니다 모양이. 아주 어릴 때부터 옥기에서도. 나는 내가 보면 그게 맞을거같애. 곡옥이라는것이. 요런것들이 많이 나옵니다.

 

여기 지금 요렇게 요렇게 배아모습이잖아요. 그죠? 완전 성장이 안된. 그런 것들이 많이 나옵니다. 여긴 돼지도 나오죠? 멧돼지 같죠? 코끼리도 나옵니다. 또 또아리 튼 뱀도 나오고 이런 무기류들이 많이 나와요. 그러니까 옥기시대를 넣자는 얘기를 하는 겁니다. 홍산옥기를 보여드릴거 이거 동영상으로 제가 다 찍어놨어요.

자 이게 제가 우하량 지역을 요기가 우하량 지역이라 그랬잖아요. 16번 지점, 건평관 응원사 여기에서 아까 얘기한 국가단계에 진입한 여신묘 천단 이런게 다 나오는 지역인데 자료를 하도 안 공개하니까 그래서 내가 아이디어가 뭐였냐면은 야! 이 구글에 가서 여러분들 위성에서 찍는거 있잖아요 구글에서 google earth. google earth에 가면 이게 있을꺼다 규모가 원체 크니까. 그래서 이거 좋은 아이디어다 해서 찾아들어갔더니 대한민국 청와대는 주차장이 세워있는 차까지 분별할 수 있을 정도로 들어가요. 왜 통제를 안해놨는지 모르겠는데 그 생각을 딱 하고 야! 이거 진짜 좋은 아이디어다 그러고 딱 들어갔어요.

 

그랬더니 이게 최대한입니다. 이미 통제를 해 놨어요. 위성에서 통제를 해 놨어요. 북경만해도 이거보다 훨씬 자세하게 들어가요. 북경시내에도. 우리나라에는 청와대 차가 몇 대 세워났는지 진짜 다 셀수 있어요. 그 자료도 내가 갖고 있어요. 근데 이 정도에서 더 이상 안 내려가요. 뿌해져버려요. 이미 그걸 구글하고 국가적으로 해 가지고 다 통제를 해 놓은거예요.

 

이게 아까 천제단 있는데고 여기 여신묘 있는데고 이 거대 피라미드 있던 이게 한 변이 130m라는데 이 제대로만 위성이 작동하면 다 찍히겠죠. 내가 지금 국방 외교위원회를 통해서 국회에서 발표할 때 자료를 외청을 해 놨어요. 정 안되면 우리나라 위성있잖아. 무슨 아리랑인가 무궁환가 그걸로 찍어서 나를 다오. 근데 아직 하고있는지 안하고 있는지 모르겠는데 하여간 달라그랬어요. 이걸로는 못 들어가니까. 더 하면 욕먹겠지? 그죠? 더 떠들면 욕먹을걸거든.

옥? 소장옥? 여지껏 보여줬잖아요. 더 뭘 원해요? 이거 다 보여주라고? 그럼 싸이즈를 보여줄께. 여러분들 아까 내가 올매카 이거 보여드렸죠? 이 용과 홍산 옥이 대단히 유사하죠? 그리고 30년대에 우리나라 평양지역에서 발견된 옥이예요. 일본학자들이 발굴한 거예요. 대단히 유사하죠? 이 갈귀라든지. 이런거를 인제 링크해서 고구려 연구하고 뭐만 연구해가지고 이런게 보일 수 없어요. 저는 하도 잡식성이라 이것저것 관심있어서 우리문화의 기원과 관련해서 하니까 이런게 유사성이 보이는거예요. 굉장히 유사하지 않으세요? 내 생각만 그런가? 그렇지 않죠?

