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N-History/01 동이문명관련·동북공정

[스크랩] 역사와 관련해 몇 마디 논평해본다....

monocrop 2008. 2. 9. 15:53

집요한 `역사공정` [중앙일보]

 

이젠 한반도 문화 뿌리까지

 

중국이 한반도와 만주 문화의 뿌리로 알려진 랴오허(遼河) 일대의 북방 신석기 문화를 자국 문명권에 편입하려는 노력을 가속하고 있다. 선사(先史)시대 중국문명의 판도를 기존 학계가 주장해온 황허(黃河)와 창장(長江) 유역에서 여타 지역으로 확대하려는 이른바 '중화문명 탐원공정(探源工程)'에 따른 것이다.

17일 중국 언론에 따르면 국가문물국은 랴오닝(遼寧)성 뉴허량(牛河梁) 신석기 유적 등 35개를 세계유산위원회에 등재 신청할 중국의 세계문화유산 예비 목록에 포함했다.

국가문물국은 적어도 10년에 한 번씩 세계문화유산 등재 신청 예비 목록을 수정해 제출하도록 한 '세계문화.자연유산 보호협약'에 따라 1996년에 이어 이번에 목록을 수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동안 학계에서는 뉴허량 유적을 랴오허 유역에 분포한 북방 신석기 문화의 대표적 유적의 하나로 분류해 왔다. 랴오허 일대 문화는 한반도와 만주 문화의 원류를 형성한 것으로 평가돼 왔다.

이번 조치에 대해 전문가들은 "고조선.부여.고구려.발해 등을 중국사에 편입하기 위해 이들 문화의 원류인 랴오허 일대의 북방 문화를 중국 문명권에 편입할 의도"로 파악하고 있다.

중국 사학계는 황허와 창장 유역을 중국문명권으로 분류하고 랴오허 일대는 중국문명과 뿌리가 다른 북방문명으로 파악해 왔다. 그러나 중국 정부가 올해 선양(瀋陽) 박물관에서 '랴오허 문명전'을 여는 등 일련의 역사 왜곡을 진행하면서 북방문명을 중화문명권에 편입하려 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한편 새로 작성한 예비 목록에는 뉴허량 유적 외에도 ▶대운하(大運河)▶실크로드▶장경동(藏經洞) 등이 포함됐다. 그러나 헤이룽장(黑龍江)성 닝안(寧安)시 보하이(渤海)진에 있는 옛 발해의 수도 상경용천부(上京龍泉府) 유적은 복원작업이 진행 중이라는 이유로 목록에서 빠져 당분간 신청이 어려울 전망이다. 예비 목록에 오른 유산 중에서 2008년 32차 세계유산위원회 총회에 등재 신청할 유산이 최종 선정된다.

장세정 기자

◆ 뉴허량 유적=랴오닝성 링위안(凌源)시 젠핑(建平)현 근교에서 1981년에 발굴된 신석기 유적. 북방 신석기 문명(기원전 7000년)의 하나인 훙산(紅山)문화에 속하는 유적으로 황허 유역의 중원 신석기 문명보다 일찍 발생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랴오허강 일대에 기원전 3500년 무렵에 형성됐다. 섬세한 옥기(玉器)와 돌무지무덤(적석총) 등이 발견됐다. 특히 흙으로 빚은 여신의 두상(頭像)은 전형적인 몽골 계통의 피부색을 하고 있어 중원문명과 확연히 구별된다.

◆ 탐원공정=상고사를 고쳐 써서 선사시대 중국문명의 판도를 확대할 목적으로 중국 당국이 벌이고 있는 사업이다. 랴오허 일대에서 황허문명(기원전 3000년)보다 더 일찍 발생한 신석기 유적이 발굴되자 중국 당국이 이를 자국 역사에 편입하기 위해 2003년부터 해온 사업이다. 랴오허 일대를 편입하면 중국문명이 기원전 1만 년까지 올라간다. 현재의 정치 사정에 맞춰 역사 왜곡을 시도하려 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2006.12.18 04:26 입력 / 2006.12.18 07:00 수정

 

 

 

중국 내몽골자치구 적봉시 동북쪽에 紅山(홍산)이라는 산이 있다. 몽골사람들이 ‘우란하따(烏蘭哈達)’라고 부르는 이 붉은 바위산 인근에서 학계를 놀라게 한 거대한 제단(壇)과 신전(廟)`적석총(塚) 등 거대한 후기 신석기 문화가 발견됐다. 100여년 전의 일이다. 중국 요녕성과 내몽골, 하북성 경계의 燕山(연산) 남북, 만리장성 일대에 널리 분포된, 국가 체제를 완벽하게 갖춘 이 유적을 ‘홍산문화’라고 부른다.

◇홍산문화를 세상에 처음 알린 사람은 일본 고고학자 도리이 류조(鳥居龍藏)였다. 1906년 적봉 일대 지표조사를 하던 중 많은 신석기 유적과 적석묘 등을 발견했는데 동북지방과 만주, 한반도 일대에서만 발견되는 무덤 형태다. 1955년 이를 ‘홍산문화’로 이름 붙였는데 이후 1982년 요녕성 뉴허량(牛河梁)에서도 같은 유적이 대거 발굴되자 세계 각국 언론들은 ‘5천 년 전 신비의 왕국’이라며 대서특필했다. 이 일대는 현재 발굴작업이 계속되고 있으나 중국의 방해로 연구가 제대로 진행되지 못 하고 있다.

◇황하문명보다 앞선 서기전 4천500년~2500년경으로 추정되는 홍산문화는 통상 청동기 시대에나 출현 가능한 분업화가 이뤄진 국가형태를 띠고 있다. 특히 가면과 玉(옥) 장식 등에 곰 형상이 투영된 유물이 대거 발견돼 국내 학자들은 곰 토템을 지닌 웅족과 청동기 시대의 고조선 초기(고조선 중기 이후는 철기시대) 이전 한민족 원류 중 하나인 신석기 시대의 배달국 초기(한웅배달국 후기는 청동기시대)가 자리했던 곳이라고 주장한다. 즉 홍산문화는 단군조선 건국의 토대일 가능성이 높은 유적이라는 말이다.

