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story-NEWS/일본의 기원과 한국

<26>다이마(당마) 고분

monocrop 2007. 10. 20. 13:48

<26>다이마(당마) 고분

 

삼총고분군 한국인 정착 실증
창녕 교동 등 고분군과 같아
다이마는 백제계 씨족 성씨

 

다이마는 백제계 씨족의 성씨로 나라현 기타가쓰라기군 다이마초라는 지명으로 계승되고 있다.

지난 6월 이곳 미쓰즈카고분군에서 6세기말부터 7세기말까지의 원분과 방분 등 고분 33기를 발굴했다.횡혈식분묘 15기,봉분이 허물어진 석실분묘 14기,목관묘(널무덤)와 토광묘 각각 2기 등이다.고분군은 풍수설에 따른 듯 동남쪽에는 물(강),뒤에는 산을 배경으로 한 형세이다.경북 고령의 지산동 고분군,함안 말산리 고분군,경남 창녕의 교동고분군,계성고분군에 들어선 것으로 착각할 만큼 똑같은 모습이다.

국립역사민속박물관 시라이시 다이치로(고고학)부관장은 "이 고분군은 정치적 사회적 기능이 점차 약화.소멸되어 가는 과정을 복원할 수 있는 지극히 중요한 자료"라고 평가했다.나라현 가시하라 고고학연구소는 "이 고분은 고대 중국의 풍수사상에 따라 묘소를 선택한 고분으로서는 일본 최고의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매장자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함구하고 있다.     일본학자들을 "고대 중국의 풍수사상에 따른 묘소"라면서 중국의 풍수사상을 직수입한 것처럼 위장하기에 급급하다.

고대한국은 일찍이 중국 풍수설을 도입하였고 원분은 전통적인 한국묘제이다. 왜국 선주민 아이누족이 직접 중국풍수설을 도입하여 산지에 원분을 구축했을리 만무하며 미쓰즈카고분군은 한국인들의 정착을 보여주는 실증인 것이다.고대 이 지역의 주민분포와 정치현상을 종합적으로 검증해도 한국인의 묘소인 것을 알게 된다.

이 고분군지역은 앞에서 지적한 백제 목씨 일족이 점거한 지역이다.           이 지역에는 백제 도검제작자가 많기로 유명하며 오늘날까지 명물인 일본도 다이마모노 원산지로 전해 오고 있다.

서기 612년 백제계로 추정되는 마려자 왕( 왕)이 오사카의 가와치에 만법장원 사찰을 창건했으며 681년 기타가쓰라기군으로 이전하면서 당마사로 개칭했다. 당마는 당초 당마에 연유,백제전신 마한의 뿌리라는 뜻이기도 하다. 기타가쓰라기군은 660년 백제멸망 전부터 존재했다. 나라시대(710~784년)에 당마사의 보수 자료를 보면 동탑과 서탑으로 구성되어 있는 등 백제불교 양식이다.이 사찰에는 당마만다라불화(국보)가 전한다.불화 역시 전남 승주군 송광사의 불화(탱화)와 같은 계열이다.

이 무렵 왜국으로 망명해 간 백제인들은 백제 전신인 마한을 백제의 뿌리로 삼으려는 인식으로 당마사를 창건,백제불교의 명맥을 계승하려 했다.그런데 이 당마사에는 백제 신라 고구려 승려도 합류했던 흔적이 많다. 신라가 일본열도내의 한삼국세력을 통합하려 했던 움직임을 엿보게 한다.

그러나 백제사학자 오노야스마로려)가 "백제계 일본"체제를 구상하여 백제편중의 역사서 "고사기"(712년)를 다시 쓰게 됐다. 이에 가야 신라계의 반발로 8년후 "일본서기"(720년)를 다시 쓰게 됐다. 이러한 역사서 찬술을 계기로 왜국은 백제인에 의해 "일본"으로 국호를 개칭하여 신라와 등지고 독자적인 체제로 전환하기에 이르렀다.

일본사학계의 "일본"국호와 천황제도가 천무천황때부터 시행됐다는 학설은 "일본서기"의 개작에 의한 것으로 정당하지 않다.

 

................................................................부산일보 연재물(2000)

http://wondreams.hihome.com/temasogo_ilbon-hankukbunkuk.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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