이런것들이 연결될 가능성들이 있다는 거예요. 그리고 북경대 고고학과에서 논문이 나올때는 어거지로 그게 나오겠어요? 토기 비교하고 단행본 책으로 출판돼 있어요. 박사논문을. 근데 이걸 내가 소개하는 이유가 뭐냐면 이제는 뒤집기 한판이면 끝낼 수 있다는 것. 얘네들이 연구하길 다 해놨길 다 해놔. 그 황제족이 아니라 예맥족보고 우리꺼다 딱 뒤집으면 되는거야. 물론 가만있다 뒤집으라면 미안하니까 하는척은 해야지. 그리고 열심히 하는 사람이 있어야 되고. 정식으로 그쪽에서 반론이 들어올 때 답변할 수 있는 그 로직은 있어야지.

 

 근데 불행하게 지금 여러분들 옥기를 보고 있지만 우리나라에 옥기 전문가가 하나도 없어요. 우리나라에선 옥이 나오면 아주 후대의 것 고고기나 이런게 나오니까 전문가가 없어요. 제가 있으면서 옥기를 공부할려고 굉장히 노력했고 중국에는 가짜 옥을 만드는 법! 그런 책도 수십개가 있어요. 진짜예요. 어떻하면 이걸 그걸 방제라 그러는데 불에 몇도에 구워서 어떻하면 옛날것처럼 보이는지 어떤지역은 가짜와 진짜를 구별하는 방법 책도 있고 많아요.

 

전문가들이 굉장히 많다고. 지금 옥기같은거 구멍을 뚫으면 여러분들 홍산옥을 보면 요건 새 대가리네 요건. 새가있죠. 구멍이 뚫려있단 말이예요. 근데 구멍을 뚫는데 아까 말씀드린것처럼 옛날에는 홍산문화시절에는 철기나 청동기가 없었기 때문에 다 모래를 모래가 여러분들 경도가 굉장히 쌤니다. 경도가 약한거는 모래가 형성되기 이전에 이미 먼지가 되어서 날아가버리고 모래에 남아있는 석영이나 이런게 강도가 한 6∼7되요. 굉장히 단단한거만 남아요.

그걸 뿌려가면서 구멍을 뚫는거예요. 근데 가짜하고 가짜는 드릴로 뚫거든요. 그 30시간 해가지고 몇 푼 벌이자고 못하잖아. 드릴로 뚫어버린다고. 허면 가장 초보적인 단계에서 홍상 가짜 옥 구별하는것도 안과 밖이 똑같애. 이건 겉을 어떻게 치장했던 간에 무조건 가짜에요. 그렇게 만들수가 없어요. 그때는. 그래서 홍산 옥에 구멍을 뚫으면 나팔처럼 이렇게 생긴다고. 들어가는 입구 크고 양쪽 끝이 크고 가운데는 좁다고. 요렇게 돼 있단 말이야. 무슨소린지 알죠? 이렇게 뚫으면 여기가 구멍이 커요. 그리고 나오는 이쪽도 크고 가운데는 좁아. 양쪽에서 이렇게 뚫으니까. 그러니까 어떤 정말 싸구려 옥은 드릴로 확 뚫어놨어요. 그면 그건 누가 뭐라 그래도 그런거는 20원 이상 주면 가짜예요. 10원 줘도 살수 있어요 이런 방제들은.

새 잖아요. 그죠? 대가리부분이 새로 된거 이건 뭐 갠지 뭔지 하여간 다양하게 나옵니다. 그래서 내가 이걸 보면서 이런 동물 토템들이 있었기 때매, 부여나 고구려때만해도 마가 우가 저가 해가지고 왕 밑에 대가들을 그런걸로 삼지 않았나. 그때도 호랑이족 웅족 그런 말들이 이런것 때매 있었을거란 거예요. 지금도 에벤키족들은 여러분들 에벤키 아십니까? 에벤키족들은 아까 말씀드린 할라얼 만주리 지역에 사는 소수민족인데 중국에는 지금 2만6천명 밖에 없고, 러시아령 시베리아 남단에 한 22∼23만명이 띠처럼 쭉 동서로 길게 살아요.