◇2006년에 중국이 뉴허량 유적 등 35개를 중국의 세계문화유산 예비목록에 포함시켰다고 한다. 遼河(요하) 일대의 북방 신석기 문화를 중국 문명권에 편입하려는 중국의 探源工程(탐원공정)이 더욱 가속화되고 있는 것이다. 이에 국내 학자들은 “고조선과 부여`고구려`발해 등을 중국사에 편입하기 위해 요하 일대의 홍산문화를 중국문명권에 편입할 의도”라고 비난하고 있다.

◇30년 전 중화문명의 시발점을 앙소문화에서 하모도문화로 바꿔 재설정한 중국은 뉴허량 유적 발견 이후 홍산문화를 ‘요하문명’이라 부르며 중화 3대 문명의 시발점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漢族(한족)의 것과 엄연히 다른 동이족 문화인데도 과거 일제가 한 것처럼 한민족의 뿌리마저 잘라버리려는 역사왜곡 행위를 서슴지 않고 있다.

 

 

 

개천절은 한웅천황이 신시배달국을 건국한날 BC3897 - BC2333...
금년 2007년은 신시개천 (神市開天) 5905년입니다.
개천절이 시작된 것은 국조단군을 모시는 대종교에서 1900년 1월 15일 교문(敎門)을 다시 열면서 단군조선을 건국하였음을 기리는 날로 정하여 경하식을 거행하는데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개천절은 단군조선 개국일이 아닌 한웅천황의 배달국 개국일입니다.
단군왕검께서 조선을 개국하시기 이전부터 배달 한겨레(동이계, 흉노계, 융족계)의 역사는 존재했었는데, 한국(3301년), 배달국(1565년), 단군조선(2096년)으로 이어져 내려온 시대를 우리는 삼성조 시대라 이야기합니다.


주나라도 사실 배달갈래왕조입니다.
특히 주나라가 주목해야 할 것이 이 때부터 민족구성이 약간 기형적인 왕조가 되는 것이죠.
상(은)나라를 무너뜨리면서 은나라에 여전히 충성을 바치던 가문들을 배제하는 과정 중에 중간관리 다수를 화하족을 끌어들여
상위지배층과 하위백성들은 배달 동이족이 대부분인데, 중위지배층이 화하족인 이상한 구조가 되죠.

이때부터 서서히 왜곡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공자의 가문 역시 은나라에 충성하던 가문 중 하나인데 그때문에
주나라를 거쳐 춘추전국시대까지 배척을 많이 받았던 하나의 원인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공자의 아버지는 동이족이고 어머니는 화하족인데,
아버지가 공자가 아주 어릴때 돌아가셔서 어머니의 영향을 많이 받은 면도 커죠.

기형적인 왕조였던 주나라에 반기를 들고 일어난 것이 춘추전국이죠.
춘추전국의 대부분 나라 모두 역시 배달갈래민족이죠.

배달겨레 중 환족과 웅족 그리고 범족이 배달의 정통성을 두고 일시 다툽니다.

그래서 환족과 웅족은 몽골,만주,연해주,한반도로 퍼지고 범족은 중원대륙으로 퍼지죠.
환족과 웅족의 후손들은 북쪽에서는 흉노로 동쪽에서는 북부여를 세웁니다.
흉노족이 나중에 유럽의 헝가리를 이룩한 훈족, 수나라와 당나라를 세운 선비족, 터키와 위구르의 돌궐족, 북중원을 차지한 거란족,

유라시아를 통치한 몽골족 등 여러 민족으로 다시 나누어집니다.
몽골의 원나라 후예를 자처한 티무르제국은 티벳의 강족같은 배달계 융족과 배달계 흉노의 일파인 몽골,돌궐 등이 합쳐진 나라죠.
그래서 중앙아시아 역시 여러 배달겨레의 혼혈입니다.
그 과정 중에 일부 백인과도 피가 섞이게 되죠.

동쪽은 예족,맥족,숙신,말갈족 등으로 지역에 따라 달리 불리며 성장하게
되죠. 배달계 말갈족이 여진족으로 불리고 다시 만주족으로 불립니다.
짱골라들이 마치 다른 민족인 것럼 조작하기 위해 시대에 따라 달리 부른 것입니다.

북부여의 뒤를 이어 동부여,고구려,백제,대진국(발해) 등이 세워지고
고구려,발해의 후예를 자처했고 그들의 역사서에도 분명하게 남긴 여진족의 금나라,청(후금)나라 등이 일어나죠.
신라는 일부 흉노족이 섞인 배달갈래왕조입니다.
근세고려는 이들 겨레구성 모두를 다시 융합하여 이어가게 되죠.

중원대륙으로 들어간 배달 범족은 하나라,상(은),주,춘추전국으로 왕조들을 이어갑니다.

헝가리나 터키 등이 우리와 모습이 많이 다른 이유는 지역적인 이유로
황인종의 피에 백인종의 피가 꾸준히 유입된 결과입니다.
몇대를 거쳐 어느 인종의 피가 다수를 점하면 그에 따라 그 농도가 진해지죠.

브라질을 비롯 남미의 등 여러 나라에서는 서양의 침략과정 중에 워낙
많은 피가 섞여 같은 친부모 아래에서도 황인종,백인종,흑인종 다양하게 태어납니다.
친자식이 어느 인종으로 태어날지 예측할 수가 없죠.
그래서 친형제인데도 불구하고 형은 흑인 동생은 백인,황인 이런식으로 이루어진 가정이 많죠.
KBS나 MBC 혹은 BBC 등 국내외 뉴스나 다큐멘터리를 통해서 이를 확인할 수 있죠.

