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N-History/수심자님의 백제일본사

[스크랩] 근구수대왕이 응신천황이다

monocrop 2007. 10. 7. 19:35
 

고국원왕을 전사시킨 근구수대왕 by 연종열화백

백제 근구수대왕은 왕자 시절에, 일본에 건너가서 성무천황의 반란을 평정하고 362년에 응신천황이 되고,

성무천황의 후비인 야가하에히메를 취하여 아이부인으로 삼고, 야가하에히메가 침류대왕을 임신하니

태중에서 삼한왕, 즉 대마도왕으로 임명하고

5세에는 왜왕으로 임명한다.

근구수대왕은 백제로 돌아가서 태자가 되고

고구려의 침략에 맞서 고구려 평양성(압록강)에 달려가 고국원왕을 전사시켰고

마침내 백제대왕이 되었다가

383년에 다시 일본으로 가서 예전천황이 되었다.

 

제 15세 천황이 된 응신천황應神天皇(320~394)은 백제 근구수대왕近仇首大王이다.

근초고대왕이 백제 본토에서 처음 낳은 아들이 호무야화기品夜和氣命(311~374)이고 두 번째 낳은 아들이 백제 근구수대왕으로서 호무다와케品陀和氣命(320~394)다.

근초고대왕이 도일한 것은 318년 그의 쌍둥이형인 오호우스大碓命의 죽음과 관련되어 그 뒤로 고려된다.


동경東京 신내천神奈川의 한천寒川에 위치한 [대신총大神塚]에는 응신천황의 형이라는 호무야화기品夜和氣命(311~374)가 묻혀있다. 

그는 311년에 태어나 64세로 374년에 죽었는데 근초고대왕의 장자다.

호무야는 호무가와漢川에서 유래된 말로 고려되며, 백제의 한수漢水, 즉 평양 대동강을 의미한다. 현재 대신총이 있는 곳의 지명이 한천寒川이다. 한이나 한은 크다는 뜻의 우리말이고 또 같다는 뜻의 한은 대동강과 뜻이 같다.

근초고대왕이 333년 일본정벌을 마치고 백제로 돌아갈 때에, 장자인 호무야화기品夜和氣命가 도꾜東京의 왕이 되었던 것으로 고려된다.


본래 응신천황은 호무다천황譽田天皇이라고도 하는데, 호무타화기品陀和氣命(320~394)이고 백제 근구수대왕이다.

응신천황應神天皇(재위 362~367)과 호무다천황譽田天皇(재위 383~394) 두 개의 이름이 존재하는 까닭은 그가 두 번이나 천황을 지낸 것을 의미하고

응신천황으로서는 362년부터 367년이고, 예전천황으로서는 383년부터 394년까지다.


호무다品陀는 한전漢田, 즉 근초고대왕 이래 백제 수도 한산漢山을 의미한다.

호무다천황릉에 해당하는 오사까大阪 예전어묘산譽田御墓山에는 근구수대왕이 묻혀있다. 320년에 태어나 394년에 75세로 죽었다.

호무야화기(311~384)와 호무타화기(320~394) 근구수대왕의 모후는 밝히기 어렵다. 더욱이 그 이름으로 보아서 평양 대동강의 한수, 한산에서 태어났으니, 백제 본토의 근초고대왕 황후 태생일 것이다.


근구수왕자는 362년 성무천황을 물리치고 나서, 성무천황의 황비였던 신공황후神功皇后를 만나 백제 본토로 데려갔다.

근구수왕자는 신공황후를 후비로 삼아서 아이부인阿爾夫人이라 부르고 성무천황의 군대를 빼앗아 신라 정벌에 동원하였다.


근구수왕자는 369년 고구려 고국원왕의 침략을 막고, 371년 고구려 북쪽의 평양성을 쳐서 고국원왕을 전사시켰다.

371년 백제 근초고대왕은 지금의 평양 한산성 안학궁으로 천도하였고 374년에 붕어했다.

이후 근구수대왕이 백제대왕으로 즉위하였는데, 383년에는 왜국에 건너가서 응신천황이 되었고, 대신에 원자인 침류대왕을 백제로 보내어서 백제대왕으로 즉위하게 하였다.

응신천황 근구수대왕은 394년에 74세로 왜국에서 서거하였다.


근구수대왕을 모셨던 신사로 추정되는 구도신사久度神社가 남아있어서 구도신九度神과 팔번신八幡神, 주길대신住吉大神 등을 모시는데, 팔번신은 곧 침류대왕이다.

근초고대왕을 모시는 히라노平野神社에서 근구수대왕은 구도신九度神이라 하였다.


[주] 오오사까에는 백제 구수대왕의 후손이라는 3가의 신사가 있다. 오진大津신사와 가라쿠니辛國신사, 국분國分신사다. 여기서 오진大津신사는 오진應神천황과 관련되니 바로 구수대왕이었다. 응신應神을 오진이라고 읽는다.

오진大津신사의 기록; 特に百濟の貴須王の子孫と言われる葛井氏、船氏、津氏の三氏族が勢力を扶植していった。葛井氏は藤井寺市藤井寺の辛國神社、船氏は柏原市國分市場の國分神社、津氏は当社(=大津神社)とそれぞれ祖霊を祭っているようだが、明治以後であろうか素盞嗚尊や牛頭天王を祭る形になっている。


[주] 일본의 수많은 팔번신사八幡神社는 응신천황으로 잘못 알려진 침류대왕을 기리는 곳이다.


[주] 스미요시대사신대기住吉大社神代記에서 스미요시 대신과와 신공황후의 사통私通의 기록이 있다. [일본서기]에서는 근구수대왕을 구수貴須라고 기록하였는데, 스미요시住吉 중의 뒷글자 길吉 한 글자 발음인 기사가 “貴地”와 같은 발음도 되거니와 吉을 기츠라고 읽을 수도 있다. 또 그 앞에 근(近; 큰-)을 구운炭의 의미로 적었다가 스미炭로 읽게 된 것이다.

따라서 근구수대왕을 위한 신사는 스미炭궁이어야 하는데, 같은 발음으로서 스미궁隅宮이라고 기록되었다. 응신천황, 즉 근구수대왕이 서거한 곳으로 기록되어 있는 오스미궁大隅宮은 본래 스미(炭, 隅) 요시(吉, 貴須), 즉 근구수대왕을 기린 궁이다.

                           

출처 : 일본사 X-file /일본천황은 백제왕자였다
글쓴이 : 수심자 원글보기
메모 :