그 사람들은 자기네들이 곰의 자손이라 그래요. 중국 에벤키족들은 에벤키 자기의 시원이 어디냐면 옥저예요. 옥저. 자기네들 옥저에서 왔다 그래요. 박물관에 가면 그림이 그려 있어.

가설이 두가진데 에벤키학자들이 자기 조건에 대한 가설이 두가지로 그림을 그려놨는데 하나는 기원이 옥저라는거에 대해서는 다 일치가 돼요. 근데 옥저에서 하나의 가설은 바이칼에 들렀다가 내려왔다는 설하고 바이칼까지 안가가고 그냥 바로 서진해가지고 지금 대응알령 북단자락에 정착했다 두가지 설이 있어요. 하여간 어떤 설이건 기원은 옥저예요.

걔네들이 자기네들 시조가 곰이라 그래요. 걔네들 설화나 이런거 보면 걔네들은 수렴 민족이니까 걔네들 1945년 이전까지고 수렴족이예요. 근데 곰은 먹을게 많잖아요. 등치도 크고. 곰을 잡아 먹는데 총을 쏘고 나면 죽은 곰 앞에 가서 엉엉 울어요. 내가 쏜가 아니다. 지가 쏴 놓고. 내가 쏜게 아니다 용서해달라고 엉엉 울고 나서 또 가져다 잘 먹어. 잘 먹고 그 다음에 뼈를 버리고 않고 뼈를 신성한 나무에다가 아랑가라든지 이런 샤며니즘에서 신성한 숲이 있거든요. 거기다가 선반 설치해다가지고 쫙 모시고 제사를 지내요. 자기네 조상이라는 거예요. 그런 곰 토템족들이 아직 많이 남아 있어요. 그 대표적인게 에벤키족들이예요. 그런것들이 다 링크가 되야돼요. 그게 안되면 우리 말로만 민족문화 어쩌고 저쩌고 그 안돼죠.


우리의 과제 및 방향성

우리는 그걸 내면으로 다 준비해놓고 얘네들이 지금 홍산문화에 대해서는 국가적으로 자본을 투자해서 연구 하거든. 우리로 대형전략을 만들어서 쫙 해가지고 밀고 들어오면 탁 뒤집는거예요. 뒤집는거.

근데 저는 지금 홍산문화가 중화문화꺼다 한국문화꺼다 이렇게 싸우면은 승산이 없어요. 게서 우리는 맨날 21세기는 동북아 문명공동체 얘기하는데, 지금 문명공동체 되기가 가장 힘든곳이 이 한중일 삼국이야. 이 과거의 기억 때문에 서로가 으르렁 거려. 어떤거는 두 나라가 합쳐서 한 나라를 비판하고 서로가 셋이 뜯어 먹고 있는데 이런 상태에서 어떤 무슨 동북아 시대가 열립니까?

그걸 열수 있는 초안이 어디있느냐? 초석이 어디있느냐? 요 이 홍산문화를 요하문명을 동북아의 시원문화로 삼는거예요. 실제로 그렇고. 그건 우리만의 것도 아니고 아까도 얘기한거처럼 거기서 내려가면서 상문명을 만든다 말이예요. 그것을 동북아의 시원문명권으로 삼으면 거기에서부터 동북아 공동체를 향한 초점이 만들어 질 수 있어요.

그래서 저는 그 얘기를 합니다. 야! 이게 우리꺼다. 물론 중국에서 정 응하지 않고 이건 중화문명꺼다 억지로 그렇게 가면 우리도 그건 우리꺼다 싸워야 되지만 그면 문명전쟁이 된다는 거지. 그러니까 그렇게 갈꺼 없이 정말 정상들이 만나건 외교장관들이 만나건 제 국회발표할 때 그 얘기 했습니다. 물밑작업을 해서라도 그걸 한중일의 공동문명으로 만들자. 몽골도 마찬가지. 몽골 다 해서 그렇게 가꿔야만 미래에 발전적으로 상생의 문화가 가능하지 우린 또 어떤 사람들 얘기하면 제야사학이건 야! 그게 바로 배달국이야! 이렇게 가 바로. 난 그 논리를 받아드리지 않아요.