직접적으로 짱골라의 시작은 유방의 한나라때부터입니다.
이 때부터 사마천의 사기를 집필하는 등 여러 역사조작 왜곡을 시작합니다.
진시황의 분서갱유로 많은 서적들과 자료들이 불타버린 관계로 조작하기가 한층 쉬웠죠.

옛날(B.C 200) 쥐나의 사마천은 당시까지 정립되지 않았던 쥐나의 역사를 2600년을 거슬러 올라가 짱골라의 역사를 편찬했습니다.
그것이 쥐나의 사기입니다. 소위 말하는 춘추필법으로 말이죠.
즉 자기들은 한껏 올리고 주위의 국가나 민족은 한껏 깎아 내리는 못된 필법으로 말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당시에는 그들 스스로도 그것을 역사서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약간 양심은 있었던지....)
그것이 약 300년 후에야 정식 쥐나의 사서로 채택된 것입니다.
그것도 후대의 왕들이 자기들을 높이기 위해서는 안성맞춤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한번 생각해봅시다.
2600여년이란 결코 짧은 세월이 아닙니다.
당시까지 정립되지 않았던 그들의 역사라고 하는 것은 정식역사라고 할만한 사료가 그때까지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사마천은 2600년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단숨에 정립(?)했던 것이죠. 사마천이 편찬한 사기史記25권......
진시황의 분서갱유 등의 여러 이유로 인해 당시까지 제대로 된 사료가 없는 상태에서 사마천이 그 많은 사서를 편찬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죠.
따라서 사마천이 서술한 역사들은 거의 꾸며낸 짱골라 위주의 재미있는 책에 불과합니다.
그러니까 그들 자신도 어처구니가 없었던지 그것을 정식역사로 인정을 하지 않았던 것이죠.

짱골라는 역사를 삭제,왜곡하는 등의 방식뿐만 아니라 그들은 사이四夷라 하여 북적,동이,서융,남만으로 나누어

배달 한겨레를 흉노,동호,몽골,선비,묘족,말갈(여진)족,돌궐,거란,강족,오환,저족 등으로 계속 분리되도록 유도해왔습니다.
이夷란 뜻마저 오랑캐로 변질시키기까지 했죠.
반면에 짱골라는 서로 다른 민족과 결합되도 양친 중 한명만이라도 짱골라면 그 혼혈인은 짱골라다라는 정책을 편 것이죠.
누구는 결합되면 민족이 사라지고 누군 마찬가지로 결합되도 민족이 불어나는 말도 안 되는 억지를 계속 한 것이죠.

북부여,동부여,졸본부여(고구려) 등은 한웅배달국과 단군조선국의 후예들로

농경과 유목기마를 함께 하는 대표적인 반농반목민족국가이고
몽골,돌궐 등은 전형적인 유목기마민족국가죠.

배달 한겨레는 여러 지역에 따라 여러 모습으로 퍼져 살았기 때문에
어느 하나를 보고 그것이 모두를 대표한다는 것은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일 뿐만 아니라 어불성설입니다.
배달 한겨레는 농경민족이면서도 유목기마민족이며, 그의 후예 백제나 왜열도 등 해상민족이기도 한 것입니다.

유방 한나라 이전에는 짱골라가 존재하지 않았죠.
아니 없어졌다고 보면 됩니다.
화하족은 낙양 중심으로 살아가던 소수민족이었죠.
시간이 흘러 화하족은 배달민족들에게 흡수되어 사라졌습니다.
그런데 유방의 한나라 때부터 자신의 치부를 가릴려고 조작하게 되면서 짱골라 개념을 갖고 나오게 된 것이죠.
한나라가 영토확장하려다 북쪽 배달계 흉노와 동쪽 배달계 북부여에게

대패해서 그들에게 조공을 바쳐가며 살아가는 속국으로 전락하죠.
이런 상황 등이 그들에게 조작,날조하도록 더욱 부채질하게 되죠.
진시황의 분서갱유로 조작하기는 더욱 쉬운 것은 말할 필요없죠.
짱골라들이 타국을 침략할 때 가장 먼저 한 일이 그 나라의 사고에 있는 역사서나 수많은 저서들을 약탈하거나 불태운 것이었죠.
지들이 저질러놓고 그것을 믿으라 하는 심보가 정말 가관입니다.
지들이 없애놓고 니네는 원래 그런 것 없었다 하면 말이 됩니까?

민족에 의해 그 역사가 탄생하는 것이지, 영토에 의해 역사가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민족의 흥망성쇠에 따라 영토의 변화가 있을 뿐이죠.
짱골라들이 내세우는 역사관의 맹점은 시간의 연계성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더더욱 공간(영토)를 확보하여 날조,삭제하려고 ㄱㅐㅈㅣ랄을 떠는 것이죠.

복희, 신농, 공손헌원, 요임금, 순임금 등 삼황오제 모두 배달 한겨레입니다. 진시황의 진나라마저도 배달 흉노계 국가죠.
실제 짱골라의 왕조는 한,송,명 3왕조뿐이며 이들이 설쳤던 세월은 고작 수백년 밖에 안 됩니다.
한나라는 북쪽 배달계 흉노와 동쪽 배달계 북부여의 속국으로서 조공을 바치며 연명했고,
송나라는 배달 흉노계 거란족의 요나라와 고구려,발해 후예인 배달 부여계 여진족의 금나라에 조공을 바치며 힘겹게 속국으로 살아가다  배달 흉노계 몽골족의 원나라에 병합되어 사라집니다.
명나라 역시 고구려,발해의 후예 여진족의 청나라(후금)에게 망합니다.

