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N-History/03 훈족·몽골...·수메르...

[스크랩] 훈족과 한국인,,

monocrop 2007. 10. 30. 23:21

훈족과 잊혀진 Korean

                
-디스커버리 훈족연구 영어 원문 번역문-

* 이 내용은 한시간 정도의 다큐로 미국 discovery 방송사에서 제작하였으며 1999년 12 월에 열 번 방송한 내용입니다. (번역 한윤수)

유럽인들은 그들을'훈족(Huns)'이라고 불렀다. 본국 고려(Korea; 고구려의 준말) 땅에서 일어난 그들은 4세기 기간 중에 로마 제국을 쳐들어왔다.

고대 그리스 역사가는 그들을 스키타이인(Scythians)이라고 기록했으며 그 뒤의 유럽인들은 그들을 몽골인이라고 불렀다.
 
4세기 초 무렵, 극동아시아에서는 수년동안 기온이 평시보다 떨어지는 이상기온현상이 발생하였는데, 그로 인해 곡식은 영글지 못하고 동물들에게 풀을 뜯어먹힐 수 있는 땅은 부족하였다.

이런 이유로 인해 상당수의 반(半)유목 종족은 오늘날 Korea라고 알려져 있는 한국본토에서 만주 동부로 떠나게 되었다.(번역자 주: 이 부분은 영토면에서 사실과 좀 다른 것 같습니다. 현재의 한국영토를 기준으로 삼은 것 같습니다.)
 
그 길을 따라 이민족들을 규합하면서 그들은 중앙아시아 쪽으로 발걸음을 계속했다. 그곳에서 종족 대부분은 서쪽으로 향했다.
 
서기 370년경 이 방랑민들은 로마제국 국경선에 도착하여 다뉴브 강(독일 남서부에서 시작하여 동으로 흘러 흑해로 들어감; 독일명 '도나우강')을 따라 현재는 헝가리 지역인 대초원 위에 그들의 왕국을 세웠다.
 
서기 443년 경, 루가왕의 아들 “아틸라”는 그의 형제 “블레다”를 암살하고 전(全) 훈족을 통일하였다. 그는 전사들을 이끌고 무자비하고 야만적인 정복을 감행하였는데, 눈에 보이는 것이라면 닥치는 대로 파괴하고 약탈을 하였을 뿐 아니라 무고한 사람들까지도 무자비하게 살해하였다. (번역자 주; 완전히 서양인들의 입장에서 쓴 글이니 이 점을 잘 참작하기 바람)
 
그는 독일, 유럽 동부 및 유럽 남서부 일대 대부분 지역을 정복하였다.

훈족은 기마술(말타기)에 능한 이들로 궁술 또한 겸비하였는데 그것은 로마인들을 파멸시킨 큰 원인이었다. (번역자 주: 로마제국의 멸망사가 다시 쓰여져야 할 것 같군요. 서양인들에게 있어 불멸의 영화인 '벤허'에 나오는 멋진 로마군인들이 우리 조상인 고구려 무사들에게 무참히 멸망당했다는 이 기록이 우리가 아닌 양인들의 손에 쓰여진 것이라는 사실은 우리를 흥분케 하고도 남을 것 같습니다.)
 
그들은 서로 강하게 접착된 다른 재료들을 가지고 제작된 짧은 역궁(逆弓; 맥궁)을 사용하였으며, 쇠로 된 화살촉은 유럽군인들의 어떤 철갑옷도 관통시킬 수 있었다.

그들의 말은 키가 작았지만 빠른 속도와 강한 지구력이 있었으며, 그들 또한 동작이 민첩하고 영민하기 짝이 없었다.

훈족 전사들은 말이 전방으로 달리고 있는 상태에서 말 위에서 상체를 뒤로 틀면서 그들 뒤편에 있는 적을 향해 화살을 쏠 수 있었다.

“아틸라”가 어렸을 때 그의 부친 “루가”는 자신의 아들을 한 유명한 로마 가문의 어린 아들, 즉 그 이름이 Aetius (아틸라의 친구이기도 하며 서로 상대방의 전술을 잘 알며 로마 왕실의 왕자로 추정됨)라고 하는 아이와 바꾸었다.
 
십 년간 “아틸라”는 로마 왕실에서 교육을 받았고 반대로 Aetius는 훈족의 왕궁에서 교육을 받았다. 아틸라는 아마도 몽골족 역사상 가장 처음으로 서구 교육을 받은 인물일 것이다.(번역자 주; 이 문장도 서양인의 입장과 시각에서 쓰여진 것이니 각별한 주의를 요함)
 
이들 두 사람은 후에 451년에 Gaul(오늘날의 프랑스)에서 서로 맞부딪치게 되는데, “아틸라”는 계속해서 이 전투에 패배하게 되며, 452년에는 게르만족들과 함께 이탈리아를 침략하였다. (번역자 주; 주인공의 이름 '아틸라'와 '이탈리아'가 매우 흡사한 것이 주목됩니다.)

그의 군대는 오늘날의 베니스로 진격하여 로마 대표 교황 Leo와 장장 10시간동안 협상을 벌였다.

말 위에서의 장시간 협상 공로로, 아틸라는 로마로부터 공물을 받았으며 그 후 이탈리아로부터 회군하게 된다. 교황 레오는 아틸라와의 이 성공적인 협상으로 인해 교회로부터 '대제(The great)'라는 칭호를 받았다. 

아틸라는 453년에 독일공주 Ideco와 결혼을 하였다. 그는 불행히도 결혼식날밤에 죽게 되는데 아마도 그의 사인은 주독(酒毒)인 듯 하다.
 
그의 백성들은 다른 이들이 묘지를 찾지 못하도록 다뉴브강을 둑으로 막았으며, 시신을 강 중앙부에 매장하였다. 그들은 그 댐을 어떤 이에게도 오픈하지 않았는데, 그 결과 그 누구도 그의 무덤을 전혀 발견할 수 없었다.

그가 죽은 후 훈(Hun) 왕국은 멸망하였으며 그의 백성들 또한 유럽 여러 곳으로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다. 살아생전 잔인한 행위로 인해 그는 로마제국으로부터 '신의 천벌'이라고 알려지게 된다.

훈족은 유럽에, 특히 프랑스 Chateau 지역에 많은 유산을 남겼으며, 그곳에서 태어난 모든 어린아이들은 엉덩이 부위에 오늘날 몽골인들과 동일한 파란 몽고반점을 가지고 있다. 헝가리라는 국명은 훈 왕국을 기념하기 위해 Huns에서 비롯된 것이다.

세계 제 2차 대전 기간 중 연합군은 역사적으로 독일인들의 4세기, 5세기에 훈족과의 관련성 때문에 독일인들을 훈족으로 부른다. 유럽의 장례문화 역시 훈족으로부터 깊이 영향 받은 것이다.


출처 : 하늘바다의 하루
글쓴이 : 태일도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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