 

배달국이란 단어는 어느 역사에도 없으니까. 한단고기 빼고는. 그렇게 가서는 진정한 동아시아 전체의 화합을 위한 논리가 안된다 이말이야. 공동문명으로 놔두자 이거야. 그걸 우리는 또 나름데로 공동문명을 바탕으로 우리 문화의 기원을 설명해 낼 수 있고 삼수 분화의 기원이 거기에 있어요. 그게 선도 문화의 시발점이예요. 그 논리가 중원으로 들어가면서 신선사상과 도가 사상으로 연결됩니다. 그 수리구조가 전부다. 한반도쪽으로 들어오면 선도와 풍류도로 연결돼요. 그건 시원문화라는 거예요. 그 시원문화인데 그걸 우리꺼다 니네꺼다 이렇게 싸우면 안된다. 그때는 중국도 없었고 한국도 없었고 거기서 일부는 내려가고 일부는 동진하고 일부는 서쪽으로 가면 다 거기서 퍼지는거다 이말이예요.

근데 중요한거는 그 지역에서 우리가 상상한거보다 훨씬 앞서있고 훨씬 발전되어 있는 문명이 존재한다는 사실이예요. 그건 80년대 후반부터 밝혀지기 시작한거예요. 그거를 어떻게 끌고 갈건가? 나는 그거를 문명전쟁으로 가기를 원하지 않는다 말이예요. 가능하면 그 지역을 동아시아 전체 서양에서 크레타섬 발굴될때만해도 그런 비슷한 사례가 있어요.

 

크레타섬, 크노소스 뭐 이런가 발굴하면서 터키 그리스 로마 이테리 서로 싸웠어요. 유럽문명의 기원지는 우리나라에서 시작됐다 이런식이거든. 그때 지들 나라가 어디 있었어요? 기원전 3천년 4천년전에. 발굴되면서 한 10년정도 옥신각신 하다가 지금은 그렇게 얘기하는 사람 하나도 없어요. 유럽문명의 시원으로 보는거지. 우리도 나는 그렇게 가는 길로 학자들도 그렇게 난 요번에 일본학자들 경상대에서 발표를 하고 일본학자들 만나서 야 우리 동북 삼국의 학자들이 역사학자들 뭐 하는 사람들이 서명운동이라도 한번 하자. 공동문명으로 만드는걸. 그런 얘기를 했더니 좋아는 하는데 우리 개인 수준에서 움직일 수 있는것도 아니고 제 희망 같애서는 그게 우리문명의 시원과 바로 연결되는 그건 확실해요.

 

중국학자들도 그게 두려워서 억지로 막 중원으로 끌고 갈려는거고. 또 중원이라그래서 연고권이 없는게 아니예요. 거기서 상 문명이 형성되니까. 상은 우리 동의족이라는 얘기를 지금은 중국학자들이 다 합니다. 옛날에는 부산현 혼자 외롭게 떠들던 얘기를 지금 다 해요. 그걸 공통문명으로 가꿀 때 21세기의 상생의 문화라는건 정말로 가능한 초석이 만들어 진다. 그런 생각입니다. 발표는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질의 응답 시간


김철수 박사님

예, 지금 한 거의 3시간 가량 소비를 하셨습니다. 좋은 말씀 고맙고요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서 쉬지 않고 이제 막바로 여러 질의라든가 있으면은 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뭐 다 아시겠지만은 지금 선생님은 상당히 그 우리 한국사에서 바쁘신 분 중 한분입니다. 뭐 국회에서 그 다음 제주도에서 서울 강원도까지 전국을 지금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지난주만하더라도 지금 아마 댁에 못들어가셨습니다. 지금 진주 경상대 국제학술해서 경주로 오늘도 돌아가시지 못하고 있고 다음에 내일 올라가서도 곧 바로 강연 계속 준비되어 있습니다. 그만큼 이제 바쁘신 분입니다. 오늘 그 어려운 자리를 우리가 모셨기 때문에 하고 싶은 이야기들 또 아니면은 꼭 질의라기보다도 더 듣고 싶은 부분, 뭐 이런 부분이 있으시면은 지금부터 말씀을 해주시면


우실하 교수 : 아 질문이 많아질수록 술먹는 시간이 짧아집니다.