(+고구려,발해의 백성이었던 배달계 말갈족이 이후에 여진족으로 불리고 다시 만주족으로 불리는 것입니다.
다른 민족이 아니라 같은 민족입니다.
이것 역시도 짱골라들이 고구려,발해 후예인 그들 배달계 말갈족이 다른 민족인 것처럼

조작하기 위해 시대에 따라 달리 부른 것입니다)


처음 시작은 단일민족으로 시작했을지 모르나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 겨레가 여러 계통으로 나누어졌죠.
그래서 지금으로서가 아닌 오래전부터 우린 다민족국가라 할 수 있습니다. 부모님과 형제들이 처음에는 하나였지만

시간이 흘러 먼 친척이 되고 그 후에는 남남이 되어 다시 서로 만나 부둥켜 살아가는 세상처럼 말입니다.
수많은 배달 한겨레들이 오랜 세월을 거쳐 오면서 여러 분파로 나뉘어졌습니다.

그래서 그 기원은 배달 한겨레에서 시작되지만 그 세부의 역사에 있어서는 그 분파된 민족의 고유한 역사인 것입니다.
역사는 그 민족의 것이지, 시대적인 영토변화에 따라 역사가 바뀌는 것이 아닙니다.

민족의 흥망성쇠에 따라 영토의 변화가 있을 뿐이죠.
원나라의 역사는 몽골 그 자신들의 것이고, 훈제국의 역사는 헝가리의 것, 오스만투르크(돌궐족)의 역사는 터키의 것,

부여,고구려,백제 등의 역사는 대한민국인 것처럼 우리 배달 한겨레 형제들의 역사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에 대해 억지를 부리는 짱골라들이 문제입니다.
치우천황이나 복희,신농,공자,묵자,징기스칸 등 남의 조상도 자기 조상이라 하고

수많은 배달갈래왕조들이 이룩한 발견,발명,업적 등을 자기 것이라 어거지를 부리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러니 짱골라의 억지에 대해 우리는 보다 정확히 민족을 분류하고 그것에 따라 역사를 논리적으로 반박할 뿐이죠.

만약 누가 우리 자신이 역사나 민족을 너무 확대시킨다고 성질을 낼지도 모르죠.

하지만 그것은 사대주의 매국노나 짱골라,쪽바리 등의 의견에 동조하는 행동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다만 배달 한겨레가 시간이 지나 이렇게 여러 민족으로 나누어졌다는 사실을 언급하고 끝내려 하나

짱골라가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리니 그것에 대해 배달 한겨레가 나누어졌다고 말하는 이상의 사실을 지적하며

그들의 무지를 일깨우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먼저 문제를 일으킨 것이 아니죠. 문제를 해결하려면 그 원인을 제거해야 하는데,

그 문제의 원인과 원인제공자인 짱골라나 쪽바리에게는 아무 말 안 하고 가만히 있으면서,

그에 대해 지적하는 우리 자신 스스로를 타박한다면 말이 안 되죠.
그런 어리석은 짓은 공정하지도 못 할 뿐더러 스스로를 자학하는 꼴이죠.

민족이란 용어가 근대 국민국가 이후에 생겨났다고 해서
배달 한겨레가 부정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민족이라는 말을 사용하기 훨씬 이전부터 겨레라는 순수 우리말을 사용해 오고 있습니다.
겨레는 같은 혈족,언어,풍습,문화 등을 공유하는 용어입니다.

고대의 배달겨레가 크게 동이계,흉노계와 융족계 등으로 나누어졌지만 그 뿌리는 함께 공유하고 있는 것입니다.
배달민족이 먼저 생긴 개념이고, 이것이 후에 광의의 동이족, 협의의 동이족 개념으로 나누어집니다.
그리고 배달계통이 흉노,예맥,말갈(여진),돌궐,동호,거란,선비,묘족,오환족, 강(티벳)족, 장족 등으로 좀더 세분되어집니다.
배달민족이란 용어 안에는 흉노계나 융족계,동이계 등 모두 담을 수 있는 말이지만 동이족이란 말은 그렇지 못 하죠.
그리고 한웅배달시대가 단군조선시대보다 더 이전의 시대니 당연한 것이죠.

요하문명 전시회도 심양이나 대련에서 열고 있는데 짱골라들은
그 유산들과 우리 배달 한겨레의 연관성을 숨기려고 엄청 노력을 하더군요. 그래서 역사공정을 더욱 펼치는 것이죠.

드러나는 한웅배달국의 홍산문명이나 단군조선국의 요하문명 등 여러 고대 유적들과 학자들의 발표로 점점 사실로 드러나고 있죠.
세계 학술대회에서도 여전히 홍산문명을 주제로 벌어지고 있으며 국회에서는 2006년 생방송으로 국회방송도 했었습니다.

홍산배달문명의 발견으로 러시아,독일,미국 등 세계 학자들의 유적 방문조사가 보다 대대적으로 벌여지려 했으나

짱골라들이 이를 막아서 모든 게 지지부진하게 지체되어 있는 중입니다.
지금 짱골라들이 그 고대 유적들을 조사 못 하게 군사통제구역으로 설정해서 출입을 아예 틀어 막고 있으며
그 유적들의 일부는 물에 수장시키거나 나무를 심는 등 여러 방법으로 파괴하고 또다른 일부는 유적지 자체를 들어내어
거기에 인위적인 장치를 하는 등 여러 방식으로 조작하고 있는 것도 알았으면 합니다.

지금까지 드러난 여러 유적과 유산들로 인해 한웅배달국과 단군조선국의 실존은 점점 확정되고 있거나 확정되었습니다.
이번 2007년 국사교과서부터는 단군조선국의 역사가 편입되었습니다.