김철수 박사님 : 아무래도 이제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그런 불안이 있을겁니다만은 술먹는 시간은 충분히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김선주

안녕하십니까 인문사회부 김선주라고 합니다. 선생님 말씀 잘 들었는데요 제가 제 관심분야기 때문에 하나 어쭤보는데 선생님이 홍산문화가 동북아 시원문화라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고 있고 국가단계에 이미 진입했다고 했는데 물론 여러 가지 유적지에서 나온 발굴 자료들을 통해서는 국가단계에 진입할만한 여러자료들이 있지만 중국에서 일반적으로 하나라 건립할 때 이리두 문화와 하나라의 연관관계에 있어서 국가 성립관계를 볼 수 있듯이 홍산문화 이후에 5천년전인데 그 이후에 국가가 성립된 그 이후의 국가들과의 연관 관계를 볼 수 있는 그런 것이 설명이 되어야지만 이 홍산문화 단계의 국가 단계가 성립했다는 것이 어떤 설득력을 입지 않을까 해서 그런면에 대해서는 어떤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는지


우실하 교수 : 후속문화로?

김선주 : 예 예


우실하 교수

홍산문화 후속으로 이어지는게 홍산문화 바로 그 윗층에 있는게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하가점 하층 문화입니다. 하가점 하층 문화는 이미 청동시 시대로 진입을 합니다. 그거는 뭐 청동기 시대에 하가점 하층 문화시절의 석성들이 2천5백개 이상이 발굴돼 있어요. 그건 뭐 석일수 선생님이 사진자료 다 가지고 있습니다.

하가점 하층단계에서 국가단계에 진입한거에 대해서는 뭐 청동기도 나오니까 그거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어요. 보통 거기서부터 봤단 말이예요. 근데 지금 아까 내가 자료 보여준것처럼 홍산시절에 이미 거대한 신전과 천제단과 적석총 그런 자료들을 통해서 초기 국가단계에 진입한거는 중국학자들이 우기는게 아니라 세계 고고하계에서 이미 대부분 공인된거예요. 최근에 다. 홍산문화가 적극적으로 계발되고 발굴되기 시작한게 80년도 처음 발견된게 우하량은 83년입니다. 83년 이후니까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하는게 결과물들이 나오는게 90년대란 얘기예요.

지금 별로 시간이 별로 안됐어요. 그 사이에 98년부터 국제학술대회를 한거구요. 그거는 지금은 하나라부터 국가단계 얘기한거 기존의 관점이죠. 그 기존의 관점이 막 바뀌고 있다는 거예요. 그리고 그거는 시작단계이긴 하지만 세계 고고학자들이 불러서 거의 공인단계에 와 있는 거예요. 거기에 대해서는 뭐 제가 보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어요. 그걸 뒷받침할만한 고고학적 자료도 얼마든지 그리고 또 하나는 여기서 내가 길어질까봐 소개안했는데 홍산문화 적석총 있죠.

 

적석총 꼭데기에서 청동은 아니고 동을 주조한 뭐라그러죠 돌을 깎아서 청동기 만들 때 틀 만드는거. 거푸집같은게 나와요. 그래서 저것도 나오고. 그게 자료 필요하시면 줄텐데. 고고 발굴한 주달이라는 그 고고 공작장 대장이 주달이라는 사람인데 그 양반이 신문과 인터뷰를 하면서 홍산문화 발굴 비사 그래가지고 인터뷰를 하면서 그 얘기를 해 놨어요. 나도 깜짝 놀랬죠.