지금까지 학계의 연구 결과로 통해 본인 역시 한웅배달국과 단군조선국의 실존을 더더욱 확신하게 되었지만
한웅배달국 이전의 환국시대에 대해서는 아직 판단유보중입니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오랑캐라 치부하던 치우천황이나 단군,징기스칸 등을

지금에 와서는 짱골라들이 자신의 조상이라고까지 우기는 코미디도 연출하고 있죠.

실제 복희,신농,요순임금 등 삼황오제 모두 배달민족일 뿐 아니라
진시황의 진나라 역시 배달 흉노계 국가이니 이미 말 다 했죠.
남의 조상,역사,업적 등을 빼앗으려 하는 짱골라들.
한,송,명 3왕조를 제외하고는 수많은 배달왕조들에게 지배당한 짱골라들.
그래서 짱골라들은 배달 한겨레에 대해 그렇게 열등감과 두려움으로 똘똘 뭉쳐있나 봅니다.

<사고전서>는 청나라 건륭 황제 때 연간 1000여명의 학자를 동원,
10년에 걸쳐 국력을 기울여 편찬한 동양 최대 총서로 무려 7만9천여권에 달합니다.

고대부터 청나라에 이르기까지 역대 중원의 주요 문헌들을 거의 다 망라하고 있는 이 책은 그 사료적 가치를

국내외에서 모두 인정하는 동양의 대표적인 고전 총서입니다.

특히 그 중에서도 동이 사료 안에는 한국역사, 동양역사의 물꼬를 바꿀 수 있는

그야말로 새로운 발견에 필적하는 귀중한 자료들로 가득 차 있죠.
만약 고대부터 청나라때까지 역대 중원대륙 모든 왕조들의 역사서들을 그 출처로 하여 종합편찬한 <사고전서>를 부정한다면
그것은 그 출처였던 중원대륙의 모든 사서들마저도 부정하는 자가당착에 빠질 뿐이죠.

청나라의 <사고전서>나 근세조선의 <조선왕조실록>은 모두 이미 디지털화되어 있어 일반인들도 확인이 가능하죠.


확인할 생각없이 무조건 비판만 하고 딴지를 거는 투덜이들은 대체로 지들 멋대로 규정해서
환빠니 어쩌니 하며 몰아부치기 좋아합니다.
마치 근거도 없는 마녀설을 끌어들여 수많은 죄없는 사람들을 죽인 유럽의 마녀사냥시대처럼...

실지로 짱골라의 왕조는 한,송,명 3왕조뿐이며
오히려 짱골라들이 배달계왕조들의 지배에 있었고 혹은 속국으로 살아간 노예종족입니다.
(실지로 짱골라족 자체가 허구의 개념입니다. 조작,날조를 시작하면서 허구의 종족을 내세운 것에 불과합니다.)

수나라와 당나라는 배달 흉노계 선비족 국가이고,
진시황의 진나라 역시 배달 흉노계 국가이니 이미 말 다 한 것이죠....

7000년을 대륙의 지배자로 군림하다 그 후 2000년은 혼란을 거듭하다 이제는 이렇게 반도에 처박혀 옛 영광은 거의 망각하게

되었지만 보름달은 앞으로 기울게 되어있고 초승달은 앞으로 달이 차오르는 형세이니, 비록 반딧불에 미치는 한국이라 할 지라도

앞으로 기울 보름달보다는 나을 겁니다.
아니 고토를 회복하는 등 다물하여 과거의 한웅배달국이나 단군조선국 같은 배달 한겨레의 영광을 다시 찾아 갈 것입니다.
어차피 역사의 수레바퀴는 돌고 도는 것이니....

많이 알수록 끊임없이 노려할 수록
유럽의 변방에 불과한 독일이 일어났듯이
징기스칸이 대제국을 건설했듯이
왜놈들이 강대국에 올라섰듯이
우리도 자주국방다물하여 다시 세계에 우뚝 서는 팍스 코리아나 시대를 열어 나가야 합니다.



만약 이 글을 보고 무조건 딴지를 거는 이가 있다면, 일단 제시한 자료 확인이나 하고 말했으면 합니다.

딴지를 걸기 위해 자신이 던진 말이 있으니 최소한 확인할 의무에서라도 해야 할 것입니다
만약 그가 확인하지 않는다면 애초에 그 사람은 알려고 하지도 않으면서 무조건 비판만 하고 딴지를 거려는 투덜이일 뿐이죠.        

자기 스스로 무덤을 판 격이죠.        
대체로 그런 사람들 대부분은 자기 멋대로 규정해서 환빠니 어쩌니 하며 몰아부치기 좋아합니다.        
솔직히 난 환빠도 아닐 뿐더러 식민사관학자는 더더욱 아니죠.        
오히려 신문,방송국 등 언론계, 여러 분야 대학교수 등의 강단학자들(개구라같은 식민사관학자들 제외)을 비롯한 학계 기타 등등
공신력있는 자료를 더 믿는 사람입니다.        
유적발굴이나 역사를 알아가는데는 역사학자만 동원되는 것이 아닙니다.
고고학자,인류학자,화학자,생물학자 등 여러 분야의 학자들이 동원됩니다.
그 유물,유적에서 나온 물질을 분석도 해야 하는 등의 여러 상호관련되어 진행되는 것이죠.        
알아보려고 하지도 않는 방관적인 태도랑 중립적인 태도는 같은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진실을 알기 위해 중립적이면서도 공정한 태도는 학자들뿐만이 아닌 기자,판사,일반인 등 우리 사회구성원 모두에게 필요한
당연한 행동인 것입니다.        
이런 내가 환빠라니 뭐니 하는 소리 들으면 정말 기도 안 찹니다.        
그렇다고 모든 자료를 다 믿으라고 강압하는 것이 아닙니다.        
각자가 그 자료들을 보면서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것이죠.        
하지만 아주 소수의 몇몇 자료가 미심쩍다 하여 나머지 절대 다수의 객관적인 자료를 마다할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다물을 이루어 다시 영광의 진정한 최강 대한국으로 거듭날 수 있는 최소한 의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우리 정신의 회복이 꼭 필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올바른 역사부터 먼저 다시 세워야 하겠죠.
역사란 현실의 거울이요 미래의 지표라고 합니다.
진실되고 확실한 역사관정립은 분명히 후대에 남길 수 있는 유일한 선물이자 우리 미래의 도약대가 될 것입니다