 

홍산단계에 이미 청동단계는 아니어도 동을 재련하는 그렇게 해서 거푸집 이런것들도 발굴된다고 직접 인터뷰한 자료도 있어요. 이미 그 단계에 청동시대에는 안들어가고 하가점 하층에서 하가점 하층을 보통 기원전 2,500년까지 봅니다. 2,500년에서 그 밑으로 보는데 그 단계에서 청동기가 나오기 전에 순동시대라 그래서 서양에서 순동시대란 개념을 쓰는데 동을 재련하고 하는게 그런 것들이 나온다는 거예요.

그래서 나는 국가단계에 진입한거에 대해서는 거의 이견이 없어요. 정식으로 얘네들 홍보할때도 이미 아까도 내가 사진자료 다 찍고 해서 국가단계라는 것을 원형 초기 국가단계의 원형, 얘네들 한자로 추형이라 그러는데 추형국가 단계에 진입 했다고 판단을 해요. 우리식으로 풀면 초기 국가단계라는. 근데 최대 약점은 문자가 없어요. 문자가 없어요. 예. 또 예



김현일

예 김현일이라고 합니다. 선생님 발표를 잘 들었구요 우리 문화의 시원에 대해서 이렇게 깊은 연구를 하시는 분이 있다는거에 대해서 대단히 기쁘게 생각을 합니다. 저는 뭐 선생님 말씀 여러 가지 주장들에 대해서 제가 깊은 이해를 갖고 있는거는 아니기 때문에 대부분다 설득력이 있다라고 느껴졌습니다.

한가지 사소한 질문을 하나 드리겠는데요 아까 그 비너스 사상, 유방과 복부가 강조가 된 그런 옥기로 됐나요? 그런 상이 모계사회의 징표인것처럼 말씀을 하셨는데 제가 볼때는 그거는 뭐 이제 메소포타미아라든지 그리스라든지 하여간 유렵 대륙에서도 많이 발견이 되는 역사학자들이 흔히 비너스 상이라고 하는 그런 상인데 그거는 오히려 다산을 상징하는 여성의 출산력을 나타내는 그런 상징으로 봐야지 그걸 자체를 모계사회의 징표로 보는거는 조금 논리적인 비약이 있는게 아닌가 하는 그런 생각이 듭니다.


우실하 교수

답변을 드리죠. 그 비너스상이라고 얘기하는 우리가 고고학에서 다 비너스상이라고 통칭을 하는데 그게 다산을 기원을 하고 하는거는 다 인정을 해요. 그리고 그 비너스상이 나오는 시점이 시점이 모계사회 시점이예요. 무슨소린지 아세요? 예를 들면 철기 시대에 그런 버너스상이 나오냐? 안나온다구요. 그리고 아까 내가 석기시대와 청동기 시대의 변화를 애기했는데 아까 얘기한 지배층이 분화가 되고 직업이 분화되고 제단이 나오고 큰 무덤군이 나오고 그 다음에 또 하나는 신격이 변화는 거예요.

 

신격이 여성신에서 남성신 위주로 바뀝니다. 그래서 여성학하는 사람들이 항상 청동기에 주목하는게 신격이 여성신에서 남성신으로 바뀌면서 가부장적 권위주의의 출발점으로 대부분 봐요. 여성학 하는 분들이. 그래서 그 신격이 바뀝니다. 청동기로 넘어가면. 주신이 전부 남신으로 바뀝니다. 주신이. 그러니까 여기서 아까 보여드린것처럼 여신묘의 주신이 여성입니다. 그리고 아까 부족을 상징하는 요만한 목걸이 말고 20㎝ 30㎝되는 그 신상으로 보거든요. 사람들이. 신상군들은 거의다가 여성 모습이예요. 되셨어요? 그런거를 기준으로 해서 학자들이 모계사회라고 판단을 하는 겁니다.