평화를 바라면 전쟁을 대비하라!란 말도 있죠.
준비하지 않는 자에게는 기회가 오지 않습니다. 기회가 와도 준비소홀로 실력이 부족하여 그 기회를 잡지 못 하겠죠.
하물며 주변4강국에 둘러싸인 한국은 풍전등화의 위기라 볼 수 있습니다.
손 놓고 있다가는 평화는 커녕 모든 것을 잃게 될 겁니다. 과거의 기상을 잃어버린 근세조선만 봐도 알수 있죠


[소위 세계화]라는 것은 우리 자신의 정체성이 확고하게 확립된 위에 이뤄져야 [진정한 세계화]가 이뤄질 수 있습니다.
각 국가의 역사교육,민족교육,국민교육이 바로 [그 나라, 혹은 민족의 정체성]을 기르는 교육이죠.
[시민교육]은 세계인으로서 갖춰 야할 [보편적인 윤리/덕목]을 가르치는 것이죠.
따라서 [역사교육]은 없고 [시민교육]만 한다는 찌질이의 절규에 정말 웃기는 일입니다.


(옛날 덴마-크의 "그룬트비히"라는 사람은 [너는 크리스찬이 되기 전에 먼저 덴마-크 인이 되라]고 했죠.)
유태인들이 부르짖는 시온주의, 독일의 게르만주의 운운하는 것도 다 같은 맥락입니다.
미국도 다민족국가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각 민족사회,인종사회로 굴러갑니다.
그에 따라 인종차별도 심하고... 그래서 미국 정치계에서 스패니쉬계나 흑인종,동양인 등을 비롯한 각 단체들의 힘겨루기가 극심합니다


근데 미국내 한국사회만 결집이 안 되는 편이죠. 그래서 미국에서 부당한 이익을 받는 면이 더 큽니다.
흑인이나 스패니쉬계 등은 각각의 정치의원이나 이익,인권 등 다양한 수단을 마련해 미국 정부에 압력을 주어
보다 많은 것을 이끄는 것에 비하면 정말이지 어리석기 짝이 없습니다.
하나가 되고 있는 유럽공동체마저도 각국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고히 합니다. 물론 미국도 마찬가지.


그런 기반이 되는 정체성교육도 없이 세계화를 추진한다는 것은 한마디로 사상누각입니다.
그렇게 따지면 보스니아 내전이나 아프리카의 여러 내전과 같은 위험을 안게 되는 겁니다.
체코슬로바키아가 체코나 슬로바키아로 나누어진 것이나 구소련이 무너진 후, 여러 국가가 들어선 것만 봐도
현재는 한울타리의 세계화라는 이면의 신민족주의시대로 볼 수 있는 겁니다.
하여튼 자신의 주변도 살피지 못 하면서 인류애,세계화를 부르짖는 찌질이들이 된다 면 우리는 곧 무너질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지금 폭풍전야의 풍전등화같은 어려운 상황에 놓여있는 겁니다.


최근 유엔에서 한국 순혈주의 운운하며 마치 인종차별을 낳는 식으로 민족주의가 나쁘다는 식으로 몰고 가는데 참 황당합니다.
민족주의는 부정도 긍정도 아닌 그저 중립적인 용어일 뿐입니다.
민족주의와 인종차별주의를 혼동하는 일은 더 이상 없었으면 하는군요.
어떤 이들은 애국심과 배타성을 구분 못 하더군요.
미국 사람들이 자기 나라 위해 애쓰면 애국심이고, 한국 사람들이 조국을 위해 애쓰면 국수주의,배타성입니까??
도대체 이런 사람들의 의식구조는 어떻게 되어 먹은 것인지.....
언제부터인가 한국은 스스로에 대한 자신을 잃어버린 나머지 외부에서 무슨 소리를 하면 쉽게 흔들리더군요.
그리고 도움도 안 되는 체면을 위해 손해보기를 밥 먹듯이 하고, 똥고집은 엄청 부리죠.
근세고려 아니 후조선 초기까지만 해도 나름대로 실리추구를 하는 면이 강했는데 중기에 들어서면서 유학이란 학문을
변질적인 유교로 받들기 시작하면서 더욱 그런 것 같습니다.
유교로 포장하는 것도 실은 불완전한 후조선 왕조의 정통성을 극복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었죠.
그래서 백성과 현실을 도외시한 채 양반만의 정치, 체면과 허위허례의식의 유교로 똘똘 뭉쳐
종국에는 국방력을 모두 말아먹고 외세에 침입에 쉬이 당하고 무너진 것입니다.        


몇 가지 더 인용하면서 말하겠습니다.


단일민족론의 기원은 조선유교 쥐나사대주의에 비롯합니다.
단일민족이론의 시초에 대해서는 여러 주장이 제기되고 있지만,

유학이 통치이념으로 자리잡은 근세조선조 이후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죠.
‘조선왕 독살사건’ ‘우리 역사의 수수께끼’ 등의 저자인 역사 연구가 이덕일(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씨는

‘소쥐나’ 사상에 경도된 유학자들을 단일민족이론의 시초로 꼽습니다.
이씨는 “유교를 받아들이면서 쥐나와 일체화하기 위해 같은 민족이었던 동이, 몽골, 만주족을 오랑캐로 내몰았다”면서
“민족 개념이라는 것도, 봉건시대에서 통일국가로 이행했던 유럽이나, 왜국의 경우에는 맞아 떨어질지 몰라도,
나라의 개념이 하나뿐이었던 우리나라에 적용하는 것은 무리”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는 “단군신화를 순수혈통주의로 해석하는 것은 옳지 않다”면서 “한 조상이라고 해도, 여러 지류가 흘러 큰 물을 이루는 넓은 개념으로 해석하면 다문화, 다민족 사회를 가로막는 요소로 보기 힘들다”고 덧붙였습니다.


고대에 이미 배달겨레가 크게 동이계,흉노계,융족계로 나누어집니다.
이들이 서로 다시 여러 민족으로 갈라지며 합쳐지는 등의 변천을 거듭했죠.
곧 우린 이미 배달겨레의 여러 민족으로 이루어진 다민족국가입니다.
그래서 단일민족이니 뭐니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니 서양인들이 헛소리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죠.
더욱이 그들의 혼혈은 다른 나라를 침략하여 식민지 지배로 통한 것이니...
더군다나 그들의 현사회에서도 오히려 인종차별이나 민족차별이 심하면 심했지 못 하진 않죠.
지들 주제도 모르면서 남에게 뭐라 한다는 것 자체가 어처구니 없는 거죠!


그리고 유엔에서 한국의 민족 운운하는 헛소리들은
정확히는 유럽에서의 논란이라고 보는 것이 보다 적절할 것입니다.
본인은 외국의 사례인 스킨헤드, 시오니즘, 네오나치,kkk단 등은 굳이 거론하지는 않겠습니다.
하지만 표리 부동한 그들에 대해서 비판은 하겠습니다.
유럽인들이 왜 다인종 국가를 만드는데 성공했을까.....
그것은 그들의 관용(똘레랑스 ㅗ 먹이셈)따위가 절대 아닙니다.
그것은 오직 제국주의 시대에 값싼 노동력을 착취하기 위해 끌고온 것이었으며,
2차대전 이후 경제성장에 있어 3D업종에 종사 시킬 사람들을 충당하기 위해
그나마 연관성이 있는 식민지인들을 데려온게 아니었습니까.
그리고 신생아 출생 감소로 인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였고.
그것으로 인해 다원사회를 이룩하였으면서,
그들이 본질적으로 관용적인 것처럼 말하는 것에 어이가 없을뿐입니다.


어차피 한국도 20년내 고려인 역이주.
50년내 타국민 이민을 받아들여 인구수 8000만 유지해야만 하는 �가 옵니다.
통일한국이 되면 더욱 가속화되겠죠.
순리가 그러니까 제발 먼저 설레발 치지 않길 바랄뿐입니다.
그 잘나신 프랑스도 타인종 관리 못해서 폭동이나 일어나게 만드는 주제에, 자신들이나 잘 관리하길 충고할 뿐입니다!
똘레랑스 좋아하고 자빠졌다. {-_-}


우리도 다시 일어서야 할 때입니다. 고토를 회복하고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려면 강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근세조선이 침묵을 지키고 있을 때, 왜국은 1592년이후부터 포르투갈의 조총 등을 비롯한 문물,난학(네덜 란드 학문),프랑스,독일,미국 등 많은 서양의 문물을 300년간이나 꾸준히 받아들이고 발전시켜 지금의 강국이 되었습니다.
물론 독일 역시 마찬가지 입니다 수십개의 소국으로 갈라진 약소국 독일은 끊임없이 주변 유럽의 열강에 당해왔습니다.
하지만 비스마르크의 철혈정책,그로 인한 과학의 집중적 투자 등으로 독일은 하나의 나라로 통일할 수 있었으며 그 저력으로
세계1,2차대전까지 일으키는 최강국이 된 것입니다.


서양은 동양으로부터 문물을 받기 시작해서 그리스,로마 문명의 기초를 다질 수 있었죠.
하지만 중세시대의 미쳐버린 종교때문에 건축기법 중 시멘트공법마저 잊어버릴 정도로 암울한 시대죠
하지만 아랍의 문명을 다시 받아들이면서 르네상스를 이루어 과거의 학문,문화 등을 서서히 되살리기 시작하죠.
세계최초의 종합병원이나 도서관 아라비아 숫자 등 뛰어난 동양 아랍문명이 없었다면 어림도 없었죠.
하물며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 등 의 여러 고대 저서 등이 아랍의 도서관에 보관되지 않았다면 아마 서양의 문명은 벌써 사장되어
한참이후에나 다시 발전을 이루어 나갔을 것입니다.
이 부분은 전에 ebs 교육방송에 방영된 bbc역사관련 다큐멘터리 등에서도 나왔던 내용입니다.
한웅배달국부터 시작하여 고구려,발해까지 위대한 선조들이 이룬 업적을 짱골라에게 우리 조상까지 다 빼앗기고 역사마저 빼앗기게 만든 그 후손이 못 나서 그렇지 그 조상이 못 난 것은 아니죠.
아무리 뛰어나도 그 후손이 못 나면 아무 소용없죠.
우리의 전례뿐만 아니라 잉카,마야,캄보디아의 크메르, 인도의 여러 문명,종교때문에 모든 발전이 거의 정체되게 된 근동,중동의 아랍문명 등등...