윤창렬

우리 그 역사로 볼때는 뭐 우리 고대의 다 영토의 어떤의미에서는 우리민족의 제후국내지 반계민족 정도로 우리가 보고 들어가면은 그 문제에 대한 것은 일면동의하면서도 여기서 우리가 문명전쟁을 벌이고 그런 것 보다는 우리가 더 많은 역량을 구축하고 더 많은 연구를 해서 그 문명의 뿌리가 우리 민족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분명히 밝혀야 됩니다. 왜냐?


우실하 교수

아! 그것은 분명합니다.


윤창렬

이것은 정의에 대한 문제지 진리와 정의에 대한 문제를 우리가 양보할 순 없는 거죠. 그래서 고런 것은 여기서 논쟁을 할 사상은 아니기 때문에


우실하 교수

아니 두분 말씀하신거에 저는 전적으로 동의를 합니다. 그리고 저도 그거 연구하고 있구요. 지금. 근데 그거를 지금 대응 전략으로 우리꺼다 이렇게 가서는 안된다는 거예요. 지금 차원에서. 실제가 거기서 다 내려갑니다. 아까 양전하 대문구에서 나오는 옥기들이 전부 거기서 내려가는 거예요. 옥기문화가. 응여래의(?) 상징 그 독수리 상징 이런거 옥기들 다 거기서 내려가는 거예요.

그면 중원문화가 하나도 없어져요. 우리는 그것을 연구를 통해서 그걸 계속 보여주면 되는겁니다. 자연스럽게. 근데 지금 우리꺼다 이렇게 갈때는 지금 중국땅에 있고 자기 중국역사와 링크도 되어 있고 한 상황에서는 우리는 그렇게 나가면 백전백패단 이말이예요. 세계학자들을 설득해낼 수 없어요. 세계 학자들 어떻게 설득해 낼꺼냐? 이건 국내용의 문제가 아니라는 거예요.

저는 선생님 두분 지적하는 거에는 나는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동안에 제가 3수분화 논리하는게 그 시원이 다 거기에 있고 그게 어떻게 연결되고 다 연구하고 있어요. 진짜 우리꺼죠. 선생님 말씀하신데로 상이 내려가면서 살짝 반계로 했다고 그렇게 살명할 수 있습니다. 그면 살짝 했다고 그럴 때 중국아이들은 뭐라고 얘기하느냐 말거예요. 중국 사람들도 우리가 설득할 수 있어야 되고 세계학자들도 설득할 수 있어야 된다. 우리끼리 기분이 좋아서 을싸을싸 해 봐야 나는 그거 의미가 없다고 봐요. 그건 학문적인 태도가 아니다.


윤창렬

저도 공감을 합니다. 지금 중국에서는 100이라는 것이 연구가 되어 있는데 우리는 지금 연구된게 하나둘도 없거든요. 그러니까 이거 뭐 싸움을 해 봐야 정의라는게 지금은 수 적인 것이 우세하기 때문에 정말로 오늘 저도 굉장히 충격적인 강의를 들었다고 생각을 하구요, 우리가 더 많이 연구하고 역량을 키워가지고 잃어버렸던 우리의 문화와 역사를 찾는 계기가 돼야 되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우실하 교수

예 지적을 잘 새겨 듣겠습니다. 제가 좀더 인기 강사가 될라면은 아! 이게 배달국이다! 이렇게 갔으면 막 뜰거 같은데 그렇게 가서는 안됩니다.


윤창렬

저는 실제로 우하량은 우리 치우천황께서 청구로 수도를 옮겼는데 청구는 지금 산둥성과 능원지역을 보고 있는데 저는 굉장히 거기가 치우천황이 옮긴 청구의 수도라고 생각을 하고 있고, 이유립 선생은 청구는 대능하에 있었다 대능하 상류에 있었다고 했거든요. 거의 심증적으로는 야! 저기 치우천황이 도읍을 했던 바로 청구다 하는 생각이 들지만 그건 저도 좀더 연구를 해야 되겠죠.


출처 : 슈뢰딩거의 고양이
글쓴이 : 레이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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