서양 역시 마찬가지죠. 동양의 문명이 없었으면 다시 르네상스를 일으키지도 못 했죠.
또 회계제도는 우리나라도 개성상단의 사개송도치부법이라는 훌륭한 복식부기법이 예전부터 사용되어왔고 시스템도 현대 서양의 그것에 비해 결코 뒤쳐지지 않습니다.
숫자는 한웅배달시대에는 산목으로, 단군조선시대에는 산대 등으로, 시간이 많이 흘러 근세조선에 들어서는 쥐나의 숫자나 조선산이라는 고유숫자도 사용했습니다.
물론 숫자표현체계는 아라비아숫자가 더 쓰기 편한듯 싶습니다
이 우리부기법은 서양보다 200년이나 앞서있어 1910년대 오스트리아 경영학회에 보고되어

고려의 회계시스템이 아라비아를 거쳐 유럽에 전파되었다고 주장되었으나

왜국의 학자가 이를 반박하는 논문을 발표하였고 당시 왜국의 식민지배를 받던 우리 나라의 상황때문에 묻히게 됩니다.
물론 금속활자에 대한 앞선 사용 또한 마찬가지죠.
참고로 서양이 동양을 서서히 따라붙다가 17세기초에 이르러, 여러 분야의 발전 에서 조금씩 추월하기 시작하죠.
그리고 서양이 세계대항해시대를 열게 된 배경 중 자연의 영향도 큽니다.
15세기에서 18세기까지 유럽은 소빙하기시대였거든요.
그래서 최북단에 있던 영국은 식량문제 등을 비롯한 여러 악조건을 타개하기 위해서 상공업을 장려시키고 과학을 위시한 학문을 공부하고 세계로 뻗어나갈 필요성이 컸죠. 이런 복합적인 이유로 끝내는 산업혁명을 일으키고 그리하여 전세계에 미국,호주 등의 영연방이 생기게 된 기저가 되죠.


솔직히 서양인들이 배가 부른 때라 해 봤자 기껏 '그리스, 로마시대'와 '산업혁명 이후부터 현재에 이르는 300년 정도'입니다.
이를 제외하면 수천년동안 아랍과 동아시아 등 동양의 지배에 있었던 야만인들에 불과할 뿐입니다.


역사의 수레바퀴는 돌고 도는 것이죠.
이제 다시 우리가 일어선다고 해서 하등 이상할 것도 없습니다.

그리고 몇몇 이들은 현재의 모습을 가지고 문명과 역사를 판단하는데, 이는 대단히 위헙하고 짧은 생각입니다.  

문명과 기후,지형 변화 등 다각도로 그 상황에서의 여러 관계들을 함께 끌어들여야 제대로 볼 수 있는 겁니다.

과거의 땅이었던 것이 지금은 바다로 되어 있는 것도 많고 또 이전에는 초원지대가 지금에 와서는 사막이 된 자역도 많죠.
한마디로 오판하는 그들은  지구의 환경변화에 대해 고려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따라서 지구의 환경변화를 중심으로 문명을 이야기할 수 밖에 없는 것이죠.

다시 한번 말하지만 유적발굴이나 역사를 알아가는데는 역사학자만 동원되는 것이 아닙니다.
고고학자,인류학자,화학자,생물학자 등 여러 분야의 학자들이 동원됩니다.
그 유물,유적에서 나온 물질을 분석도 해야 하는 등의 여러 상호관련되어 진행되는 것이죠.        

알아보려고 하지도 않는 방관적인 태도랑 중립적인 태도는 같은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진실을 알기 위해 중립적이면서도 공정한 태도는 학자들뿐만이 아닌 기자,판사,일반인 등 우리 사회구성원 모두에게 필요한
당연한 행동인 것입니다.        
본 블로그에 들어와서 게시된 여러 글들을 읽으며 전체적인 맥락을 파악했으면 하는군요.
종합과 분석을 같이 해야 그 사이의 미묘한 상호작용을 알 수 있죠.
따로 떼어놓고만 보면 나무만 보지 숲은 못 보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는 길을 헤맬일 뿐이죠.

~~~~~~~~~~짧은 토막상식~~~~~~

대놈, 땟놈 >> 대국이란 말에서 나온 말로, 이 용어를 쓰면 짱골라를
오히려 큰 사람, 큰 나라사람 하며 칭찬하는 꼴이 됩니다.

짱개 >> 계산대란 말로 영어로 번역하면 프론트,
즉 이 말을 쓰면 짱골라를 주인장이라 부르는 꼴이 됩니다.

짱골라 >> (썩을 장, 장례 장) (뼈 골) 즉 장골라란 말에 강세가 붙은
말로서 해석하면 '썩은 냄새나는 좀비같은 버러지'란 뜻.
바퀴벌레 족속들에게는 짱골라란 말도 과하죠.
그래서 그런지 그들은 씻는 것을 싫어합니다.
그들에게 나는 냄새가 고약하죠. 세계인들이 질겁을 합니다.

쪽바리 >> 왜놈들이 신는 버선이 돼지발을 닮았다 하여 족발이,쪽발이,
쪽바리로 변음된 것입니다. 물론 더러운 돼지와 연관시켜 부정의
의미도 함께 담겨 있죠.

짱골라가 주변 여러 나라들이 자기의 연호를 쓴다고 자신들의
속국이라 억지를 부리는데 실지로 짱골라의 왕조는 한,송,명 3왕조뿐이며
오히려 짱골라들이 배달계왕조들의 지배에 있었고 혹은 속국으로 살아간
노예종족입니다.
(실지로 짱골라족 자체가 허구의 개념입니다. 조작,날조를 시작하면서
허구의 종족을 내세운 것에 불과합니다.)

2007년 10월 14일 현재, 짱골라는 서력을 쓰니 서양의 속국이군......

 

 

 

'배달 한겨레'에 대해 열등감과 두려움으로 똘똘 뭉친 짱골라들....

 

그들의 무뇌무개념탑재의 끝은 과연 어디일까...

매일 끊임없이 자행되는 짱골라들의 엽기적인 소식들.

무조건 우기면 다 되는 줄 아는 억지의 대명사!

세계 모든 사람들은 바퀴벌레같은 짱골라들을 보며 그저 비웃음만 흘릴 뿐이다.

 

 

 

보다 자세한 근거들은 [몇 가지 추려본 간략한 게시물 목록들]을 참조할 것.

 

 

 

 

출처 : mars의 진실 찾아 떠나는 세상
글쓴이 : 화성인 mars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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